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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소설 (93)
네크의 무개념 분지
"하지만 빅터, 제 광학 관측 기관을 비롯한 수많은 입력장치에서, 크리스틴 양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는건 사실입니다." 주거 및 연구 보조용 AI 탑재 안드로이드인 S74n-3y는, 단어 하나 하나를 머뭇거리듯 신중하게 선택한 뒤 명확하지 않은 어조로써 문장을 표현해냈다. 평소에 쓰지 않았던 어투였다. 뭐라고 해야할까, 당황한 느낌을 주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는 실제로 지금 그리했기에, 그 어투를 선택하고 있었다. "스탠리, 진정해. 진정하라고." 수석 엔지니어 빅터 나브코프는 스탠리를 당황한 아이를 다루듯 나긋히 달래었다. 그렇다고 그에게조차 스탠리의 행동이 익숙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연구 기지에서 10년을 보낸 빅터에게도, 이러한 안드로이드의 이상행동들은 낯설었으니 말이다. "너도 잘 알고 있잖아. ..
"살덩이는 네틱스를 차별하지 마라!" "네틱스도 살아갈 권리가 있다!" "지나갑시다." "살덩이는 네틱스를 차별하지 마라!"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이봐! 자네 살덩이로군! 자네도 대의에 동참해주게! 압제자들에게 뭐가 옳은지 보여주게!" "죄송합니다. 일이 바빠서..." 날 붙잡은 네틱스 시위자는 순순히 나를 놓아주고 다시금 구호를 외쳤다. 애초에 그렇게 세게 붙잡지 않아서였기도 할테고,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좁디좁은 골목 사이사이를 수많은 네틱스들이 매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몸의 일부분에서 대다수를 기계로 교체한 전통적인 의미의 네틱스에서부터 한때 안드로이드라 불렸던 네틱스들까지. 사실상 사이버네틱스 박물회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만한 인파를 정부가 어떻게 다룰지 궁금해지긴 했다..
1/ 틱. 틱. 틱. 537번 남았다. 실제로 소리가 나는건 아니었다. 차갑게 식은 폐공장 안에서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태엽장치 따위 없었다. 규칙적으로 움직이는거라곤, 분당 180번 뛰고 있는 내 심장과 미세한 핀셋을 움직이는 내 손가락 뿐. 이따금, 내 입이 열리고 말이 쏟아져 나오고는 했다. "이제 배선을 들어내겠습니다. 젠장. 어, 10시 방향의 회로에서 3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아마 시한장치로 연결되는 붉은 선 두개가… 맞아요. 시한장치로 연결되어 있네요. 그리고 이건… 젠장. 트랩입니다. 건드리면 폭발하겠죠. 하단부를 확인해보겠습니다." 독백에 가까운 문장이다. 영화에서나 자주 볼만한 장면일지도 모른다. 폭탄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짜가, 귀에 이어폰을 하나 끼운체 폭탄에 손을 대는 것이..
"음. 분명히 통 안에 사과가 더 있지 않았나?" 중얼거린다. 내 목소리다. 몇번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목소리. 딱히 누군가에게 말하는건 아니었다. 애초에 이 선박에 탄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었으니까. 뭐, 얀센 할아버지는 부득부득 선박이 아니라고 우겼겠지. 솔직히, 양심에 찔리기도 하다. 하지만 누가 뭐라해도 내가 선박이라고 하면 선박인 것이다. 설령 세명이 타면 본격적으로 비좁아지기 시작하는 배, 아니 선박일지라도 말이다. 한숨을 쉬고 통 안에 손을 뻗었다. 해질녘이 다 되어 어둑어둑해져 안보인 것일지도 몰랐다. 직접 손으로 세어보는게 더 나을지 몰랐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뭔가 이상한데. 마지막 사과는 조금 이상했다. 부드럽고 몰캉한게, 사과보단 물러터진 복숭아라는 느낌이었다. 아니..
결전으로써 손색 없을 정도로, 마왕성의 알현실은 침묵을 유지했다. 본디 옛 엔탈리아 왕국의 왕실이 살았던 영지의 그것이기에 당연한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거대한 왕좌에 앉아 그 넓직한 등받이로 창밖의 빛을 은은히 받아내 마치 후광을 두른 것 처럼 행세하는 마왕의 모습은 그의 발로 직접 짓밟은 엔탈리아의 왕 로코츠 4세보다야 훨신 더 왕다워보였다. "드디어 당도했는가, 용사여. 때가 되었다 생각했지만, 이리 빨리 도착할 줄이야." 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괴물처럼 그르렁거리지도, 호걸처럼 걸걸한 목소리도 아닌, 다분히 이성적이고 차분한 목소리. 오히려 그랬기에 수많은 이들이 악의 길을 그와 함께 걸은 것일지도 모르리라. "마왕이여, 자신이 결국 죄값을 치뤄야 하리라는 생각은 한 모양이지? 그럼 쉽게 쉽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