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의 무개념 분지

리뷰 : 더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 2013) 본문

게임

리뷰 : 더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 2013)

Nake 2014. 7. 26. 11:11


배급사 : Sony Computer Entertainment
개발사 : Naughty Dogs
가격 : 55,000 \
출시기종 : PS3, PS4

작품 전반의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따로 표기하였고 폰트로 가립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은 사실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아이가 미래를 위해 공부하며 열심히 시간을 투자하는 동안, 집안의 가장, 일반적으로 해당 가정의 아버지가 그 집안의 생계를 부당하며 아이의 미래를 기원하는 '가족'이라는 패러다임은 우리에게 당연한 것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사실, 많은 학자가 이 근대의 가족이라는 패러다임이 르네상스 시대에 발명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중세 이전의 농경사회에서는 자식은 곧 노동력으로 치환되고는 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성장해 가족의 일손을 도울수 있도록 요구받는 아이들은 르네상스 이후의 아이들과 같은 '사랑'이나 '보호'를 부모로 부터 받지도, 요구하지도 않았죠. 

이렇게 '가족'의 모습은 시대가 요구하는 바와 상황에 따라 확연하게 차이를 보이며 변화하고는 합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는 위생과 의술이 발달해 영아 사망률이 낮아지고 평균 수명이 증가한데다, 노동력이 많다고 수익이 증가하지는 않는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계층이 등장해 발전했습니다. 곧 사회의 주류를 차지한 이 중산층에게 가족이란 아이를 하나 둘 낳아 곱고 총명하게 길러 잘 살자는 것이 목표였죠. 그 이전의 농경사회에서 가족이 단순히 많고 건강한 아이를 요구했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많큼 많은 아이와 사람들이 쉽게 죽어나갔기 때문이죠.

이 게임의 주인공, '조엘(Joel)'은 르네상스 이후의, 중산층의 전형적인 가족의 가장이었습니다. 자신의 딸을 홀로 부양하던 그는, 어느날 갑자기 참사를 맞이하게 됩니다. 동충하초가 변형된 버섯균이, 인간에게 감염되어 치명적인 세균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죠. 감염자는 폭력성이 급격히 증가하고, 이를 통제하기 위해 계엄령이 선포되고 세상 곳곳이 패닉에 빠집니다. 그 '감염'에서, '조엘'은 딸, 사라를 잃고 맙니다. 그리고 그렇게 20년이 지나죠. 그렇게 20년을 홀로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날, '조엘'은 격리에 반대하는 '파이어 플라이'라는 세력으로부터 '엘리(Ellie)'라는 소녀를 맡게 됩니다. 예전의 '문명'이라고는 모두 사라지고, 그것이 갖고 있던 패러다임은 붕괴하고, 가족이라는 개념은 해체되고 무뎌진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녀와 함께, '조엘'은 거대한 미국 대륙을 횡단하게 됩니다. 그것이 이 게임의 줄거리입니다.


<엘리는 새로운 세계의 상징입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거기에 머무르는 '조엘'은 '엘리'를 언제나 아버지로써, 혹은 그와 비슷한 존재로써 보호하려고 합니다. 언제나 먼저 앞서나가 맞서 싸우고,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위기를 홀로 해결하려고 하죠. 우리가 보기에 이런 '조엘'의 행동은 우리가 한번쯤 우리의 아버지에게 보고싶었던 멋있는 영웅의 측면이고,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생각되기까지합니다. 아버지로써 마땅히 해야할 행동을 하는 모범적인 인물이라는 거죠. 문제는, 그가 살아남아야 하는 세계가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와는 다른, 다시말해 더 이상 옛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엘리'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죽음이 만연하고 당연시되던 많은 농경사회에서는 '어린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우리나라부터만 해도, '어린이'라는 단어가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졌으니까요. 일손이 언제나 부족한 농경사회에서는, 일손이 되기 이전의 유년기의 아이는 그저 가정의 짐일 뿐이었습니다. 어린아이는 무엇보다 먼저 도움이 되고 스스로를 책임져야하는 '어른'이 되어야만 했죠. '엘리'가 나고 자란 세계 또한 농경사회와 비슷합니다. '엘리'는 누구보다 어른이 먼저 되어야만 하는 세상에 살고 있고, 실제로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는 '조엘'에게 보호받고 도움을 받아야할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녀는 '조엘'을 도울 능력이 있고, 실제로 '조엘'을 돕기도 하며, 심지어는 '조엘'이 치명적인 위기에 빠졌을때, 그를 외부로부터 훌륭하게 보호하기 까지 합니다.

결국 이 두 주인공의 갈등은 이 게임의 모든 것이며, 동시에 두 사람이 몸담고 있던 두 세계가 충돌하는 과정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광의 옛 시대와 생존의 새로운 시대. 이 두 시대는 서로 만나고 섞이며 갈등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바로 이 게임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AAA게임이 도달한, 그리고 도달해야하는 모범을 보여줍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너티독'은 거대한 세계를 아름답게 꾸미고 세밀한 디테일로 채워넣었습니다. 풍경에서부터 자잘한 대화나 소품들까지, '너티독'은 '언챠티드(Uncharted)' 시리즈를 개발하며 쌓아온 노하우를 훌륭하게 이용하였습니다. 이 결과물은, 사실 '너티독'과 '소니'가 이 게임에 쏟아부은 자본을 생각했을땐 당연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많은 돈을 쏟은 AAA게임이기에 가능했던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런 세계의 모습이 더 이상 하나의 유니크한 아이덴티티로 자리잡기에는 다른 수많은 게임에서 이미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너티독'은 '언챠티드'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심리스 엑션과 현실적이면서 설득력 있는 디자인을 보여준바 있었고, 세밀한 세계의 디테일은 '하프라이프(Half-life)'나 '앨런 웨이크(Alan wake)'등에서 본 바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더 라스트 오브 어스'만이 보여줄수 있는 것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전투 시스템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물론, 감염자들의 각기 다른 행도패턴과 이에 따른 조합, 이를 통한 수많은 대처방법들을 찾아내고 실행하는 것은 분명 스릴 넘치는 것입니다. 하드코어함이 느껴지는 느린 페이스의 엑션 또한 EA등의 대중적인 AAA 게임에서는 찾기 힘든 매력을 제공하죠. 하지만 문제는 그 하드코어함이 그 느낌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와 비슷한, 하드코어함을 가져오기만한 AAA 게임들과 같이, 게임의 어느 시점 - 그것이 플레이어에게 달려있는지, 혹은 게임의 구성 자체에 달려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 을 지나게 되면 그 하드코어함이 어느순간 익숙해지고, 당연해지죠. 그 시점부터는 그 이전의 긴장감을 제공하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멀티플레이는 이를 다른 플레이어와 플레이함으로써 효과적으로 극복하는데 성공합니다. 긴장감이 무뎌지는 고비 자체를 서로와 서로의 심리전으로 멀리 넘겨버리는것이죠. 상대방이 어디서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고 한정된 자원으로 싸우는것은 분명 끊임없는 긴장감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메인 컨텐츠는 싱글플레이입니다. 결국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싱글플레이 내부에서 그 특유의 아이덴티티를 제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게임이 갖춰야할 것은 스스로의 특색입니다. 이 부분에서 전 이 게임을 좋게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픽도, 디자인도, 전투 시스템도, 멀티플레이도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이 게임의 아이덴티티는 스토리밖에서 찾을수 없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스토리로써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다른 게임과 다른 독특한 무언가가 존재하고, 이것이 저를 다시금 끌어들이는, 그리고 기억에 오래 남게 만드는 여운을 제공하게 합니까?

대답은, '예'입니다. 하지만 그 대답을 전 만족스럽게 대답할 수가 없네요. 정말 고민하고 고민해서, 아니라고 수십번 생각한 다음에서야 겨우, 그것도 확신하지 못한채로 대답해야 합니다. 납득도 되지않고, 만족도 할 수 없어요.

(이하 치명적 스포일러입니다. 흰색 폰트로 가리니 보실 분만 드래그로 보세요.)

게임의 막바지, 여행의 목적지, 그 목전에서, 이 여행의 끝이 '엘리'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조엘'은 알게됩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조엘'은 지금까지의 여행과 게임의 주제를 모두 배반하는 선택을 합니다. 그 희생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선택말이죠. 자신의 딸과도 같은 '엘리'를 구원하는 부성애로 치장되기는 합니다만, 그건 단순한 변명일 뿐입니다. 결국 '조엘'은 자기자신의 만족, 옛 세계의 페러다임에 기반해 예전에 구하지 못했던 딸을 구하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해소시키기 위해 새로운 세계가 나아가기 위한 기반, 그 세계가 나아갈 수 있었던 가능성을 전부 파괴하고 말고, 궁극적으로는, '엘리'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계를 부정해버리고 자신의 옛 세계에 가두어버립니다. 이 것은, '엘리'의 희생이 '엘리'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게임의 끝에서 암시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게임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엘리'는 자기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이 여행의 끝까지 참여한거에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했고, 살기 위해 발버둥쳤으며, 부모의 희생마저 감당한 것입니다. 새로운계에서는, 사람의 죽음이란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그 죽음으로써 이룩 되는 것 또한 비일비재 하다는 것을, '엘리'는 이미 이해하고 있었고, 그녀와  함께 긴 여행을 해온 '조엘'또한 이해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선택으로써 맞은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결말은, 지금까지의 게이머가 플레이해온 모든 여행, 게임플레이가 전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탈바꿈시켜 버립니다.

이 게임을 저는 결코 '나쁜 게임'이라고는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PS3 버전은 '소니'와 '너티독'이 각자의 기술력의 한계를 사용해 뽑아낼수 있는 극한을 보여준 PS3의 최고의 AAA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이 게임에서 자기 자신만의 아이덴티티, 독특한 무언가를 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최고의 강점이 될 수 있었던 부분에서,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자멸해버리고 말았다고 봅니다. 이 모습은, 어찌보면 AAA게임이 당도할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보여주었다고도 생각합니다. 사실 시스템적으로 AAA게임들 거의 완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게임 자신이 가질수 있는 특유의 아이덴티티는 결국 몇 안되는 부분에서밖에 나올 수 없고, 여기서 실패할 경우에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안타깝지만 저는 이 게임을 진심으로 추천하기가 너무나도 힘듭니다. 이 게임이 지닐 수 있는 수많은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너무나,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가격 - 55,000 \

한줄평 - 현세대 AAA 게임의 한계를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둘 다 보여준 '너티독'의 역작

평가 - 50,000 \

호불호 요소
 - 잘 만들어진 AAA게임을 원한다면...   +5000원
 - PS3를 사놓고 게임은 정작 잘 안하는데, 이 게임기로 할 수 있는 최고의 게임을 딱 한개 해보고 싶다면... +5000원
 - 언챠티드 시리즈를 재밌게 즐겼었다면... +3000원
 - 잘 꾸며진 세기말을 보고싶다면... +3000원

 - 게임판 '시민 케인'이란 이야기를 듣고 왔다면... -5000원
 - 수많은 게임을 즐겨온 하드코어 게이머라고 자부한다면... -5000원
 

Review by 네크
스크린샷 출처 - 공식 홈페이지  


p.s

사실 1년전에 쓰다 만 리뷰를, 군대오고 난 다음에 시간이 많기도 해서(..) 완전히 갈아 엎어 새롭게 써서 올렸습니다.

리마스터링 나오니까 괜찮겠죠(후비적)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