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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통 속의 뇌

Nake 2015. 3. 22. 20:11



"선배. 선배는 통 속의 뇌 이야기를 들어본적 있어요?"


단 둘이 타고 있는 셔틀 안에서 소희가 내게 물어왔다. 회사에선 언제나 조용하던 그녀였지만, 술에 취해 발그레 홍조를 띈 뺨을 하고서는 나를 올려다 보며 대화를 이어가는 그녀는 조용했던 모습을 무심코 잊어버릴만큼 활기차게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 오래된 사고실험 말하는거야? 뭐, 이제는 실제로 가능하게 된 모양이지만. 몇년 전엔가, 뇌를 통 속에 옮겨다는 수술이 성공했었으니까."

쿡쿡, 소희는 나와의 연결고리를 찾아서 기쁜듯 조용히 웃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런 모습은, 그녀와 일하게 된지 2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처음 보는 것만 같았다. 아니, 실제로 처음이었다. 갖가지 이유로 회사와 술자리를 마다하고 퇴근하던 그녀였기에 이번의 모습이 새로워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역시 선배에요. 모르는게 없으시네요. 그럼 한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선배가 만약 선배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과 전혀 다른, 그러니까 지금 이 모습이 전부 허상에 불과하다면 무얼 선택하시겠어요? 통 속의 뇌라는 진실, 아니면 만들어진 허구, 둘 중에서요."

소희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여자인건가? 사실 그녀에 대해서 아는건 하나도 없었다. 회사 내에서 그녀와 사적인 주제로 오랬동안 이야기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런 여성이 나에게 먼저 다가와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 하지만 꺼림찍한 기분보다 호기심이 먼저 일었다. 오히려 이렇게 교양있는 여성이 더 매력적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나름의 최선의 답을 궁리해 그녀에게 말했다.

"나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진실을 택하겠어. 통 속의 뇌라 할 지라도, 거짓된 환상과 비교했을때 결코 포기 할 수 없을만큼 정말 소중하니까. 그 무엇과 결코 바꿀수 없는 만큼 말야."
그 말을 하며, 점점 그녀의 얼굴로 다가가, 마지막 말을 할때엔 위험하리만큼 가까운 곳에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내 뺨에 와닿았다. 결코 싫지 않은 알코올 냄새 틈바구니에서 그녀의 산뜻한 향수내음이 풍겨져 나왔고, 그렇게 서로의 마음마저 들릴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매우 찰나의 시간동안만. 이내, 그녀쪽에서 먼저 와락 안겨왔다. 소희의 아담한 몸이 내 품 안을 가득 채웠고, 나는 그런 소희를 놓칠세라 꽉 하고 부여잡았다.

"역시 선배에요. 선배다운 멋진 대답이에요. 감히 상상할수 없는 아름다운 대답이에요. 있잖아요 선배, 고백할게 있어요. 선배를 좋아해요. 정말 오래전부터요. 마주칠땜바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멍해져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오늘은 달라요. 제 마음과 몸을 모두 줄게요. 제가 오빠의 진실이 될게요. 결코 달아나지 않을 진실 말이에요. 선배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 되고싶어요."

머리가 찡하고 아파왔다. 싫지 않았다. 술 때문인가? 소희의 향수, 혹은 제복 너머로 흥건하게 젖은 땀 냄새 떄문일까? 아니면 서로의 얼굴을 스치며 달궈진 숨결 때문일까? 기쁨에 겨워, 일상의 소희에게서 볼수 있으리라 상상하지 못한 그 행복해하는 모습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의 입술을 향해 다가가 뜨겁게 키스했다. 

서로의 숨을 교환하고, 혀와 이를 탐하고, 타액이 끈적하게 뒤섞이며, 전에 해본적없는 그런 길고도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다. 자연스럽게 내 손은 그녀의 아담한 가슴위로 올라가 제복 위에서 조심스럽지만 대담하게 애무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놀릴때마다, 움찔하는 그녀의 반응이 혀를 타고 전해져 왔다. 이윽고 숨이 점점더 거칠어지고, 서로의 체온이 뜨겁게 올라간 순간, 소희는 옷을 벗기려는 내 손을 붙잡고는 말했다.

"여기서 말구요. 제 집에 들어가요."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그 손을 허리에 옮기고는 말했다.

"물론이야.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
그 말을 들은 소희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선배, 고마워요. 정말 꿈만 같아요.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믿지 못했어요. 이렇게 선배가 제 옆에 있다는게, 저만 바라봐 준다는게 믿기지가 않아요. 그동안의 소심했던 제가 멍청해 보이네요. 선배는 이렇게난 나를 사랑할 수 있는데. 전 그걸 알지도 못하고 두려워하기만 했어요. 사랑해요, 선배. 사랑해요."

그리고는 그녀는 다시 내 품에 안겨왔다. 작은 고양이같은 체구. 언제나 상상하던 이상형이었다. 왜 난 지금까지 그녀를 알아차리지 못했던걸까.


셔틀이 열리고, 그녀의 방 앞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녀를 공주님처럼 안아올렸고, 소희는 잠시 부끄러워하다 이내 행복에 겨운 얼굴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문으로 다가가자 음성 인식 잠금장치의 디스플레이가 푸른 빛으로 떠올랐다. 소희는 그 디스플레이를 바라보지도 않고 말했다.

"사랑해요, 선배."
깔끔한 디자인의 계폐문이 빠르게 열리고, 나는 소희만을 바라보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불은 꺼져있어 안은 보이지 않았지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거침없이 들어가 소희를 바닥에 눕히고 입술에 거침없이 키스를 퍼부었다. 거칠어진 숨소리는 서로를 더욱 더 탐하고 있었다. 조명이 밝혀졌지만, 나와 소희 둘 다 그 안이 어떤 상황인지 신경쓰려 하지 않았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안고 가볍게 그녀를 들어 올렸다. 소희는 가녀린 그 팔을 내 머리 뒤에 두르고, 다리로 굳세게 내 허리를 감싸 고정시켰다.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았다. 욕망과 흥분으로 혼탁하게 흐려진 눈동자 속에 비치는 것은 분명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눈동자 뿐이었다. 그녀를 안은체 한발자국 움직일때마다 잡동사니가 부딪치고 떨어졌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마치 이 세상에 둘만 있는 것처럼. 그리고 다시 입을 맞췄다.

식탁 위에 그녀를 내려놓고 셔틀 안에서 마치지 못한 일을 다시 재게했다. 목 뒤의 걸쇠를 풀어 제복을 풀어 해쳐 바닥에 던졌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내 상의를 거칠게 벗기고, 그 밑의 내 몸을 훑어보며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그 어느때보다 더욱 더 흥분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그녀의 하의를 벗겨 내던진 순간, 정말 무심코, 의도치 않게 그녀의 등 뒤로 펼쳐진 거실 정중앙에 놓여진 거대하고 수상한 기계를 발견했다. 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용도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 기계가 거실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었고, 바닥에는 각종 크기의 호스와 전선이 널부러져 있엇다.

"아, 저거요? 궁금해요, 선배?"
소희는 속옷만 입은 차림으로 탁자에서 내려와 요염하게 걸어 그 기계로 다가갔다. 나는 마치 홀린듯, 그녀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한걸음, 두걸음,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각종 선을 피하며 소짐스래 발걸음을 내딛었다. 놀랍게도 그 기계는 홀로그램이 아닌 기계식 페널을 사용하는 듯 했다. 마치 남자의 몸을 만지듯 소희는 닿을듯 말들 기계의 표면을 어루어만지다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패널을 조작해 기계가 담고있던 내용물을 개방했다. 흰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거실을 가득 채웠다. 양동이처럼 생긴 투명한 원기둥 형태의 유리 속에는 어떤 물건이 떠있었다. 용기 속의 녹색 액체와 함꼐 둥둥 떠다니는 그 내용물은 연기 때문에 제대로 분간하기 힘들었다.

"봐요, 선배. 이게 바로 선배가 지킨다고 이야기한 진실이에요. 소중하고 바꿀수 없는 것 말예요. 다른 여자는 결코 보지 못할, 선배의 진짜 내면이에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무엇인지는 이해했지만, 어떤 의미로 다가와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이다. 하지만 결국, 진실을 알아차리고야 말았다. 다리에 힘이 빠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것은 뇌였다. 통 속의 뇌.

"봐요. 선배의 뇌에요. 제가 오랬동안 보관해온 선배의 유일하고도 소중한 뇌랍니다.

"그게.. 무슨.. 어떻게.."

"예전에 맹장수술 받으신적 있으시죠? 그때 제가 선배의 뇌를 조심스럽게, 아무도 만지지 못하게 이 통에다 보관했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걸요?"
분명, 갑자기 큰 복통에 회사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 맹장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보다 훨신 오래 마취에 빠져있었던 사실을 무심코 지나쳤었다. 고통에 의식을 잃기 직전, 소희가 내 옆에서 날 살펴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기억해냈다. 그녀는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녀가 입사한지 1개월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정말 오랬동안 선배를 지켜봐왔어요. 사랑해왔다구요. 왜였는지는 잊어버렸지만,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건 제가 선배를 사랑한다는 진실이잖아요? 저는 그걸 알고 있었어요. 계속 믿었다구요. 그래서, 선배가 그동안 만났던 걸레들은 전부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는거 알고 있어요. 그 년들은 전부 선배의 겉모습만을 사랑하고 있던거잖아요? 선배의 진실을 보고도 그 년들이 선배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을까요? 아닐거에요. 저 말고는 그런 말을 할 사람은 없어요. 우리 둘은 운명인 거에요."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뜨겁게 흥분한 그녀의 몸짓은, 내가 그녀를 애무하고 그녀가 나를 붙잡던 그 모습과 달라진 것이 하나 없었다. 하지만 난 공포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었다. 몸이 얼어붙었다. 근육이 움직이질 않는다. 머리가, 혹은 저 통 속의 뇌가 공포에 굳어버렸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걱정하지 마요. 그 아무것도 모르던 걸레들은, 이미 태양으로 날아가 불타 사라지고 말았을거에요. 제가 직접 처리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이젠 정말 우리 둘뿐이에요."

인사과의 최유리가 떠올랐다. 전 여자친구였다. 어느생가 연락도 되지 않았고 회사에서도 얼굴을 마주치지 못했다. 한차례 싸운 직후였기에, 나는 그저 전근을 떠나고 동시에 차인줄만 알았다. 화성지사가 그렇게 가고싶다고 하던 그녀였다. 소희가 입사하기 1년 전 이야기다. 그 뒤에 클럽과 인터넷에서 만났던, 짧게 만났던 여자들도,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리만치 연락이 없었다. 소름이 끼쳤다. 소희는 점점 다가와 이제 내 눈 앞에 있었다. 나는 그녀를 올려다 볼 수 밖에 없었다. 눈동자가 이상하리만치 떨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그래요, 선배? 이게 선배가 원하던 진실이라구요. 소중하다고 이야기하던 바로 그 진실이에요. 인정할 수 없나요? 괜찮아요. 처음엔 다들 그럴거에요. 하지만 선배라면 적응할 수 있을거에요. 달라진건 아무도 없다구요. 겉모습만 보는 다른 사람들은 지레짐작하기 일쑤겠지만, 전 달라요. 이미 선배를 바라보는지 10년하고도 2달 12일 3시간인걸요. 전 선배가 어떤 상태인지 신경쓰지 않아요. 전 선배만을 사랑하고, 선배만을 위해 있어요.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노래를 즐겨 듣는지, 목욕할땐 어디서부터 씻기 시작하는지, 어떤 성적 취향을 지녔는지까지요. 실망시키 않도록 혼자서 연습까지 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소희는 참을 수 없을만큼 행복에 겨워하고 있었다. 숨결은 더 거칠어졌고, 새빨갛다시피 달아오른 얼굴은 한껏 부풀어 오른 기대에 덜덜 떨고 있었다. 입가에 침이 흐를 정도였다. 한순간, 나는 그곳에서 광기를 엿봤다. 결코 본적도, 상상한적도 없는 부류의 광기였다.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내 뇌가, 아마 저 통 속에 들어있을 쭈글쭈글한 살덩이가 몸에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실을 깨달은 육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전 선배의 짝이에요. 저 주름진 핑크빗 뇌까지 사랑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축하할 때가 온거같아요. 우리의 첫째날인거, 맞죠? 하나가 되는 첫날말예요."

그렇게 말하고는, 소희는 바닥에 주저앉은체 할말을 잃고 입만 뻐끔거리는 내 위에 올라타왔다. 녹아버릴만큼 뜨거운 그녀의 허벅지가 내 사타구니를 지그시 눌러왔다. 여전히 난, 움직일 수 없었다. 방금은 그렇게 들어올렸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마치 온몸이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아무 것도 하려 하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이 우스꽝스러운 연극같았다. 천천히, 소희의 얼굴이 내 눈 앞으로 가까워져 왔을때, 나는 생각했다. 이건 꿈이야. 악몽이라고. 자신이 서로 죽고 죽이는 삼류 드라마의 조연임을 깨달은 극중 등장인물이 된것과 같은 그런 꿈. 분명, 그런 생각을 하며 공포에 서려있을 내 얼굴을, 소희는 살포시 쓰다듬으며 말했다.

"긴장하지 마요, 선배. 저도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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