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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의 무개념 분지
마법소녀는 아직도 성황리에 영업중! 5 본문
13.
"안돼."
아침 일찍 시작되는 일렉시아 엘펜스트레이드의 '푸른 이끼의 커피 가게'의 새로운 아침은 바로 그 두 음절이 울려 퍼지며 시작되었다. 원두를 볶고, 가게의 명물인 티라미수를 비롯한 갖가지 디저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런 부정형 음절을 일렉시아가 입밖으로 내뱉은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그녀 뒤를 쫄랑쫄랑 쫓아다니는 키 작은 소녀 때문이었다.
"아, 왜요! 제 정체도 전부 알려드렸는데! 쪼잔하게 정말!"
"쪼잔한게 아니라, 당연한거지! 어제는 우리집에서 자더니, 지금까지 따라와서는! 여튼, 난 이제 엘름이고 슈프림이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니까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
"흥! 그렇게 말하면서, 이 카톡방의 정체는 뭘까요?"
"엇!"
뜬금없는 민아의 반격에 놀라 뒤를 돌아본 일렉시아는, 자신의 핸드폰을 든 민아가 그녀의 카톡방을 뒤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를 저지하려는 일렉시아의 손길을 요리조리 피하며, 민아는 소리내어 카톡을 읽기 시작했다.
"자, 어디보자. 입장 인원 347명, 생각보다 많네요? 어디보자…헤스론…'이번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 있어?'…읽지 않은 사람 332명…록파…'이 게임 같이…'…록파…'키우던 개복치가 돌연사!…'…헤스론…'엇 잘못 보냈다'…헤스론…'오빠 오늘 한가해?'…읽지 않은 사람 0명…
…이게…뭐지…"
"그래서 보지 말라고 하려고 했는데…"
민아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원래 자리에 핸드폰을 두고는 그것이 정말 역겨운 것인 양 핸드폰을 슬슬 피해다니기 시작했다.
"여하튼, 난 결백해. 이제 돌아가줘. 나는 일해야된다고."
"마법만 알려주면 돌아갈게요. 네? 아니면 티라미수 만드는 법이라도 알려주세요!"
"그것도 안돼! 그건 내 비법이란말야!"
"그럼 대신 마법을 가르쳐 주시는 거에요?"
"아니."
"너무해요! 이렇게 옷까지 맞춰서 만들어왔는데!"
그랬다. 가게를 분주히 돌아다니는 일렉시아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민아는, 하룻밤 새 일렉시아가 입고 있는 유니폼과 똑같은 옷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분명 같이 집에 들어올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런 합리적인 의문에도 불구하고, 민아의 유니폼은 일렉시아와 디자인이 똑같았고, 질감으로 미루어보아 일렉시아가 입고 있는 옷보다 더 고품질의 옷임이 분명했다.
"대체 어디서 만든건지는 모르겠다만…"
"제가 직접 만든거랍니다! 손재주가 좋아서 말이죠! 밤의 손재주도 마찬가지구요!"
순간 일렉시아는 식은땀을 흘렸다.
"마법을 가르쳐주시면 언니를 위해 매일 밤 그 손재주를 써드릴테니까요! 네? 제발요! 가르쳐주세요! 제자로 받아주세요 언니! 네에? 제발요!"
"그만!"
결국, 일렉시아가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안돼. 싫다고."
짜증이 섞인, 아니, 체념이 섞인 목소리. 그녀가 내뱉은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날 내버려둬.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 마법에도, 전쟁에도.'
"난 지쳤어."
'어째서 간부가 된건가요?' 볼트의 질문. 그래.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걸까. 일렉시아는 생각했다. 맨 처음 가본 이세계에서 다른 사람을 이끌고 앞장서 침공하고, 맨 처음 만난 외계인에게 손을 내밀기 전에 총구를 들이밀게 될 줄 그 누가 알았겟는가. 그저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충실하게 했을 뿐인데, 그 길의 끝에서 일렉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녀가 기대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끝없는 전쟁은 감정을 모두 앗아간다고, 혹자가 말했었지.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단 한가지 감정만이 남은 것이다. 피곤함. 끝나지 않는 피로.
그런 일렉시아에게 있어서 이 두번째 인생은 기적이었다. 새로운 희망이었다. 그런 삶을 놓칠 일말의 가능성도, 일렉시아는 만들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 가능성이, 세상이 자신을 휩쓸어가도록 할 수 없었다. 지금 이대로. 변하지 않고.
하지만 그런 일렉시아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듯, 민아는 이죽이며 웃고 있엇다.
"그리고말야, 마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은 불가능해. 기초마법이라면 모를까, 네가 생각하는 마법은 알려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란 말야. 돼지한테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 처럼 말야."
"어멋, 그럼 제가 돼지라는 건가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일렉시아는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마법은, 어느정도 기초적인 부분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습득 할 수 있겠지만, 네가 가진 '의태'나 '예지' 같은 고위 마법은 개인의 적성에 달려있는 부분이야. 완전히 적성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마법을 알려주는 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거지. 앞서 말했듯이, 돼지에게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없는건, 애초에 돼지에게 날개가 달려있지 않기 때문이어서야. 내 마법도 마찬가지인거고."
"에이. 마법이잖아요? 마법이란 모름지기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거라구요. 그렇게 복잡한 논리로 만들어 진게 아니란 말예요."
"…그래. 모르겠다. 너같은 괴… 마법소녀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네. 내가 마법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는 이유를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자신이 할 말은 모두 마쳤다는듯, 일렉시아는 더 이상 민아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민아가 무슨 말을 해도 신경쓰지 않으려는 눈치였다. 마치 보지 않으면, 외면하면 모든 만사가 원활하게 돌아갈 것 마냥. 하지만 민아는 그런 상황을 가만히 놔둘 소녀가 아니었다. 민아는 말했다.
"그럼, 한 번 써보시면 안될까요?"
"…뭘?"
"언니의 마법요."
대답 대신, 일렉시아는 한숨을 푹 쉬고 민아의 등을 카운터 밖으로 떠밀었다.
"안돼."
"맨날 안된대! 언니 바보!"
"안되는 건 안되는 거야. 티라미수라도 줄테니까 먹고 빨리 돌아가. 코코한테 가던 너희 부모님에게 가던, 이 가게에서 나가줘."
그렇게 말하며 꺼낸 접시 위에는, 일렉시아가 손수 만든 티라미수 한조각이 먹기 좋은 직육면체 형태로 잘려 하얀 접시 위에 깔끔하게 플레이팅 되어있었다. '먹어주세요'라는 명백한 메세지를 외치는 그 달콤한 케이크 조각의 자태에 순간 시선을 뺐긴 민아는 이내 고개를 맹렬히 흔들고는 접시를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밀어냈다.
"저…저는 다희 언니처럼 케이크에 약하지 아…않으니까요."
"…네 떨리는 손을 보면 그런 것도 아닌것 같다만."
그렇게 말하며 일렉시아는 접시를 다시 민아쪽으로 밀었다.
"그…그건…"
민아의 떨리는 눈동자는 분명 일렉시아와 티라미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어떤 것을 택해야 할지 분명히 망설이고 있었다. 결국 민아의 눈동자는 일렉시아를 택했다. 민아는 일렉시아를 응시하며 티라미수를 떠먹는 것을 택했다. 기대했던 것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푸근하고 달콤한 티라미수를 한스푼 가득 떠먹고 우물거렸다.
"하나만 물어보자. 왜 나야?"
일렉시아가 물었다. 순간 떠오른, 중요하지 않은, 하지만 이미 답을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었다.
"워기워에요."
"다 먹고 말해."
"꿀꺽. 음. 그러니까, 뭐긴 뭐에요. 세뇌 마법을 쓰실 수 있어서에요."
알고 있었지만. 일렉시아는 크게 한숨을 쉬고, 카운터 위에 포갠 양팔 위에 얼굴을 파묻으며 생각했다. '세뇌'. 내 마법은 왜 그런 마법이었던 걸까. 남을 조종하는 것 따위, 좋은 것 하나 없는데. 이 아이는, 그 마법을 배워서 어떻게 할 생각인걸까. 무엇을 원하는 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결코 꼬리를 물고 새로운 대답과 물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기에, 일렉시아는 너무 피곤했다. 대신, 그녀는 후회했다. '세뇌'. 내가 마법을 쓸 줄 몰랐더라면, 이런 결과에 다다르진 않았을텐데. 입대따윈 하지 않았을 텐데.
"한번 보여주시면, 저 혼자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안할거야."
"왜 그래요? 다른 사람한테 써보라는 것도 아니구요, 저한테 써보시면 되요!"
"안돼. 슈프림한테 마력을 감지당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건데!"
민아의 입꼬리가 조그맣게 올라갔다.
"괜찮아요! 제가 마법을 썼다고 하면 되니까요."
"안돼. 그런 변명으로 무슨…"
"아니면 저한테 쓰기 부담스러우신건가요? 어머, 절 신경써주실 줄이야."
가슴에 손을 올리고 꾸벅, 감사를 표하는 민아. 어딜 보더라도 귀여운 장난이자 놀림이었지만, 일렉시아는 마냥 기분나쁠 뿐이었다.
"그렇다면, 맨 처음 들어오는 손님한테 한번 써보시면 어때요? 세뇌에 걸린 사람의 기억을 지우실 수 있는거, 다 알고 있어요."
"싫…"
이죽이며 웃고있었다. 민아는. 그리고 그렇게 웃으며 민아는 일렉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일렉시아는 계속 인상을 찌뿌릴 수 없었다. 민아의 등 뒤로, 가게의 문을 열고 예림이 들어왔다.
14.
안은 낡은 현관문 앞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복도 한켠에 같은 모양으로 제작된 문과 창문이 번갈아 일렬로 배치되어 있었고, 그 반대편은 훤히 뚫려 넓은 대로를 가득 채운 차량의 행렬과 그 곁을 지키는 것 같은 수호병 마냥 배치된 가로수들 너머로 거대하고 높은 빌딩이 이루는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펼쳐져 있었다. 전형적인 도시의 광경이었다. 그런 도심에 가까운 이 건물의 시설은 뜯겨져 나간 광고지의 접착제의 흔적이 아직까지도 덕지덕지 남아있는 더럽고 허름한 현관문 만큼이나 오래되고 낡았지만, 그럼에도 이 근방의 집값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아마 이 건물이 가진 고유의 매력보단 이 위치가 가진 영향력 때문이겠지, 라고 안은 생각했다. 그런 몽상을 의식적으로 끊고, 안은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3년만에 듣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안이에요."
「안? 정말 오랬만이다! 잠깐만!」
현관문 너머로 발소리가 가까워져왔다. 그 소리는 문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가, 멎었다. 그 소리 대신, 잠금장치가 풀리는, 금속과 금속이 맞물리며 정확하게 상호작용할때 울려퍼지는 '철커덕 척'이라는 경쾌하고 맑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다희는 안을 대면했다.
"3년만이네?"
먼저 입을 연건 다희였다. 친근하게 웃으며 오랬만에 만나는 옛 동료, 옛 동생을 맞이했다. 그런 것 치고는 안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안의 표정은 무기질마냥 무미건조했다.
하지만 그런 안의 쌀쌀한 태도에 다희는 전혀 실망하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맨 처음 그녀를 만날 때 부터, 그렇게 표정이 많은 아이가 아니었다는 것을 다희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까지 이해하는데엔 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이유를 알기 전에, 한참도 전에 이미 다희는 안을 이해했고, 또 그런 그녀의 태도를 존중했다.
"잘 지내셨죠?"
그렇게 말하며 안은 현관을 둘러보았다. 빈말로라도 결코 넓다고 할 수 없는 현관의 대부분이 휑하니 비어있었는데, 그나마 있었던 신발조차도 헤지고 평범한 스니커즈 두켤레와 그것보다 더 심하게 헤져있는 운동화 한켤레가 전부였다. 그 중 스니커즈 한켤레는 다른 신발과 크기가 확연하게 달라서, 다른 누군가가 이 집 안에 또 있다는 것을 안은 어렵지 않게 유추했다. 십중팔구 경미라고, 안은 추측했다.
"어서 들어와."
안은 다희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평범한 자취생의 방. 다희의 집을 처음 본 안의 머리에 바로 든 생각이었다. 집값을 고려하면 전혀 그럴수 없는 부분이었고, 집 또한 혼자 살기엔 조금 넓었지만, 분위기만큼은 분명 자취생의 방이었다. 거실에는 27인치 소형 TV가 작은 소리로 쉴세없이 광고를 뱉어내고 있었고, 옷가지나 책들이 적당히 정리되어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거실 구석 한켠에 경미가 교복을 반쯤은 벗고, 반쯤은 입은체 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 빈둥거리고 있었다.
"어- 안이네에. 오랬만이야."
그 상태 그대로 고개만 돌려 손님을 바라본 경미는 특유의 느긋하고 맹한 미소를 지으며 오랬만의 안에게 말했다.
"…올해로 고3 아니셨나요?"
맥이 빠진 듯, 안이 말했다.
"지금 이 시간에 학교에 계시지 않고 여기서 낮잠을 주무시고 계셔도 되는겁니까…!"
"너무해에! 예림이도 그렇고, 왜 다들 나를 만나자마자 하는 소리가 그 소리를 하는거야아…"
누가 들어도 걱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나긋한 목소리로 대꾸한 경미는, 그대로 다시 엎어졌다. 이내, 새근새근한 숨소리가 TV 소리에 묻혀 조그맣게 들려왔다. 그 사이, 다희가 쟁반에 차를 내왔다. 티백으로 올려낸 녹차였다. 안은 바로 녹차가 담긴 머그컵을 받아들었다.
"내줄거라곤 이런 것밖에 없어서 미안해. 오랬만에 온건데."
"아녜요. 이걸로 충분합니다."
"그래. 그래서 넌 슈프림 밑에서 계속 일하는가 보네?'
"예."
감출 것도, 숨길 것도 없었다. 안이 잎은 양복의 옷깃에는 슈프림을 상징하는 핀이 꽂혀있었기 때문이다. 하트와 방패, 그리고 문장. '평화와 안녕을'.
"정확하게는 슈프림 '밑'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체계적으로 서포트를 해주는 덕에 게릴라전을 펼칠때보다 더 원활하게 엘름을 추적할 수 있게 되었죠."
"하하, 네 마법소녀는 아직도 성황리에 영업중인가 보네? 은퇴한 나와는 다르게말야. 항상 생각했던 거지만, 코코가 내가 아닌 널 맨 처음에 스카웃했더라면 전쟁은 더 빨리 끝났었을지도 몰라."
"아닙니다."
안은 담담하게 말했다. 별 다른 변명이 구구절절 붙지 않은, 안만의 담백한 겸손이었다.
"그래, 우리 안처럼 잘나가는 마법소녀가 날 찾아온 이유가 뭔지, 이야기 해 줄 수 있어?"
"다희 언니의 힘을 빌리고 싶습니다."
안다운, 단도직입적인 요구라고 다희는 생각했다.
"이번 대사관 폭탄 테러 사건 직후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발족된 슈프림의 수사 본부는 일주일 가량 수사를 진행하던 도중, 수사 과정에 있어서 현지인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단순한 서포트 형식을 넘어서, 현지인이 주도하여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 수사 본부는, 지난 몇년간 엘름과의 전투와 잔당을 추적하는데 뛰어난 성과를 보여준 마법소녀로 구성된 테스크포스를 구성, 수사 권한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그 테스크포스의 선두를 제가 맡게 됬구요. 이 테스크포스에, 다희 언니와 경미 언니의 조력이 필요합니다."
다희는 그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했다. 안을 도와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더 본질적인, 안의 생각, 행동, 말, 의도를 생각했다. 무엇이 안을 움직였을까. 그러고서야, 다희는 준비된 대답을 꺼냈다.
"미안. 네 제안을 받아들일수는 없겠네."
"왜죠?"
안은,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치고 들어왔다. 아쉬움이 섞인 것 처럼 들리지는 않았지만, 안이 감정을 말에 섞어 말한적은 거의 없었기 떄문에 다희는 섣불리 단정하지 않았다.
"말했다시피, 난 은퇴했어. 그것도 3년 전에 말야. 득시글대는 현역 마법소녀 사이에서 짐이 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또, 누군가를 추적하는데 있어서 내 능력은 두개 다 도움이 되는 능력은 아니니까."
"…"
안은 반박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본능적인 거부감 같은 것이 안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은 타당한 논리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관철해 나갈 수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 억지를 부리지 못했다. 언제나 그랬다. 마땅한 반박을 찾지 못한다면, 이를 찾을때까지 침묵하고는 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들어가 그 반박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하고는 했다. 다희는 그런 안의 사고방식을, 침묵의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물었다. 아니, 안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는 고민을 명확하게 입 밖으로 꺼내어 주었다.
"사실 난 네가 여기에 온 이유가 궁금해. 내가 말한 반박은 충분히 네가 유추할 수 있었던 반박이잖아. 그럼에도 날 찾아온건, 너답지 않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다시 한번 물어볼게. 왜 날 찾아온거야? 진짜 이유가 뭐야?"
머릿속에서 맴돌던 생각을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전해들은 안은, 조금 더 생각했다. 싸구려 녹차의 향은 향이라고 하기엔 너무 옅었고, 찻잔 안의 물은 점점 더 탁하게, 누런색에 가깝게 진해졌다. 안은 말했다.
"언니하고 함께 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안이 다시 말했다.
"언니가 이끄는 길을 따라, 악당을 물리치고 싶어서요."
남서쪽으로 내어진 창 밖의 아파트 단지 사이로 짙고 붉은 노을속의 태양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붉은 햇살은 TV가 작게 재잘거리는 거실과 그 거실의 한켠에서 웅크린채 자고있는 경미, 그리고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안과 다희의 옆 얼굴을 비췄다. 태양이 비추는 면의 얼굴은 마치 타는듯 붉게 이글거렸고, 반대쪽의 얼굴은 심연속에서 눈동자 하나만 달랑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전 옛날이 그립습니다. 시간이 갈 수 록, 그 욕구는 커져만 갑니다. 옛날에는 신념을 가졌었고, 목표를 가졌었지만, 지금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잘 알 수 없게 되어버렸어요. 지구를 지킨다는, 그래서 엘름을 물리친다는 목표가 정녕 맞는 목표인가요? 지금 남은건 저 혼자 뿐이고, 모두들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죠. 예전의 저는 다희 언니를, 경미 언니를, 음벨씨를 보며 더 강해지길 바라며 길을 걸었었는데, 지금은 저 홀로 외길을 걷고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이젠 아무 것도 모르게 되어버렸습니다. 이 길을 가는게 정말 맞는겁니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고, 아무도 이끌어주지 않아요. 제 길은 외길이건만, 길 앞에는 아무도 서있지 않아요. 언니가 있어야만, 언니가 함께 있어주어야만 저는 제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맞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도와주세요."
안은, 그렇게 고백했다. 3년 전부터, 안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아두고 있었던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진심의 무게를, 차가운 마음 속에서 힘겹게 꺼낸 이야기의 무게를, 다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코코로부터 맨 처음 선택받은 그 순간부터, 그리고 피가 이어지지 않은 동생들을 맞이하게 되면서부터 함께 받게 된, 맏언니로써의 의무이자 책무였다.
그리고 다희는 깨달았다. 안의 고백은, TF로써의 권유가 아니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건, 누굴 위해, 언제, 누굴 대적하던, 다희를 따르고 싶다는 안의 선언이었다.
그런 안의 목소리를, 안은 거절해야 했다.
"안돼."
그리고 다희는 안의 제안을 거절했다.
"너는 나 없이도 잘 해내고 있어. 아니, 네가 가장 빛나는 때는, 네가 혼자 있을대야. 누군가의 의견이나 목소리에 구속되지 않고, 그저 네가 네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을 향할때, 넌 가장 아름답고 강하지."
거절했다. 또 등을 맞대고 함께 싸웠던 동료로써.
"나는 네 손을 잡아 줄 수 없어. 너도 알잖니? 난 이제 너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어. 다른 목표를 보고, 다른 세상을 꿈꾸지. 결국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길을 혼자 걸어갈 수 밖에 없는거야. 하지만 힘을 내. 아무리 외롭고 앞이 보이지 않아도, 스스로의 길을 걸어 갈 수 있도록 힘을 내야해."
동료로써, 그리고, 맏언니로써.
"난 생각해. 그 길의 앞에 아무도 보이지 않더라도, 네가 믿는 바를 따라간다면 넌 반드시 그 길을 다다를 수 있어. 그리고 만약, 그 끝이 네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면, 그저 다른 길로 향하기만 하면 될 뿐야. 좌절하지마. 그렇게 돌아가더라도 넌 결국 네가 원하는 끝에 다다를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돌아가는 것 또한 하나의 길이니까. 넌 언제나 옳은 길을 가고 있단다. 네 자신을 믿으렴."
마지막으로 남은 5명 중 한명으로써.
안은 그 말을 들었다. 곰곰히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말을, 가슴 속에 새겼다.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었다. 안은 언제나 담담했다.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고,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문에 안은 현관을 나섰다. TV의 광고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함께 엘름을 물리치자-!" 예림의 밝고 맑은 목소리. 안은 현관문을 열고, 다희의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 문을 닫기 위해, 뒤를 돌았다. 그 순간, 다희가 안을 껴안았다.
"미안해."
다희가 말했다.
"죄송해요."
안이 말했다.
안은, 다희의 굳센 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굳센 힘은, 떠나 보내는 아쉬움에서 온 것이 아니라, 떠나 보낼 수밖에 없는 미안함이 담긴 갸냘픈 힘이었다. 그 힘을 기억하려는 듯 안은 가만히 있었고, 그 첨을 기억하려는듯 다희는 가만히 있었다. 15cm 가량 차이나는 키 때문에, 그 광경은 살짝 어색했지만, 아무도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정적만이 둘을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시간은 둘을 갈라놓았다. 문이 닫히고, 안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낡은 플라스틱 버튼을 누르자 옅은 불빛이 버튼 뒤쪽으로 비치더니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는 소리가 육중한 문 안쪽에서 울려퍼졌다. 금새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안이 올라타고, 그 자동문이 스르르 움직이며 닫히자, 휴대폰의 진동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안은 그 전화를 받았다.
「결과는?」
"부정적. '위치 닥터'와 '블러디 메리'는 합류하지 않는다. 예상했던 손실이기 때문에 계획에 차질은 없다. 지금부터 '아만의 복수' 작전을 본격적으로 개시한다. 나, '칼레이도 스코프'를 필두로한 7명의 오메가급 마법소녀로 이루어진 TF를 발족하고, 대사관 테러 사건을 바닥부터 다시 시작한다. 모든 증거를 다시 모으고 다시 분석하며 모든 사람을 용의자로 고려하고 모든 가능성을 재검토한다. 이상의 내용을, 다른 부대원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양호.」
전화는 끊겼다.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드르륵, 문에 달린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컹, 하고 미세한 진동과 함께 문이 열리자, 안은 밖으로 나섰다. 그 발걸음엔, 어떠한 머뭇거림도, 망설임도 없었다.
15.
다희는, 현관에 서서 말했다.
"듣고 있었지?"
"예."
경미가 말했다.
"후회하지 않겠어?"
"물론이죠."
"정말로?"
"예. 저도 언니 동생인걸요… 그리고 이것 또한 제 선택이니까요."
"…그래."
다희는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사과하지 마세요. 사과해서는 안되요."
"…그래."
한숨소리가, 작게 퍼졌다.
"준비하자."
"네."
"안이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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