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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크리스마스 선물

Nake 2016. 12. 24. 01:04



눈이 내려요.


춤을 추는 것 같은 함박눈이 내리네요.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더없이 어울리고 적확한 표현이기도 해요. 나름의 리듬을 가지고 흩날리는 눈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설레오네요.


정말 감성적이라구요? 후후후. 그렇진 않답니다. 전 정말 이해타산적인 소녀라구요. 아름다운 눈에 감격해 즐거워지는 소녀는 아니에요.


물론 제가 보고있는 밤하늘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도 아니지만요. 차 한대 다니지 않는 고요한 거리, 소복히 쌓인 눈을 비추는 주황색 가로등이 공중에 부유하는 함박눈과 저어 멀리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의 배를 비추우고 있지만, 그 장관과 제 기대는 전혀 다른 문제랍니다.


제가 눈을 좋아하는건 눈 그 자체보다 눈의 상징 때문이에요. 그게 무어냐구요? 당연한거 아닌가요? 눈송이가 뜻하는 것은 바로 추운 겨울이 오고 있다는 증거잖아요?


겨울을 기다리는 이유요? 말할 필요가 없네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 존재해서에요.


바로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말이죠!


빨간 옷을 입은 뚱뚱한 할아버지가 근 1년간의 노고를 축하해주러 온다니, 언제나 착하게 행동하는 보람이 생기는 날이에요.


맛있는 초코칩 쿠키도 구워놓았고, 상쾌한 우유도 따라놓았답니다. 아름답게 꾸며진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면 누구라도 선물을 주고싶어질 거에요!


"추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앗. 저도 모르게 입에서 캐롤이 흘러나왔어요. 평소엔 이러진 않는데, 웃음이 멈추지 않는것도 어쩔수가 없어요. X-마스,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이브! 혀 끝을 맴도는 그 감미로운 단어란!


"정말 아름다운 노랫소리구나, 돌로레스?"


어느샌가 자비어 삼촌이 발코니로 나와 제 노랫소리를 들은 모양이네요. 얼굴이 화악 불거지는게 순간 느껴져와요. 으으. 부끄러워라.


"벌써 돌아가시는거에요?"


"벌써라니, 밤 10시가 다 됬단다. 착한 어린이는 잘시간이야."


"어린이라뇨! 저번주에 14살이 된걸요?"


"그래, 그래. 숙녀분. 그래도 빨리 주무셔야죠?"


"삼촌 돌아가시는건 보고 들어갈거에요."


손바닥을 내밀어 흔들며 말했습니다.


"정말 착한 아이구나. 우리 윌리엄이 너만했으면 좋겠는데 말야. 그런데 대체 윌리엄은 언제 나오는거야. 윌리엄! 안오면 두고 간다?"


삼촌이 현관 안으로 돌아 외쳤어요. 후후. 제 또래인 윌리엄은 이러다가 선물을 못받을지도 모르겠네요. 


다시 하늘을 바라봐요. 새하얀 입김이 싸아하고 퍼지네요. 그런 입김이 바람에 실려 되돌아와 입가에 식어 얼어붙는 느낌도 겨울의 묘미같아요. 짜릿한 느낌이랄까. 색다르고, 다른 계절에선 결코 느낄수 없는 느낌이잖아요. 


"잠깐, 잠깐만요! 신발 좀 신구요!"


그렇게 행복한 시간이 흘러가는 한편, 윌리엄이 현관에서 징징거리고 있었습니다. 새로 산 신발이 발에 안익는대라 뭐래나. 


생각해보면 윌리엄은 언제나 불평투성이인 친구에요.


왜요? 사실은 사실이잖아요. 툴툴거리기만 하고, 자기 할 일은 똑바로 안하고!


사촌이라 자주 볼 일이 없다는게 정말 다행이에요. 흐흥.


그래도 이건 좀 너무 오래걸리는것 같네요. 저는 바쁜 소녀라구요. 빨리 들어가서 자야되는데, 말도 안되는 이유로 질질 시간을 끌다니. 참을수 없어.


"너 그러다 산타가 선물 안준다?"


기다리는건 저만이 아니에요. 다들 윌리엄을 기다리는 것 같아, 따끔하게 한소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윌리엄은 바로 쏘아붙이더군요!


"뭐래. 산타가 있을리가 없잖아. 너 설마 산타를 아직도 믿는거냐?"


"므엇- 윌리엄! 조용히 하렴! 산타란 실존한단다!"


"뭐라는거에요! 아빠도 돌로레스를 감싸는거에요? 초등학생도 아니고, 말도 안되는구만!"


영차, 진짜로 그렇게 소리내며 신발 속에 발을 억지로 구겨넣은 윌리엄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내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산타는 거짓말인걸 누가 몰라요?"


"아냐! 산타는 정말 있다구!"


"증거라도 대보든가!"


으으. 이 정말 짜증나게. 뭐, 하지만 전 화를 내지 않았어요. 언제나 산타에게 선물을 받는 착한 아이인 제가 이브에 화를 내서 나쁜 아이로 찍힐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증거는 많이 있다구? 매년 우리 집에서 내 쿠키와 우유를 먹고 선물을 놓고 가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거 다 네 아버지야! 바보 아냐?"


"아냐! 작년에 우리 아빤 출장 가셨는데 그때도 선물을 받았다구!"


"네 엄마도 준거겠지! 바보같이. 진짜로 믿을줄은 몰랐네."


"둘 다 그만 하렴! 돌로레스, 네가 참아. 우리 아들이 뭘 몰라서 그래. 올해 선물을 받지 못할 나쁜 애라 그런건가봐."


"뭐- 아, 아니에요!"


삼촌이 현관을 나서며 말했습니다. 삼촌까지 제 편이라니, 윌리엄의 얼굴에 한방 먹은 듯한 표정이 떠올랐어요. 후후.


"아, 정말 바보같아. 너 우리 아빠가 선물 안주면 다 너때문이야!"


"아빠를 걱정하지 말고 산타를 걱정해야지 바보야."


"멍청이!"


절뚝거리며 현관을 나서려는 윌리엄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냥 보내주기엔 아쉬운 감이 있다는걸 꺠달았어요.


그래서, 팔뚝을 잡아 끌어당겨 귓가에 입을 대었습니다.


"후후. 바보야. 잘 들어. 누가 산타의 정체를 모른데? 모르는척 하는거야. 그래야 다들 행복하고, 더 좋은 선물을 받을 수 있거든. 알겠니?"


쪽. 뺨에 키스하고. 그리고 툭, 어께를 밀쳐 보내주었습니다.


"뭐-뭣-"


"그런거 가지고 당황하는거니? 너도 참 꼬맹이구나, 윌리엄?"


"무-뭐-무어엇-.."


말했잖아요. 전 이해타산적인 소녀라구요.


이 어둠에서도 윌리엄이 새빨개진 모습이 잘 보이네요. 후후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생각해, 바보야.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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