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의 무개념 분지

장마전야 본문

소설

장마전야

Nake 2016. 6. 13. 00:33

가로등 아래 하루살이가 허공을 휘저었다. 수천마리는 되봄직했다. 이 골목에 하나 있는 가로등이니 당연한걸까. 


분명 이 하루살이들은 짝짓기를 위해 불빛을 향해 모여든다고 했었나. 그런 걸로 따지면 여기는 이 근방 하루살이에게 있어선 만남의 광장인 모양이었다. 오래된 생각이다.


내가 그 가로등 아래에서 하루살이를 바라보며 뭘 하냐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었다. 후끈한 열대야를 피해서라고 이야기 해도 될까. 집에는 멀쩡한 에어컨과 선풍기가 가동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되도 않는 변명이지만.


게다가 밖이라고 해서 시원한 것도 아니었다. 태양만 없었을 뿐, 따뜻하게 덥혀진 끈적한 공기는 낮이고 밤이고 똑같이 기분나빴다. 격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었건만 티셔츠가 촉촉히 젖어 몸을 감싸안으니 그 불쾌함은 배가 되어갔다.


이쯤되면 괜히 나온건가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한숨을 쉬었다.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3%. 젠장, 충전 좀 하고 올걸.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일단 트위터 따위로 배터리를 낭비할수는 없었다. 주머니에 핸드폰을 되집어 넣었다. 별수 없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는 주위를 보았다.


녀석의 말대로 확실히 경치는 좋았다. 도심에서 대체 무슨 이야기냐 싶겠지만 이 부근은 다른 곳보다 살짝 더 높은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다시말해 발아래 도시에 자리잡은 수많은 건물들을 한자리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렇다. 이 곳은 흔히들 말하는 달동네였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을 사이에 두고 그리 크지 않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늦은 밤은 아니기에, 많은 건물들의 불은 환히 켜져있었다. 어떠한 규칙도 질서도 없이 지어진 수많은 건물들은 얼핏 혼돈 그 자체로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잠자코 보고 있자니 거기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카오스 이론이라고 했었나, 프렉탈 이론이라고 했었나. 혼돈 사이에서 발견되는 규칙성말이다. 이과가 아니어서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신경도 안썼다. 단지, 그 사람들의 이기적인 혼돈 사이에서 만들어진 아무도 모르는 규칙이 이 곳에서는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진짜 덥긴 더웠나보다. 이런 되도 않는 생각을 하고있는걸 보면. 


별안간 발소리가 들려왔다. 터벅 터벅. 이곳에 앉아서 시간을 보낸지 30분째, 아마 처음으로 마주치게 될 사람같았다. 부디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었기만을 빌었다.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조금 불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달동네가 도시에서 치안이 제일 좋은 곳도 아니지 않나.


일단 고개를 돌리긴 했다. 이리저리 미묘하게 꺾인 골목 때문에, 분명 급한 커브가 없음에도 다가오는 사람을 볼수가 없었다. 꿀꺽. 침을 삼켰다. 


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건 메리야스 한장만 걸치고 있는 전투형 근육을 장비한 무서운 아저씨...가 아닌 정아였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기다렸니?"


정아는 입에 물고있던, 절반쯤 먹은 뽕따를 입에서 때고는 비웃으며 말했다. 목에는 카메라를, 다른 손에는 아직 뜯지 않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었다. 사과의 의미인가 보군. 


"아이스크림이나 내놔."


"내껀데? 니돈으로 사먹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까세요. 내가 뭐하러?"


"어짜피 줄거면서 변명하기는."


"그런말 하니까 더 주고싶은 기분이 안드는군."


다른 손도 들어 가운데 손가락을 펼쳐보였다.


"강아지마냥 골목길에 버려두고 죄책감도 안느껴지냐?"


"강아지는 귀엽기라도 하지."


"것만 빼면 똑같다고. 네가 데려왔으니까 네가 책임져야지."


"헤헹, 그건 모든 어린 아이들의 거짓말이야. 알잖아?"


"애초에 올 필요가 있긴 했던거냐... 여기 완전 안전해보이는데."


"안전한거 맞어. 근데 우리 아빠가 너 안오면 못보낸다는데 별수 있냐."


한숨을 쉬었다.


"내가 위험하다고는 생각 안하지?"


"그건 좀 웃겼다."


"나도 남자라고?"


정아는 웃으면서 아이스크림을 던졌다. 재빨리 받아들었다.


"솔져?"


정아가 말했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둘다 웃었다. 


바람이 불었다. 불쾌한 공기가 가시지는 않았다. 애초에 뚱뚱한 아저씨의 입김과도 같은 바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차가운 소다맛 아이스크림이 입에 들어오자 마자 기분은 상쾌해졌다. 음. 역시 이 맛이지. 인공적인 맛만큼건 좋은건 없다니까?


"그래서 사진은 잘 찍었어?"


"그냥저냥."


"카메라 사고 즐거워 할땐 언제고 왜 그렇게 미적지근한 반응이야."


"그게..."


정아는 고개를 들어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나조차도 아름답다 생각했는데, 얘가 다른 생각을 할 리는 없었다. 뭘 해도 예쁜 사진을 찍을 기세로 올라갔던 녀석이 이렇게 실망한 기세로 내려온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분명했다.


"무슨 일 있었어?"


돌직구로 물어봤다. 애초에 돌려서 말할 사이가 아니었다.


"뭐 깡패라도 만났거나..."


"그런거 아냐. 그냥 내가 멍청해서 그래."


정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실망이 잔뜩 담겨있었다.


"아니, 밤이니까 아무것도 안보이더라고."


"잘만 보이는데?"


"내 말은 사진에. 노출인가? 그런게 부족한 모양이던데."


"하하! 역시 기세만 앞섰구만!"


"닥쳐라. 공부 좀 하고 다시 와서 찍을꺼니까."


"그걸 왜 나한테 말해?"


"너도 같이 올거니까."


"내 의사는 어디있는데?"


"그게 중요해?"


"...아니게 되겠지."


"잘 아는군."


그리고 다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 한동안 가로등 밑에선 아이스크림을 빨아들이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날씨 좋다."


정아가 말했다.


"뭐야, 너 이런 날씨를 좋아해?"


"응. 뭐 이상하냐?"


"음, 인간은 생리적으로 고온 다습한 환경을 불쾌하게 느낀다는 사실을 제외하자면, 아니. 넌 언제나 이상했으니까."


"반박할 수가 없군. 너랑 같이 다닌다는 사실부터가 그걸 입증하지."


뭐라 대꾸할수가 없었다. 녀석은 언제나 나보다 말을 잘했다.


"뭐라 할수가 없나보군?"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거들 필요는 없어."


"원래 우열관계는 언제나 확실하게 해야한다고 디스커버리에서 본 적 없냐?"


작게 웃었다. 정아 끊임없이 득점. 


"여튼 이런 날씨가 대체 뭐가 좋다는거야?"


본론으로 돌아가려 말을 돌렸다. 이게 본론이었는지도 애매하긴 했지만.


"비가 오기 직전이 좋다는거야. 뭔가 무거운 긴장감 같은게 잔뜩 깔려있거든. 그러면서도 세상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그 모순이 언제나 세상을 흥미롭게 만든다고 생각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흠. 코멘트하기 힘들군."


"하하."


잠자코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확실히 대답하기는 힘들었지만, 무슨 말인지 감은 왔다고 해야할까. 확실히 비가 오기 전의 공기는 지금처럼 무겁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다들 멈춰서도 될 정도로 무거웠다. 하지만 세상은 멈추지 않았다. 멈춘적이 없었다. 멈춰서도 될만함에도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그게 뭐가 좋은지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잠깐."


뭔가 떠올랐다.


"그럼 비온다는거야?"


"어, 그렇다던데? 예보로는 오늘 밤부터 온다고-"


말이 씨가 되었다. 툭. 한방울이 떨어졌고, 순식간에 나머지도 쏟아졌다. 소나기였다. 


"으악!"


어두운 골목길을 익숙한 것처럼 내달리는 정아의 뒤를 따라갔다. 대체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는 있는지 궁금했지만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내 말이 들리지도 않을 폭우였기도 했고, 그녀를 믿기 때문이기도 햇다. 물론 덕분에 큰코 다친게 한두번도 아니었지만 저 결단력 앞에선 그쯤은 눈감아 줄수 있었다.


그렇게 도달한건 편의점이었다. 여기서 아이스크림을 샀었던건가. 차가 지나다니는 길 옆에 자리잡은걸 보니, 달동네는 빠져나온 듯 했다. 재빨리 간판 밑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지만, 이미 온몸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으아! 다 젖었어!"


"흠뻑 젖었네. 네 카메라는 괜찮아?"


"아, 시발! 내 카메라!"


"켜지마!"


"안 켜! 고장나면 안되는데."


그렇게 말하며 정아는 카메라를 살펴보았다. 온몸이 젖은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티셔츠가 상반신에 달라붙어 볼것도 없는 곡선을 드러내보았다. 문제가 없었는지 카메라를 편의점 테이블에 올려놓고서는, 나를 뒤돌아보았다. 정확하게는 내 하반신을.


"뭐야. 뭔데."


"나도 좀 보자고. 너만 보기냐?"


"볼 것도 없구만."


"피차 일반인데 뭘."


젠장. 반박할수가 없었다. 반박하면 더 구차해보일테니 말이다. 별수 없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손가락이 더 크겠구만."


시발!


"아, 집에 어떻게 가지?"


정아가 말했다. 집으로부턴 꽤 떨어진 곳이라 걸어가기는 힘들었다.


"콜택시 불러야되나?"


"이 시간에 잡히나?"


"그렇게 밤도 아닌데. 한번 전화해보... 젠장, 배터리 나갔네."


진작에 충전을 할걸 그랬다. 한숨을 쉬고 정아를 바라봤다.


"뭐, 왜?"


"폰 안갖고 왔냐?"


"어."


"당당하다?"


"뭐 부끄러워 해야 되냐. 여튼 핸드폰 안된다 이거지? 편의점에서 빌려야겠네."


정아는 그렇게 한숨을 쉬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한숨을 쉬고 도로를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차는 없었다. 단지 가로등이 줄지어 도로 옆을 지킬 뿐이었다. 주황색빛이 비로 한가득 차오른 도로의 물길을 비추었다. 주황색 파동이 도로 위를 새롭게 색칠하고 있었다.


"늦는군."


혼잣말했다. 이상해보일테지만 버릇이었으니 어쩔수 없었다. 다만 한숨을 쉬고 주위를 둘러볼 뿐이었다.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뒤를 돌아보았다. 뭔가를 실랑이중이었다. 오래걸릴 모양이었다.


안된다는건 알지만 카메라를 들어 켜보았다. 생각했던대로 별 문제는 없었다. 현대 문물이 그리 약할리가 없었다. 슬라이드쇼를 열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에 나는 조금 놀랐다.


그건 나였다. 가로등 밑에 앉아 멍하니 뭔가를 바라보는 사진.


작게 웃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끄고 내려놓았다.


"왜 웃고 있어?"


그녀가 물었다. 나는 답했다.


"알아냈거든."


"뭘?"


"비가 오기 전을 좋아하는걸."


나는 말했다.


"개구리가 그렇잖아. 청개구리."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을 훔친 고양이 이야기  (0) 2016.06.23
영혼없는  (0) 2016.06.23
#씬 315, 고개를 들어 노을을 바라본다.  (0) 2016.06.13
거지들의 여정  (0) 2016.06.05
외다리에서 만난 이야기  (0) 2016.05.2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