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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혼없는

Nake 2016. 6. 23. 22:22





테이블 옆에서, 이성인(異星人)은 칼을 갈았다. 청록색을 띈 매끈한 피부와 약간 길게 찢어진 눈매를 제외하고는 인간과 크게 달리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테이블 위에 묶인 인간에게도 명확히 그 의사를 전달했다. 치잉. 치잉. 칼날이 내는 날카로운 비명조차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 이제 네 재갈을 풀어줄거야. 하지만 네가 비명을 지르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에만 풀어줄거야. 그렇게 해줄 수 있어? 나하고 약속할 수 있어?"

자장가를 들려주는 부모처럼 자근대는 목소리로 테이블 위의 여성에게 속삭였다. 여성은 미세하게 떨면서도, 자신의 얼굴 바로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일수 조차 없었다. 이마마저 꽁꽁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인은 그 끈을 풀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여성의 눈을 깊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눈물을 가득 머금어 투명하게 빛나는 그녀의 푸른색 눈동자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그는 웃었다. 적어도 여성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널 믿을게. 자, 셋을 세면 재갈을 풀거야. 알았지? 하나, 둘..."

그리고 그는 자갈을 풀어냈다. 여성은 입을 열었다. 비명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숨을 거칠게 들이쉬며, 오랬만에 자유로워진 턱관절에 대해 감사하고만 있었다.

"약속을 들어줘서 고마워."

그는 다시 자세를 곧게 펴고 조명 뒤의 탁자로 다가갔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조명으로 고개가 고정된 여자로써는 그 사실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건 어찌보면 다행일 수도 있었다. 그가 칼을 내려놓은 탁자 위에는 다르게 생긴 수많은 칼들이 진열된 것마냥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이렇게 되서 정말 안타깝네. 네가 자세히 알려고만 들지 않았더라면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텐데."

여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할 기력도 없었다. 이성인은 그녀를 이 지하실에 묶어둔체 며칠동안 방치했던 것이다. 얼마나 지난거지? 그녀도 알지 못했다. 빛도 새어들어오지 않는 이 지하실에선 아무것도 알수 없었다. 시간 감각이나, 가지 못한 직장의 상황, 그녀의 운명 따위의 것들로부터 완벽하게 격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말은 하고 싶었는데, 방치해두고 싶지는 않았어. 근데 갑자기 출장을 가야되는 일이 생겼지 뭐야. 화성으로 가는 셔틀이 며칠 단위로밖에 없어서. 정말 미안해."

아삭. 상큼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본디 맡지 못했을 냄새였지만 극도로 민감해진 그녀의 코는 그가 무엇을 씹었는지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다.

사과. 정말 신선한 사과.

그녀는 입에 대지 못할 사과.

"…괴…괴물."

여자는 힘겹게 그 단어를 내뱉었다.

이성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숨쉬는 거라곤 그와 그녀밖에 없는 이 공간에선 단순히 그렇게 하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뭐라고 했어?"

그가 말했다.

"괴…물. 영혼없는…괴물."

여자가 말했다.

"음, 설마 내가 너를 놔두고 사과를 먹었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건 아니겠지? 세상에. 너 정말 이기적이구나. 편견인건 알지만 인간이 전부 이기적이란 말이 사실같게 느껴지는걸."

그리고 그는 사과를 한입 더 베어물었다. 아삭 아삭 아삭. 몇번 씹고는 목에 넘겼다. 여자의 귀에는 그 사과 조각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 위 속으로 미끄러지는 소리마저 들릴 지경이었다.

때문에 여자가 분노하는건 당연했다. 사과를 먹어서가 아니었다. 바로 옆에 이성인이 앉아 사과를 씹어삼킬 동안 자신은 탁자에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불공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공평하지 않다. 여자는 바로 그런 불공평을 싫어했다. 혐오했다. 애초에 이 지하실에 갇히게 된 연유도 바로 거기에 기인했을지 모른다. 불공평한 대우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분노.

이 상황에 이르러서도, 여자는 그것이 잘못되었다 생각하지 않았다.

"괴물에게…괴물이라 하는…게… 뭐가…잘못되었지?"

때문에 그녀는 당당히 맞섰다. 비록 마른 입술로 겨우 내뱉은 단어들이었지만.

"음."

남자는 말했다.

"공식적으로, 그건 차별적이야. 기분나빴어."

그는 트렌치 나이프와 의료 수술용 메스 사이에 반쯤 베어문 사과를 내려두고 여자에게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지금 내가 도마뱀같은 피부와 찢어진 눈을 가졌다는 이유로 괴물이라 비난하는거야? 대단하군. 대단해. 전형적인 인간이야. 하긴 인간들은 생긴게 조금 다른 것 만으로도 장광설을 내놓으며 다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종족이니. 내가 이렇게 말해서 기분나쁜건 아니겠지? 네가 먼저 시작한거잖아."

능글맞음.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의 행동은 능글맞았다. 여자는 그가 히죽대며 웃고 있는걸 굳이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 않고서도 알 수 있었다. 실제로도 그는 히죽대며 웃고 있었다.

"네가… 괴상하게 생긴 뱀이라는게…문제가 아냐. 네가 저지른…일들…그리고… 나에게 하는…짓…"

거기까지가 여자의 한계였다. 극도로 매마른 입은 더이상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고요가 찾아왔다. 

이성인은 그녀를 그렇게 놔둘 수 있었다. 그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선 조용한 것이 그에게나 그녀에게나 좋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계단을 타고 올라가 오렌지 주스 팩과 빨대를 가지고 다시 지하실로 내려왔다.

"목 좀 축이고 말해봐."

그는 팩에 빨대를 꽂고 여자의 입에 가져다 대었다. 당연하게도, 여자는 입을 완강하게 다무는 것으로 거절했다. 

하지만 굶주린 여성의 턱주가리에 힘이 들어갈리 없었다. 조금 힘을 준 것 만으로도 이성인의 빨대는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잡았다. 이성인은 팩을 든 손을 쥐어 짜 주스를 억지로 먹였다.

이내 사레들린 기침소리와 함께 훌러내린 주스의 방울들이 사방에 흩어졌다. 

"나는 도와주려는 것 뿐이었어. 거부한건 너라고."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기침소리가 이어졌다.

이윽고 그 소리가 멎었을때가 되서야, 여자는 입을 열었다.

"이게 정상이야? 네 생각에…이게 정상이냐고. 이 살인자. 영혼없는 살인자."

"그것 때문에 괴물이라고 부른거야? 참 웃기는군. 그래서 내가 영혼이 없다고?"

이성인은 크게 웃었다. 그들의 종족 특유의, 웃음에 섞인 높은 휘파람소리가 지하실을 가득 매웠다. 

"이봐요, 인간 아가씨. 영혼에 대해 대체 뭘 안다고 내게 영혼이 있다 없다 이야기하시는건데?"

"행동, 멍청아. 영혼이 있는 존재라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이런 일을, 그리고 그런 일을 저지르진 않아."

"아하하, 일단 종교적 의미에서 이야기하는건 아닐테고. 사실 무엇을 의미하건 인간인 네가 할 말은 아니라고 봐. 일단 행동이 영혼의 유무를 정의한다는건 전혀 말이 안되는 헛소리고."

그리고 그는 사과를 다시 집어들어 베어물었다. 아삭. 아삭. 아삭.

"생각해봐. 네 말대로라면 거리를 나다니는 저사람도, 저사람도, 저사람도 모두 영혼이 있다는 이야기잖아.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한지도 모른체. 일단 영혼이 있다는 가정으로 사람을 대하지. 그러면서 인간의 숨겨진 면을 보고나면 혐오를 표시하며 영혼을 박탈해가고. 그거 정말 웃긴거야. 모든 사람이 신이라도 되나? 보는 사람에게 영혼을 줬다 빼았게? 말이 안된다고."

그는 잠시 숨을 들이쉬었다. 여자는 끼어들지 않았다. 이성인은 말을 이었다.

"그 기준이라면, 너에게도 영혼이 없어. 날 찾기 위해 이용한 그 수많은 이들. 대답해봐. 그 경찰이 꼭 죽어야만 했었나? 네 거짓말에 놀아나 목숨을 걸고 도와주다 결국 그 도박에서 져버린게 가치가 있는 일이었냐구?"

사과를 씹었다. 이제 남은건 꼭지 뿐이었다. 그는 쓰레기통에 다가가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사과를 집어넣었다. 다른 수많은 지갑들 위에 사과 찌꺼기는 떨어졌다.

"어찌됬건간에, 너는 영혼이 뭔지도 몰라."

이성인은 여성이 되묻기만을 빌었다. 하지만, 그녀가 되묻는 일은 없었다.

"인간에겐 영혼이 없으니까."

그래서 이성인은 스스로 대답했다.

"대체 뭘 믿고 스스로에게 영혼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모르겠어. 인간은 마법도 쓸 수도, 관측할 수도 없어. 사후세계에서 인간을 보았다는 사례도 없고, 억지로 데려갈 수 조차 없다는 실험 결과도 발표됬어. 지금까지 현존하는 기술 그 어떤 것으로도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관측할 수가 없단 말야."

마치 득점했다는 것처럼 이성인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인간들은 그게 문제야. 상상력이 뛰어난건 정말 놀랍고 그걸 통해 자신들이 경험할수 없는 신비의 영역, 몽환적인 영혼의 세계를 예측해낸건 뛰어나다고 인정해. 하지만 이미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종족들에게는 그런걸 예측하는건 어려운 일도 아니란말야. 직접 갈수도 있는걸."

이성인은 그렇게 말하며 의자를 끌고 다가왔다. 시끄럽게 울리는 마찰음이 여자의 귀를 자극했다.

“이건 어떤 차별적인 언행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을 이야기 하는 거야. 그러니 인정해야해. 너희가 우주로 나오기까지 수천년이 걸릴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 너희가 영혼 없는 괴물이어서야."

이성인이 여자의 머리맡에 의자를 끌어왔음을 그녀는 잘 알 수 있었다. 소리. 거슬리는 소리. 이성인은 말을 마치고 그위에 걸터 앉았다. 여전히 여자는 고개를 돌릴 생각일랑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행동들이 올바르다는건가?"

대신 입을 열었다.

“네가 저지른 수많은 일들. 그게 정당화된다고? 너에겐 영혼이 있고, 인간에게는 없다는 이유로? 단순히 수사적인 비유에 목숨을 걸고 반박하는데도?"

“수사적이겠지. 미신을 기반으로 한. 난 그 미신을 뜯어고치는 단순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 뿐이야."

“미신을 기반으로 하든 아니든, 그건 지금 나는 정말 잘 보이네. 넌 진짜로 영혼이 없어. 너와 우리를 다르다고 규정짓고는 마음대로 하려는… 그 독선적인 행동. 너희 종족에겐 영혼이 있을지 몰라도 네녀석에게 영혼이 없다는 사실은 잘 알수 있겠네. 넌 영혼 없는 괴물이 맞아. 아니, 네녀석이 가진게 영혼이라면 그딴 영혼은 가지고 싶지도 않군."

여자는 마지막 발악을 끝마쳤다. 이미 며칠 전에 자신이 죽으리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그녀로써, 이성인이 그녀에게 어떻게 대할지는 더이상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되도 않는 궤변은 그런 그녀가 가지고 있던 이성인에 대한 혐오를 끌어올릴 뿐이었다. 

“할 말은 그게 다야?"

이성인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자, 그럼 빨리 작업을 끝마쳐야겠네. 지금 온것도 상당히 억지로 짬을 내서 온거라 다들 날 기다릴거라고. 오후에는 지구 대사와 함께 맛있는 바이에른식 슈바인스 학센을 먹을 예정이고."

“역겨워."

“뭐 슈바인스 학센이 취향을 타는 요리긴 하지."

“그게 아니라 네가. 인간의 영혼없음을 그렇게 열변하던 네가 인간을 죽이고 멀쩡히 다른 인간을 만나 밥을 먹을 생각을 하다니."

“너도 실수로 고양이를 치어죽이고도 충분히 고양이 사진을 보고 귀여워할수 있잖아?"

“그것 참 부적절하고 쓰레기같은 비유로군."

여자가 말했다.

“신경 안써."

이성인이 영혼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하고 싶었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이미 이성인의 메스는 피를 잔뜩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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