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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ke 2016. 6. 29. 23:54




철문이 열린다.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집 안에 갇혀있던 퀘퀘한 냄새가 빠져나온다. 고약한 냄새였지만 그 집의 주인인 남성은 별로 개의치 않아했다. 후각이란 본디 가장 민감하면서도 가장 타협적인 기관인 것이다. 조금만 기분나쁘면 불평하면서도 이내 참아버리고 만다. 남자는 그런 후각이 인간을 비로소 인간으로 만들어준다고 믿었다.


그 생각과도 같이, 남자는 더러워진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환기시키려는 생각은 않고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았다. 바깥 바람은 너무 차가우니까. 해가 뜨면 환기하자. 남자는 그렇게 변명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타협을 통해 우야무야 넘어가는, 말 그대로 인간.


그런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컴퓨터에 전원을 넣었다. 냉각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날카롭게 방 안을 울렸다. 하지만 이내 배경 소음이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그 소음을 뒤로하고, 남자는 냉장고에서 찬 맥주 두캔과 오징어가 담긴 그릇, 그리고 작은 버터를 꺼내왔다.


보통의 자취하는 남자였다면 마른 오징어를 택했을테지만, 남자는 그런 다른 자취인들과는 달랐다. 좀 더 멋있고 맛있는 것을 위해 바치는 노력에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였다. 자취를 시작한지 5년째, 단순한 안주를 위해 버터를 팬에 두르고 그 위에 오징어를 굽는 노력을 마다않는건 그런 그의 신념에 비롯되었다.


그런 그조차도 왜 방을 치우지 않는가에 대해선 확답하지 못했지만.


뜨끈하게 익은 오징어에선 고소한 버터 냄새가 뜨거운 김과 함께 방안을 채웠다. 그제서야 방 안의 냄새가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이는 곧 함께 뒤섞여 새로운 무언가로 탈바꿈하고 말것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알고 있었다. 그조차도 타협할 것이다. 후각, 인간의 후각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이미 부팅은 모두 끝나, 모니터 위에 떠오른 것은 암호를 입력하라는 평소의 로그인 화면이었다. 타닥 타닥. 키보드를 두들기자 이내 잠금이 풀리고,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평소의 바탕화면과 함께 떠올랐다.


캔을 따는 소리가 방 안에 조용히 울렸다. 남자는 해드셋을 쓰고, 맥주를 한모금 삼킨뒤, 잘 익은 버터 오징어를 입에 물고 평소와도 같은 일을 시작했다.


아니, 일이라고 하기엔 전문적이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의 성과가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서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의 직업이 프로그래머였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 이 자리에서 손보고 있는 것들은, 그의 회사에서 만드는 것과 비교하면 그 수준과 깊이가 달랐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취미라고 불렀다. 5년째 계속되는 취미.


처음에는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다.


갓 도착한 타지의 이방인에겐 좁은 자취방조차도 넓고 외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방인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잊기 위해 코드를 짜기 시작했다. 그렇게 복잡하진 않았다. 뚜렷한 목표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거대한 무언가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과 사람이 관여된, 새로운 무언가가 되었다.


남자는 어느샌가 자신이 도달한 모습을 보고는 매우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내가 만든거라고? 남자는 자문했다.


아마추어의 솜씨였고, 프로들이 모인다면 분명 더 깔끔하고 더 합리적으로 짜여졌겠지만, 그럼에도 그가 이루어낸건 꽤나 볼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니 오히려 그랬기에 그는 그 사실을 남에게 알리지 않았다. 자신이 취미로 만들어낸 것을 회사에 가져갔다면 남들이 그를 향해 보는 모습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의 사회적 위치가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남들이 도와주어 그의 프로그램이 개선됬을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홀로 그 프로그램을 만들길 계속했다.


외로이, 그만 아는 프로그램.


오롯이 그의 것.


디버깅을 시작하기 전에, 그는 프로그램을 살펴보았다. 여러가지 반응이 올라와 있었다.


그중 한 문구가 눈에 띄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여자친구가 사라져 있었어!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아!"


어제 한 디버그의 여파이리라. 남자는 생각했다. 저 남자에게는 안됬지만, 사라져야하는 버그였다. 그 버그 때문에 세계가 부서져버릴 수도 있었다. 


불현듯, 남자는 여자친구를 잃은 남자가 어떤 심정에 처했을지 상상해 보았다.


아마 세상을 잃은 기분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살아오던 인생에 큰 구멍이 뚫린것 같은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는 생각했다. 그조차도 타협하리라.


인간이란 원래 그러한 동물이니.


비록 프로그램의 코드 쪼가리에 불과한, 자신이 인간이라 착각하는 인간일지언정, 그조차도 인간이니.


금새 잊고 자신만의 삶을 사리라, 남자는 생각했다.


그리고 코드가 잔뜩 적힌 창을 열어 코드를 더하고 빼고 고치기 시작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그의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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