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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드레스 헌터

Nake 2016. 5. 15. 19:00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옷 만으로도 사람의 인상이나 느낌이 달라져보인다는 의미의 숙어다. 말도 안된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지나치게 잘생긴 인물은 누더기를 입어도 잘생겨보이고 못생긴 인물은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맞춤복을 입어도 구리게 보일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그것이 극단적인 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보편적인 인식에 들어맞지 않는 이질적인 예외. 그런 예외에 속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옷이란 그 사람의 신분이나 사회적 배경, 처해있는 상황, 그 사람의 센스등을 나타내는 도구이다. 떄문에 좋은 옷, 상황이나 외모에 걸맞는 옷을 입는 사람은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정말 높은 신분의 사람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따라서 옷이 날개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 회색 건물 옥상에 누워있는 저 소년을 예로 들어보자. 페인트는 갈라지고 벗겨진지 오래였고 세월에 삭은 콘크리트는 여기저기 무너져 심한 경우 철근까지 드러낸 건물들 사이로 탁트인 거리의 시야를 총을 쥔체 바라보는 그 소년의 의복은 상당히 더럽고 수선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있었다. 물이 상당히 빠진 군복의 상하의는 얼추 색만 비슷할뿐 엄밀히 따지자면 같은 군의 군복이 아니었고, 그마저도 하의의 크기가 몸에 비해 너무 커 바짓단을 상당히 잘라내고 남은 천을 덧댄 듯 보였다. 


뿐만 아니라 옷의 다른 여러 부분도 무언가에 쓸리거나 뜯겨져나간 다음 얼기설기 수선되어 있었는데, 아마추어의 솜씨로 추정되는 손놀림으로 수선되어 있긴 했지만 당장 찢어져버릴 것마냥 어설프다기보단 오히려 사용하기 용이하게 고쳐놓은 모양새였다. 더욱이 옷에 여러 주머니를 뜯어내거나 옯겨단 것으로 미루어보아 소년은 이 옷을 무척 오랜 시간동안 애용해왔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여러 정보로 미루어보아, 그는 그 옷을 매우 좋아하고 애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옷을 입고 무엇을 할 것인지도 매우 잘 아는 것 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그 추측은 옳은 결론에 도달했다. 가슴 윗쪽에 개머리판 뒷부분을 깊숙히, 그리고 편안하게 밀착하고는 최대한 편하지만 멀리서는 보이지 않는 자세로 고요하게 스코프 너머의 탁 트인 거리를 응시하는 소년의 모습은 오랫동안 목숨을 걸고 살아남지 남은 경험이 없었다면 취할 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역전의 소년은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눕히고 숨을 죽인체 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런 소년이 자아내는 중압감은 말없이 그 옥상을 가득 채워, 결코 다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을 것 만 같았다.


어디까지나, 소년이 말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것이다.


"왜 약탈자들은 다들 옷을 벗고 다니는 걸까?"


하지만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소년 곁에서 그가 바라보는 방향과 같은 곳을 향해 드러누워 있는 소년의 개는 침묵을 지켰다. 누렇고 긴 털 사이로 보이는 눈은 소년을 지켜보지조차 않았다.


"안춥나? 뭐 날이 좀 따뜻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옷 없이는 쌀쌀할 날씨인데. 청바지나 가죽바지만 입고 상의는 언제나 벗고 다니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 가끔씩 입었다고 잘난척하는 놈들 보면 새 문신을 했던가 목도리만 입고 있잖아. 남녀노소 그러는걸 보면 대체 제정신인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 했다. 그 경위는 간단했다. 스코프 너머, 소년의 눈이 향하는 시선 끝에는 약탈자 두어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소년이 불평하듯 하나같이 상의를 벗어던진 기괴한 세기말 패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 야만스럽다는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저건 너무 야만스러운거라고. 저렇게 대놓고 불은 왜 피우는건데? 원시인이야? 이렇게 개방된 공간에서 불을 피우면 안돠지. 연기는 또 지독하게 나요. 나같은 사람이 쏘면 어떻게 하려고?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은건지 대체 이해할수가 없구만. 저런게 살아남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 후우... 안그래, 데이브?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게 말하며 소년이 개의 목을 헤집듯 쓰다듬었음에도 개는 침묵을 지켰다. 여느 개가 그렇듯. 데이브는 소년의 방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약탈자들을 응시할 뿐이었다. 


"말 했지만, 추우면 옷을 입어야지. 안그럐? 대체 불은 왜... 아. 저것떄문이구만. 가솔린 왼팔구이라, 뭘 좀 아는 녀석들이로군. 크, 저렇게 불똥이 탁 튀며 한번에 불타는 모습이 군침을 돌게 하는군. 흠. 저녀석이 셰프인가?"


으르렁, 개가 낮게 울었다. 새로 나타난, 검은 자켓을 입은 약탈자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그들이 모닥불에 올려놓은 왼팔 떄문일지도 몰랐고. 


"개인적으로 왼팔구이의 별미는 뭐니뭐니해도 손목 관절가 엄지 볼살이 아닐까싶어. 먹기 힘든 부분이 아무래도 맛이 좋더라고. 뭐? 잠깐, 손을 버린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완전 맛알못들이구만? 어이가 없네! 저런 놈들은-"


"좀 닥치고 쏘라고! 저녀석이 목표인거 알잖아!"


마침내 참지못한 데이브가 신경질내며 소년에게 말했다. 소년은 웃음을 터트렸다.


"히히히. 내가 이겼다!"


"제기랄, 내기는 내기고 직업은 직업이지, 어떻게된게 공사 구분도 못하냐? 그깟 내기 하나 떄문에 굶어죽고 싶은거야?"


"하지만 널 말하게 만들 방법이 이것밖에 떠오르질 않았는걸!"


"아, 좀 닥쳐. 진짜 개새끼라니까. 그거 알아? 여튼 빨랑 쏴! 저놈이 입은 자켓이 맞다고!"


"의뢰 내용이 뭐였더라?"


"아아악! 나 없으면 대체 어떻게 살래? 믿을수가 없네. F/W 2027 룰모델 라인업의 가죽 자켓. 그게 바로 저녀석이 입고 있는거고. 너도 알겠지만 옷에 흠집 안나도록 노력하라고."


"오키도키."


소년은 슬쩍 개를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다시 스코프를 향해 눈을 돌렸다. 그리고는 웃음기를 거뒀다.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다 멈췄다. 총이 마치 몸의 일부인것처럼. 툭 튀어나온 뼛조각인 것처럼. 너무 오랫동안 함께해온 기형적인 뼛조각이기에, 이제는 없어진다면 오히려 불편해질 듯 한 그런 불편인 것 처럼.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방아쇠를 당겼다. 총의 부품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공이가 뇌관을 떄리는 그 순간을 느꼈다.


탁.


소년의 귀에는 총성보다 공이가 뇌관을 치는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약탈자의 귀에는 둘 다 들리지 않았다.


하나는 너무 작았고, 하나는 너무 느렸다. 


우연히도, 바로 그 순간 약탈자가 손에 쥔 잘 익은 팔고기를 먹으려 입을 벌린체 미묘하게 고개를 들고있었기에 총알의 끝은 앞니를 뚫고 들어갔음에도 대뇌를 파괴할 수 있었다. 푸딩과도 같은 뇌에 성공적으로 에너지를 전달한 탄두는 그 힘을 급격히 잃어 두개골 후두부를 두들기고는 다시 머리 안쪽을 파고 들어갔다. 떄문에 놀랍게도, 뇌수를 비롯한 약탈자의 체엑이 사방팔방으로 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소년은 두가지 이익을 봤는데, 하나는 덕분에 피를 튀기지 않고 갑자기 뒤로 넘어간 가죽 자켓 약탈자의 모양새가, 총을 맞긴 했지만 겨우 살아남은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다른 약탈자들이 쓰러진 약탈자를 흔들며 꺠우느라 상당히 오랜 시간 장애물 밖에 노출되어 있었고, 그들이 상황을 파악할 즈음엔 이미 소년의 손에 의해 가죽 자켓 약탈자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다른 한가지는 가죽 자켓을 꽤나 깨끗한 상태로 벗길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토록 상의를 벗는 것에 관해 열변을 토하던 소년이었지만, 정작 옷을 가져다줄때엔 상의라곤 멜빵밖에 걸쳐 입지 않은 사람을 보고도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정확하지 않았다. 관계만을 따져보자면, 그녀가 소년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입장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외견을 따져보자면 그 이전의 원인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도 유추해봄직 했다. 그 누가 구릿빛으로 검게 탄 피부 밑에 드러나 숨쉬는 울룩불룩 튀어나온 근육을 자신있게 자랑하는 사람을 상대로 함부로 시비를 걸 수 있겠나. 더욱이 그 위에 무서운 흉터가 수십개 있는데? 성별? 그 이전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적어도 소년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잘 접은 자켓을 카운터 위에 올리는 소년의 팔은 전혀 떨리지 않았기 떄문이다. 


"자. 네가 말한대로야, 마리아. 총알 구멍도 안나고 뜯어지지도 않은, F/W 27 시즌 룰모델 라인업 한정판 자켓."


"흠."


지켓을 집어든 마리아는 팍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자켓을 털며 잡아 펼쳤다. 그녀가 그렇게 털었다면 아무리 강한 옷이라도 순식간에 찢어질 것 처럼 보였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여기저기 살펴본 마리아는 확실히 외관에 하자가 있어보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대단하구만."


"히힛. 당연하잖아!"


"아니, 옷 얘기가 아니라, 조안. 이젠 내 앞에서 떨지 않아서 해본 이야기야.  뭐, 네 눈동자는 떨리고 있다만."


"조... 조안이 아냐! 후안이라고!"


"후안이든 조안이든. 스펠링은 똑같잖아. 안그래 데이브?"


"앙. 그렇지. 얘는 대체 뭐가 그리 째째한지 이해를 못하곘다니까."


조안은 씩씩거릴정도로 숨을 거칠게 내쉬었지만, 더이상의 반론은 하지 않았다. 순간 마리아가 손을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기 때문인듯 했다. 쿵. 울긋불긋한 핏줄. 더이상의 반론은 하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이 의뢰는 대체 누가 한거야? 마담이 흔히 주문하는 옷은 아니잖아."


"마담이 시킨게 아니니까 그렇지. 이번 의뢰는 마스터 리의 의뢰였어."


"마스터 리?"


"라텍스 마스터 이야기하는거야?" 데이브가 말했다.


"응."


"그렇다면 말은 되네. 근데 대체 그 아저씨는 왜 그렇게 가죽옷을 좋아하는건지 모르겠어. 그 아저씨 남자친구가 좋아하나? 뭐랄까 이 옷 디자인이... 개방적인 것 같은데."


"그건 당연히... 잠깐. 데이브. 설마 조안..."


"그래. 몰라."


"세상에. 순수한 아이구만."


"뭐야? 무슨 소리야?"


"네가 아직 모르는 이야기야, 조안."


"조안이라고 부르지 마라고!"


"네 순수한 영혼은 일단 별개로 치고. 받아. 네 보수다."


그렇게 말하며, 마리아는 카운터 밑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언뜻 보기엔 푸른색을 띈 플라스틱 케이스였다.


"뭣... 설마 이거... 2016년판 매드 맥스 2 로드 워리어 리마스터 블루레이야? 세상에."


"뭐? 잠깐! 보여줘, 조안! 보여달라고!"


조안은 마치 그 블루레이 케이스가 손가락만 닿으면 부수어질 것 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위와 아래를 잡아 들었다. 그리고는 정말 천천히 디스크를 든체 앉아 케이스를 데이브가 잘 볼수 있는 위치까지 내려놓았다.


"세상에!" 데이브가 짖었다. "진품이겠지? 진품이라고 말해줘! 진품을 내가 보게 되다니!"


"이런 고액권을 대체 어디서 구한거야?"


"후후후, 그건 사업상 비밀이지. 말해주면 쓰나."


비밀스럽게 웃는 마리아 앞에서, 그리고 실성한듯 짖어대는 데이브 옆에서 소년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그 케이스를 집어들며 말해싿.


"잠깐 잠깐. 뭔가 이상해. 가죽옷 하나의 보수라고 하기엔 너무 고액이야. 마스터 리가 아무리 후하게 쳐준다지만 이건 너무 많다고. 뭔가 더 있는거지?"


"하! 꼬맹이가 많이 컸군. 눈치를 벌써 챘네?"


그렇게 말하며 마리아는 카운터를 발로 쿵쿵 쳤다. 곧, 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왔다.


"맡길게 있어서 말이지."


"잠깐! 난 베이비시터가 아니라고!"


"난 맞지만." 데이브가 말했다. 


"닥쳐 데이브!" 조안이 외쳤다. "우리도 우리 몸을 겨우 간수하는데! 거기다 저런 여자애를 데리고 다닐 여유는 없다고! 세상에, 옷 입은 것 좀 봐! 깔끔하디 깔끔한 원피스네! 밑에 청바지를 입었다고 해서 세상 물정 모르는 청순한 소녀라는 점에선 바뀌질 않아요! 어디 출신일까? 보나마나 보헤미안 스트리트 17번가에서 사고가 터진 그 쉘터겠지!"


"조안!"


마리아가 엄하게 외쳤다. 기세에 눌려 조안은 입을 벌린체 그대로 굳었다. 


"말이 심하잖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게 사실인걸요."


조안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듯, 소녀가 마리아의 그림자 밖으로 걸어나왔다.


"처음 뵙네요. 이세희라고 합니다."


소녀가 카운터의 문을 열고 카운터 너머로 넘어와 조안 앞에 서서 하얗고 가느다란 손을 내밀었다. 조안은 머뭇거리면서 손을 잡길 꺼려했다. 이 상황이 어색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자기 또래의 여자아이가 어색해였는지는 불분명했다.


"조안! 뭐해! 빨리 악수해야지!"


"잠깐! 내 이름은 후안이라니까!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물지마! 악!"


조안은 소녀가 뻗은 손을 아주 잠깐, 아주 가볍게 잡고는 자신에게 달려든 데이브를 떼어내려 힘을 썼다. 보기에 우스꽝스러운 상황이었다.


"우후훗. 재밌으신 분이네요."


"하... 하지만 그렇다고 널 받아주지는 않을거니까! 말했잖아! 우리도 우리 몸 간수하기 어렵다고! 한명 더 받아줄 여유는 없어!"


"그건 걱정하지 마, 조안." 마리아가 말했다. "이 아이도 몸간수는 할 줄 안다고. 적어도 가까운 거리에선 너보다 강할걸?"


"무슨 소리야, 그런 농담은-"


순간 세희가 조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순식간이었다. 아니, 조안의 입장에선 세희가 파고든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일어난 것은, 단지 반보 앞으로 걸어나온 세희가 동시에 앞으로 나와있는 조안의 오른손을 부여잡고 뒤쪽으로 잡아당긴 것이었다. 어느샌가 세희의 오른손엔 단검이 쥐여져 있었고, 때문에 둘의 형태는 자연스럽게 조안의 뒤를 잡은 세희가 조안의 목에 칼을 대고 무력화시킨 모습이었다.


"...됬나요?"


조안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죄송해요. 마리아 언니가 이러지 않으면 받아주지 않을거라면서요."


"후후후."


세희의 품에서 겨우 벗어난 조안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무, 무슨 짓이야! 장난이 심하다고!"


"하지만 효과적이었지." 마리아가 말했다. 세희도 살짝 웃으며 손에 들고있던 플라스틱 가검을 마리아에게 던져주고는, 원래 자기 것인듯한 단검을 마리아로부터 받아들었다.


"세희! 세희! 만나서 반가워! 난 데이브라고 해!"


"안녕하세요, 데이브씨! 만나서 반가워요." 그렇게 말하며 세희는 칼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통이 큰 원피스가 가리고 있던 허벅지에 매어놓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른쪽 허벅지에는 권총과 탄알집이 있었다. "인사는... 음... 팔을 잡으면 되나요?"


"그래도 되고! 쓰다듬어줘도 돼! 편한대로 하라구!" 데이브가 꼬리를 흔들며 말했다.


"아! 안돼! 데이브, 내기했잖아! 오늘 하루 쓰다듬기 금지!" 조안이 외쳤다.


"그건 너하고 한거고! 이건 다르지."


"우후훗, 두분은 언제나 이렇게 유쾌한가요?"


"뭐, 그렇지? 대부분." 마리아가 말했다.


"여튼 그렇게 잘 싸우면서, 대체 내가 왜 필요한건데?"


조안이 물어왔다. 중요한 질문이긴 했다. 


"음. 좀만 데리고 있어달라고. 싸우기야 잘 싸우지만 밖에서는 어떻게 먹고사는지 하나도 모르는 아이니까. 또래인 너라면 잘 설명할 수 있지 않겠어?"


하지만 조안은 그런 제안에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망한 세상에서, 불확정요소는 목숨과 직결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조안으로써도 딱히 거절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듯,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은 마리아가 후안의 마음에 대못을 박았다.


"알겠지만, 이건 선금이라구? 한달정도 데리고 다녀줘. 그때까지 아무일 없이 세희를 데리고 다닌다면 선금의 세배를 주지. 더 대리고 다니면 그만큼 더 얹어줄거고."


돈. 언제나 돈이었다. 완벽한 동기이자 목적이 되는 돈이었다.


"안돼."


하지만 조안은 부정적으로 말했다.


"적어도 이건 너무 크잖아. 들고다니기 부담스러워. 적당히 소액권으로 바꿔줘."






둘은 건물에서 나왔다. 두 사람 모두, 양손에 옷이 가득 들어있는 쇼핑백을 들고서. 문 밖에서 하품을 하던 데이브가 건물에서 나오는 조안과 세희를 맞았다.


"수고했어."


"보통은 이렇게 수월하게 끝나. 옷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거는 미친놈들은 별로 없으니까. 적당한 가격만 제시해도 덜컥대고 팔지."


"저번은 아니었지만." 데이브가 말했다.


"약탈자 놈들은 대화가 안통하거든. 그런데 총격전이 일어나면 상품이 상할수도 있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해. 최악의 경우에는 상품을 입고있는 경우도 있는데, 나같은 경우에는 미간에 한발, 위력을 줄인 날탄을 푹 하고 꽃아버리지. 저번처럼 말야! 뭐, 그건 나밖에 못하는거지만! 하핫!"


"처음으로 해본거지만." 데이브가 말했다.


"으그윽! 닥치라고!"


"우후후."


세희는 작게 웃었다. 세희가 밖에 나온지 이주일도 체 되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바깥 세상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고 원래 바깥 세상에서 살았던 것 마냥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왜 그 약탈자들이 쳐들어왔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적어도 이 둘과 함께하는 동안은 그 고통을 잊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면 너, 맨 처음 날 만날때 성을 말했지?"


"네? 아, 그랬었죠."


"그거 함부로 말하지 마. 바깥 사람들이 성이 없어서 이야기 하지 않는게 아냐."


"그런건가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긴,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닌게 없었다.


"이 세상에서 믿을건 이름 두글자밖에 없다고. '아, 진짜 이 사람은 믿을만하구나!' 하는 사람한테나 성을 알려주는거야. 그래야 정말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때 도움을 청할 수 있다고."


"음, 이해가 되질 않네요."


"그러니까, 만약 미리아의 성이, 나도 아줌마 성을 모르긴 하지만, 예를 들자면... 그래, 마르티네즈. 풀네임이 마리아 마르티네즈라고 친다면, 내가 마리아에게 신용받고 있는 사람이라는걸 다른 사람에게 증명할 수 있다는 말씀이지."


"아, 너는 얘처럼 면전에서 아줌마라는 말 하면 안된다. 죽을만큼 혼난다고."


"닥쳐. 여튼, 그래서 그녀의 풀네임을 마리아에게 똑같이 신용받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말하면서 도움을 청하면, 그녀를 믿는 만큼 도와줄거고, 뭔가 필요한게 있다면 지원을 해주기도 하는거지. 이 세계에서 남은거라곤 신뢰밖에 없으니까. 뭔말인지 알았어? 그러니까 이 세계에선 최대한 성을 밝히지 않는게 좋아. 가명을 쓰면 더 좋고."


"그럼 그 후안, 인가 하는건 가명인건가요?"


"아냐! 그건 진짜 내 이름을 발음하는 방식이라고!"


"하지만 이름 스펠링은 Joan이 맞지 않나요? 아무렇게 봐도 조안인데..."


"아냐! 아니라고!"


데이브가 옆에서 비웃으면서 말했다.


"조안으로 결정됬네."


"아니라고!"


그렇게, 셋은 멸망한 도시의 거리를 가벼히 걸었다. 서쪽에 한없이 가까워진 태양은 빌딩 사이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 햇살이 하늘에 투과되어 멋진 주황색 노을을 뿜어내고 있었다. 노을이 사라지기 전에 빨리 셋은 마리아에게 옷을 전달하는 편이 좋았지만, 어쩐지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았다. 가볍게 떠드는 이 공간 자체가, 그리고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어느 하나 헛되히 보내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그리고 그 노래에 발걸음을 맞춰 움직이는 느낌으로 셋은 들떠 있었다. 무너진 건물도, 도로 틈 사이에 난 잡초도, 오늘은 멋진 무대고 공연장인듯 했다.


그래서 셋은 목적지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보았을때 그 사실을 재빨리 알아채지 못했다. 문을 눈치채던 마일즈가 쓰러져있었음에도, 이상한 점을 못 느낀 것이다.


그럼에도 데이브는 상황을 이해했다. 피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조안. 뭔가 이상해."


그 말에 세희도 멈춰서고 숨을 들이쉬었다. 어떤 이상에도 대응할 수 있게. 그녀에게도 익숙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주일 전에 느꼈던 그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뭐가?" 


조안이 제일 느렸다. 


"멍청아. 마일즈를 봐. 쓰러져있다고."


"그래서? 자나보지. 피곤할수도 있잖아?"


"너 정말 멍청하냐... 아무리 그래도 근무 중에 쳐잘만한... 놈이긴 하지만."


"조안? 데이브 말대로 뭔가 불안해요."


"피냄새가 나, 조안. 비릿한 피냄새가 난다고."


처음에 조안은 믿지 않았다. 하지만 두사람의 분위기나 태도조차 읽지 못하는 멍청이까지는 아니었다. 그럴리가 없다는 강한 믿음을 품에 안고서, 조안은 일단 쇼핑백을 내려놓고 멜빵끈을 돌려 기관단총을 쥐었다. 조안의 작은 몸집덕에, 상당히 작은 크기인 총이었음에도 실제보다 크게 보이는 총이었다. 총구는 아래로 향하고 발소리를 죽였다. 프로페셔널의 자세였다. 그 자세 그대로, 조심스럽게 마일즈에게 다가갔다.


"이봐, 마일즈. 정신차려."


조안이 말했다. 다행히도, 마일즈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헐떡이기 시작했다. 그렇게도 늦은 모양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가 죽기 전엔 온 것이다.


"세희. 말했던 것처럼 뒤를 봐줘."


"아, 네."


"세희...? 세희라고 해, 했어?"


세희라는 단어에, 마일즈가 갑자기 반응했다. 이상해보일 정도였다. 


"이봐. 진정해! 발작하면 출혈이 더 심해진다고!"


"저리 꺼져, 조안. 난 세희...하고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세희. 이리와. 할 이야기가 있어."


"저..."


세희는 머뭇거렸다. 갑작스런 전개에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어딘가, 그녀는 이 전개를 예상했을 것이라는 느낌을, 데이브는 느꼈다. 그래서 말했다.


"세희. 가봐. 조안, 네가 경계하라고."


"...하. 알았어. 빨리. 숨넘어가기 전에."


그렇게 반 억지로 세희는 죽어가는 마일즈의 옆에 앉았다. 자세히 보니, 마일즈가 좋아하던 옷이 피에 흠뻑 젖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단지 검은색이라 멀리선 띄지 않았을 뿐이었다. 고통을 참기 위해서인지, 마일즈는 신음소리를 내며 미간을 찌뿌렸다. 그리고 사시나무 떨듯 부르르 떠는 손을, 세희에게 가져갔다.


"네...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마리아에게서요?"


"후... 아니. 네 아버지... 이성진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지. 널 데려오면서도, 마리에게는 그런 말은 한마디 하지 않았어... 그냥, 갑자기 습격받은 쉘터의 생존자라고 이야기했지... 그녀는 그걸 믿어줬어, 아니면 그걸 믿어준 척 한거였을지도... 쿨럭."


급작스런, 결코 멈출수 없는 발작적인 기침이 마일즈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피가 잔뜩 섞인 침이 겨우 막은 입을 통해 뿜어져나왔다.


"폐를 당했군." 조안이 말했다.


"시간이... 얼마 없군 그래... 제기랄... 마리아가 불안하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도 그걸 수긍하긴 했지만... 이렇게 될 줄이야. 경고하지... 세희. 들어가지 마. 도망가. 너희 셋이라면... 살아남는다. 그럴수 있어. 내가 대화한... 마주한 그 녀석은... 너도 알잖아... 인간이 아냐..."


"그만, 그만 말해요."


세희가 부탁했다. 마일즈 못지 않게 바들바들 떨며 그의 옷깃을 붙잡고는 그렇게 부탁했다. 들어줄 수 없는 부탁임을 알면서도 부탁했다.


데이브가 어느새 다가왔다. 끼잉, 낮게 신음하는 개의 신음소리. 그리고는 그 거친 혀로, 마일즈의 얼굴을 핥았다.


"아, 아하하. 제기랄, 데이브. 내 얼굴을 핥아준 적은 없었잖아."


"그래 이 멍청아. 난 내 혀를 한사람의 인생에 단 한번 사용할 수 있게 해주거든."


그리고는, 눈을 감고 마일즈의 코에 자신의 코를 가져다댔다. 개의 거친 숨소리가 마일즈의 귀에도 들려왔다.


"제기랄, 입냄새나는구만 데이브."


"아, 제발. 닥쳐."


조심스럽게 마일즈는 웃었다. 그러다 다시금 기침했다. 이번에는 더욱 더 위험해보였다.


"제기랄. 너희들, 들어갈거지? 들어가고 말거지?"


조안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멍청한 놈들..."


피식,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일즈가 조소한 듯도 했다. 하지만, 피투성이가 된 입가에서 그걸 알아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곧, 마일즈의 얼굴 위에 조안의 손이 덮쳐왔다. 그렇게 마일즈는 편안히 눈을 감았다.


"들어가자."


조안이 말했다.





안에 서있던 빅토르의 군복은 마리아의 술집 안에 쳐들어온 다른 세명의 군인과 조안의 하의와 같은 종류의 군복이었다. 다만, 조안의 하의는 예전엔 그토록 잘 볼 수 있었던 푸르른 녹음을 따온 색이었다면, 빅토르와 군인들의 군복은 이 세상을 뒤덮은 죽은 나무들의 정글 색과 비슷했다. 건조한 회색. 조안의 것보다 더 깨끗하고 더 잘 손질되었으며 더 깔끔하게 마감되어있는 옷이었다. 그 옷들의 본래 주인이었다. 그만큼, 그들의 무장도 충실했다. 빈틈없이 손질되어있는 돌격소총들. 재빠른 움직임을 위해 선택한 방탄 헬멧은 탄을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의도치 못한 파편에 머리를 맞고 죽는 일은 방지했다. 프로로써 자라날 수 밖에 없었던 조안과 다르게, 이들은 태어날때부터 프로였다. 


술집 정 중앙, 카운터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들어오는 조명이 비추는 정중앙을 바라보며 군인들은 서있었다. 그 정중앙에는 빅토르가 있었다. 마리아를 방불케하는 근육에 의해 술집 정중앙에는 정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빅토르의 발 밑에는, 얼굴이 잔뜩 쥐어터져 피를 흘리며 밧줄에 묶인체 제압되어 있는 마리아가 있었다. 


"이봐, 마리아. 말했잖아. 난 친절하다고. 원하는걸 얻으면 자리를 비켜줄거야. 그런데 왜 너나 네 친구들은 죄다 그 모양인거지? 외부인들은 타고날때부터 반항하도록 설계되어있는건가? 살고싶으면 대답하라고 했더니 침을 뱉질 않나. 다짜고짜 욕하며 총을 쏘질 않나."


"네가 총을 겨눠서겠- 커헉!" 마리아가 무언가를 말 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마자, 마치 뼈를 부러뜨릴 기세로 빅토르는 마리아의 등을 짖밟았다.


"내가 말하라고 했던가? 그랬나? 아니라고. 그러니 닥쳐. 어디까지 했나? 아, 그래. 다짜고짜 총을 쏜다고. 마일즈라는 친구, 싫어하진 않았는데, 그렇게 말을 하니 내가 별 수 있나. 미안하다고 말하며 총을 쏠 수 밖에. 그런데 마리아, 너는 그럴수가 없어. 안타깝지만 죽일수가 없다고. 왠 줄 알아?  줄 아냐고. 아, 그래. 지금은 이야기해도 돼. 말해보라고."


비열히 웃는 빅토르의 얼굴은 조명에 의해 더욱 더 기분나쁘게 빛났다. 


"좆. 까."


"오답이야." 


빅토르는 왼발로 마리아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하지만 그 덩치 때문인지, 상당히 둔탁한 소리가 울렸음에도 마리아는 움찔할 뿐이었다.


"제기랄, 더럽게 덩치 큰 아줌마구만. 이제 세희가 어디있는지 이야기 할 마음이 들었나?"


철컥. 문이 열렸다. 정말 작은 소리였지만, 빅토르는, 그리고 그의 부하들은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왔다. 준비해."


그리고는, 마치 약속한 것 처럼 네사람은 입구를 향해 엄폐물을 취했다. 몸에 베어있던게 분명했다. 적어도 삼년. 몸으로, 또 마음으로 끊임없이 훈련했을 것이다. 실전도 치뤘을 것이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다시말해, 살아남기 위해서. 수십번도, 수백번도. 근육의 꿈틀거림 하나 하나에서 읽을 수 있는 정보였다.


하지만 그들조차 불이 꺼지리라 예상하지는 못했다. 어둠이 찾아왔다. 들어오지조차 못하는 햇빛의 원천은 이미 저문지 오래였고 덕분에 달빛도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순수한 어둠만이 맴돌았다. 


빅토르는 지시하지 않았다. 그 또한 이를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훈련의 성과였다. 결코 당황하지 않는다는 것. 모든 것이 마치 준비되어 있던 상황인 것 처럼 행동한다는 것.


그렇게 그들은 기다렸다. 상대방이 수를 내길 기다렸다. 바로 그 다음수가 그들의 죽음이 될 것이라 굳게 믿고서.


그들의 믿음처럼 상대방은 수를 놓았다.


"마리아가 왜 술집의 조명을 하나만 켜놓은줄 알아?"


어린 소년의 목소리였다.


그 말 뜻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술집은 빛으로 가득찼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빅토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지점에서부터 빅토르의 의식은 반사신경에게 주도권이 넘어갔기 때문이다.


맨 처음엔 빛이 있었다. 아니, 그 이후에도 빛이 있었다. 굉음을 동반한 빛이. 그래, 익숙한 종류의 빛이었다. 익숙한 종류의 냄새가 섞인 빛이었다. 그런 빛이라면 한종류밖에 없었다. 화약냄새가 섞인 냄새. 그 즉시 오른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별안간, 오른팔이 얼굴을 후려쳤다.


아프지 않았다. 고통은 언제나 나중에 찾아왔다. 그에게 맨 처음 든 생각은, 왜? 왜 팔이 움직였지? 힘을 꽉 주었을텐데? 그 물음은 순식간에 답으로 이어졌다. 군인이기에 할 수 있는 답. 총알이다. 총알이 팔에 박힌건가.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쉼쉬는게 이상하리만치 편해졌고, 이성이 제 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했다.


왼쪽. 그 군인은 왼팔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빛에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팔은 너무 가냘펐다. 그래서 총알을 막지 못했다. 고개를 살짝 돌린체 총알을 아랫턱에 맞았기에, 그 군인의 고개는 꺾일수 없는 각도로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돌아가고 있었다.


머리에 피가 돌았다. 하지만 정신을 잃고 분노에 몸을 맡길수는 없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보았다. 둘의 상황은 낫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그럴리가 없었다.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럴리가 없었다. 한명, 앞에 있는 녀석은 똑바로 총을 쥐고 있었다. 좋은 신호였다. 하지만 빌어먹을 총알은 머리에 정확히 박혔는지, 녀석의 눈은 봐서는 안되는 방향을 바라고보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를 느리게 들어올려 더 위를, 더 위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계속 돌렸다. 오른쪽, 오른쪽으로. 느려진 시간 때문에 마치 한시간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겨우 뒤에 있는 녀석을 시야에 들였다. 제기랄. 눈물이 나올것 같았지만 울 시간이 없었다. 미간에 칼이 꽃여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빅토르의 뇌 속, 뉴런 줄기를 타고 한 생각이 파고들었다. 그래, 저 칼을 본 적이 있어.


그리고는 시간이 빨라졌다. 빅토르는 웃고 있었다.


"다 켜놓으면 밝으니까 그렇-뭐야!"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파고든건, 세희쪽이었다. 소녀는 품 안으로 파고들며 권총을 쏘았다. 빅토르는 재빨리 몸을 엄폐물 뒤로 숨겼다. 그리고 밑을 잡고 들어올렸다. 엄폐물이라고 해봤자, 낡아빠진 소파에게 불과했다. 빅토르에게 그런 낡아빠진 소파는 헤진 종이박스와 별 다를게 없었다. 그렇게 엄폐물을 통째로 들어올리고서 앞으로 달려들듯 소파를 내던졌다.


쿵. 맞는 느낌이 있었다. 그대로 뛰어들었다. 빅토르를 향해 총알이 빗발쳤지만 맞지 않았다. 맞을수가 없다고 굳게 생각했기에 맞지 않은 것일수도 있었다. 빅토르의 생각이 성공한 덕분에 세희는 꼼짝없이 빅토르 밑에 깔리고 말았다.


"우습게 보지 말라고!"


왼쪽에서 조안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우스울수밖에 없었다. 태생부터가 다른 조안은 빅토르에겐 병정놀이를 하는 어린애에 불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빅토르는 웃었다. 즐겁게 웃었다. 이조차도 어린애와 장난이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그리고 주먹을 뻗었다.


물론, 그의 오른팔은 박살이 난지 오래였다. 주먹을 쥘 수 있을리 없었다. 인간의 몸이란 생각만큼 생각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 비록 그의 강하고 질긴 근육을 뚫진 못했지만, 여러개의 10그램 납탄은 그 운동에너지를 팔 전체에 충분히 전달하고도 남았다. 어디로 빠져나오지도 못한 그 에너지는 빅토르의 오른팔에 그대로 남아 사방을 여행했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지나간 자리에 뼈고 근육이고 제대로 돌아올리 만무했다. 수십, 수백개로 뼛조각은 나뉘었고, 근섬유는 조각조각나 더이상 하나로 연결된 유기적인 섬유가 아닌 개개의 세포 덩어리로 존재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가지 남는게 있었다. 바로 무게였다. 110kg는 훌쩍 넘어가는 빅토르의 팔은 한짝만 하더라도 10kg가 넘는 무게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는 그 팔을 돌렸다. 속력 에너지를 더했다. 수백번의 실전과 수만시간의 훈련으로부터 비롯된 속력이 비록 무게뿐인 주먹일지라도 거기에 힘을 더했다. 그러자 빅토르의 몸통 오른쪽에 달려있을 뿐이었던 팔은 순식간에 사람을 후려치는 흉흉한 둔기가 되었다. 


그런 둔기 앞에서 조안이 버틸수 있을리가 없었다. 조안은 날아갔다. 마치 폭발에 맞은듯, 붕하고 떠 술집 구석으로 나가 떨어졌다. 얼굴 반쪽이 순식간에 벌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헤헷... 진짜 괴물 새끼잖아."


조안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대꾸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빅토르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찬사 고맙군, 외부인."


그리고는 말했다.


"자, 이제 가실시간입니다. 공주님. 이런 썩은내나는 밖을 피해 어서 안으로 가셔야죠."


하지만 소파 밑에서 조그만 반박이 흘러나왔다.


"싫...어."


"어짜피 그냥 데려갈 생각이었습니다만."


빅토르는 말했다.


그때, 빅토르는 인기척을 느꼈다. 순간 뒤로 돌았다. 왼손엔 권총이 들려있었다. 좋아하는 무장은 아니었고, 더욱이 선호하는 손도 아니었다. 하지만 없는것보단 나았다. 그리고 이 손으로의 훈련도 충분히 받았다고 자부했다. 


누굴까, 빅토르는 머릿속으로 셈했다. 마리아인가? 하지만 그녀는 무력화됬다. 철저하게. 그 부분에 있어선 빅토르가 자신있어 했기에 논외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마일즈? 그 비실한 흑인 청년? 말도 안됬다. 지금쯤 죽었을 것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놈의 하지만이 머릿 속을 헤집어 놓았다. 이놈들도 몰래 다가왔다면, 충분히 그 전에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다. 응급처치를 끝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겨우 온힘을 다해, 이 곳에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우스운 상상에 불과했다. 피식 웃어넘겼다. 답은 유일했다. 한명 더 있는 것이다. 이 꼬맹이처럼, 세희를 구출하기 위해 다가온 녀석이 한놈 더 있는 것이다.


와라. 빅토르는 속으로 말했다. 뒤를 돌아본지 0.5초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0.25초뒤, 누군가 외쳤다.


"어딜보고 있냐, 멍청아!"


빅토르는 웃었다. 목소리는 자신의 앞, 그러니까 방금 전 자신의 뒤에서 들렸기 때문이다. 녀석은 자신이 몸을 돌렸다는것을, 자신을 눈치챘다는 것을 알지 못한 듯 했다. 좋았다. 


0.1초뒤 빅토르는 격발했다. 가장 적이 맞을만한 부위에 사격했다. 오른팔은 뒤로 뺐다. 지금 상황에선 도움이 되지 않을 뿐이었다. 대신 오른발을 앞으로 쭉 빼어, 왼팔을 가슴에 밀착시켰다. 안정감이 느껴졌다. 슬라이드가 안전하게 탄피를 뱉어내자, 그리고 원래 위치로 돌아와 공이를 젖혀놓자 바로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시끄러운 소리가 실내를 뒤흔들었다. 탕. 다시한번 발사했다.


빅토르의 머릿속은 이미 이후를 상상하고 있었다. 마치 깜짝 놀래킬 생각으로 다가온 아이가, 역으로 놀라게 되는 모습을 상상했다. 피가 끔찍할정도로 넘쳐난다는 부분만 다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장면은 실현되지 않았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적어도 빅토르의 총알으로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너무 높게 조준하고 있었다.


데이브는 체중을 실어 빅토르에게 돌진했다. 그 또한 70kg가 넘어가는 무거운 몸무게를 자랑했다. 무엇보다 그는 공격하는 지점 한 몸에 몸무게가 모두 담긴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었다. 빅토르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빅토르는 쓰러질 수 없었다. 그건 너무나 당연했다. 아무리 불의의 일격이라도, 빅토르를 단순히 밀치는 것 만으로 넘어트리는건 그 누구로써도 실현 불가능한 종류의 결과였다. 마리아조차도 성공하지 못했다.


때문에 데이브는 그를 쓰러트리려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물어뜯었다.


"수컷으로써 살아가기 101. 언제나 낭심을 보호하라. 몸 외부로 노출된 장기는 몇 없는데, 낭심은 바로 그 장기의 결정체라고 보면 된다고, 아미고."


데이브가 입 속에 있는 성기를 뱉어내고는 중얼거렸다. 입가에 흐르는 침이 빅토르의 피와 섞여 빨갛게 더러운 그의 입가를 적시고 있었다.


"으악! 으아악!"


빅토르는 쓰러졌다. 그건 참을 수 있는 종류의 고통이 아니었다.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하고 실전을 치루더라도 극복할 수 없는게 있는 법이다. 그런것을 인간은 본능이라 불렀고, 그는 지금 본능으로부터 비롯된 공포와 고통을 목소리로만 표현하고 있었다.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럼에도 그의 고통을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쉬펄, 자니나구만."


부풀어올라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조안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순간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세희였다. 그녀는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소파를 치우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왼팔을 부여잡고 있었다. 빅토르와 부딛쳐 넘어질때, 부러지거나 적어도 탈골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 데이브는 보고야 말았다. 술집 안에 살아 숨쉬는 다섯명의 생물체 중 유일하게 그녀의 표정을 본 개였다. 그건 가관이었다. 순간 소름마저 끼칠 정도였다. 분노를 넘어선 무언가가 세희의 표정에 있었다. 데이브의 뇌가 가동했다. 저런 표정, 감정을 뜻하는 단어가 분명 존재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 그리고는 떠올렸다. 그 의미에 빅토르도 담아낼 수 있는 바로 그 단어. '괴물'.


탕. 세희의 손에 든 권총이 빛을 발했다. 총알이 소리를 지르던 빅토르의 머리에 적중했다. 비명이 멈췄다. 몸부림도 멈췄다. 가랑이 사이에서 솟구치던 출혈도 멈췄다. 하지만 단 하나 멈추지 않은게 있다면, 세희의 손가락이었다. 그녀는 총알을 계속 쏘았다. 총알이 거덜날때까지.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재장전을 하려했지만,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끝났으면 나좀 풀어줘."


마리아의 말이 그 어색한 적막을 꺠었다. 그리고 마치 그 말이 마법의 단어였던 것 마냥, 활기가 돌아왔다. 세희의 표정에서 괴물이 사라졌다. 그리고 거기에 남은건 사람을 도우려는 친절한 소녀였다.


"아, 앗. 네! 바로 갈게요!"


데이브는 움직이기 힘들었다. 발을 떼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얼굴을 못본척 해야했다. 그건 개로써의 본능이 요구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뛰어넘는 괴물을 마주했을땐, 결코 그 괴물을 응시해서는 안된다는, 피로 전해진 교훈이었다. 그렇게, 데이브는 자신이 자연스러울거라는 상상을 하며 쓰러진 조안에게 다가갔다. 적어도 자신의 표정이 털에 가려 잘 보이지 않으리라는게 그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괜찮아 조안?"


"개안아... 쉬펄 마라기느은 조온나 어뎝내..."


데이브는 신음소리에 가까운 말을 하는 조안의 얼굴을 핥았다. 마치 그러면 나아질 것처럼. 조안이든, 자신이든.


"머야... 그러캐 시매? 주글거가타?"


"병신아. 그래. 뒤질것 같다. 에휴 병신 내가 도와줘도 뭐래."


데이브는 살짝 웃었다. 이래야 조안이지.


"자까마... 피 아냐? 애 피가 무더나아? 피 흐려? 나 피흐려?"


조안은 얼굴에 묻은 침을 손으로 닦아내보고는 갑자기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조차도 제대로 발음하지 웃길 뿐이었지만.


"어? 아냐. 괜찮은걸."


"그러믄 너야? 너 초마자써?"


그렇게 말하는 조안의 말에서 데이브는 갑자기 뭉클해졌다. 녀석. 주인이고 뭐고 아무것도 아닌 관계였지만, 가끔은 이렇게 감동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아냐. 난 괜찮아, 조안. 그만 엄살부리고 일어나라고."


"그대야지... 그대.."


"제기랄. 개판이 됬구만."


마리아였다. 양팔이 자유가 된 거구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겨우 카운터로 다가가 카운터에 기대어 털썩 앉았다.


"괜찮으세요?"


"난 언제나 괜찮아. 그냥, 큭... 빌어먹을 위스키나 좀 가져와줄래? 저기 선반에 있어."


마리아가 신음소리 섞인 목소리로 세희에게 부탁했다. 머뭇거림 없이 세희는 카운터 너머로 넘어가 술을 찾기 시작했다. 이내 위스키를 찾은 세희는 잔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걸 보지도 않고 알아챈 것 마냥, 마리아가 말했다.


"그냥 줘."


손에 든 독한 위스키를 마치 물마냥 들이키는 마리아는, 그제서야 편해졌다는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래서야 오늘 장사는 끝이구만."


"어디 다치신곳은 없어요?"


"내 걱정은 하지 말래도. 총맞은것도 아니니까. 내 가게는 어떤 놈 때문에 총맞았지만. 저기 뒤진놈 말고, 그래. 너말야 조안. 내 걱정보다 네 걱정이나 하지, 세희?"


세희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녀도 알았다. 이 난장판은 그녀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일은, 결코 끝나지 않을테니까.


"아니, 왜 그리 표정이 어두워져. 팔 한번도 안다쳐봤어?"


마리아는 씨익 웃었다.


"저런 개새끼들이야 언제나 오는 법이고, 마일즈는..."


"미안, 마리아. 미안하게 됬어."


데이브가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가. 하. 좋은 친구였는데. 이렇게 먼저 가버린건가. 그래... 살아남는 것보다 더 편한 길을 선택한 마일즈 센티아고에게, 옛 사람의 가호가 있기를."


마리아는 살짝 술병을 들어 흔들고는, 다시 들이켰다.


"뭐, 마일즈는. 자기도 그럴 일이 오리라는걸 알고 있었으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뭐, 못미덥기도 했지만. 하하하. 새 나이트 가드를 구할때도 됬지. 너무 걱정 말라고 세희."


세희는, 조용히 웃었다.


"여튼 이건 이거고, 새끼들아! 의뢰는 제대로 수행했어?"


"아, 무론디디!"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로 조안이 외쳤다. 마리아와 세희가 방금 나눈 고통은 마치 없었던 듯한 목소리였다.


"바깨다 셔핀배 나드거 아쓰니가! 잠마 기다뎌!"


허겁지겁 나가는 조안의 뒤를 바라보던 세희도, 순간 정신을 차리고 그 뒤를 따라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옷깃을 마리아가 약하게 부여잡았다. 마리아는 말했다.


"괜찮아?"


세희는 답했다.


"네. 정말 좋은 사람들이에요."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사람들이지. 그래. 같이 있고 싶은 사람들이고?"


세희는 웃으며 답했다.


"네."


마리아는 말했다.


"좋아. 그럼 나도 널 지켜줄게. 하지만-"


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모두를 지킬게요."


멀리서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분명치 않은 발음으로.


"머해 새히! 빠리나아서 셔피배 가져다댜... 쉬팔! 더디가찌? 뎌기 닛써느떄! 쉬팔!"


"어서 가봐."


마리아가 말했다.


"꼬맹이가 널 필요로 하는군."


세희는, 고개를 깊숙히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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