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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탕 이야기

Nake 2016. 3. 13. 23:59



굉음이 이어졌습니다. 


마법 폭발에서만 체감할수 있는 진공음이 들렸나 싶더니, 순식간에 시끄러운 굉음이 머리 위를 짓밟고 지나갔습니다. 한 번만 그랬다면 좋았으련만. 그 폭발음은 개미집을 짓밟는 어린아이처럼 무자비하게 몇번이고 굴 위를 두들겼습니다. 


이런건 익숙하지 않다구요. 익숙한 사람이 있을리야 있겠나요. 그렇게 말하고보니 대머리를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것으로 유명한 히쉬 부대장님이나 2차 대전쟁에 참여했던 까마득한 고참들이 떠올랐지만, 그런 전쟁 기계들을 대상으로 한 공상이 아니었어요. 적어도 상식적인, 얼마전까진 저같은 일반인이었을 사람들을 기준으로 익숙할리가 없다는 이야기였죠.


여하튼, 폭발은 이어졌습니다.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져 안그래도 어두운 시야를 가렸어요. 굴에 난 구멍 사이로 비쳐오는 햇살만이 유일한 조명이었는데. 폭발이 끝나고 나면 그것조차 사라져버리지 않을까요? 숨쉬기도 약간 힘들었지만, 그런 티를 낼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선임 숲지기인 홀츠 숲지기가 바라봤는지 제 헬멧을 툭하고 건드렸습니다. 움찔. 이런 얼굴을 드러내다니. 혼날게 분명해. 안그래도 엄격한 분이신데.


“그만 떨고 이걸 삼켜."


하지만 이상하게도 선임 숲지기님은 저에게 뭔가를 건내주었습니다. 구슬처럼 작은 무언가였죠. 아, 뭔지 알겠어요. 약이군요. 긴장한 사람에게 주는 진정제로군요. 아니면 사약일수도 있어요.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는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눈물이 왈칵 몰려오네요. 화는 안났어요. 대신 슬펐어요. 내가 그렇게 쓸모가 없구나. 당연한걸지도 몰라요. 겨우 폭발가지고 긴장하는 숲지기라니, 누가 좋아하겠어요.


눈을 감고 구슬을 집어삼켰습니다. 그 구슬은, 왠지 모르게 쓰디 달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조금 전으로 거슬러 가야만 해요. 마음같아선 제가 어떻게 펜탈로반의 숲지기 후보생이 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건 너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삼가도록 할게요. 가난한 말단 방계의 자손인 제가 가주님인 마르쿠스 펜탈로반님의 가호를 받아 숲지기 후보생으로 임명받고 차기 숲지기로써 수련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의 이야기라는 것만 알아두세요. 말해두지만, 저같은 방계가 숲지기가 되는 영예를 얻는건 매우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젖먹던 힘을 짜내 훈련을 따라갔어요. 무거운 마동 갑주나 시끄러운 드워프식 라이플은 영 손에 익지 않았지만, 그래도 숲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훈련에서 낙오되는 일은 없었답니다. 


하지만 그런 제가 못미더웠기 때문에 홀츠 숲지기님을 제 선임 숲지기로 배치한걸지도 몰라요. 다른 숲지기 후보생 다섯명을 데리고 강의하는 그는 언제나 엄격하고 과묵했답니다. 표정은 언제나 온화하긴 했지만 그 외의 표정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표정이라고 봐도 무관한 얼굴을 하고 있었구요. 아니, 그냥 제 앞에서만 그런걸지 모르겠네요. 다른 후보생 앞에서는 절 욕하고 있을지 몰라요. 묽은 피를 가진 녀석이라고! 


그랬기 때문에 동기 후보생이 하나 둘 탈락할때마다 저는 긴장할 수 밖에 없었어요. 다음은 내가 될게 확실했으니까요. 언제나 운이 좋아 빠져나갔지만, 윗분들이 절 눈앳가시로 느끼고 있다는걸 전 느낄수 있었으니까요. 그런 생각을 할때마다, 저는 집에 있을 수많은 동생들과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버텨냈답니다. 이번엔 살아남을거야! 이번엔 반드시! 어머니의 이름을 걸고! 


그렇게 오늘이 다가왔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제 이야기가 시작되는거죠.




오늘은 중요한 야전 시험이 있는 날이랍니다. 실제로 숲 속으로 나가 갖가지 상황에 대처하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평가하는거죠. 후보생 과정의 막바지나 다름 없긴 했지만, 정식 숲지기가 되려면 그 뒤에도 많은 시간과 성과가 필요했기 때문에 끝이라고 안심할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몸은 그걸 따라가지 못했는지, 아침에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답니다!


“죄-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아냐.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옷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는 홀츠 숲지기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세상에, 옷이 정말로 엉망진창이었다구요! 


“손수건으로는 지지 않을테니 제 셔츠로-"


“무슨 소릴 하는거야, 그리핀? 난 괜찮으니 식사를 다시 받게. 오늘 평가는 가혹할테니 말야."


“하지만…"


“이봐 그리핀 후보생, 상관이 명령하는데 불복종하는건가?"


이럴수가, 허둥지둥하며 홀츠 숲지기를 바라보고 있던 제 앞에 등장한건 다름아닌 히쉬 부대장님이었습니다. 오늘의 평가관님이기도 했죠. 세상에. 안돼. 


행운은 언제나 제 편이 아니었다는걸 실감할수밖에 없는 상황이네요. 이럴줄 알았으면 차라리 오늘 아침을 굶을걸 그랬어요. 무리해서라도 어제 저녁을 많이 먹었어야 하는건데.


하지만 스프는 이미 엎질러졌고 히쉬 부대장님은 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할수 있는건 그저 잠자코 다시 스프와 빵을 배급받는 것 뿐이었어요. 그런 것 뿐인데도 제 손은 마구잡이로 떨려왔고 눈앞은 캄캄해졌습니다.


아 이게 끝이구나. 여기서 나는 탈락하는구나.


엄마, 안녕. 일일히 나열하기 힘든 열두명의 동생들아, 미안해. 아빠… 언급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미안해요.


난 집으로 돌아갑니다.


스프가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체 아침을 먹고나니, 어느샌가 저는 숲 속으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리핀 후보생. 어디 문제라도 있나?"


“아- 아닙니다!"


세상에, 게다가 내게 따라붙은게 홀츠 숲지기님이라니, 안돼! 




이후의 시험이 잘 흘러가지 않은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것 같네요. 저는 시험을 망쳤습니다. 말 그대로, 문자 그대로 망쳤다구요. 조작과 속임수의 대가인 인간이 와도 이 시험 결과를 바꾸진 못할거에요. 평소처럼 했으니 결과는 뻔하겠죠. 한숨만이 나왔지만, 그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어요. 등 뒤에서 지켜보는 시선이 너무 따가웠거든요. 내가하는 모든 실수를 기억하고 있겠지? 아직도 화가 안풀린거야. 내가 옷에 스프를 엎지른걸 계속 마음에 담고 계신거야. 


세상에, 화상을 입어버린걸거야. 그게 확실해. 미지근하긴 했지만, 갑작스런 접촉으로 뜨거운 화상을 입어버리고 만거야. 그리고 내가 뭘했지? 안돼! 세상에, 그냥 스프를 다시 받아먹다니!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거지? 미쳤지, 미쳤어! 사과도 하지 않고 염치도 모른체 밥을 먹다니!


하지만 나는 사과를 하지 못했어. 대기가 떨리는 마법 특유의 징조를 관측하고, 바로 근처에 있던 굴로 대피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 만약 켈러헨 탐지기가 반응했다면 나무 위로 올라가는게 안전할테지만, 탐지기는 조용했고 미묘한 유황냄새가 코 끝을 감도는걸 고려하면 이건 슈타이너식 폭발이었기 때문에 굴 속으로 들어가는게 가장 안전했지. 여기서마저 실수를 했다면! 상상도 하기 싫어.


그럼에도 결국엔, 홀츠 숲지기님은 내게 약을 줬어. 그래. 탈락자는 살아서 돌아가서는 안돼. 죽어야지. 죽어서 내 명예를 살려야해!


“그리핀. 그리핀? 잠깐, 울고 있는거야?"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콧물이 가득한데다 약을 급히 삼켜 나오는 기침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어. 홀츠 숲지기님은 그런 내가 숨을 추스르길 기다려주었지. 이렇게 좋은 분이 나 따위의 선임 숲지기를 맡게 되다니.


“우… 울지 않았습니… 케흑… 않았습니다!"


“왜 그래, 뭐가 걱정이야?"


“아닙니다! 이 독약, 달게 받겠습니다! 더럽혀진 펜탈로반의 숲지기의 영예를 죽음으로 씻겠습니다!"


울음과 먼지때문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되도록 명확한 발음으로 나는 외쳤어. 그리고서야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하는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그래. 몸에 뭔가가 서서히 퍼지는 기분. 명확하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그것이 손 끝에서부터 천천히 퍼져나가는 기분. 그래, 그리고 정신이 몽롱해지고...


아니네. 몽롱해지진 않네. 의식이 아찔해진건 너무 울었기 때문에 찾아온 현기증 때문인 것 같아. 뭐지? 왜 안죽는거지? 아, 그런가.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으라는건가. 나는 눈을 감고 그 고통을 감내할 준비를 했지.


그런 나를 보고, 홀츠 숲지기님은 말했어.


“독약이라니, 무슨소리야?"


“…독약이 아닌 것입니까?"


“당연하지. 그거 사탕이야. 사탕 몰라?"


“사탕…이 무엇인 것입니까? 아, 크루호븐놈들이 만든 독약의 이름인가 보군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이상한 광경을 보고야 만것 같아. 그래, 마치 홀츠 숲지기님이-


“하하!"


-웃고 있었던 것 같은.


“사탕이란 말야. 사탕수수의 즙을 정제해서 나온 설탕을 녹이고 굳혀서 만든 과자의 이름이야. 긴장했을때 먹으면 좋지. 단맛이 혀끝에 퍼지는 그 느낌이 정말 좋은데, 진짜 약이라고 생각했나 보구나?"


“하… 하지만… 그런… 저같은건 그런 고급 사치품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하. 이미 삼켜놓고선 뭐래. 네가 너무 긴장한 것 같아 준거야. 걱정말라고. 이번 후보생 중에 너보다 잘 한 사람은 없어."


“그… 그런… 저는 실수도 많이하고…"


홀츠는 조용해졌습니다. 뭘까요? 제 실수를 떠올리고 있는걸까요?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네."


“하지만, 전 제가 했던대로만 했을 뿐입니다. 펜탈로벤의 숲지기 방식과는 다른 것이 많단 말입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다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죽고싶습니다.


“아냐. 넌 잘했어. 너무 걱정하지 마. 원래 실수는 그걸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법이니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믿을 수 없었으니까요.


“왜 그래. 설마 아침 일을 아직도 걱정하는거야? 정말로 괜찮다니까. 얼룩이야 원래 지는거고. 괜찮아."


“흑… 흐윽… 하지마안…"


그렇게 울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폭발이 멎어있었더라구요. 지면은 고요해지고, 제 흐느낌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신선한 공기가 구멍을 타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햇살도 뒤늦게, 먼지가 가라앉고 나서야 들어왔구요. 


그제서야 저는 홀츠 숲지기님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전에 본적이 없는 환한 얼굴로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괜찮아. 사탕 어땠어?"


저는 우물거리는 발음으로 겨우 말했습니다.


“맛… 맛있었습니다."





“저 시발놈들이! 내가 듣고 있는거 알면서 저런소리 하는거지?"


히쉬 부대장이 역정을 내며 말했다.




[끝]









“그래서 하얀 마녀, 말해줘! 나랑 선임 숲지기님이랑, 결혼할 수 있을까?"


그리핀이 물었다. 꽁지가 까만 흰 머리의 인간 소녀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될걸."


“왜? 금혼 규정은 어짜피 사문화된거라고 이야기했잖아!"


“그렇긴 하지. 근데 네 세대에선 불가능할거야."

 

“왜!!"


“왜긴, 부대장의 승인이 있어야 되잖아. 근데 히쉬 부대장 아직 독신 아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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