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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껏다 켜보셨어요?

Nake 2020. 2. 5. 07:39

"네, 고객님. 다행히 해당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은 이미 준비되어 있네요. 먼저 왼쪽 아래에 있는 시작 버튼을 누르시고, 시스템 종료 및 다시 시작 버튼을 누르신 다음, 다시 시작 버튼을 눌러 보시겠어요? 통화는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요."


"잠깐, 뭘 하라구요?"


"바탕- 바탕화면 가보시겠어요? 왼쪽 아래에 있는 시작 버튼-"


"시작 버튼이 뭔지는 알아요."


"그럼 그 버튼을 누르시고-"


"빌어먹을 다시 시작하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어!"


"다시 시작을 해보신건가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시스템을 완전히 종료하고 다시 시작하면 상당히 광범위한 문제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미친..."


"...괜찮으세요, 고객님? 고객님?"


"...그래. ...다시 시작하라고?"


"예. 바탕화면을 열거나 시작 표시줄이 응답하지 않으시나요?"


"애초부터 없다고."


"아... 정말 옛날 모델을 쓰고 계시는군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옛날 모델... 하."


"네. 찾았습니다. 기기와 연결된 키보드의 컨트롤, 알트, 딜리트 버튼을 한번에 눌러보세요."


"..."


"고객님? 문제가 해결 되었나요?"


"없어."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나요?"


"키보드가 없다고."


"어... 좋습니다. 그렇다면..."


"정신이 나간거 아냐? 키보드라니? 대체 어떻게 키보드를 쓰는거냐고?"


"고객님?"


"내가 컴퓨터 오류 때문에 전화한 줄 알아? 젠장, 내 다리가 안 움직인다고!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다리가 안움직인단 말야!"


"고객님. 진정해주세요. 이 대화는 녹음 중이며..."


"진정하라고? 진정하라고? 잰장. 지금 주방 바닥에 앉아서 할 수 있는거라곤, 이렇게 수화기에 대고 소리 지를수밖에 없는데, 무슨놈의 진정을 하라는거야!"


"..."


"하아. 하아. 하아."


"고객님. 통화 가능하시겠나요?"


"..."


"고객님. 외부장치 연결 슬롯이 존재하지 않는게 사실이라면, 현재 사용하고 계시는 인간 모델은 더 이상 유지보수를 지원하지 않는 모델입니다."


"..."


"다행히도, 그러한 구형 모델에 대해서는 무상 업그레이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위치에서 대기하고 계신다면, 가까운 현장 직원이 찾아가 업그레이드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정하시고, 현재 위치에서 대기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119 안전신고센터의 28번 상담원이었습니다. 상담이 도움이 되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는 짧은 설문조사에 참여하시겠나요? 예상 소요시간은 5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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