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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서운 이야기

Nake 2020. 2. 5. 07:38

"파병 이야기야. 내 친구는 의무병이었는데, 매달 마지막주만 되면 퇴원하는 사람이 있다더래. 이미 온몸이 흉터로 가득한데다 오른팔도 없으니 병원에 자주 오는게 어찌보면 당연하다고도 볼수 있겠는데, 문제는 입원한 기록이 하나도 없었다더래. 하지만 그건 자기 일도 아닐 뿐 더러 총격전에 휘말린 동료를 치료하랴 현지의 환자들을 치료하랴 신경쓸 겨를도 없어서 그러려니하고 다른 환자들을 봤었대.


하지만말야, 말이 그러려니 했다는거지, 그 환자는 그냥은 무시하기 힘든 환자였다고 하더라고. 온몸을 뒤덮은 흉터가 말이 아니게 끔찍해서. 얼굴을 반으로 가로지르는 무시무시한 흉터를 보면 살아있는게 이상할 정도였대. 그런데, 매번 퇴원할때마다 위화감이 들었다더라. 뭔가, 전과는 달라지는 느낌이 있다는 거였지. 하지만 그 원인은 모르는거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귀향하는 달이 되었는데, 마지막주에 장병 한명이 훈련을 하다 사고가 나버린거야. 탱크 있잖아? 훈련을 하는데 그 앞에서 미끄러진거야. 운전병이 그걸 본것도 아니어서, 무한궤도가 덜컹덜컹덜컹 지나가다 쾅, 그렇게 팔 한짝이 날아가버린거지. 그냥 부러진 것도 아니라 말 그대로 으깨져버린거라 팔을 절단하는 수밖에 없었어.


몇시간은 걸렸을까? 처치가 끝나고 겨우 쉬고있던 내 친구를, 누가 어께를 두드리며 위로하더래. '떠나기 직전에 욕을 많이 보십니다.' 뭐라 대답하려 고개를 들었는데, 녀석은 그 자리에서 깜짝 놀라 움직일수가 없었어. 매달 퇴원하던 그 환자가 오른팔을 뻗으며 악수를 청하는데,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 말고는 아무런 상처를 볼수가 없었다는거야. 그리고 그의 다음 말에 친구는 기절하고 말았지. '한 달만 더 계셨으면 이 얼굴도 나았을텐데 말입니다.'"


"...지루해."


"뭐? 솔직히 그건 너무했다. 이건 무서웠을거야."


"네 노력은 인정하겠지만... 너무 친숙하다고."


"친숙하다니,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인데."


"'새상에 새로운 건 없다', '어디서 들은 것 같다', '구조가 비슷하다' 따위의 말이야. 감평 수업에서 들어봤을거 아냐?"


"알고는 있지. 평가는 해야겠는데 할 말은 없는 사람들의 변명거리. 클리셰는 장르 문화의 특징중 하나야. 적절하게 쓰였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한걸? 친숙한게 절대 나쁘다곤 할수 없는거지."


"네 생각은 그렇단걸 알아는 두도록 하지."


"그나저나, 괴담이 궁금하다면서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그렇게 친숙하다 친숙하다 노래를 부르면 나보고 어쩌라는건지 모르겠다."


"미안. 네 잘못이 아냐. 내 잘못이지, 사실은."


"뭐 때문에 그러는건데?"


"...혹시 '무서운 이야기'라는 책 알아?"


"그런 이름의 책이 따로 있나?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건데?"


"그, 어디더라, 기억은 안나는데, 시리즈로 나온지는 벌써 십년은 넘게 됬을걸? 꾸준히 청소년 타겟으로 편집해서 책으로 엮는 곳이 있어."


"음. 서점에서 슬쩍 본 기억이 있는 것두 같긴 하네. 근데 그게 왜?"


"그 책의 원류를 따져보면, '만득이 시리즈'나 '인기쟁이로 만들어주는 유우머 100선' 같은 시간 따먹기 삼류 유머집과 비슷하거든.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엮어다가 편의점에 비치해두고 팔리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책들. 하나하나 따져보면 각각의 요소가 다르긴 하지만, 커브볼을 던진 몇몇 영리한 이야기를 제외하곤 다 비슷하단 말야?"


"그래서?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건지 모르겠네."


"이런 책들은 문고판 판형의 책들 말고도 손바닥만한 크기의 포켓 판형으로도 출판되곤 해. '무서운 이야기'는 특히 이런 판형으로 인기가 많고, 문구점에 가보면 많이들 보여. 왜 그런줄 알아?"


"글쎄다?"


"일단 첫째로, 수익을 보기 좋거든. 서점에 가는것도 아니다, 제대로 된 출판사에서 출판하지 않아도, 저자의 이름을 적어놓지 않아도 팔리니까. 그리고 두번째로, 인기가 많거든. 청소년, 특히 저학년 애들에게. 너도 알잖아? 가끔가다 괴담이 한 학년 통째로 유행을 타는 때가 있다는 걸?"


"...확실히 있었지, 그런 때가 말야. 무리에서 돋보이고 싶어하는 애들이나, 아직 끼지 못한 애들이 입담을 이용해서 인기를 모으려고 시도하려는 애처로운 때가 있었어. 근데 요즘에 괴담집을 사는건 옛날 이야기인거 알아? 스마트폰만 보면 괴담 찾는건 그렇게 어렵지도 않으니까. 책에 돈을 주고서까지 괴담을 모으려는 애들은 멸종한지 오래야."


"윽.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자. 늙었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아."


"네가 먼저 꺼낸 이야기야. 여튼 본론으로 돌아가면, 그래서?"


"그래. 적어도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까진, 이런 책들이 꼬마애들의 관심을 끌었고, 고백하자면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조그만한 판형의 무서운 이야기를 구매하는 꼬맹이였어."


"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있었어?"


"아니. 전혀. 모두... '지루'했지. 말했듯이, 친숙했어. 그때야 감평이고 장르고 모르던 때니까 클리셰가 뭔지 알리는 없지만, 초등학생의 유별난 감성은 지나친 클리셰의 반복에 민감하거든. 그리고 그 이유를 지금에선 알법도 같아. 다 똑같은 이야기였으니까. 무서운 이야기의 유행을 선도한 이른바 '잘나가는' 꼬맹이들은 누구보다 먼저 '무서운 이야기' 책을 손에 넣고, 이른바... 스포일러를 해버린거야."


"그래서 인기를 못끌고 혼자 틀어박혀 소설을 내리 쓴 덕에 대학을 나오고도 지금 이꼬라지라는 불평을 하고 싶은거야? 시간 낭비도 참 창의적으로 한다. 호드가 날 기다리니 이제 그만-"


"여기 닭갈비에 치즈떡 추가해서 하나 갖다 주세요. 맥주 두잔도 부탁드리구요. 내가 계산할게."


"-어짜피 가면 대기열이 있을테니 기다려주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지루한 이야기들을 말하려는게 아니야. 이따금, 손 안에 들어가는 작은 책 안에, 다른 이야기와는 다른 무서운 이야기가 하나 둘씩 섞여 있을 때가 있어. 한 이야기는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해. 화장실에 들어가서 파란 휴지를 선택하면 물에 빠트려 죽였다- 따위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기승전결이 충실한 이야기였지.


친구들과 호기심에 들어간 정신병원이 사실은 이교도의 시설이었고, 하나 둘씩 고대 신을 위해 제물이 되어가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주인공이 자신의 형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리는 편지를 부치는데-"


"푸하하하하! 편지- 편지를! 하하하하하! 목숨을 걸고 편지를! 하하하하하! 받는 순간엔 이미 죽었다고 봐야겠네! 하하하하하!"


"2000년대 책이라고. 좀 봐줘라. 문자라는게 없던 시절이란 말야."


"아핳... 하... 아하하.. 그래... 잠깐... 숨 좀 돌리고... 그래... 그래, 좋아. 그래. 그렇다고 쳐. 근데 그거 러브크래프트 신화 아냐?"


"아니, 오징어같은 이야기는 없었어. 아마 아닐거야. 애초에 기독교 분위기의 이교도 이야기였는걸. 신천지 따위에게서 따왔겠지. 애초에 미치광이 정신병동이나 광기에 빠진 광신도 이야기도 호러 장르에선 그렇게 새롭지 않은 클리셰잖아?"


"그래. 그건 뭐 그렇긴 하지."


"내가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책의 다른 이야기들과 달리 클리셰를 마냥 배끼는게 아니라 나름대로 소화하고 궁리하여 이야기를 쓰고, 챕터까지 나누어서 흐름도 조절하면서, 동시에 타겟인 저학년층을 대상으로 충분히 흥미를 유발하는 뛰어난 문장을 구사했다는 점이야.


다시 말해, 누군가 시간과 열정, 그리고 노력을 쏟아붓지 않고서는 나오지 못하는 이야기였다는 거지. 다른 지루한 괴담을 누가 썼던 그 사람과는 다른, 괴담에 열정을 가진 사람이 쓴 이야기였단 말야."


"그래서? 결국엔 애들이 보는 조그만한 판형의 불쏘시개잖아?"


"봐봐. 무서운 이야기를 읽고 매료된 아이들은 수많은 '무서운 이야기' 포켓판을 구매해 서로서로 공유하기 시작했고, 어른이 되고서는 왠만한 괴담에 반응조차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지. 왠만해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진짜 미친듯이 팔리고 팔려서 우려먹히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리고 그 책은 저자의 이름조차 남지 않은체 팔리면 팔리는 대로 책을 유통한 누군가에게 돈이 넘어가. 인터넷을 가봐도 포켓 판본의 책은 구하는게 불가능하단 말야. 상식적으로, 그런 책들에 노력을 쏟아붓는건 미친 짓이지. 안그래도 팔리면 팔리는대로 이득인데 말야.


하지만 그 따위의 책에 정말로 노력을 쏟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단편을 쓴 사람이 있어. 그 사람에게 '무서운 이야기'의 막대한 판매액이 돌아가긴 했을까? 아니, 그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가 출판되어 아이들에게 읽혔고 읽히고 또 계속 읽힐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라도 할까?


이 의문의 여부를 확인할수 없다는 현실이, 나는 정말로, 너무나도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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