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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의 무개념 분지
팅커벨은 날지 못한다 본문
팅커벨은 날지 못한다.
요정의 이야기가 아니다. 육군 최전방에 간다는 용사 치고 한번쯤 목겨하게 된다는 나방의 별칭이다. 아니, 정확한 이름을 아는 군인은 한명도 없을 것을 모두가 장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디 이름이라 해도 될 것이다. 팅커벨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그 크고 옅은 연두색을 띈 그 날개를 표현할 수 있으니, 정말 적절한 단어이기도 하다.
팅커벨은 무더위가 시작될때쯤 그 비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나타난다. 인류의 문명이 영향력을 뻗치는 지역에서는 그래도 소량이 그 존재를 표현할 뿐이지만, 깊은 산과 숲 속에 배치된 GOP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십마리가 초소 벽면에 달라붙어 그 벽을 연두색으로 색칠하다시피 하는 광경은 자연의 무자비함을 몸소 체험하게 만든다.
하지만 해질녘 어디선가 그 큰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와 원래의 자연이라면 있을리 없는 환한 전깃불을 찾아 벽면에 달라붙게 되면, 팅커벨은 그날 밤에는 마치 잠에 빠져든 것 마냥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자신의 자리를 고수한다. 몇몇 호기심이 충만한 소년들은 그 날개를 집어들어 땅바닥에 내치고는 했는데, 팅커벨의 날개가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뜯겨나가 나머지 날개를 애처롭게 퍼덕이며 비참하게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모습은 트라우를 만들기에 충분하다. 여하튼 그정도로, 팅커벨은 한밤중의 자신에 대한 자극에 무덤덤한 것이다.
때문에 팅커벨은 날지 못한다. 빛나는 태양이 하늘에 걸리기도 전에, 한밤중에 붙어있던 무심한 팅커벨은 전부 사라지고 만다. 만약, 아침이 되었는데도 팅커벨의 거대한 날개가 땅바닥에 가지런이 붙어있다면, 그것은 팅커벨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몸통이 사라진 팅커벨의 유해일 뿐이다.
그 이유를 알고싶다면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광경을 지켜보면 된다. 여름임에도 버티지 못할 강한 추위가 다가오는, 아침이 다가오기 직전의 새벽, 귓가를 시끄럽게 때리는 많은 새들의 지저귐과 야행성인 자신의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허기에 잠이 들지 못한 게으른 고양이가 나타난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차갑게 식은 벽에 몸을 기대고 있는 팅커벨은, 수많은 새와 고양이의 좋은 아침식사인 것이다. 그들은 차갑게, 거침없이 팅커벨을 찢어 뜯어먹고는,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간다.
때문에 팅커벨은 날지 못한다.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떄, 지은이 들어왔다. 아마 사모님이 들려줬을 쟁반을 들고 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얼음이 띄워진 차가운 아이스티가 담긴 컵의 표면엔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아, 음. 고마워."
지은은 14살의 나이에 걸맞는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 보고 이었다. 티없는 보드라운 뺨은 발그레하게 달아올랐고, 작은 입은 자신도 모르게 웃으며 보조개를 띄웠다.
"헤헤헤."
"뭐하고 있어. 자리에 앉아야지. 공부하자."
"치이, 네, 오빠."
발음을 길게 늘여 '오빵'으로도 들리는 지은의 발음에서, 풋풋한 호감이 느껴져왔고, 이는 결코 싫지 않았다. 하지만 가정교사로써 맡은 바는 충실히 이행해야 했고, 때문에 나는 그 호감을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빠가 아니라, 선생님이라고 불러."
"네, 선생님! 하지만 오빠가 더 좋죠?"
당연한 소릴.
"그럴리가, 너같은 꼬맹이가 해봤자 별로야. 그런건 좀 더 큰 여자가 해줘야 좋은거지."
"흥, 그런 여자도 없으면서."
센체하고 고개를 픽 돌리는 지은이었지만, 그런 모습마저 귀여울 뿐이었다.
"없기 왜 없어. 학교에선 나 좋다고 달려드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럴리가요! 만약 선생님에게 달라붙는 여자가 있으면 다 못생기고 바보같은 여자겠죠. 피-"
"으, 그런 값싼 도발에 안넘어갈테니까. 공부 시작하자."
"치, 싫어요! 오빠라고 부르게 해주기 전까진 공부 안할꺼에요."
지은이 거절의 의사를 완고하게 표현하며 고개를 흔들자, 그 긴 머리를 한쪽으로 묶은 사이드테일이 나풀거리며 고개의 괘적을 따라 흔들렸다. 은은한 벚꽃향 샴푸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알았어. 그럼 오빠라고 불러. 이제 제발 공부 시작하자, 응?"
그 한마디에 지은은 양팔을 머리 위로 뻗고는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귀엽다. 정말 예쁘다.
"예이! 오빠! 그럼 부탁 하나만 할게요."
"들어줬잖아!"
"에이, 그건 떼쓴거구요. 부탁은 다른거죠."
"공부한다며…"
"부탁 들어주면 할게요, 오빠. 한번만 들어줘요. 제발요! 한번만! 네? 들어주기만 해줘요! 오빠~"
마지못해, 못이기는척.
"그래, 에휴. 어디, 한번 이야기해봐."
"그… 혹시 이번주 일요일에 시간 있어요?"
시간이야 많지. 언제나.
"일요일? 시간은 왜?"
지은답지 않게 머뭇거린다. 하지만 지은답게, 무슨말을 할지 감은 충분히 왔다.
"그게요… 혹시 이번에 시험도 끝났으니까, 같이 워터파크 가시지 않을래요?"
좋지, 정말 좋지.
"부모님 허락도 받을테니까요!"
"음… 생각해 봐야겠는데."
지은은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양손을 모은체 아직 부풀어오르지 않은 가슴팍에 대고 윗몸을 좌우로 까딱까딱 흔들었다. 그 진자운동에 헐렁한 셔츠의 한쪽 어께가 흘러내렸고, 갸냘픈 목선으로부터 시작된 선명한 쇄골이 어께와, 그 살짝 발그레하게 홍조를 띈 어께와 일체가 되어 드러났다. 아기와도 같은 부드러운 피부는 정말 뽀얗게 달아올랐다.
"그래. 좋아."
마지못해 대답하는 것 처럼, 나는 지은의 제안을 수용했다.
"하지만 공부는 열심히 해야한다."
"꺄! 네! 물론이죠, 오빠! 꺄! 워터파크간다! 예에!"
기쁨에 겨워 방을 방방 뛰어다니는 지은이 공부하리라고는 이젠 더이상 생각하지 않아서,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소녀의 세레모니를 지켜봤다. 그 모습은, 마치 네버랜드를 신나게 날아다니는 요정같았다.
그래, 작은 체구에 맞지않는 커다란, 그 투명한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홀리는 그런 요정. 팅커벨같은 요정.
하지만 팅커벨은 날지 못한다.
마냥 헤맑게 웃고만 있는 그녀를 보고, 나는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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