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의 무개념 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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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래요. 그건 저였습니다."

Nake 2016. 7. 6. 01:09



그리고 그렇게 한달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시간이 화살처럼 지나간다는 말은 이런 시간을 두고 한 말이겠지. 


당연하지만 그동안 나는 내 반신과도 같은 활을 잡을 기회 따위 주어지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숨죽여야 했을 그 한달동안 나는 미첼라의 손에 이끌려 생전 처음 보는 화려한 파티에 참여하는 것 만으로도 지쳐왔기 때문이다. 


"정신 차려."


그렇다. 지금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며 나에게 핀잔을 주고있는 작은 여성이 이 모든 피로의 원인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싫은 표정을 보일수는 없었다. 감정을 드러냈다간, 문자 그대로 죽을 수도 있었다.


"여기 온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들인줄은 알기나 해? 말 그대로 네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정재계의 거물들이라고!"


그래도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건 나만의 문제는 아닌 모양이었다. 미첼라의 목소리는 언제나와 같은 한 템포 가벼운 분위기를 유지하지 못한체 그 이상의 템포로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확실히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 말은 언제나 하던 말이었잖아. 이제 다른 문장으로 바꿔 말해도 될때가 되지 않았나?"


그러니 더더욱 이 기회를 놓치기는 아까웠다.


"아, 닥쳐. 이건 진짜 중요하다고. 내가 아니라 너한테. 알아듣겠어?"


"그렇게 나를 생각한답시고 말은 하지만 결국 넌 너밖에 신경 쓰지 않는걸 누가 모른다고."


"그거야 부차적인 일이지. 네가 잘되야 내 입지도 커지는거니까."


퉁명스럽게 받아치는 문장에서 아주 잠시나마 그녀 특유의 유쾌하지만 능글맞은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기분이 나아졌다. 이렇게 답답한 곳에서 느낄수 있는 일상의 향수라는 점에서, 그 문장은 가치가 있었다. 상당히 아이러니한 일이긴 했지만.


"자. 똑바로 서고. 인상쓰지 말고. 웃음을 멈추면 안되지만 너무 실없거나 멍청하게 웃지도 마.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잘- 해온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사고를 치진 않겠지? 그렇지?"


"안 쳐."


이미 쳤는걸.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서 파티장 안으로 들어섰다. 


우아한 노래, 향기로운 다과, 사람들의 우아한 세 치 혀가 이끌어낸 가슴설레는 웅성거림. 한달 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파티장에 펼쳐져 있던건 허영 그 자체였다.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야 있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한달 전에 내가 살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고, 그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건 허영을 현실에 현현한것과 다른것 하나 없었다.


이쯤 되면 익숙해질만도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 있어서 이런 화려한 삶에 적응하는건 살생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훨신 어렵게 느껴졌다. 이 파티장에 가만히 서서 다른 이들의 맞장구를 어색하게 쳐주느니 차라리 도망친 범죄자의 목에 꽃힌 칼 끝으로 심장의 고동소리가 멈추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 그건 보람차기라도 하니 말이다. 갖가지 공감되지 않는 가십거리나, 독특하고 불편한 그들만의 패션. 그 지루한 음악들은 또 어떤가.


"세상에, 제가 똑바로 보고 있는게 맞는거겠죠? 제가 지금 바라보는 사람이 구국의 영웅, 오르페오가 맞는거겠죠?"


뭣보다 이렇게 맨 처음 보는 사람을 십년지기 친구먀냥 들러붙는게 가장 불편했다.


"어머, 윈스턴 산업의 재커리 윈스턴 회장님 아니신가요? 이렇게 찾아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 그쪽이 오르페오의 소문의 파트너, 미첼라 에겔리움 되시겠군요."


"정답이랍니다."


미첼라가 환하게 웃었다. 음. 이렇게 가만히 웃고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매력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롯된다는걸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수는 없었다. 조용한건 나 하나로 충분했다.


"정말 훌륭한 파티에요, 회장님."


"아, 재커리라고 불러주세요. 옛 왕가의 최측근 보좌관께서 그리 만족하셨다니 정말 황송할 따름이네요. 오르페오씨는 어떻게 느끼십니까?"


"좋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말했듯, 말이 없는건 내 역할이니까. 대신 나는 내가 지을수 있는 최상의 미소를, 하지만 너무 실없거나 멍청해 보이지 않도록 지어보였다. 


"좋아요, 좋아. 그럼 조금 뒤의 환영연설도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모쪼록 파티를 즐겨주도록 하세요. 당신이 없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테니까요!"


재커리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아, 마치 몸 전체를 흔드는 것 처럼 크게 흔들고는 미소짓고 파티장 안으로 다시 사라졌다.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미첼라가 내 팔을 끌어당겼다. 말없이 그녀의 고집에 몸을 맡기자 도달한 곳은, 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펼쳐진 작은 테라스였다.


"뭔데."


나는 말했다. 바로 말한 것도 아니었다. 창가에서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별의별 생각을 하다 겨우 꺼낸 말이었다.


"뭐긴. 뭔 사고를 칠지 몰라서 데리고 나온거야. 주최자 얼굴도 봤으니, 연설할때까진 여기서 좀 쉬다 가자구."


미첼라가 말했다.


"그럴 필요는 없어. 내가 애도 아니고. 이젠 좀 익숙해졌다고."


"저 사람들 눈에 당신은 진짜배기 애나 다름없어. 말도 생각도 똑바로 못하는 어리숙한 꼬맹이. 게다가 오늘 여기 온 사람은 평소 수준과는 전혀 다르단말야. 이를테면 진짜배기란 말이지. 그 사람들에게 네가 말실수를 하게 된다면... 그때 벌어질 일은 상상도 하기 싫네."


"..."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결국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나를 배려해줬다는 이야기였다. 


"젠장."


그래서, 나는 작게 후회의 말을 내뱉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연건 아까와 비슷한 시간이 지나고였다.


"뭐긴. 네가 날 못죽여서 그런거잖아."


반박하지 않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말해도 괜찮은거야?"


"그래보여. 따라오는 사람도 안보였고, 지금도 주위에 누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


"아니, 그것도 궁금하긴 했는데. 그런 말을 해도 네가 괜찮냐고."


"훗. 네가 날 걱정하는거야?"


작게 웃었다. 곁눈질로 살펴본 미첼라는 야경을 등지고 파티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파티장의 화려한 주황색 조명을 받고 빛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피부와 짙은 밤색 머리칼이, 향기로운 향수 냄새가 벤 그녀의 파티 드레스가, 정말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엔 어딘가 쓸쓸함이 베어있었다.


"오래된 왕가에 정면으로 반기를 내건 반군에 이중 첩자로 잠입해서는 온갖 공작을 도맡으며 왕가 측근에 잠입한 첩자를 찾아내던건 내가 아니라 너야. 나는 그저 썩어빠진 왕가를 멸망시키려 밑바닥에서 기어올라온 반군의 끄나풀에 불과하고."


"그래. 하지만 내가 이중첩자라는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 세상에 살아남은건 끄나풀 한명뿐이잖아."


"그렇긴 하지. 첩보국은 정말 화려하게 불탔었어."


"말 돌리지 마라고."


"어쭈, 컸다는게 농담은 아니었나보네? 네가 말대꾸도 다 하고."


미첼라는 작게 웃었다. 


"왜 날 고발하지 않았던거야? 네가 첩자라는 사실을 내가 알기 한참 전부터, 너는 내가 반군의 이중 첩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


"글쎄에. 왤까. 이유야 여러개 있겠지. 지루한 왕과 반군의 싸움이 지긋지긋 해졌다던가. 오랜 복수의 연쇄가 지루해졌다던가. 내가 부와 명예에 관심이 없어서였을수도 있고."


"농담하지마. 왕에게나 반군에게나, 너만큼 유능했던 사람도 없었고 열심히 일했던 사람도 없었어. 그런 내가 지루해졌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무시할 이유는 없었단말야."


"날카롭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건데?"


"..."


말하지 못했다. 말할수가 없었다. 한달이 지나서야 말을 꺼낸 이유를, 사실 나도 잘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감이 말하고 있었다. 사냥꾼의 감이, 오늘을 지나면 커다란 뭔가가 변해버리리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내 감을 믿고 있었다.


"뭐, 좋아. 그럼 하나 물어볼게. 왜 날 쏘지 않은거야? 아니, 왜 왕을 쏜거야, 왕의 사냥꾼씨?"


"말했잖아. 그건-"


"사고였다고?"


그녀는 또다시 키득이며 웃었다. 속삭이는 것처럼, 정말 작으면서 위험한 웃음이었다.


"왕의 사냥꾼이라 왕을 사냥한건 아니고?"


"웃기지마. 나는 분명히 네가 단도를 꺼내는걸 봤어. 그 사냥터에서, 네가 왕을 죽이려는걸 봤다고."


"그래서 그걸 알아채고는 나를 향해 활을 쐈는데, 일평생 빗나간적 없던 화살이 왕에게 꽂혔을 뿐이다?"


"맞아."


"그렇다고 해둘게."


그리고는 그녀는 몸을 돌려 야경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녀의 파인 등의 실루엣을 주황색 조명이 은은히 그려내었다.


"하지만 사실 네가 날 좋아하는건 변하지 않지만."


"무슨..."


"알았어. 네가 날 좋아하는건 모르겠지만, 나는 확실히 널 좋아해. 됬어?"


숨이 멎어왔다. 입 밖으로 아무말도 내뱉을수가 없었다.


"네가 너무 좋아서, 널 고발할수도 없었고, 잊을수도 없었어. 그런 미묘한 관계를 이어갈 바엔 차라리 빨리 일을 끝내자고 왕을 죽이려 한거였고. 하지만 그걸 막으려던 네가 왕을 죽일줄은 몰랐지. 


그러자 뭐라고 해야될까. 네가 그러니까 뭔가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고. 네가 사고라고 부르는 선택을 한 이상, 나도 최소한 거기에 맞장구는 쳐줘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적어도 네가 죽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어.


왜 그래, 폭군을 죽인 오르페오씨? 왜 갑자기 말이 없어지셨을까."


음. 음.


음.


고개를 돌릴수가 없었다. 내 얼굴이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나조차도 모르고 있는데, 얼굴을 돌렸다 그 표정을 미첼라에게 보여선 몇년이고 우려먹힐지 몰랐다.


그래. 그래서였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돌리지도, 입을 열지도 않았다.


그래. 게다가 입을 다물고 있는건 내 역할이지 않았는가.


"웃긴 얼굴을 하고 있네."


젠장, 밤눈이 좋기도 하지.


"좋아. 네가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건 처음보는 것 같아. 하지만 그걸 저 파티장의 야수들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그 답답한 왕의 통치 아래서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사람들인데, 구국의 영웅이 어리숙하다는걸 알면 무슨짓을 할지 나도 모른다고. 자신감을 가지고 저자들이 듣고싶은 말을 하도록 해. 윈스턴과 친해지면 앞으로의 일도 편해지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팔짱을 끼었다.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아니, 가슴은 한참전부터 뛰었던것 같았다. 그걸, 그녀의 갸녀리지만 힘이 들어간 뜨거운 팔이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한배를 탔어, 오르페오. 날 기쁘게 해줘."


"...능글맞군."


겨우, 온 힘을 짜내어 겨우 말했다.


"칭찬 고마워."


제기랄.


그리고 그녀는 나를 파티장 정 중앙으로 데려갔다. 어떻게 걸어갔는지, 무엇을 내게 말하는지 기억할수가 없었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고, 나 홀로 사람들의 시선 정 중앙에 서자 정신은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폭군의 폭정을 끝낸 위대한 사냥꾼, 오르페오씨를 모셨습니다! 이 파티에 계신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십니다. 왕을 활로 쏘아냈다는게 정말이십니까? 이전부터 지속된 왕의 폭정에 신물이 나셔서였다면서요? 하지만 많은 사람은 또 그게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파티에 참여하신 분들중 몇분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계세요. 그러니 솔직히 말해주세요. 화살을 쏘신게 당신입니까?"


수많은 사람들. 알지도 못하고 공감하지도 못할 수많은 사람들. 그 속에서 나는 홀로 서있었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이렇게 되버린걸까. 여러번 되생각해봐도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 그건 사고였다. 실수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자연스래 미첼라를 향한 눈길을 치울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별로 나쁜 사고는 아니었다고.


그리고 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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