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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Analogue A Hate Story,2012)

Nake 2012. 10. 8. 03:53


개발 : 크리스틴 러브
가격 : 9.99$ (스팀)

스포일러 약간 있습니다


<Korea, but not Korean>

이 게임은 출시 직후에 많은 관심을 끌었던 게임이었습니다. 조선시대, 그것도 조선 후기의 '남존여비'라는 사상을 모티브로 풀어나간 방대한 분량의 텍스트를 담은 게임을 한국인이 아닌, 한국과는 전혀 상관없는 캐나다인이 제작했기 때문이죠. 한국의 필수 교육 과정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고(지금은 모르겠습니다만) 자세히 다뤄지지도 않는 그런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펼쳐나가기란 쉽지 않았을텐데, 제작자, 크리스틴 러브는 개의치않고 제작, 발매하고 스팀에 출시하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스팀의 대다수 게임과 비교하면 매우 튀어보이는 모에 스타일의 타이틀 화면과 거기에 박혀있는 한글 로고는 충분히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죠.

하지만 정작 이 게임이 배경으로 하고있는 한국의 게이머들에게 아날로그는 아무런 어필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이 게임이 영어로만 이루어진 막대한 텍스트를 자랑하는 비주얼 노벨이었기 때문이죠. 제가 아무리 귀로 듣고 영문 게임을 문제없이 플레이 한다지만, 아날로그 정도의 택스트량은 사실 크게 부담스러웠던게 사실이고, 30분쯤 읽다가 뇌의 과부화로 결국 손을 놓고 말았습니다. 다른 많은 한국 플레이어들도 그랬구요. 그리고, 같은 이유로 많은 플레이어들이 구매를 포기하고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한국 게이머들이 손을 놓고있던건 아니었습니다. 제작자 크리스틴 러브와의 지속적인 접촉끝에, 전문 번역가 '김지원'씨가 공식으로 의뢰를 받아 한글화를 개시, 한글 버젼이 완성된 것이죠.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한국 게이머 팬덤을 중심으로 아날로그는 제 2의 출시를 맞게 됩니다. 한글화 퀄리티는 정말 대단해요. 상황에 맞는 어투가 정말 생생하게 다가오고, 그 상황의 갈등을 잘 풀어내고 있거든요. 한국인이 쓴 소설이라고 해도 믿어버릴 정도로요. 


<같은 이야기지만, 다른 이야기> 

게임의 배경 자체는 약간 진부한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넓고 넓은 우주를 항해해 인간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세대 우주선, 무궁화호가 지구에서 출항합니다. 새대 우주선이란, 이른바 거대한 우주선 안에 모의 생존 환경을 만들어놓고, 수많은 인간을 태우고 항해하는 우주선. 장거리 항행동안 새로운 세대가 반복해서 태어나며 동면장치같은 특별한 장치 없이 목적지까지 향하는 우주선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같은 수많은 SF소설에서 초광속 장치나 동면 장치의 좀 더 현실적인 대안으로써 많이 차용되는 설정이죠. 컨데, 이 무궁화호는 어느 순간 교신이 두절되고, 거대한 우주를 홀로 떠도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수천년이 지난 시점에서 무궁화호에 다가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진상을 파악하는 임무를 맡게 되고, 거기서 AI, *현애와 *뮤트를 만납니다.

아날로그는, 바로 이 진상을 파악해 나가는 전개 방식이 무척 특이합니다. 다른 비주얼 노벨은 물론, 그냥 소설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시간 순서의 서술방식이 아니에요. 연관성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짧디 짧은 텍스트들이 나뉘어져있고, 플레이어는 이를 통해 무엇이 일어났는지 AI들과 상호작용하며 유추해 나가야 합니다. 모든 로그는 1인칭으로 나뉘어져 있기에, 같은 사실에 대해 다르게 표현되기도 하고, 작성자의 편견이 가득찬 로그가 있기도 하며, 원인 이전에 결과가 나오기도 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전말을 한번에 알아 맞출수는 없죠. 그리고, 여기서 상호 작용의 대상인 AI를 통해 아날로그만의 매력적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게이머는 무궁화호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있어서는 완벽하게 분리되어있는 3인칭 서술자입니다. 이는 무궁화호의 사건에 있어서 게이머를 아무런 역할도 하지못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도록 하죠. 하지만, AI는 다릅니다. 이들은 당시 상황을 지켜보고, 느꼈으며,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이 사건들을 판단합니다. 바로 이 차이가, A라는 로그를 a와 α라는 두 가지 다른 방향의 해석을 하도록 만들죠.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자신이 읽는 로그에 대해, AI의 해설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유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흔히들 사실을 평가할떄 사용되는 선과 악의 개념이 사라지고, 개개인간의 '혐오'만이 남아있는 모습을 만듭니다. 바로 이, 한가지 사실을 다른 측면으로 바라보는 바로 이 서술과정이야 말로 아날로그를 독특하고 인상깊은 경험을 제공하는 비주얼 노벨로 만들어 나갈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애 탐정은 제껍니다 상위입찰 ㄴㄴ해>  

이런 아날로그만의 서술 방식은 위에서 말했다시피 일반적인 소설과 다른, PC게임이라는,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에 가질수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덕분에 아날로그를 플레이하면 같은 내용을 두세번씩 곱씹어나가고, 같은 로그의 의미를 바꾸어 버리는 상호작용을 통해서 절대적인 텍스트의 분량에 비해 이 게임을 더 오랜시간 동안 즐기고 긴시간 여운을 남겨주게 됩니다. 그리고 텍스트 외적으로, AI인 두사람, *현애와 *뮤트는 무척 개성있고 매력적인 인물들로 그려집니다. 이른바 모에 포인트라고 할까요, 상호작용을 통해 연애로 승화시키는 크리스틴 러브의 집념은 이 게임을 반쯤 미소녀 연예 시뮬레이션 수준으로 이끌어올리기까지 합니다. 이외에도 중간에 벌어지는 이벤트를 오버라이드 터미널로 해결하는 건 별 액션이 없는 텍스트 퍼즐만으로도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파트였구요.

그리고 이 모든걸 포장하는데 쓰인 AI의 스탠딩 CG와 사운드트랙은 정말 수준이 높습니다. *현애와 *뮤트의 가시각색 변하는 표정이나 Change_Outfit 명령어를 통해 바꿀수 있는 의상등 깨알같은 부분도 좋지만, 무엇보다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배치되는 높은 퀄리티의 사운드트랙은 음산한 붑분은 더욱 더 음산하게, 반대로 가벼운 느낌의 부분은 가볍게, 분위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재생됩니다. 

일본식의 비주얼 노벨과는 다른 방식의, 색다르고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이야기를 그 나름의 매력적인 서술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는, 기존의 비주얼 노벨에 친숙해 있지 않은 일반인이라도 부담없이 다가갈수 있는 소설입니다. 그럼에도, 그 내용은 충분히 알차기 때문에, 텍스트 그 자체에 알러지가 있지 않는 한 충분히 몰입해가며 읽을수 있는 이야기죠. 이런 여러 개성넘치는 방식을 생각해 보았을떄, 제작자 크리스틴 러브의 후속작을 기대하게 되는건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다같이, 헤이트~!


가격 : 9.99달러

한줄평 :  10달러, 약 만삼천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한다면, 이 경험은 귀중하고 독특하며, 동 가격의 비슷한 소설에선 찾기 힘든 좋은 것이라고 자부함.

평가 : 20000원


호불호요소

 - 조선사나 인권, 혹은 SF에 관심이 있다면... + 2000원
 - 짧은 시간동안 좋은 경험을 겪고싶다면... + 2000원
 - 책을 좋아한다면.., + 4000원
 
 - 책을 싫어한다면,.. -3000원 
 - 일본식 달달한 비주얼 노벨을 기대했다면.. -3000원

P.S 사운드트랙은 따로 판매합니다.
P.S2 팬아트 모집을 여기서 한다고 하네요.
P.S3 아날로그의 연장선상에 있는 DLC가 발매 예정이라는듯. DLC의 한글화는 예정되있지 않고 판매량을 보고 결정한다고 합니다.

Reviewed by 네크
한글화 관련 정보 출처 : Pi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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