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의 무개념 분지

대장장이 이야기 본문

소설

대장장이 이야기

Nake 2017. 12. 15. 19:11



최초엔 뜨거운 용암만이 한가득이었다.


붉게 타오르는 용암이 뒤덮인 대지는 자연스래 땅과 하늘을 나누어 놓았는데, 지금의 대지마냥 산과 협곡이 어우러지기는 커녕 용암의 바다가 땅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용암의 열기는 식을 일이 없었고 그 위에 물을 부을 자도 하나 없었건만, 그 열기로 끓어오른 용암은 스스로 끓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이내 커다란 용암방울을 만들어냈다.


터지지도 않고 부풀기만하던 용암방울은 커지고 또 커다래져만 가다, 이내 용암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져 식어 굳어 최초의 산인 야르타가 되어버렸다.


식어버린 용암 뚜껑 위에 용암은 서서히 차오르다, 그 안을 모두 매우기 시작했고, 이내 열기가 가득 찬 야르타 산은 그 더위에 참지못하고 스스로 부들거리다 폭발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없던 공허한 어둠을 붉게 타오르는 용암재가 뒤덮어 붉게 타올리니, 이것이 최초의 아름다움이자 경이였다. 그리고 이 경이를 목격하고 나서야, 최초의 신이 자신의 존재를 자각했다. 


야르타 산의 첫 폭발에서 태어난 그는 이름이 없었으나 자신을 곧 바룬다데라고 명하였고 이는 곧 감탄하는 자가 되었다. 바룬다데는 자신이 보고있던 그 경이를 다시금 보고자 이를 재현하려 했지만, 한번 폭발한 산이 바로 다시 폭발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바룬다데는 왼손을 용암에 집어넣어 굳게 쥐어 들어올리었고, 자신이 집어올린 왼손을 오른손으로 내리쳐 두들겼다. 이는 곧 최초의 불똥을 피워올렸으며 그 불똥은 튀어올라 하늘에 그을린 구멍을 내었고 이것은 곧 별이 되었다. 


 하지만 바룬다데는 그 불꽃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것은 결코 자신이 처음에 본 장관과 비견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때문에, 그는 다시금 자신의 주먹을 내리쳤다. 이내 그의 왼손은 최초의 모루가 되고 그의 오른손은 최초의 망치가 되어있었다.


마침내 쇠가 굳어 단단한 금속이 되었을때, 바룬다데는 이를 데르닐이라 부르고 어떻게 이를 사용해야할지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용암에 데르닐을 담구자 용암은 이를 다시 뱉어내었고, 바위에 세차게 내리치자 땅과 대지가 갈라졌다. 바룬다데는 곧 데르닐을 구부려 자신의 몸에 걸치었고, 그제서야 그는 옷가지의 따뜻함을 깨달았다.


따뜻함을 깨달았다는 것은 곧 추위가 있음을 알았다는 뜻이니, 바룬다데는 이내 슬픔에 빠졌다. 이 넓디 넓은 대지 위에 자신 혼자만이 있음을 깨달았기에 이 슬픔은 날이 가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의 눈물은 야르타산의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리다 용암에 맞닿았고 이내 용암을 딱딱하게 굳히었는데, 이것이 곧 산이되고 땅이 되어 지금 우리가 아는 세상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딱딱한 대지가 넓어져 갈수록, 용암의 열기는 모여만 갔다. 이를 알리 없는 바룬다데는 계속 눈물을 흘렸고, 얼마 지나지않아 그 열기는 다시한번 야르타산의 골짜기에서 폭발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두번째 폭발은 바룬다데를 일으킨 폭발보다 더욱더 크고 더욱더 위험했기에 더 많은 것이 폭발을 따라 허공에서 굳어 땅에 떨어졌다. 


가장 먼저 떨어진 베스키덴은 눈물을 흘리는 바룬다데를 보고 환멸했으며, 곧 베스키덴은 실망하는 자가 되었다.


두번째로 떨어진 스미옛은 바룬다데가 걸친 데르닐을 보고 탐욕했으며, 곧 스미옛는 모으는 자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떨어진 우포스카는 저 멀리 날아가 바룬다데가 빚어낸 대지를 보고 흥미로워했으며, 곧 우포스카는 탐험하는 자가 되었다.


마침내 혼자가 아니게 된 바룬다데는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바룬다데의 환호에 기뻐하는 자가 없었다. 


"당신의 모습은 너무 처절합니다. 여기 있고 싶진 않군요." 


베스키덴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몸을 털었다. 그 먼지는 식은 땅 위에 떨어져 싹을 틔워 숲이 되었다.


"당신이 입은 옷가지는 어디에서 났소? 난 그것이나 더 만들러 가야겠소."


스미옛은 그렇게 묻고는 용암을 벼리기 시작했다. 그 찌꺼기는 주위에 흩어져 구름이 되었다.


"당신이 만든 땅은 어디까지 뻗었을까요! 미지를 여행하러 가겠어요!"


우포스카는 그렇게 감탄하고는 길을 떠났다. 그 움직임은 바람이 되어 세상을 휩쓸기 시작했다.


이내, 바룬다데는 다시금 혼자가 되었다.


바룬다데는 이내 땅에 꿇어앉아 생각을 하기 시작하다, 다시금 용암에 손을 집어넣고 오른손으로 두들기기 시작헀다. 자신의 외로움을 채울 수 있는 존재를 만들려 노력했다.


처음으로 벼려낸 것은 늑대와 산양과 다른 수많은 동물들이었다. 그들은 용감하고 지혜로웠지만 말을 하지 못했고, 그의 외로움을 달랠 수 없었다.


바룬다데는 용암물을 다시 퍼와 다시 벼려내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벼려낸 것은 길쭉한 팔다리를 가진 요정 무리였다. 그들은 슬기롭고 조화로웠지만 서로를 믿지 못한채 적대했고, 그의 외로움을 달랠 수 없었다.


바룬다데는 용암물을 다시 퍼와 다시 벼려내기 시작했다.


세번째로 벼려낸 것은 땅위에서 모여사는 반푼이 무리였다. 그들은 강인하고 서로를 신뢰했지만 멍청하고 현재에 안주했기에, 그의 외로움을 달랠 수 없었다.


바룬다데는 용암물을 다시 퍼오려 했지만, 곧 용암이 거의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 수많은 용암의 바다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어느새 그가 흘린 눈물이 고여 바다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바룬다데는 주위를 둘러보다, 높은 야르타산을 다시금 응시하고는 생각했다. 자신이 태어난 저 산봉우리 안에는 아직 용암덩이가 더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태어난 산의 심장으로 다시금 발을 옮겼다.


그의 생각대로 용암은 조금이지만 산의 깊숙한 곳에 고여있었다. 바룬다데는 조심스럽게 들어 그 용암을 벼려냈다. 


깡. 깡. 깡. 그의 주먹이 주먹을 내리칠때마다 아름다운 빛이 야르타산의 산봉우리에서 퍼져나왔고, 세상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깡. 깡. 깡. 그의 주먹이 주먹을 내리칠때마다 경쾌한 울림이 산등성이를 타고 세상에 울려퍼졌고, 세상은 조금씩 희망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깡. 깡. 깡. 마침내 그의 왼손이 모두 닳고 그의 오른손이 모두 바스러졌을때, 그곳에 그가 만든 자손이 있었다. 얼마 되지 않은 용암으로 만들었기에 그들은 다른 이들보다 작았지만, 오랜시간 벼렸기에 단단하고 총명했다.


바룬다데는 그들을 드워프라 부르고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바룬다데는 자신이 더이상 세상에 나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쇠약한 자신의 죽음이 코 앞에 다가왔음을 알게된 그는, 자신의 자손을 향해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가장 처음 꺼낸 말은 이것이다.


"아들딸들아, 내가 벼린 자손들아, 내 말을 새겨듣거라.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불완전하다. 모든 것은 찰나에 빛났다 순식간에 사라지니, 결코 영원을 바라지 말고 순간에 경외하라."


그렇게 그는 그의 자손들에게 자신이 겪었고 깨달은 사실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바룬다데가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끝내었을때, 그는 그의 죽음을 직시했다. 그리고는 죽음을 받아들였다. 죽음과 도망치지도, 싸우지도 않고, 두 눈을 크게 뜨고는 죽음이 자신을 데려가게 놔두었다. 


세상에 처음으로 난 바룬다데는, 곧 세상에 처음으로 간 자가 되었다. 죽음은 자신을 응시한 그의 용기에 감탄한 나머지, 모두가 그를 기억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죽음은 바룬다데의 눈동자를 하늘에 박아 그가 빚어낸 빛을 발하게 만들었으며, 그의 심장을 눈동자에 엮어 따뜻한 온기를 세상에 뿌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바룬다데가 땅을 밝히는 경이로부터 자기 자신을 깨달았음을 떠올리며, 땅위의 모두가 이를 알도록 눈동자를 멀리 던져 어두운 밤 속에서 찬란한 여명이 밝게 타오르도록 만들었다.


그때부터 바룬다데의 눈동자는 세상 주위를 돌기 시작했으며, 바룬다데의 가르침을 받지 않은 이들에게마저 자신의 따뜻함을 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것을 태양과 밤과 낮이라 부르고는 한다.




[끝]




-------------------------------------




"'모든 것은 불완전하다.'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지."


하얀 마녀는 조용히 읊조렸다.


"그 한마디에, 이렇게 많은 이가 죽임당할줄, 바룬다데는 알고 있었을까?"


하얀마녀는 조용히 읊조렸다. 셀수없는 이종족의 시체 위에서. 말라빠진, 앙상한 시체 위에서.


드워프의 손 끝에서 죽은 시체 위에서.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양  (0) 2018.08.04
경멸하는 이야기  (0) 2018.01.17
선택받은 『ChoseN』  (0) 2017.09.17
세상의 끝  (0) 2017.08.05
Re; Re; Re; Re; Re; 사유서  (0) 2017.07.3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