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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석양

Nake 2018. 8. 4. 22:00


그러니까, 이건 농땡이 피우는 게 아니다.

애초에 사람 한명 오지 않는 외딴 도로변의 편의점이고 말이지.

상가(라고 할 것도 별로없는)의 다른 건물들은 다들 휴업을 했을 정도인데, 평범한 일상과 다름없이 영업을 하는 내가 농땡이를 피우고 있다는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숨이 턱턱 차오르는 집에서 도망쳐 값싼 산업용 전기로 에어컨을 돌리는 편의점의 카운터 뒤에 앉아있는건, 하나도 농땡이를 피우는게 아니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게다가,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1주일째 발령중인 폭염경보를 뚫고 이 도로변을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겠어. 마을사람도 해가 중천을 지나고 나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걸.

나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를 흥얼거리며, 카운터에 다리를 올리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 아니 편의점을 돌보고 있었다.

곧 해가 지면, 문을 닫고 철수하면 끝!

잘했어, 나. 정말 대단해!

그런 나에게 상으로 아이스크림-

탁.

다리 옆으로, 익숙한 아이스크림이 놓여졌다. 동생인가? 눈치가 빠르군. 나는 자연스럽게 아이스크림을 집어들고 한입 베어물었다. 그리고 잘했다는 칭찬을 하려 고개를 들었을떄 눈 앞에 보인건,

처음 보는 낯선 여성이었다.


---


"정말 죄송합니다!"


고개를 깊게 숙여 사과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 그리고 이 광경을 보고 대노할 부모님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등골을 스치고 느끼는 이 서늘함이 비단 에어컨 때문은 아니리라.


"아니, 괜찮아요. 고개를 들어주세요."


그런 나의 행동에 당황스러웠는지, 손님은 작은 목소리로 내게 계속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져서는 안된다. 부모님의 대타를 맡아 이 작은 구멍가게를 맡은 나로써는 알 수 있다. 나는 끊임없이 작아져야한다. 나중에 뭐라고 변명이라도 하려면 그래야만 한다.


"아뇨, 정말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부끄러운 꼴을 보여서 죄송해요!"

"그, 정말루 괜찮다니까요. 정말로..."

"하지만-"


그리고 발소리가 들렸다. 내 사과를 받아들이는건가? 좋았어! 훌륭해, 나! 이렇게 무사히 하나 또 넘기는구나!

고개를 조심스럽게 들자, 여성은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집어들어 방금처럼 카운터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이번에는, 약간 세게 내리치는 느낌도 들었지만, 내 착각이겠지.


"앗, 괜찮아요! 저희 가게의 서비스인걸로 해둘테니 그냥 가져가세요!"


정확하게는 내 용돈에서 그만큼 깎이는거지만.


"아녜요, 애초에 사려고 했었던거니까 상관 없는걸요."

"괜찮아요! 그냥 가져가세요!"


깊은 한숨소리가 카운터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리고는 머뭇거렸다. 이 어색한 상황을 타개할 궁리를 하는거겠지. 미안하지만, 화를 낼게 아니라면 그냥 아이스크림을 가져가시는게 좋을꺼에요, 아가씨. 제가 이겼답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이건 제가 아가씨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드린걸로 해주세요."

"네?"


갑작스러운 제안에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그런 수가 있었다고? 이 사회적으로 난처한 상황을 자신을 낮추지 않고서 타개할수 있는 해답이 있었던거라구?

대단하다. 이 낯선 아가씨를 얕봐서는 안되는 거였을지도.


"이렇게 더운날 혼자 일하시는것도 힘들테니 제가 하나 사드린걸로 해주세요. 그럼 되나요?"

"어, 엄밀하게 따지자면 그래서는-"

"엄밀하게 따지는건 아가씨도 원하지 않는거, 아니었나요?"


윽, 속내를 훤히 들켰잖아.


"그럼, 이만 가볼게요."


그렇게 내게 완벽하게 승리를 거둔 여인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무더운 바깥으로 나섰-

아니. 그녀는 문고리를 잡은 상태에서 발을 멈췄다. 그럴만도 할테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다 유리문 밖에 쏟아지는 눈부신 햇빛을 마주하고서 밖으로 바로 나설 용기는 범인의 것이 아닐테니 말이다.

아니, 그래도 혹시 저 소녀라면 모른다. 넓은 챙의 밀짚모자를 쓴 하얀 원피스의 저 여인이라면, 그래, 인싸로써의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그녀라면 혹시-


----


밖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무더웠다. 지구가 한번 대청소를 해야겠다 마음먹고 멸종각을 잡은 것만 같았다. 차갑게 식어내렸던 피부가, 어느새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치 용광로에서 갓 꺼낸 강철같았다.

하지만 발걸음을 멈출수는 없었다. 길을 묻는다는 그녀의 말에 긍정을 한건 나 아니었나. 후회가 뇌리를 스쳤지만 이미 아니오라는 선택지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더욱이, 이런 깡촌에 자고 나란 사람으로써 외지인의 질문은 암묵적인 명령과도 같은 것이 있었다. 외부인이 잘못한건 아니고, 마을사람으로써 길을 잃은 사람을 보면 답답해서 몸서리치는 그런 본능이 자리잡힌 것이다. 그, 온라인 게임에서 길을 잃은 뉴비를 보면 눈감고 지나칠수 없는 올드비로써의 습성과도 같은게다.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된다구요?"


내가 물었다. 방금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우물쭈물하던 그녀였다.


"그, 어딘지는 가보면 알 것 같아요. 한번 가 본적이 있거든요."

"그래도 말이죠..."

"해변가였구요."

"...이 도로 50km이 쭈욱 해변가에요."

"석주가 해안선에 보이는..."


아, 그럼 알 것 같았다.


"아, 석주는 몇개 없으니까 금방 가겠네요."

"그런가요?"

"네. 여기서 10분내의 거리에 두어개 있는게 다니까요."

"그럼 한 15분 정도 걸리겠네요."


왜지? 의아한 눈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아, 제 키가 작은 편이라 보폭도 작아서요."

"아하, 그렇겠네요. 뭐 천천히 가죠. 가게 문도 닫아 놓았고 누가 오지도 않을테니까요."


그, 그 말도 있지 않은가. 벼락은 같은 곳에 두번 치지 않는다, 뭐 그런.


"그런데 여기는 딱히 피서지도 아닌데, 어떻게 오신건가요?"

"옛날에 한번 와본적이 있어서요. 한, 5년쯤 전에요."


아. 그때라면 지금 편의점이 있는 상가가 만들어지기 전이다. 그럼 이런 일직선 도로에서 길을 잃을만도 했다. 버스정류장에서부터의 거리감각이 애매해지기 마련이니.


"그때도 민호랑 같이 걸었는데 말이죠."

"네?"

"앗, 그냥 혼잣말이에요."


여인은 말했다. 그냥 혼잣말이라기엔, 마치 들어주길 바라는 듯한 안쓰러운 어투였는데.

에잇. 어쩔수 없지. 나같은 아싸는 들어주는 일밖에 못하는 거야!


"뭔가 이야기하고 싶으시면 이야기해주세요."

"아하하."


그녀는 웃고, 침묵했다.

옆을 보자 그녀는 그저 옆을 내려다보며 도로를 따라가기만 했다. 가드레일을 따라, 마치 기차처럼. 그런 그녀의 시선이 바다를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땅 위에 그려진 흰색 페인트를 좇는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내가 볼 수 있는건, 파란 끈의 리본으로 치장된 그녀의 밀짚모자 뿐이었으니까.

1분 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참 실없는 친구였어요.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사귄 남자 친구였는데, 천문학자가 된다더니 하던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집에 가면 천체 망원경이 놓여있고, 벽에는 각종 항성과 행성의 사진이 걸려있고... 사람하고 친한 저하고는 다르게 스케일이 큰 물건들과 친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다, 다시 말을 이었다.


"저보다 하늘에 가까워서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민호도 아가씨처럼 키가 엄청 컸답니다."

"저는 별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지만요."


그녀는 작게 웃었다.


"5년 전쯤에, 딱 이날. 민호가 저를 데리고 이 도로변을 달리기 시작했어요. 무언가 보여주겠다면서 자신있게 절 데려가더라구요. 그래요. 기억나요. 그때도, 지금처럼 정말 무더웠어요. 하늘에 구름 하나 없어는 푸른 창공이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땀에 흠뻑 젖은체로 걸어서 도착한 그 자리에서 민호가 제게 뭘 보여줬는지 아시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석양이에요."


여인은 고개를 돌려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붉게 피어오른 태양이 마침, 꺼지려 하고 있었다.


"근데 5년 전에는, 그 석양이 다른 석양과 뭐가 다른건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구요. 그땐 실망을 정말 크게 했어요. 이렇게 푹푹 찌는 여름날에 여기까지 걸어와서 평범한 석양이나 보려고 한거냐고 화가 치밀어올랐죠. 그래서 소리를 질러 화를 내려고 민호를 봤는데..."


말이 끊어졌다. 그녀로써는 아무것도 끊어지지 않았을지 몰랐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민호라는 남성이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걸지도 몰랐다.


"너무, 너무 아름답더라구요. 석양을 넋놓고 바라보는 민호의 옆얼굴이, 아름다운 다홍빛에 물드는데."


그리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뭐라고 해야할지 떠오르지 못했다. 그녀의 여운이, 뜨거운 공기를 타고 내게도 전해지는것 같았다.


"뭐. 그랬던거죠."
"그 민호라는 분과는, 잘 안되신건가요?"

"...그렇게 됬어요."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다시 숙였다.


"죄송해요. 좋은 분처럼 들리는데."

"아녜요. 사과할건 없어요. 3년 전 일인걸요."


한숨을 쉬더니, 모든 것을 털어놓는듯 그녀는 말했다.


"민호와의 일을 정리한다고 난리도 쳐보고 했는데, 정작 지금 남은거라곤 그렇게 낭만적인 추억뿐이네요. 그마저도 던져버리려 왔는데."


그렇게 말하다,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저기에요. 저 석주. 지금 보더라도, 별로 특별한건 없어뵈는데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숨이 막혔다. 이런 광경이, 학교를 다니며 몇번이고 다닌 이 도로변에 있었다니.

너무나 아름다운 석양이 일렁였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그런 풍경이었다. 수십분 뒤면 사라질, 아니 그조차도 걸리지 않을 풍경이었다.

이 세상에서 지금 이 순간, 나 혼자만이 독점하는 그런-


"똑같은 얼굴."

"네- 네?"


갑작스레 치고들어온 질문에, 얼빠진체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지금 당신의 얼굴이, 그때의 민호랑 판박이에요."

"이게 보이지 않는-"


그러다 나는 그녀에게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깨닿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안아올렸다.


"꺅! 무슨-"

"저길 보세요!"


당황하며 나를 지켜보다, 여인은 고개를 돌리고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장관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으니까.

두개의 돌 사이로, 언제나 우리의 머리위를 돌던 태양이, 이제 할 일을 모두 마쳤다는 것처럼 눈 앞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뜨거운 황혼을 뒤로한채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거로군요. 민호가 보던 풍경은."


아무 차도 오지 않는 도로에서, 우리 둘은 그렇게 얼어붙어있었다.

이 뜨거운 세상에서, 단 둘이.


--


어둠이 가라앉고.


여인은 그 곳에서 무언가를 던졌다.


"약혼반지에요."


묻지 않았지만,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어이없게 죽을줄 누가 알았겠어요. 사람 목숨이란게 그렇게 나약한거더라구요."


그녀가 말했지만, 묻지 않았다.


"있잖아요, 아가씨. 다시 한번만 들어올려줄래요?"


그렇게, 여인은 모자를 벗고 아름답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볼게 더 있는건가요?"

"물어보지 말구요. 잠자코 안아올려주세요."


한숨을 쉬고, 나는 그녀의 말에 잠자코 따랐다. 그럴 이유는 없었지만 그리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으니까.


"자, 하나 둘 -"


그리고.


그리고. 그렇게 무덥던 여름방학에 갑작스레 찾아온 첫 키스의 입술에서는, 달콤한 메론향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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