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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의 무개념 분지
결전의 시간 본문
결전으로써 손색 없을 정도로, 마왕성의 알현실은 침묵을 유지했다. 본디 옛 엔탈리아 왕국의 왕실이 살았던 영지의 그것이기에 당연한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거대한 왕좌에 앉아 그 넓직한 등받이로 창밖의 빛을 은은히 받아내 마치 후광을 두른 것 처럼 행세하는 마왕의 모습은 그의 발로 직접 짓밟은 엔탈리아의 왕 로코츠 4세보다야 훨신 더 왕다워보였다.
"드디어 당도했는가, 용사여. 때가 되었다 생각했지만, 이리 빨리 도착할 줄이야."
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괴물처럼 그르렁거리지도, 호걸처럼 걸걸한 목소리도 아닌, 다분히 이성적이고 차분한 목소리. 오히려 그랬기에 수많은 이들이 악의 길을 그와 함께 걸은 것일지도 모르리라.
"마왕이여, 자신이 결국 죄값을 치뤄야 하리라는 생각은 한 모양이지? 그럼 쉽게 쉽게 가자고. 옛 엔탈리아와 살아남은 12 왕국의 연합군의 용사로써 마왕에게 통보한다! 네놈의 기나긴 폭정과 악행은 이 자리 이 순간에서 끝날지어니! 12 왕국 연합군은 그대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얌전히 무릎을 꿇고 그 기나긴 죄악의 댓가를 순순히 받거라!"
용사의 목소리는 굳이 따지자면 마왕의 것보다 훨신 더 굵고 걸걸했다. 물론 여성이라는 유전적 특징 때문에 그보다는 훨씬 더 높은 음역대에 속하는 소리이긴 하였지만, 그럼에도 그 위압감과 당당함은 마왕의 것 이상의 무게감을 지니고 있던 것이다.
"오필리아. 구구절절 말하지 말고 싸우자고."
로제르가 마수 사냥꾼으로 유명한 그의 고향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대형 석궁을 마왕에게 겨누며 용사에게 나직히 속삭혔다. 그의 성미로는 이런 대치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수 사냥꾼의 삶은 언제나 사냥하거나 사냥당함의 연속이니, 적과의 잡담에 익숙하지 않았을수도 있던 것이다.
"호오, 사냥꾼이 맞는 이야기를 하는구만. 어떻게 할텐가, 거대한 방패의 용사여? 똥개몰이의 말을 들을텐가? 아니면 이성적인 사람이 으레 그러하듯 이성적으로 대화를 나눠볼텐가?"
마치 그것은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았다. 아니, 악마의 속삭임이 맞았다. 그 혀 세치로 그 어느때보다 거대한 군세를 일으킨 자였다. 마을에 으레 자리잡은 평범한 물약상인과도 같은 그 목소리에서 속삭여지는 밀어만큼 위험하고 잔인한게 없을 터였다.
하지만 어째서였는지, 용사는 대치했다. 그녀의 상징인 거대한 방패를 등에 지고, 수많은 근육을 뭉게고 뼈를 부러뜨렸던 워해머를 겨눈체 자리에 가만히 서서 마왕의 실루엣을 응시할 뿐이었다.
"말만 해. 저자가 무엇을 하던 저지할 준비는 모두 끝났어. 여덟 신이 모두 우리를 가호하고 있으니, 어떤 시도도 네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할거야."
"어여쁜 사제여, 에리카라 했던가? 그 허상과도 같은 감언이설로 나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육한 여덟 신따위의 말을 무슨 근거로 믿는 것이지?"
"그대에게 대답할 이유는 없군요. 설마 그따위 회유로 내 신념을 꺾을 생각이었던가요? 지나가던 고양이가 비웃겠군요!"
평소와 달리 당차게 목소리를 낸 에리카가 마왕의 말을 통쾌하게 받아쳤다. 누구보다 조용하고 관용적으로 행동하던, 신이 언제나 바라본다는 생각을 하던 그녀였지만, 기나긴 여행의 마지막에서만큼은 약간의 오만정도는 신이 양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일테다.
"그렇다고 하는군, 용사여. 광신도조차 자네에게 그리 종용하는데 대체 무엇을 기다리는 것이냐? 설마 내가 스스로 왕좌에서 내려와 그대에게 목을 순순히 내어주길 바라는 것이냐? 그렇게 믿는다면 그대야말로 광신도라 할수 있겠군! 이 얼마나 순진한 용사인가!"
이제는 비웃음의 형태를 띈 마왕의 직언이 용사에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언제나처럼 마왕을 향할 뿐이었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또 말하지 않는 마왕의 얼굴을 상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지만 곧, 이변이 일어났다.
용사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마왕을 바라보았다.
그 이변은 몇초 뒤, 다시 일어났다. 고개를 돌릴때마다 시선 끝에 위치했던 콜먼은 곧 용사의 눈길을 알아채고는 입가를 씰룩였다. 그는 마법사였다. 언제나 집중해야 했다. 무슨 일이 닥치던, 이 모든 일의 끝을 자신의 손으로 내어야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것 마냥, 그리고 실수로 말미암아 자신의 동료를 자신의 마법에 휩쓸리게 만들지 않게 하리라는 당연한 의무를 가진 것 만큼, 이내 표정의 변화를 감추고 마법의 영창을 준비했다.
하지만 싸움은 없었다.
용사는 다시 콜먼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작게 입을 열었다.
"콜먼."
"뭐."
언제나의 성격과 다르지 않게, 마법사 콜먼이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뭐 할말 없어?"
"뭔소리야."
"아니, 다들 멋진 대사를 하나씩 하는데."
"뭐?"
당황이 섞인 목소리. 집중이 날아갈뻔했다.
"마지막이잖아. 한마디 하라고."
"흠. 틀린말은 아니지. 여느 용사 일행들은 마지막 대사를 멋들어지게 이야기하곤 하니까."
마왕이 용사의 말에 맞장구쳤다. 어디까지나 순수한 충고같은 느낌으로.
"남의 말을 엳듣는건 좋은 취미가 아니라고!"
용사가 말했다.
"어, 하지만 난 마왕이지 않느냐. 게다가 여긴 알현실이라, 이 위치에선 얼마나 작은 목소리든 잘 들린다고."
"시, 신경 꺼!"
"그렇게 말한다면야. 하지만 용사의 의견은 일리가 있네. 멋진 마지막 싸움엔 멋진 마지막 한마디가 필요한 법이지. 뭐 고향의 복수라던가, 죽은 애인의 몫이라던가."
"뭐? 그런건 없다고. 애초에 난 마법학교에서 차출당해서 파티에 들어온거고. 딱히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것도 아냐."
콜먼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마치 아무것도 아니란 것처럼. 실제로도 그에게 마왕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지만.
"그럴리가! 설마 내가 저지른 수많은 전쟁의 아비규환에 대한 감상조차 없단 말이냐?"
"아니 뭐, 전쟁이야 사실 당신이 등장하기 전부터 언제나 있었던 거니까 말이지. 당신 부하들이 저지른 일들이야 극악무도하지 않은건 아니지만 당신이 직접 저지른 것도 아니고, 굳이 꼽아도 내가 봤던 끔찍한 광경들중 다섯손가락은 커녕 열손가락에도 들지 않으니까."
"그럴리가!"
"그럴리가는 무슨, 마법학교 2년만 다녀도 볼거 못볼거 다보게 된다고. 골방의 찌질이들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거 아니야, 마왕 양반?"
명백하게 후회하는 듯한 목소리가 텅 빈 홀에 아련히 울려퍼졌다. 명백하게 마왕의 목소리였다.
"로지도 마수가 저지른 학살과 비교하면 별로 잔인하다고 생각 안하고 있을걸? 전직 용병이었던 오필리아야 마찬가지일테고. 리케조차도 의무신관이었으니 나보다 더 끔찍한 꼴엔 익숙할텐데?"
"뭐, 그렇긴 하죠. 마왕군은 깔끔하고 확실하게 사람을 죽였지만, 마법으로 움직이는 농기구가 일으킨 사고는 사람을 딱 죽지 않을 만큼만 헤집고는 하니까요."
꽤나 명쾌한 긍정의 목소리였다. 에리카 치고는 더더욱 명쾌했다.
"그런가, 마법사여. 큭. 성과에 눈이 멀어 디테일에 신경쓰지 못한 것이로군."
"아니, 그런건 아니니까."
콜먼이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거 신경써봤자 아무도 신경 안쓴다고. 필요없는 디테일이야. 결과만큼은 훌륭... 엇?"
그렇게, 언제나처럼 필요없는 사족을 덧붙이던 콜먼이 별안간 자신의 말을 멈추고는 표정을 변화시켰다.
그 표정은 마치 무언가를 발견한듯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꼭 필요한건 아닌데 일단 가져가야할 무언가, 근데 그게 뭐였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 무언가를 별안간 떠올리고는 눈앞에 있던 그 것 - 예를 들자면 지갑을 - 발견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나 당신 누군지 알것 같은데."
"무슨 소리를 하는게냐, 엉터리 마법사. 나, 위대한 신 엔탈리아의 왕국을 이끄는 마왕 찬도르 켄멜리 2세의 근엄한 얼굴을 보고 살아남은 자는 내 가신 이외에 아무도 없건만! 내 위압감에 짓눌려 허언을 하는게냐!"
여태까지의 농담따먹기는 그만이라는 듯, 마왕은 왕자의 팔걸이를 위엄있게 내리치고는 용사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그 위압감에 용사는 쥐고있던 양손의 워해머를 바로쥐었다. 그녀의 일행이라고 다를건 없었다. 잠시나마 존재했던 여유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죽음을 눈앞에 둔 전사의 눈매가 되었다.
콜먼을 제외하고는.
"아냐. 나 당신 본적 있는데? 아니. 너희들도 봤다고."
"뭔 소리를 지껄이는거야 콜먼. 할 말 없으면 집중해. 내가 잘못했으니까 싸울 준비나 하라-"
"아니, 진짜라니까? 햐, 그게 그렇게 되네. 혹시했는데 진짜로 그렇게 될줄은 몰랐는데."
용사의 일갈을 끊고서, 콜먼이 자기 자신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혼잣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진짜 그럴줄은 몰랐긴 했는데, 들어올때부터 혹시나 했거든. 말하면 너희들이 뒤통수 칠까봐 조용히 하고 있긴 했었는데, 그게 진짜로, 와. 세상에."
"이봐 콜먼. 무슨 이야기를 하고싶은거야. 눈앞에 있는건 마왕이라고. 할 말이 있으면 깔끔하게 해버려. 아님 말고."
참다 못한 로제르가 낮은 목소리로 콜먼에게 말했다. 그가 사냥하곤하는 마수와 같은, 위협적이고 공격적인 목소리.
하지만 콜먼의 웃음은, 얼굴에 떠오른 함박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저기 저 왕좌에 앉은 저 '마왕' 양반은, 자칭 찬도르 켄델리 2세라 칭하며 수많은 병사를 이끈 저 양반은, 엔탈리아 왕국을 두손으로 무너뜨리고 그 왕국이 한때 차지했던 것 이상의 거대한 영토를 날로 먹은 저 양반은-"
"됬으니까 빨리 말해!"
에리카가 보다못해 소리쳤다.
"-알았어! 알았다구. 여하튼 저 왕좌에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저 양반은 바로, 여기 오기 직전에 들렸던 마을의 물약 장수야."
"...뭐?"
용사, 오필리아가 힘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좀 이상한 구석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일줄은..."
"오, 불쌍한 콜먼. 그간 무척 피로했나보군요. 죄송해요, 진작에 신경써야됬었는데."
"아니, 진짜라니까! 진짜라고!"
"진짜는 무슨 진짜야. 젠장, 마왕, 우리 마법사의 허언을 대신 사과하도록 하지. 마법학교를 수석으로 나온 친구긴 하지만, 이러하다 보니 반쯤 떠맡게된 짐이라 말이지."
"뭐야, 날 그렇게 생각했어? 아니 일단 그게 중요하게 아니고. 맞다니까? 맞지? 마왕? 말해봐!"
"아니... 아니다. 아니, 그러니까 아닌게다. 고럼. 그렇고 말고."
정적이 맴돌았다.
마왕의 태도는 분명 이상했다.
"아니. 뭐 물약 상인이 조금 이상하긴 했어. 상인 치고 몸이 다부지기도 했고, 목소리는 무척 좋긴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마왕이라니, 그건 좀 아니잖아. 뭐하러 그런 짓을 마왕이 하겠어?"
잠깐의 정적을 깨고, 잠시 뒤 용사가 말했다.
"그렇, 그러하다! 분명 그 물약 상인은 청렴하게 장사하고 입담도 좋은, 이 시대의 호남이자 미남이긴 하지만! 그런 평민과 짐을 비교하는건 어불성설이다!"
"아니, 미남은 좀..."
이번에 입을 연건 에리카였다. 끝을 잃은 문장의 행간에는, 사실적시보다 더 뼈아픈 칼날이 숨겨져 있었다.
"굳이 따지면 평균에서 살짝 이하? 그렇게 눈에 띄는 외모는 아니었고, 평범한 상인들과 다를바 없긴 했어."
오필리아가 말했다.
"음... 오필리아는 나보다 조금 여유로운 취향을 가졌나 보네? 나는 조금... 그래. 성에 구애받지 않는 로제르라면 또 모르겠네."
"아니, 거기서 내 이야기가 왜 나오는건데? 핫, 차. 이 사제 양반 안되겠네? 나도 두 눈이 달려있다고! 아니 그 두 눈으로 먹고사는게 사냥꾼인데 지금 내가 사냥꾼 못해먹는다고 이야기하는거냐? 그래! 내가 사슴고기 조금 빼돌렸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말하냐!"
"그만! 나와는 관계없는 상인에 대한 근거없는 비방은 그만! 12 왕국 연합군들이 얼마나 무능한지 알수 있겠갔-!"
마왕이 호통쳤다. 마치 자기가 혀를 깨물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처럼.
"그만! 나와는 관게없는 상인에 대한 근거없는 비방은 그만! 12왕국 연합군들이 얼마나 무능한지-"
"다시 말해도 앞서 말한걸 없는 걸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불쌍한 목소리로 오필리아가 동정했다.
"젠장! 농담 따먹기는 이제 그만! 나, 찬도르 켄델리 2세를 우롱하는 네놈들을 당장 단죄해주마!"
"그만 말 돌리고. 설마 찔려?"
켄델의 반론에, 마왕의 목소리는 설득력을 잃었다. 그 성량에 담긴 목소리는 전과 다를바없이 우렁찼지만, 그알맹이가 너무나도 가벼워져 사라져버린지 오래였던 것이다.
"그럴- 내 존재가 의심스러운-"
"아냐? 아니면 그 그림자를 드리우는 왕좌에서 내려와 얼굴을 비춰 보이시던가."
"허- 핫! 내가, 짐이 뭣하러 그런걸 하겠-"
"아님 내가 지금 마을에 가서 물약 상인 있는지 확인해 볼수도 있고. 텔레포트하면 금방 걸리니까."
"아, 그, 그럴수는 없을텐데! 이 성에는 금주의 결계가 쳐져-"
"-있긴 했지만, 없앴지. 바보아냐? 우리가 결계 안에 눈뜨고 걸어가게? 아니, 얼마 안걸려. 확인하는데 오분 정도? 그거면 충분해."
"오, 오분정도면 네가 없는 사이에 나머지 세명을 다 물리치고도 남겠군!"
"어? 그럼 진짜 갔다 온다?"
"아니, 잠깐! 진짜 그러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네 동료를 생각해서라도..."
"가도 괜찮지?"
"별 상관 없어."
오필리아가 즉답했다.
"그렇다는데?"
"자, 잠깐! 나머지 둘도 있지 않느냐?"
"보스는 오필리아니까."
"용사라는 타이틀이 귀찮은 만큼 권력도 있는 법이에요."
"크윽..."
마찬가지의 즉답에, 마왕의 말이 꼬리를 잃고 힘을 잃었다.
"왜, 갔다 온다?"
"자, 잠깐!"
마왕이 소리쳤다. 긴장감없는 다급함이 대놓고 드러났다.
"자... 잠깐만 기다리도록..."
그리고, 마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컥. 철컥. 마왕의 발소리가 알현실에 울려퍼졌다. 화려한 장식이 새겨진 풀 플레이트 아머가 이윽고 왕좌 옆에서 그 윤곽을 드러낸 것이다.
"자... 이러면... 됬지?"
"아 시바 나랑 지금 장난하나."
콜먼이 짜증냈다.
"투구는 벗어야지."
"..."
"뭐해? 쫄려?"
"...ㄹ..."
"뭐라고?"
"...발..."
"아니 똑바로 말해봐. 여기 작은 목소리도 잘들린다며."
"아니. 그러니까. 그..."
마왕이, 결국 말했다.
"...제발..."
"제발은 무슨 제발이야!"
"그... 나 일단 마왕이고. 폭군이니까..."
"아니 그거랑 정체랑 뭔상관인데."
"이쯤되면 보여줄만도 하지."
"나라도 보여줬겠어."
로제르와 에리카가, 이제는 긴장감이라고는 사라진 알현실에 자리잡고 앉은체 야유를 날렸다. 오필리아조차 겨누던 워해머가 무거웠는지 망치머리를 땅에 내려놓고 마치 지팡이처럼 짚고서 마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아무도 모르는 얼굴이라며. 아니면 그냥 얼굴 팔리고 말겠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어짜피 우리 못살아갈거 아니야. 우리 성공하면 넌 일단 죽을거고. 별 상관 없잖아."
"그렇긴 한데... 그래도... 일단 제가..."
"아니 그 소리는 이미 들었고."
"저... 그... 제발. 어떻게 안될까요?"
"아니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진짜 쫄리는거야?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를만큼 자신있는 사람이 투구 하나를 못벗어?"
"그래도... 좀."
"빨리 해. 시간 없어."
결국 오필리아가 말했다. 마왕은 몇번 입을 뻐끔거리다, 이내 한숨을 쉬었다.
수백만의 군세를 이끄는 왕이자, 수천만의 죽음의 책임을 짊어진 폭군이라곤 믿기지 않을 한심한 한숨이었다.
그리고 철과 철이 부딛치는 소리가 들렸다. 투구를 벗은 것이다.
"말했지? 내가 맞았지?"
한때 대륙을 호령했던 드넓은 영토의 엔탈리아의 신민들이 먼길을 찾아와 호소했던, 하지만 어느새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마침내 자기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옛 엔탈리아의 왕이 앉아 있었던 왕좌 옆에 있던 자가, 마침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후드로 되어있는 체인메일 아래로 드러난 얼굴에 담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마왕이, 마침내 정체를 드러냈다.
"오 신이시여."
"젠장 콜먼, 한건 했군."
"어떻게 안거야?"
오필리아가 물었다.
"어. 아무튼 알았으니까 됬지."
"그렇긴... 하기사 뭔 상관이겠어. 이봐 마ㅇ... 아니, 상인 양반... 그건 좀 심했나. 켄델라 2세? 진짜 이름이긴 하나?"
"아... 아뇨. 가명... 입니다."
"여튼."
"편한대로... 그냥 편한대로 불러주세요."
"그래. 그럼 여튼 마왕. 대체 침략전쟁은 왜 일으킨거야?"
용사의 일갈에, 물약 상인은 삐질거리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마치 한때 이 자리에 당도했었던 수많은 신민과도 같이, 그는 자신의 불쌍하고 한편으로는 한심한, 그러면서 자신이 처하게된 불가사의하기까지한 대국적인 곤란에 대한 기나긴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 평화로우면 물약이 잘 안팔리니 말이죠."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기나긴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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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바스러지다'와 상관이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습니다
링크: http://applejack.tistory.com/entry/%EB%B0%94%EC%8A%A4%EB%9F%AC%EC%A7%80%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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