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의 무개념 분지

겨울까지 3분 본문

소설

겨울까지 3분

Nake 2017. 3. 12. 02:52

1/

 

틱. 틱. 틱. 537번 남았다.

 

실제로 소리가 나는건 아니었다.

 

차갑게 식은 폐공장 안에서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태엽장치 따위 없었다.

 

규칙적으로 움직이는거라곤, 분당 180번 뛰고 있는 내 심장과 미세한 핀셋을 움직이는 내 손가락 뿐.

 

이따금, 내 입이 열리고 말이 쏟아져 나오고는 했다.

 

"이제 배선을 들어내겠습니다. 젠장. 어, 10시 방향의 회로에서 3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아마 시한장치로 연결되는 붉은 선 두개가… 맞아요. 시한장치로 연결되어 있네요. 그리고 이건… 젠장. 트랩입니다. 건드리면 폭발하겠죠. 하단부를 확인해보겠습니다."

 

독백에 가까운 문장이다. 영화에서나 자주 볼만한 장면일지도 모른다. 폭탄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짜가, 귀에 이어폰을 하나 끼운체 폭탄에 손을 대는 것이다.

 

전문가의 의견을 필요로 하는가? 말도 안되는 허상에 불과하다. 다른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 오류는 이어폰을 끼고 무선 통신으로 폭탄을 해체해서가 아니다. 그건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에 가까운 이가 폭탄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는것? 그건 당연한 프로토콜이다.

 

무엇을 위해서?

 

실패한 뒤.

 

똑같이 생긴 폭탄을 마주하게 될, 또다른 불운한 폭탄 해체반을 위해서.

 

일종의 팁이랄까. 죽은 사람이 산 자에게 보내는.

 

"거의 다 됬습니다. 하단부에는…"

 

순간 오른손에 든 핀셋이 미끄러질 뻔 했다. 숨을 고른다. 그리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생각한다.

 

어쩌면, 이번 팁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수도 있다. 제정신이라면 이만한 규모의 폭탄을 또 만들리 없을테니.

 

성공한다면 그 하나로 끝날 폭탄.

 

반대로, 실패한대도 이 팁은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세상에 폭탄 해체 전문가란 한명도 살아남지 못할테니 말이다. 

 

실패한다면 모두를 끝낼 폭탄.

 

[액션 캠에 비추는 손이 멈췄군, 최경희 준위.]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

 

본부는 다시 침묵을 유지했다. 그래야했다. 복잡하고 정밀하게 계산된, 그리고 그만큼이나 수많은 이의 목숨이 달린 기계 앞에서 집중하는 이에게 함부로 발언할 정도의 미친 놈이 있을리 없었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내가 책임자였다.이 좁은 폐공장 안의 모든 권력을 지녔지만 모든 비난을 한몸에 받을 수 있었다.

 

틱. 틱. 틱.

 

그리고 다시 핀셋을 바로잡았다.

 

"다시 시작합니다."

 

분당 180번의 심장 박동은, 이를테면 극단적인 고혈압 환자에게서 발생하는 혈압이다. 두말할 것 없이 비정상적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1초당 3번. 두근. 두근. 두근.

 

누구보다 집중해야 되는 그 순간에서, 180bpm의 심장박동은 너무나도 정상적이었다. 너무나도 규칙적으로 이루어졌기에, 이런 나에게 안정감을 제공했기에, 나에게 있어서 초당 세번의 리듬은 정교하게 세공된 시계와도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 시계는 정확했다.

 

예들 들자면, 이 폭탄에겐 79초 하고도 2번의 심장박동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1번, 다시 3번으로 넘어가고. 그렇게 237번을 세기 전에 해결해야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하면 어떠하리. 

 

무관심하게 머릿속에서, 최대한 시간을 제거한다. 거기에 신경쓸 겨를은 없었다.

 

내가 심장으로 시간을 세듯, 손가락으로 정교하게 전선을 집어낸다.

 

규칙적으로, 반복적으로. 

 

죄다 비슷하게 생긴, 하지만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꽂힌 수많은 전선들, 그 누구도 폭탄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배치된 세심한 설계속을 파고들어 나는 심장을 찾아나섰다.

 

"거의 바닥에 다 왔습니다. 마지막일 것 같네요. 안에 독특한 육각형 회로에… 녹색 선이 5시쪽으로, 파란 선과 붉은 선이 각각 9시와 3시 방향으로 빠져나갑니다. 녹색 선은 트랩이에요.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말을 멈췄다.

 

필요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수년간의 프로토콜은 나를 길들였고 때문에 나는 더이상 말 없이는 집중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보다는 더 원초적인, 하지만 아이러니한 질문 때문이었다.

 

[왜 그러지?]

 

이어폰을 통해 본부가 물었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 말하고 나서야 내가 그랬다는 것을 꺠달았다.

 

"빨간 선과 파란 선. 둘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니퍼를 들었다.

 

135번의 심장박동이 남았다.

 

틱. 틱. 틱.

 

"어떤걸 끊을까요.'

 

틱. 틱. 틱.

 

이렇게 극적이고 클리셰적인 결말에 다다를줄, 15년여의 커리어 내내 한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빨강, 아니면 파랑.

 

본부는 당연히도 잠시 기다리라 할 터였다.  그럴 시간만 있었다면 나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둘 중 하나다. 그리고 나에겐 시간이란 없었다. 79번의 심장박동 말고는.

 

[…맡기네.]

 

익숙한 목소리에서 생소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평소였다면, 대체 무엇을 의미했는지 되물어야할 문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난 알 수 있었다. 

 

'우리도 잘 모르겠다.'

 

어쩔수 없는 상황에 대한 유용한 변명이여.

 

"가족에게 말해줘요. 사랑한다고."

 

조그마한 기회를 난 그렇게 사용했다.

 

아, 얼마나 클리셰적인가.

 

그렇게 입은 말했다. 

 

그리고 손은 움직였다.

 

틱. 틱. 틱.

 

틱. 틱.

 

틱.

 

딸깍. 니퍼가 구리선을 끊었다.

 

2/

 

그리고 그렇게 겨울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잊지 못할, 봄을 망각할 아이가 태어날 겨울이 찾아왔다.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기치 못한 에러  (228) 2017.04.24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0) 2017.04.15
하늘 바다를 건너다  (0) 2017.03.05
결전의 시간  (0) 2017.01.11
사탕 갑옷 이야기  (0) 2016.12.2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