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의 무개념 분지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본문

소설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Nake 2017. 4. 15. 23:15

"살덩이는 네틱스를 차별하지 마라!"


"네틱스도 살아갈 권리가 있다!"


"지나갑시다."


"살덩이는 네틱스를 차별하지 마라!"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이봐! 자네 살덩이로군! 자네도 대의에 동참해주게! 압제자들에게 뭐가 옳은지 보여주게!"


"죄송합니다. 일이 바빠서..."


날 붙잡은 네틱스 시위자는 순순히 나를 놓아주고 다시금 구호를 외쳤다. 애초에 그렇게 세게 붙잡지 않아서였기도 할테고,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좁디좁은 골목 사이사이를 수많은 네틱스들이 매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몸의 일부분에서 대다수를 기계로 교체한 전통적인 의미의 네틱스에서부터 한때 안드로이드라 불렸던 네틱스들까지. 사실상 사이버네틱스 박물회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만한 인파를 정부가 어떻게 다룰지 궁금해지긴 했다. 평소 시위를 몰아세우던 경찰병력이 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걸 생각하면 정부는 2주째 꾸준히 이어지는 이 시위를 자초한게 맞다고 봐야겠지. 사실 이것보다 더한 시위를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아득한 과거, 살덩이들이 서로를 차별했을땐 권리를 위해 피와 목숨을 거리낌없이 희생했다지 않은가. 그럼에도 용케 이 규모의 시위대가 몽둥이를 휘두르지 않는건 일말의 자비 때문인지, 아니면 시위에 가세한 경찰 세력의 올바른 지도 때문인지.


사실 찾아보지 않아 잘은 모르겠다만.


"네틱스의 삶도 그 어떤 삶과 달리 취급받아선 안된다!"


"모든 삶의 가치는 평등하다! 100퍼센트 인간이 아니라고 해서 인간이 아닌게 아니다!"


"조금 지나가겠습니다."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이쯤되면 알겠지만 난 시위 때문에 이 거리에 선게 아니다. 나와 별 상관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일단 그렇게 생각했다. 회사의 전쟁에 나간적도 있고, 보안요원이 되어 혹성의 토착 갱과 맞선적도 있었지만, 그 와중에 팔다리를 잃지는 않았으니 - 네틱스가 될 필요가 없었으니 - 네틱스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팔다리가 멀쩡한건 굳이 따지자면 동기중에선 꽤나 높은 운에 속할게다. 아마도.


-삑-


귀에 끼워놓은 이어피스가 신호음을 냈다. 이 시끄러운 함성 속에선 희미한 신호음이긴 했지만 그래도 들려오긴 했다. 대략 2분. 신호음의 간격이 아직 먼걸 보면 목표와는 거리가 꽤 먼 모양이었다.


"살덩이는 네틱스를 차별하지 마라!"


"내 심장은 폭탄이 아니다! 내 팔은 총이 아니다!"


"지나가겠습니다. 조금만... 감사합니다."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살덩이는 네틱스를 차별하지 마라!"


몰려드는 사람의 행렬을 밀치며 앞으로 나아섰다. 아니, 앞이 맞긴 한걸까. 하염없이 희미한 신호음에 몸을 맞기고 인파에 몸을 맡긴지 두시간도 더 된 것이다. 이 속에서 사람을 찾는건 미친 짓임을 앎에도,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사람들이 외치는 구호 때문이 아니라, 이만한 군중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압박 때문에. 만약 그들의 대의에 동의하는 입장이었다면 이 정도까지 압박을 받진 않았겠지. 깊은 심정에선 그들이 외치는 목소리에 동의하지 않는건 아니지만.


아니. 아닌가. 순간 기분나쁜 깨달음이 나를 찾아왔다.


누굴 속이리라. 내가 내 자신을? 말도 안되는 소리. 이건 죄책감이다. 위선자로써 가지는 죄책감. 한없이 기분이 나빠지지만 그럼에도 자기자신 말고는 탓할 것 없는 자책의 연속이 날 얽아매고 있었다. 거리의 공기에 매연이 가득한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숨쉬기 힘든 것이었나. 젠장할.


숨을 헐떡이며, 가까운 벽에 몸을 기대고 섰다. 이 의식의 흐름에 휘말렸다간 내 자신에 대한 역겨움에 더는 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니, 확실히 설 수 없을 것이었다.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사람들의 고함은 멈추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쓰나미가 들이닥쳐 거리를 잠긴 것 마냥 사람의 급류가 거리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 이건 강이 아니었다. 강이 아니라 바다였다. 자신들의 세상을 가로지르며 자신의 권리 - 자기 자신을 위해 소리높일 바로 그 권리를 행사하는 공간이었다.


난 왜 여기에 끼지 않는거지? 내 동기도 적의 포화에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 네틱스가 되지 않았나? 왜 그들을 위해 싸우지 않는거지?


역겨움이 위 속에서부터 기어올라왔다. 죄책감. 빌어먹을 죄책감.


나는 이걸 위해 여기에 온게 아냐. 내 자신이 내게 말했다. 잊어야했다. 일이 중요했다. 죄책감은 잊고, 과거는 잊고, 일에 몰두하자.


'REMEBER EMPORIO'


성난 피켓이 시야를 가렸다. 덕분에 정신을 차릴수 있었다. 엠폴리오. 시위의 발단이 된 소년의 이름. 우연히도, 지금 내가 찾는 사람도 같은 이름을 사용했다. 물론 둘이 동일인물일리는 없었다. 전자는 죽은 소년이고, 내가 찾는 후자는 엠폴리오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아직 살아 숨쉴 여성이니까.


생각하자. 떠올리자.


'마리-앨레느' 라는 이름의 파일이 전송된건 일주일 전이었다.


가상계좌를 통해 착수금이 지불되었고, 그 크레딧으로 여러 세금과 고지서를 틀어막고는 남은 돈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민간 조사원으로써, 별 다를바 없는 일상이었다. 쓰디쓴 커피 맛 음료에 설익은 탄수화물 큐브를 씹으며 읽어내려간 프로필엔 맑은 하늘 아래서 열살 남짓 되보이는 소녀가 환자복을 입고 웃고 있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프로필에 의뢰인의 이름이 적혀있는건 아니었지만 몇번 이 일을 하다보면 감이 오는 것이다. 집 나간 자식을 찾아달라는 거겠지. 애초에 이렇게 해맑은 소녀의 사진을 가지고 다닐 사람은 아이의 부모말고는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맑은 하늘이다. 이 빌어먹을 지구에선 결코 볼수 없는 하늘. 아마 화성이나 푀베, 그쯤되는 개척 행성에서 살던 부자의 딸인 모양이지.


막 프로필을 열어보았을땐 그녀가 사랑이나 운명따위를 찾아 지구에 왔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흔히 있는 일이었다. 용돈 벌이로썬 쏠쏠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지. 편견에 살아가는 자신을 자조하며 나는 다시 떠올렸다. 마리-엘레느를 찾아나서기 위한 첫번째 단서로, 프로필은 '엠폴리오'라는 해커를 지목한 것이다.


엠폴리오는 별것 아닌 인터넷 논쟁에서 실수로 자신의 신상을 조금 흘려버렸고, 그 단서를 쫓아 엠폴리오와 마리-엘레느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파일은 구구절절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 단서를 현지에서 쫓을 조사관으로 내가 고용된 것이다.


그렇게 발품을 팔고 뒤를 쫓다. 시위와 논쟁으로 가득찬 지구의 바로 이 장소에 그녀가 있다는 이야기에 여기 온게 아닌가.


그래. 난 그녀를 찾고있다. 엠폴리오.


잊지않아. 엠폴리오를 잊지는 않아.


그렇게 자기 자신을 설득하고는 숨을 들이쉬었다. 질나쁜 공기는 여전했지만, 기도를 틀어막던 죄책감은 그나마 녹아내려있었다.


다시 목을 틀어막기 전에 길을 나아가자. 나는 내게 다짐했다.


"우리에겐 피와 땀, 눈물, 그리고 기름말곤 없다!"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지나가겠습니다. 잠시만요."


-삐빅-


"우리 안에 있는건 철로된 심장이지 총과 폭탄이 아니다!"


"살덩이는 네틱스를 차별하지 마라!"


왜 그녀는 이 시위에 참여했을까? 문득 머리에 질문이 떠올랐다. 죄책감은 아직 찾아오진 않았다. 이건 아마 직감이라는 녀석인 모양이다. 빨리 머리를 굴린다. 놈이 오기 전에.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목소리가 거세진다.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그래. 엠폴리오. '보안 절차'에 의해 쓰러진 소년. 사이버네틱스 심장을 이용해 목숨을 연명하던 소년.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말했듯이, 찾아본적이 없었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알고 있는건 대략적인 사건의 얼개 뿐.


도서관에 출입하려던 엠폴리오는 새로 탐지된 보안 시스템에 의해 입장이 저지되었다고 한다. 위험의 소지가 있는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는게 이유였다. 엠폴리오는 그런 것이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보안 시스템은 그의 의견을 묵살했고 저항하는 엠폴리오에게 전기충격을 가했다.


차갑게 식은 엠폴리오의 부검으로부터 발견된 '위험의 소지가 있는 물건'은, 그의 심장이었다. 과거에 교체된 사이버네틱스 심장. 전기충격은 그 심장을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다.


뒤는 별 다를거 없었다. 사건을 축소하려고 하고 그게 들통나고 일이 커진 것이다.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사람들은 정의를 위해 나섰다.


하지만 엠폴리오는? 어쨰서? 한때 부자였던 소녀는 어찌하여 한 소년의 죽음에 동감하는가?


단순히 같은 이름이어서? 그건 아니었다. 그럴리는 없었다.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왜 엠폴리오는 넷에서 쓰잘데기 없는 논쟁으로 자신을 노출시켰는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 느낌,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도 곧 모든 것이 보일것 같은 예감의 느낌. 떠올려라. 떠올려야한다.


그리고 떠올렸다.


그래. 엠폴리오의 논쟁은 엠폴리오의 죽음에서 발단되었었다. 넷에 상주하는, 짐짓 중립인양 남을 몰아세우는 멍청이들을 물어뜯다 그녀는 자신을 노출시켰다. 그 전엔 그리하지않던 그녀였다.


마리-엘레느라는 소녀는,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구의 소란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강한 책임감을. 지금까지 잘 유지해오던 자신의 비밀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켜야할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엠폴리오는 앞에 있다. 정의를 외치는 바다의 끝에 엠폴리오가 있을 것이다.


"살덩이는 네틱스를 차별하지 마라!"


"기계도 살고싶다! 살아갈 권리가 있다!"


"좀 나아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살기 위해 네틱스가 되었다는 이유로 죽을수는 없다!"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삑-


내 생각이 맞았다. 사람의 어께와 어께 사이를 파고들며 앞으로 나아갈수록, 온갖 문구가 적힌 피켓 아래를 걸어갈수록, 이어피스에서 들려오는 신호음은 점점 크고 자주 들려왔다. 가까워지고 있다.


부대끼는 사람들 틈새에서 겨우 공간을 내어 코트 안에 있던 안경을 썼다. 눈이 나쁜건 아니다. 네틱스를 이용하지 않는 대신 이런 부가장비를 챙겨야할 뿐이다.


조그만 휴대 단말도 힘겹게 꺼내 몇번 조작하자, 금새 안경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AR. 지금 와서는 누가 쓰느냐만은, 적절한 상황과 인물에겐 충분히 효과적인 것이다.


-삑-


'엠폴리오'가 사용한다 알려진 네틱스에서 발신되는 특유의 신호에 점점 더 가까워져가는 모양이었다. 뒤였다면 다른 수많은 네틱스에 의해 신호에 가려졌을,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수록 명확해지는 신호의 발원지를 안경은 시각화하여 보여주기 시작했다.


시야가, 마치 맥박치듯 희미하게 요동친다.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삑-


"죽음을 기억하라! 책을 읽으려던 엠폴리오의 죽음을 기억하라!"


"지나가겠습니다."


-삑- -삑-


가깝다. 지척. 코앞에 그녀가 있다.


"살덩이는 네틱스를 차별하지 마라! 그들도 인간이다! 단백질이 인간을 규정하지 않는다!"


"엠폴리오-"


-삑- -삑- -삑- -삑-


안경이 요동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파동의 중임에 선 어께를 붙잡았다.


"?"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푸르게 빛나는, 사이버네틱스 특유의 안구가 나를 잠시 지켜볼 뿐이었다.


어께를 놓았다. 그럴수밖에 없었다.


눈 앞에 있는건 마리-엘레느가 아니었으니까.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목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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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는 처음 등장한 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 원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특징 또한 그대로였다. 미묘함의 집합체말이다. 올라탔을때 느껴지는 그 미묘한 부유감과 문이 닫힐때의 미묘한 흔들림, 목적지까지의 미묘한 긴장감과 어색함까지. 모든것이 미묘한.


텔레포터가 나왔다고야 하지만, 단거리 수직 이동은 여전히 엘리베이터가 여러 측면에서, 특히 재정적인 측면에서 우세했기 때문에 낙후된 주거지구의 아파트에도 마찬가지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 단지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미묘한 느낌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지금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나라고 다를건 없었다. 덜컹.


가까운 기계식 패널의 스위치를 누르자 버튼 주위의 테두리가 희미한 붉은 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유물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정비는 제대로 될런지 의문이었다. 덜컹. 걱정과는 달리 엘리베이터는 특유의 미묘한 상승감을 통해 자신은 어느하나 부족할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처절하다고 느껴진건 어째서일까.


오랫동안 교체를 안해서인지 현제 위치를 나타내는 LED 패널의 숫자 테두리중 하나는 제대로 빛이 나지 않고 있었다. 8층이 6층으로 보였으니. 하지만 엘리베이터에 타있는건 나뿐이었기에 착각할 일은 없었다. 덜컹. 문이 열렸다.


망설임은 없었다. 앞으로. 앞으로. 최대한의 표면적에 입주민을 집어넣기 위해서인지, 복도를 중심으로 양 옆에 현관문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안쪽 방에서 복도로 향하는 창문은 주택당 하나였고 그 창문엔 모두 험상궂은 쇠창살이 설치되어 있었기에, 언뜻보면 감옥처럼 보이기도 했다.


비웃을 처지는 아니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이 그러하니 말이다. 그러니 일단 그냥 명패만 집중하자.


2405. 2406. 2407. 2408이 있어야할 자리엔 접착제 자국만이 남아있었고, 2409. 목적지.


한숨을 쉬었다. 이 곳은 방금 전까지 있었던 거리와는 너무나도 달리 조용하고 또 고요했다. 지구가 그러한 것처럼 이 건물도 버림받은 것만 같았다.


버림받은 세계의 버림받은 사람들. 조용한건 그래서일지도 몰랐다. 스스로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 모두들 뛰쳐나간 것이다.


그런 건물에, 내가 왔다.


자물쇠를 여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딸깍 소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왔고, 문은 열렸다.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현관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건 차창. 반대편 건물 한면을 뒤덮은 커다란 광고판이 환하게 빛나고 있어서, 방 안의 모든 것의 음영이 극도로 강조되어 테두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세부사항은 그림자에 가려져 분간할 수 없었다.


방 안의 불을 켜면 될 일이었지만,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세부를 보지 않고도 무엇이 있는지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뭣보다 스위치가 어디있는지도 몰랐고 말이다.


"엠폴리오."


나는 말했다.


"아니, 마리-엘레느. 만나서 반갑습니다."


의자가 빙 돌아 나를 향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쉰 목소리는 나를 향해 발성되었다.


"시위 현장에서 본 남자군."


마르고 갈라진, 그리고 심하게 잠긴 목소리. 마치 오랬동안 성대가 사용되지 않았던 것 같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건 분명, 여성의 목소리였다.


"아버지가 날 불렀나?"


마리-엘레느가 물었다.


"모릅니다. 전 의뢰인의 신원을 알지 못하거든요."


"못하기는 무슨. 시치미 떼지 마, 와일리 도미니쿠스 치타. 당신이라면 충분히 누가 의뢰인인지 짐작할 수 있을거 아냐."


"알고 있었군요."


대답하지 않았다. 광채 속의 그림자가 고개를 끄덕거리는 실루엣을 비추었을 뿐이었다.


"현장의 네틱스를 역추적 한거지? 해킹 시도는 감지하지 못했는데."


"뛰어난 조수를 데리고 있으니 말이죠."


"혹성에서 구출한 소녀 말인가?"


대답하지 않았다. 현관문을 등지고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거지?"


그녀가 물었다.


"당신을 확보하고 지정된 위치에 데려다 주는 것. 그게 제 의뢰입니다."


"그 지정된 위치가 어디인데."


"17지구에 있는 앨리슨 궤도 엘리베이터요."


침묵. 긴 한숨소리를 소리로 치지 않는다면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안돼."


그리고 다시 소녀가 답했다.


"난 갈수 없어."


"어째서죠?"


"엠폴리오의 피는 내 손에 묻어있어."


"농담하지 마세요. 이름을 공유한다고 해서 그의 죽음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는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저도 당신도 알잖아요. 엠폴리오라는 이름을 쓴건 수년전 해커를 시작했을때 부터였고, 엠폴리오가 죽은건 한달도 안된 일이니까요. 둘의 연관은 전혀 없단 말입니다."


"뭘 모르는군."


그녀가 말했다. 차창이 순간, 붉게 물들었다. 핏빛 실크가 광고 디스플레이 위에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덕분인지, 실내의 테두리도 전부 붉게 물들어갔다. 마치 분노를 머금은 것처럼.


"엠폴리오의 피는 내 손에 묻어있어. 오래 전부터. 오래, 오래 전부터 말야."


"그게 무슨-"


"난 희귀병을 앓고 있었어."


마리-앨레느는 내 말을 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살 수 없는 몸이었지. 몇년 전에는 죽었어야 했단 말야. 부모님 딴에는 열심히 살려보겠다고 공기 좋고 물 좋은 가니메데에 별장을 지어 살기도 했지."


프로필에 첨부되어 있던 사진의 이야기인가.


"심장 쪽 문제라 이식을 받지 않으면 살수 없는 상황이었어."


"장기 이상이라면 충분히 회복될 수 있는거 압니다. 그때라고 네틱스 기술이 후진적이었던게 아니니까요."


"너, 아직도 내 부모님이 누군지 모르는군?"


"부자라는건 알겠습니다만."


"틀린 말은 아니지."


실루엣이 주섬주섬 움직였다. 곧, 담배를 꺼내어든 소녀가 한까치를 입에 물어두고 의자에서 무언가를 눌러 꺼냈다. 시거 잭. 말로만 듣던 구시대의 물건.


"아는 사람에게서 받았어. 은근히 편하더군. 한손만 써도 불을 붙일수 있어서말이지."


시거 잭의 끝을 담배에 가져다 대자, 화악하는 잔불이 아주 작은 찰나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사진과는 달랐다.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보았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웃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내 아버지는... 그래. 순수주의자라고 말해두지. 내 몸을 기계로 대체하는건 꿈도 꾸지 못하는 인간이야."


"그럼-"


어처구니 없지만.


"설마."


"그래. 엠폴리오가 내 심장의 주인이야. 지금 내 가슴 밑에서 애처롭게 뛰는 심장의 주인 말이지."


그녀의 팔이 자신의 가슴으로 향했다. 쿡. 마치 화살표를 들고있는 양, 검지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깊이 짚어눌렀다.


"동의는-"


"당연히 없었지. 녀석은 나때문에 납치당해서 심장을 적출당하고 그 자리를 양철 심장으로 떼워넣어진거야. 그때야 난 그 사실을 몰랐지만."


담배가 붉게, 깊게 타올랐다. 후우, 숨소리와 함께 연기가 실루엣을 뭉겠다. 차창의 색깔이 변했다. 빨강에서 파랑으로. 푸르게, 차가운 이야기가 계속됬다.


"이제 알겠지? 내 닉네임이나. 내 손에 엠폴리오의 피가 묻어있는 이유나."


"네."


그리고, 이어 말했다.


"하지만 그게 여기 남아있을 이유는 되지 않죠. 돌아가죠. 네틱스들의 혁명은 우리 은하 밖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엠폴리오를 잊지 않을거잖아요. 그것 만으로도 투쟁은 충분해요. 엠폴리오에 대한 속죄는 충분하다구요."


"하핫."


그녀가 웃었다. 그 갑작스런 호흡에 타오른 불꽃이 다시금 그녀의 얼굴을 보였다. 여전히 사진과 같지 않았다. 비웃음은 웃음이 아니었다.


"내 아버지를 몰라서 그래."


"범죄자라도 되는겁니까? 그런 이들은 별 상관 없을텐데요. 만약 '회사'쪽 인물이었다면 저를 쓸 일이 없었을테구요."


머리가 돌았다. 상식에 입각한 수많은 이성의 이론이 입을 움직여 가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내 직감도, 고개를 저었다.


"이봐, 치타. 그렇게 머리 좋은 양반이 어째서 아직도 모르는건데."


"아니면 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당신의 아버지가 누구기에, 그토록 커다란 책임감을 가지고 과거 일어난 일의 끝을 보아야 하는거죠?"


마리-앨레느는 고개를 저었다. 별수 없다는 양. 내뱉으면 돌이킬수 없는 일이라는 양.


"내 본명은 마리-앨레느 앨리슨이야. 로버트 앨리슨의 생물학적인 딸. 사생아라 대놓고 밝히진 않았지만, 딸은 딸이야."


말문이 막혔다. 로버트 앨리슨. 정부의 대통령. 창밖 거리에서 손가락을 뻗어 가리키는, 이른바 '빌어먹을' 정부의 우두머리.


"굳이 17지구에 있는 궤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해달라니, 악취미군요."


"원래 그런 인간이야. 새로울 것도 없어."


본디 내 일은 사람을 찾을 뿐이었다. 그 와중의 수수께끼야 영원히 미제로 남는 경우가 수두룩했고. 거기에 딱히 미련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먹고살기 힘든 직업이다.


하지만 그게 내가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내 안의 호기심은 여전히 꿈틀거리며 활개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앨리슨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실을 들은 순간, 호기심은 많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활개쳤다.


어째서 날 이용한 것인가. 공권력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화를 남기지 않는 그 양반의 특성상, 일이 끝나면 처리하기 쉬운 제 삼자를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기도 했을 것이고.


어처구니 없는 권력이나 재력, 그리고 결벽에 가까운 순수주의도 이해할만 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떠날 이유는 되지 못하죠."


"이봐. 이게 무슨 감동의 부녀재회 따위라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아니라고. 17지구에 간 순간 자네는 처리될거고 나는 다신 이 더러운 공기를 마시지 못하게 될거라고."


약간 분노가 담겨, 때문에 갈라진 그녀의 목소리가 새된 비명을 내지르며 나를 일갈했다. 마치 어처구니없는 어린 아이의 궤변을 상대하는 듯한 말투였다.


"무슨 상관입니까. 엠폴리오는 모두가 기억합니다. 사람들은 투쟁할거라구요."


"아니, 그렇게 되진 않을거야. 내가 17지구를 통해 이 행성을 떠난 순간, 사람들은 엠폴리오에 대해 잊게 될거야."


"왜 그렇게 단언하는거죠?"


"내가 해커니까."


그녀가 약간, 힘을주어 말했다.


어처구니없는 소리. 하지만 반론하지 않았다. 엠폴리오는 생각보다 많은 진실을 이야기했다. 이 것이라고 진실이 아닐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잠자코 해명을 기다렸다.


기다림은 곧 보상을 받았다. 그녀는 필터만 남은 담배를 책상 위에 있는 듯한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말을 이었다.


"우주 정거장 상공의 궤도 엘리베이터에서 20140기의 보안 로봇이 각종 중화기를 무장한체 투입을 대기하고 있어. 정부가 정보 통제를 하고 있지만 관련 내역을 대조해보니 금방 나타나더군. 화기를 목적으로 제작된 모든 사이버네틱스는 자신이 행하는 행동의 결과를 인식하고 이해하고 책임질 수 있을만큼의 윤리 의식을 가져야한다는 규정에서 간단하게 벗어나는 보안 로봇이야. 엠폴리오를 죽인 보안장치처럼 보안 장치일 뿐이니까. 내가 안전하게 되면 앨리슨은 내가 올라오는 동시에 내려오는 엘리베이터편으로 그걸 투입할테지."


"하지만 그건 학살이잖아요. 그걸 감내한다구요?"


"충분히. 그에게 지금 이 빌딩 아래 가득찬 인간은 중요하지 않아. 순수하지 않은 인간따위 중요하지 않은 인간이니까. 모든 일이 끄나고 사람들은 기억하겠지. 엠폴리오가 아니라 지구에 있었던 대학살... 아니, 대폭동을."


타당했다. 너무나 타당했기에, 헛소리라고까지 느껴졌다. 이 모든게 거짓이라면? 급박해진 소녀가 기지를 발휘한 것일 뿐이라면? 저 물결치는 분노를, 그저 살아남기 위해 이용하는 거라면?


"전 마냥 당신이 하는 말을 믿을 수는 없어요. 아시잖아요."


"...그렇겠지."


소녀는 마지못해 말했다. 순간, 암전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차창 밖의 광고등의 색이 검은 색으로 변화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도, 시야를 가리기엔 충분했다.


경험. 다년간의 돌발행동을 기준으로 축적된 경보장치가 머릿속에서 경고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지금이 도망가기 위한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빨리 다가가 붙잡으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직감이, 언제나 의식하지 못하는 사실을 캐치하던, 혹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인 직감이 조언했다.


걱정할 필요 없다고.


강한 빛이 쏟아져들어왔다. 광고등은 아니었다. 굉음이 들리지 않았고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으니 총성도 아니었다.


눈이 빛에 익자, 곧 그게 이 방 안의 불빛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녀가 켠 모양이었다.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군. 순전히 당신에게 달린 문제니까."


"..."


"어떻게 생각하지? 내가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정말로 엠폴리오의 복수를 한다고 생각하나?"


"그건 제가 판단할 사항이-"


"왜 그러시나."


엠폴리오는 의자를 빙 돌려, 나로부터 등을 돌렸다. 낡은 의자의 뒷모습이 뒤에 들어왔다.


"잘 알고 있잖아."


대답하지 않았다. 너무 타당하다는 이유는, 사실이 아니라는 이유의 답이 되지 못한다는걸 알고 있으니.


"그럼 전, 뭘 해야하는거죠?"


내 말에서, 내 생각보다 한심한 처절함이 묻어나왔다. 조금 놀랐지만, 그런 기색을 보이진 않았다.


"기다리기."


엠폴리오는 나직하게 답하고는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건 느와르 영화가 아니야. 탐정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발품을 팔 이유는 없어. 많은 일은 탐정없이도 굴러가고, 탐정 없이도 끝나."


맞는 말이었다. 민간 조사관이라는 직업의 숙명이었다.


하지만 그 숙명이 이토록 무력하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온 몸을 엄습했다.


대체 왜?


그래. 그 것. 죄책감.


거리 끝에서, 죄책감이 다시금 기어와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건가?"


엠폴리오가 물었다.


"...아무것도."


무기력하게 답했다.


"내가 여기서 할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어요."


언제나 그랬듯, 언제나 그렇듯.


"당신 모녀는 서로를 엄청 사랑하는군요."


불현듯 깨달은 진실을 내뱉었다. 소녀는 침묵으로 답했다.


"당신 한명을 위해 앨리슨은 정권 최대의 위기에 아무런 대처도 취하지 않고 있어요. 당신은 앨리슨이 그리하단 사실을 믿고 모두를 지키기 위해 남아있는 거구요. ...스스로를 드러낸것도 그런 계산에서였죠? 대통령이 방심하도록 하기 위해서. 함부로 진압군을 투입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소녀는 여전히 침묵으로 답했다.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도 멈췄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곤 못하겠지만, 넷의 헛소리가 아무렇지 않았던 것도 아니야. 엠폴리오는 좋은 친구였어. 단순히 도서관에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죽어서난 안됬어. 나 따위를 살리기 위해서 그가 죽어야 된다는건 말도 안됐다고. 그런 그의 죽음에 대해 헛소리하는 멍청이들을 가만히 둘순 없었어."


이윽고 나온 그녀의 답은 기대했던 것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충분히 말했다.


"이미 지구의 인프라는 현재 마비 상태죠. 정부는 지구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지 오래고, 이런 움직임은 곧 다른 개척지에도 퍼질테죠. 20년간 이어져오던 무소불위의 권력의 끝이 다가온거죠."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말야."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침묵. 밖의 디스플레이가 이제는 노란색으로 빛났다. 아니, 꽃잎이었다. 꽃잎으로 변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깊은 밤의 바다를, 거대한 꽃 한송이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위로가 될진 모르겠지만, 그런 말이 있더군. '악이 승리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은 선인의 방관이다'."


"에드먼드 버크. 지금은 그 명언의 주인공으로만 알려져있는 사람입니다만."


"누가 말했는지는 몰랐지만 여튼,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 뭣보다 역으로 생각해보라고."


조금 웃었다. 나도, 그녀도.


"선이 승리하기 위해서, 악이 방관해야된다는 겁니까?"


"그런거지."


"그럼 제가 악인이라는거네요."


"오해인가?"


한숨. 그리고 침묵으로 답했다.


그저 조용히 창가로 다가가, 발밑의 인파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쩌면 이 무거운 죄책감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종류의 물건일지도 모르었다.


방관자로써, 죄책감을 해소할 방법은 하나도 없으니.


그저, 엠폴리오를 기억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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