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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걷는 성, 하얀 마녀 이야기

Nake 2017. 6. 19. 05:04



인간의 첫 도시, 디스 헤레토에서 배를 타고 남으로 가면 얼마 안되어 마족의 땅이 나옵니다. 쥰-미르스 대륙이죠.

 

이 대륙은 불타는 용암의 숲과 하늘과 맞닿은 도시들로 유명하지만, 그 누구도 보고 절대 잊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대지를 걷는 성, '에르찬도'죠. 


이백년마다 한걸음, 숲과 황야를 걸으며 움직이는 성의 주인은 엘 호친스라는 이름의 마족입니다.


마법을 이용한 마약을 탐구하고 개발하는 호친스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호친스 가문의 그 누구보다 영특하고 현명해, 가문의 맹주를 넘어 가주가 되리라 그 누구도 의심치 않던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주로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죽지도 못한체, 후손들을 돌보는 영이 되어 그들에게 충고하고 명령을 내리는 존재따위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엘 호친스는 곧 가문을 벗어나 죽음 너머의 영생으로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영원한 탐구의 인생을 사리라 다짐했습니다.


그 뒤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한건, 그는 죽음을 속였습니다.


그 방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엘 호친스는 끝없는 탐구심에 그 자신을 이끼로 만들어 영생의 존재로 부활하고, 대지에 세워 어떤 장애물이던 짓밟아 넘어서는 거대한 요새를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두개의 다리와도 같이 곧게 선 두개의 탑을 이용해 북으로, 또 북으로 계속 나아갔죠. 아마 계속 나아간다면, 수많은 도시를 부수고 해협을 넘어 칼날 협곡 너머의 미지의 얼음 땅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마족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호친스 가문은 더더욱.


호친스의 이름을 가진 자가 마족이 일군 수많은 도시를 부수도록 손을 놓고 기다릴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도약을 팔아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으로 호친스 가문은 걷는 성이 숲을 해치고 나온 뒤로부터 줄곧 몇백년간 숲지기를 고용해 에르찬도를 공략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구조가 무너지고 바뀌고 뒤틀리는 걷는 성을,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이 걸리던 간에 멈추게 하리라는 것이죠.


마력으로 움직이는 갑주를 입고서 짙은 마력으로 비롯된 기괴한 이상현상과 있어서는 안될 괴물들과 싸우던 숲지기들은, 어느날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에르찬도에서 발견되는 물건은, 이제는 잃어버린 것으로 알려진, 그리고 더이상 만들수 없다 생각되는 마도구 - 아티팩트들이라는 것이죠.


이 소문은 순식간에 쥰-미르스는 물론, 옆의 위버틴 대륙까지 퍼지고, 곧 에르찬도는 모험가들의 성이 되었습니다.




명예에 죽고사는 마족은 새로운 아티펙트로 가문을 부흥시키리라 믿고 당도했습니다.


자기 말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 엘프는 알려지지 않은 복잡한 마도구를 직접 증명하고자 다가왔고,

 

복수를 다짐한 드워프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무기를 찾아 끝없는 복수에 종지부를 찍으리라 기대하며 찾아왔습니다.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목표를 가진 수인족들은, 알지못할 이유를 가지고서 칼과 방패를 들고 성으로 들어갔고,


심지어 디스 헤레토에 채 자리잡지도 않았을 인간들까지 기어와 일확천금을 노렸습니다.


물론 저게 모두의 이유는 아닙니다.


누구는 일확천금을, 누구는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해, 누구는 단순한 호기심, 또 누구는 엘 호친스를 물리치기 위해.


깊은 숲 속 들끓는 괴물의 목을 베고 끝이 보이지 않는 성의 위로 끊임없이 올라갔죠.




하지만 모든 모험가가 원하는 것을 쟁취할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험가의 운명은 때때로, 죽음으로 끝나죠.


그렇지 않더라도, 모험가의 운명이 밝기만 한건 아닙니다.


때로는 중과부적에 맞서 가진걸 모두 버리고 도망치기도 하고,


때로는 배신을 당해 등에 칼날이 꽃힌체 꼼짝못하고 도둑맞기도 하죠.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들이 잃어버린 물건은 신비한 아티펙트보다 더 값진 물건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이의 유품을 찾는 이도 있고, 가문의 가보를 찾는 이도 있습니다. 여기에 아티펙트 몇십을 사고도 남을 거금을 들이는 이들도 많습니다.




저, 레니 옥스하르트는 바로 그런 유실물을 찾아나서는 유실물 관리대의 대장입니다.


모두가 하려하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하는 관리대를 맡고 있죠.


그런 저에게는 긍지가 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았다면 그 어디든 못가는 곳 없고, 사람의 물건이 놓였다면 그 무엇이든 놓치는 것 없는,


찾지 못한 물건이 하나도 없도록.


그리고, 그러한 에르찬도 유실물 관리대는 지금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노련하고, 숙련되며, 다급한 이의 마음을 헤아릴줄 아는 사람들. 여러분만이, 사랑을 잊지 못해 잠못드는 이에게 안식을 줄 수 있습니다.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에르찬도의 오른쪽 다리 타조의 발 여관에서 레니 옥스하르트를 찾아주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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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쓰면 돼?"


난희가 물었다. 모집문이라기엔, 지나치게 긴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돈은 레니가 냈고, 요구도 레니가 했다. 책임은 난희에게 없었다.


"언제나처럼 고마워. 정말 예뻐! 이걸 공고하면 사람들이 모험가 대신 유실물 관리대가 되겠다고 난리를 칠지도 모르겠군!"


게다가 그 고용주는 결과물을 보고서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뭐라 왈가왈부할만한 여지는 보이지 않았다.


"좋아. 이걸로 여관에서의 빚은 갚았어."


단순한 모집문임에도 네장에 활자 가득한 종이를 레니는 받아들고는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훌륭해. 복사하고 붙이는건 내쪽에서 해결하도록 하지. 그런데, 정말로 그냥 갈거야?"


레니가 물었다.


"왜. 내가 그리워질까과 걱정이라도 되셔?"


난희가 이죽였다.


"그거야 당연한거지. 그래도 그것 말고도, 호친스쪽에선 네가…"


"네가 언제부터 걔들을 신경썼는데."


말을 끊으며, 난희가 입을 열었다. 아직 말투는 가벼웠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운 단호함이 있었다. 상관되고 싶지 않다.


"후. 글쎄다. 우리 아버지가 호친스 가문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열두 가문의 한 집안, 크로녹스의 하얀 마녀가 있으면 진짜로 정상까지 도달할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글쎄."


난희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그만 연관되고 싶어. 난 단지 이야기꾼이 되고싶을 뿐이라고."


"넌 이미 훌륭한 이야기꾼이야."


레니가 말했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선 진실이라는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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