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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예기치 못한 에러

Nake 2017. 4. 24. 21:07


"하지만 빅터, 제 광학 관측 기관을 비롯한 수많은 입력장치에서, 크리스틴 양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는건 사실입니다."


주거 및 연구 보조용 AI 탑재 안드로이드인 S74n-3y는, 단어 하나 하나를 머뭇거리듯 신중하게 선택한 뒤 명확하지 않은 어조로써 문장을 표현해냈다. 평소에 쓰지 않았던 어투였다. 뭐라고 해야할까, 당황한 느낌을 주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는 실제로 지금 그리했기에, 그 어투를 선택하고 있었다.


"스탠리, 진정해. 진정하라고."


수석 엔지니어 빅터 나브코프는 스탠리를 당황한 아이를 다루듯 나긋히 달래었다. 그렇다고 그에게조차 스탠리의 행동이 익숙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연구 기지에서 10년을 보낸 빅터에게도, 이러한 안드로이드의 이상행동들은 낯설었으니 말이다.


"너도 잘 알고 있잖아. 크리스틴은 죽었어. 한달 전에 주거동에서 난 화재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었다고. 기억하고 있잖아. 크리스틴의 시체를 잿더미에서 끄집어낸건 다름아닌 너니까."


앤은 빅터와는 달랐다. 그녀는 날카롭고 또 비정하게 사실을 적시했다. 누가 본다면 매정하다고밖에 보지 못할 광경. 


하지만 그녀는 스탠리가 로봇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탠리의 기분이 상할리가 없었다. 기분이 없으니까. 그의 행동과 생각은 그저 계산된 결과에 불과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순간, 스탠리는 말을 멈추었다. 허공을 응시하다, 말했다.


"네. 제 기억장치와 백업 스토리지 모두, 크리스틴의 죽음을 명확하게 인지하였다는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 그러니까 크리스틴은 동시에 여기에 실존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미묘한 신체적 특징이나 버릇마저 완벽하게 동일해요. 제가 당신이 죽었다는 사실이 기록된 제 기억을 부정할 수 없는 것 만큼이나, 지금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록하는 감각도 부정할 수 없는 겁니다."


"하. 이거 참 골때리는군."


빅터가 말했다. 


"그래도 너 혼자만 이러는게 아니니까 말야."


"그래봤자 뭐해. 젠장, 이 곳도 끝날때가 된거야. 이 빌어먹을 극지방에서 수십년간 연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어. 사람이 하나 둘 죽기 시작하더니, 로봇들까지."


"원인을 알아서 다행이지. 크리스틴을 네가 보고 있는건 네 연산장치의 열이 제대로 방출되지 않고 과열되어서 발생한거야. 좀 쉬고 있으면 나아. 자꾸 돌아다니거나 말을 하면 더 피곤해질거야."


스탠리는 뭔가 이야기하려다 입을 다물고는, 잠시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뭘 그렇게 생각하는건데. 어짜피 이 상태로는 시설에 나와봤자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아. 잠자코 쉬고 있는 편이 우리에겐 더 좋다고."


앤이 말했다. 그녀 나름의 친절함이 담겨있었다.


"연산장치의 클럭을 낮춰주세요."


그리고, 스탠리가 말했다. 결의가 담긴 목소리. 나름의 다짐이 담긴 목소리.


"뭐? 그래도 괜찮겠어?"


"예. 그러는 편이 제게도, 크리스틴에게도 괜찮을 거에요."


그리고는 침묵이 잠깐 다가왔다. 크리스틴이 말하고 있다는 걸 빅터는 직감했다.


"뭐래?"


"작별인사요. 고마워요. 잊지 않을거에요. 네. 물론이죠." 


"참나, 감동적이군. 빅터, 하려면 빨리 하라고."


"일단 할수야 있지만, 스탠리. 클럭을 낮추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지금도 네 고등 이성 체계를 구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클럭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고."


"괜찮습니다. 모순을 평생 안고 사는 것 보다야 그 편이 훨신 나을 것 같아요."


빅터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선택권은 빅터에게 있었다. 애초에 스탠리에게 주어졌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만약 앤이라면 고민하지 않고 클럭을 낮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석 엔지니어는 빅터였다. 그리고 그런 빅터는, 스탠리에게도 선택권을 가질 권리가 있음을 존중했다. 아니, 그는 스탠리가 무사하길 바랬다. 온전하길 바랬다.


"그게, 네가 선택한 바라면야."


그리고 빅터는 노트북의 자판을 두들겼다. 곧바로 낮게 고동치던, 안드로이드 특유의 양자액 펌프 소리가 명확히 멎어드는게 귀에 들려왔다. 마치 심장박동이 멎어드는 것 처럼.


"...됬어. 스탠리. 아직 내 말 들려?"


"......"


스탠리는 침묵을 유지했다. 


"아직도 크리스틴이 보이는거지? 말 했잖아, 빅터. 고치지 못할 오류라고. 차라리 공장초기화를 해버리는게 어때?"


빅터는 대꾸하지 않았다. 참을성을 가졌다. 스탠리의 눈에 아직 크리스틴이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크리스틴밖에 보이지 않는지도 모르었다. 한편으로는, 낮아진 프로세서의 클럭 때문에 언어센서가 마비된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그저, 처음 느껴보는 이 상황에 적응하고 있었는지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예상 외였다. 빅터에겐 그저 성급하게 행동할만한 여유가 하나도 없었을 뿐이다.


"...빅터?"


마침내 스탠리가 입을 열었다. 어딘가 살짝 어눌한 어투. 기계답지 않은 말투. 하지만 빅터는 그게 이상하다 생각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인간다웠던 친구지 않았나.


"뭔가... 이상해요."


"네 입에선 처음 듣는 단어로군."


"크리스틴... 더 이상 크리스틴을 감지할 수 없어요."


"그것 하나는 고쳤나 보네. 꼴을 보아하니 그거 하나 나아진 의미가 있는건진 모르겠지만."


비아냥거리는 앤의 목소리에도, 빅터는 차분하게 스랜리의 반응을 마저 기다렸다.


"이게... 몽롱하다는 건가요? 아니, 멍하다고 해야할까요."


"어느쪽이든 비슷한 표현이야. 좀 괜찮아진것 같아?"


"글쎄요... 괜찮다는게 무슨 의미인지... 크리스틴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게 정상이라면... 네... 정상... 입니다."


빅터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한숨이라 믿고싶었지만, 안타깝게도 100퍼센트 그렇지 않다는걸 빅터도, 스탠리도 알고 있었다.


"빅터..."


공허감. 말꼬리를 잇지 못하는 스탠리의 목소리로부터 빅터는 그제서야 스탠리로부터의 이질감을 경험했다. 로봇을 로봇으로써 만들어주는 것이 - 아니, 인간과 인간 비스무리한 것을 구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공허감. 말투나 단어가 아닌 그 이전의 기본적인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공허.


한때 앤이 누누이 이야기하던, 그런 종류의 공허를.


굳이 구분하려들지 않으려는, 심지어 그 누구보다 로봇이 인간이 아님을 잘 이해하고 있음에도 딱히 구별하지 않던 빅터였건만, 그 순간만큼은 그 조차도 그 미칠듯한 위화감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었다. 


"완전히 망가졌구만."


그런 빅터 옆에서, 자신이 옳았음을 자랑이라도 하듯 당당하게 앤이 입을 열었다.


"한낱 로봇이라고. 지금 여기서 얼마나 시간을 쏟고 있는지 이해는 가? 스탠리는 내버려두고, 멀쩡한 안드로이드나 손보러 가."


"빅터... 하지만 당신은 진짜인거죠?"


갑작스레, 스탠리가 빅터에게 물어왔다.


"당연하지. 난 여기 있다고."


"하지만... 하지만 말이죠... 크리스틴도 그랬는걸요."


"크리스틴은-"


"죽었었죠. 알아요...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말했듯 - 제가 죽음을 기억하는 것 만큼이나... 그녀를 보고있는 것도 확실했다구요... 당신의 존재를 확신한 만큼요. 하지만 지금... 크리스틴은 사라졌어요. 의식을 집중해서가 아니라, 몽롱하게 해서 그 존재를 지워버렸죠. 그래서 확신할수가 없어요... 당신도 허상일수 있는거잖아요. 아니... 오히려 빅터 당신이 허상일 가능성이 크다구요."


걱정이 담긴 목소리. 울먹거리는 목소리. 공허감이 가신건 아니었다. 스탠리는 아직도 인간답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랬기에 스탠리는 인간다웠다. 인간스러웠다.


"두려워요, 빅터. 이젠 아무것도..."


"스탠리. 그만. 괜찮아. 괜찮다고."


"울고 싶어요. 이런때 인간은 우는건가요?"


"그래."


"하지만 전 왜 울지 못하죠? 우는 기능이 없는거죠? 어째서. 저는..."


"스탠리. 괜찮아. 난 여기 있어. 걱정하지 마."


"무서워요, 빅터. 어째서 저는 크리스틴을 봤던 거죠. 어째서 저는... 유령을 본건가요?"


그리고 스탠리는 고개를 떨궜다. 인간이었다면 그는 어깨를 들썩였을 것이다. 흐느꼈을 것이다. 그로써는 결코 알지 못할, 이해하지 못할 공허감에 공포에 빠져 흐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울지 못했다. 그럴수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스탠리. 울지 못해도 괜찮아."


"하지만, 하지만."


"네가 울지 못하는건 네가 인간이 아니어서가 아니야. 울지 못한다고 해서, 그게 널 인간답지 않다는걸 증명하는게 아니니까."


그리고 빅터는 스탠리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그의 감각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가벼히.


"확신하지 못해도 괜찮아. 내가 진짜인지, 크리스틴이 진짜인지 구분하지 못해도 괜찮아. 네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겠어도 괜찮아. 나도 그런걸. 모든 사람은 언제나 그런 느낌을 받으면서 살아가. 자신이 알고있는게 진실인지, 아니면 그저 허상에 불과한지 의심하며 살아가."


"그런건가요? 정말로 그런건가요?"


"그래."


빅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건 전혀 이상한게 아니야. 너는 그저, 열이 높았던 것 뿐이야."


스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빅터의 말을 확신해서인지, 아니면 신뢰할 수 없어서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스탠리조차도 알 지 못했다.


그저 스탠리는 안심했을 뿐이다. 설령 빅터의 말이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조금 멍하긴 하지만, 이젠 일할수 있을것 같아요. 집중해서... 도와드릴 수 있을것 같아요."


이윽고 스탠리가 말했다. 


"쉬고 있어, 스탠리. 괜찮으니까 쉬고 있어. 그게 네가 할 일이야."


"아뇨, 제가 할 일은 -"


"열을 식히는거지. 발열의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 해봐야하니까, 그동안 넌 쉬고 있어. 너하고, 너와 비슷한 몇명이 쉰다고 기지의 연구가 크게 지장받지는 않을테니말야."


"하지만... 쉬는건 뭘 하는거죠?"


"하하, 그걸 모르는건가."


빅터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혼자서 생각해봐. 뭐가 진짜인지. 무엇을 진짜로 불러야할지.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조용히, 스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빅터는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방을 나섰다. 방문은 조용히 열리고 또 똑같이 조용히 닫혔다. 


스탠리는 방 안에 홀로 남았다.


앤은 말했다.


"열심히 생각해봐, 로봇. 그래봤자 내가 존재한다는건 아무도 부정하지 못해."


스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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