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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Seize the moment

Nake 2016. 8. 28. 00:36

그녀의 어께를 거칠게 밀치듯 힘을 주어 침대 위에 넘어트렸다. 그녀에겐 힘이 없었다. 아니, 힘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나만큼? 그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즐기고 있는 것 만큼은 확실했다. 조그마한, 하지만 천장의 새하얀 조명을 받고 반짝이며 비치는 연분홍색 립글로즈가 아름다운 반원을 그리며 미소짓고 있었으니까. 숨이 멎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너무나도 황홀했다. 

 

"어서."

 

두 어절. 서큐버스와도 같이 영혼을 사로잡는 짧고 간결한 공기의 울림이 고막을 향해 내달렸다.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먼길을 뛰어온 전령처럼 심장이 두근거려 손발이 떨려왔기에, 거칠게 그녀의 손목을 잡아 그녀의 머리 위에 고정시켰다. 이 상황조차 즐거운지, 그녀의 미소는 이를 드러내며 조금 더 커졌고, 내 마음은, 내 사랑은 배 이상으로 거대해져만 갔다.

"뭘 기다리는거야. 어서. 내게 와. 어서."

그녀가 말했다. 그녀가 내게, 나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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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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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맞추지는 않았다. 숨결이 뺨을 스쳐지나가는 미묘한 거리를, 나와 그녀는 만끽했다. 대신 살갗을 밀착시켰다. 그녀가 나의 의복이고, 내가 그녀의 의복인 것처럼.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하고만 거리를 유지한체, 나는 그녀를 향해 한없이 다가갔다. 그런 우리 사이를, 의복이 방해했다. 기분이 나쁠새도 없이, 나는 거칠게 그녀의 와이셔츠를 한손으로 뜯어 헤쳤다. 단추가 우수수튀어 침대 위에 튀어올랐고, 그녀의 눈동자가 매우 커지더니 더더욱 이 상황에 매료된듯 크게 웃으며 입을 뻐끔거렸다.

 

더. 더. 소리없는 아우성. 나에게만 들리는 그녀의 황홀한 비명.

 

손목을 붙잡은 손을 놓고 그녀의 등과 엉덩이에 팔을 두르고 그녀를 들어올렸다. 아직 하의를 벗지 않았지만 그 따위 옷은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을 것 마냥,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달아오른 내 사타구니에 마찰시켰다. 순간, 코 끝에 향기가 퍼졌다. 그녀의 냄새. 그녀의 향기.

 

얼마만인가. 아. 나는 얼마나 이 냄새를 잊고 있었나.

 

그녀의 촉촉하고 투명한 녹색 눈동자 위에 드리운 내 그림자가 점점 더 짙어져갔다. 얼굴이 가까워져감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입은 맞추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머리카락 냄새를 맡았다.

 

"뭘 망설이는거야, 게으름뱅이씨?"

 

그녀의 냄새를 맡는 내 귓가에, 그녀가 속삭였다.

 

---


의사가 말했다.

 

나는 경청할 수 밖에 없었다. 내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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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으름뱅이라고?"

 

내가 짖굳게 대답했다.

 

"이렇게 거친 게으름뱅이를 본적 있어?"

 

그녀가 작게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투명한것만 같은 그녀의 갈색 머리칼이 작게 날아올라 그녀의 입가에 내려앉았다. 땀에 젖은 피부 때문에, 그 머리카락은 흘러내리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작고 아름다운 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 뺨을, 나는 조심스래 어루만지어 그녀의 머리칼을 치워주었다.

 

"어머, 상냥하기까지해라."

 

작고, 한숨쉬는듯한, 달구어진 그녀의 속삭임. 나는 내가 지을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로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왜 키스하지 않는거야?"

 

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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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수술입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 성공률은 매우 적고, 시술이 가능한 의사 자체도 몇 없습니다. 저희 병원에서 그 수술을 시도해본 집도의는 한명도 없을 정도니까요. 물론, 보호자분께서 동의하신다면 국가기관에 연락해 해당 분야의 권위자이신 마이클 맥도날드씨를 부를수는 있습니다만, 그가 집도한다고 해서 성공하리라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저희 병원에 오는동안 환자의 상태가 더 악화될 가능성도 크구요."

 

의사가 말했다. 그가 입은 백의가, 그 말의 신빙성을 입증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물을수밖에 없었다.

 

"다른... 다른 방법은요?"

 

---


나는 눈을 감았다. 이 순간을 각인했다. 체온, 향기, 바람, 소리, 기분, 생각, 그 모든걸 주름진 분홍색 단백질 덩어리에 박아넣었다. 결코 잊지 않도록. 결코 놓치지 않도록. 

 

그리고 다시 눈을 떠, 그녀의 뒷통수를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머리칼이, 향기롭게 물결치는 그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를 간질여왔다. 살짝 젖은 땀조차도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너무나 황홀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나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내 영혼을.

 

"해줘."

 

그녀가 말했다.

 

"키스해줘."

 

어쩔수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


"다른 방법은, 그녀를 업로드하는겁니다. 시험적인 시술이지만 성공률이 높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업로드한다구요? 컴퓨터같은데 말입니까?"

 

"예."

 

---


그녀의 입술은 앵두맛이 나지 않았다. 상큼한 체리맛도 아니었고, 달콤한 딸기맛도 아니었다. 그녀의 입술은 그녀의 맛을 띄고 있었다. 오롯이 그녀만이 낼수있는, 미지근하면서도 끓어오르는 그녀의 타액의 맛을 띄고 있었다. 이와 이가 부딛쳤지만, 개의치 않고 나는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나의 타액이 그녀에게 섞이고, 그녀의 타액이 나에게 섞였다.

 

나는, 감사하며 침을 들이삼켰다. 처음부터 내것이었던 것처럼. 탈수 직전의 방랑자처럼. 그녀의 입을 혀와 입술로 비틀어 열고 그 속의 숨결까지 모두 앗아갔다. 와중에, 그녀또한 나의 숨을 앗아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죽이며, 또 서로를 살려나갔다.

 

여느 사랑하는 이들이 그리하는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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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양자 컴퓨터에 그녀의 의식을 업로드해도, 그녀 혼자서는 결코 버티지 못합니다. 때문에 저희는 당신의 의식까지 업로드해야합니다."

 

"저말입니까?"

 

"네. 컴퓨터에 업로드된 순간, 그녀는 혼자 남을거에요. 안정화된 그녀를 치료할 완벽한 방법을 찾아나서는 동안의 고독을 그녀 혼자 견딜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녀는 완치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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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겹친 입술을 떼었다. 거친 숨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나도 웃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


"네. 다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뭐죠?"

 

"컴퓨터상의 공간은, 두명이서는 비좁습니다. 갑자기 과도한 정보를 처리하게 될 경우, 컴퓨터는 오작동을 하고 초기화되게 됩니다. 심신이 멀쩡한 당신은 지속적으로 육체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테지만, 환자의 경우엔 경우가 다릅니다."

 

의사가 침을 삼키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과도한 정보, 다시말해 급격한 감정 변화등을 체험하게 되면 그녀의 기억이 초기화될겁니다. 처음으로 돌아가는거죠. 그 세상은 그녀의 세상이기에, 다른 모든것도 처음으로 돌아갈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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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을 뜨자, 세계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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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절 잊게 된단 말씀이신가요?"

 

"네."

 

숨을 멈췄다.

 

"영원히요?"

 

"그건 아닙니다. 컴퓨터 안에서만요. 그게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하면, 그녀는 낫는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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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세계 끝에, 그녀가 앉아있었다. 

 

생소한 무언가를 보는것처럼, 나를 바라보며.

 

나는 미소지었다. 처음부터 시작이다.

 

비록 무너질 것임을 잘 알지만. 

 

다시 시작이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을 즐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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