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의 무개념 분지

구름 쫓이 1 본문

소설

구름 쫓이 1

Nake 2016. 7. 10. 04:54





비는 소년이 태어나기 전부터 쉬지 않고 내리던 것이라고, 어른들은 소년에게 가르쳤다. 


어째서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니, 대모라면 알법했지만 그녀는 언제나 침묵을 고수했다. 그리고 마치 이 영원한 비가 태초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세상을 다루었다.


침묵의 이유조차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살아가는 것 조차 고달팠다. 눈 앞에 쉴새없이 비가 내림에도 목을 축이는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고, 숲의 잔해를 따라 쉬지않고 움직임에도 굶주림에 언제나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살아있는 것 자체가 난관인 이들에게, 이유를 묻는건 불필요한 사치나 마찬가지였다.


소년에게 그런 삶은 일상이었기에, 그 또한 대모에게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또한 그 삶이 일상이었기에, 소년은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사치를 부릴 여유가 있었다. 고난 속에서도, 이유를 상상할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소년은 땅을 파해치는 뒤지는 매일의 일과를 반복하면서도, 저 비가 어디서 온 것일까 상상하고는 했다. 


아니, 사실 소년이 상상하던건 비 그 자체였다. 시선을 가득 채우는, 푸른 하늘 정 중앙을 가로지르며 수직으로 곧게 선 비구름과 그 아래 그림자와 비를 쉴새없이 쏟아내는 장관을 날때부터 보아온 소년이었건만, 그럼에도 한번도 경험한적 없는 비를 상상했다. 소년은 쉴새없이 쏟아지는 차가운 물줄기가 자신의 떡진 머리칼과 먼지 투성이의 어께를 타고 온몸을 촉촉히 적시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랬다. 소년은 사막에서 살았다. 사실 모든 사람이 사막에서 살았다. 이 세계엔 사막 아닌 곳이 없었다. 저 쉴새없이 쏟아지는 물줄기는 지면과 닿는 그 순간 매마르고 갈라진 탐욕스런 지면 밑으로 순식간에 스며들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소년이 사는 사막은 구름의 그림자를 벗어난 머나먼 사막이었다. 비라고는 시선과 상상속에서밖에 존재하지 않는 사막이었다. 왜 이 곳에 사는지에 대해서만큼은, 대모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추방당했단다. 구름 외곽에 사는, 이슬비를 맞는 사람들로부터 추방당했지. 먹을게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실제론 그게 아닌걸 난 잘 알아. 우리가 쫓겨난건 우리가 불필요해서야. 기억하거라. 결코 불필요해져서는 안돼."


소년은 그 말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렇게 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외곽의 사람들은 결코 뒤를 보지 않았다. 천천히 움직이는 비구름을 놓쳐서는 안되기도 했거니와,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누군가가 횡단한다는건 말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반적이라면 산도 협곡도 하나 없는 완연한 지평선 저 너머에서 걸어오는 이방인을 발견하는건 어렵지 않았겠지만, 정작 이방인을 외곽의 사람들이 발견하게 된건 하늘 한켠이 붉게 타오르는 해질녘이 되어서였다.


"다른 곳에서 왔습니다."


이방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당연하게도 대모는 그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가 주민들을 위협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대모는 이방인을 받아들였다. 


"물을."


대모가 말했다. 실금이 얇게 난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푸르스름한 물을 받아든 이방인은 이내 그 물을 맛있게 들이켰다. 살짝 비렸지만, 그럭저럭 마실만한 물이었다. 아마 정수하지 않은 빗물이리라고 이방인은 짐작했다.


"사막을 건너신 건가요?"


대모가 물었다. 깊게 패인 수많은 주름에 비해 젊고 활기넘치는 목소리였다. 놀라운 일이라고, 이방인은 생각했다. 멸망한 세상에선 더더욱. 세상이 모두 죽음에 이르면 많은 이들이 본디 나이보다 더더욱 늙어보이게 되는 법이니까.


"아뇨."


이방인은 담담하게 대모의 질문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이방인은 한 남자가 다가와 무거워보이는 그녀의 배낭과 총을 맡는다는 제안을 조심스럽지만 상냥한 손짓으로 거절했다.


"전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 곳에 도달한게 아닙니다. 그러니 어디에 낙원이 있는지 말씀드릴수는 없어요."


"희망을 꺾는군."


대모는 웃으며 말했다. 진실이었지만, 농담과 다를바가 없었다. 직설적인 이방인 탓이었다. 종말과 타협한 이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지 않는, 이방인 나름의 배려. 이를 이해한 사람에게 진실은 지독한 유머와도 같아 웃지 않고서는 넘어갈수 없었다.


"그것보다 중요한건 제가 왜 이곳에 왔는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직설적으로 이방인이 화제를 돌렸다. 이방인은 직설적인 것을 좋아했다. 정확하게는, 번잡한 일을 싫어했다. 시간은 금과도 같았다. 이방인은 그 말을 좋아했다. 금이 더이상 예전만큼의 가치를 갖지 않았음에도, 그 말을 금언으로 삼으며 이방인은 시간을 언제나 절약하려 했다.


"전 한 남자를 찾고 있습니다." 


"어떤?"


"스무살 즈음의 청년입니다. 살가운 인상에, 키는 170 후반, 긴장감 없는 성격에 공상가 기질이 있는 남자죠."


멈칫. 이내 대모는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이유가 중요한가요?"


맞는 말이었다. 이유는 불필요한 사치였다. 대모는 주저하지 않고 다음 물음을 꺼냈다.


"대가는 뭐지?"


"제가 가진 것 중 아무거나 드리겠습니다. 여기서는 결코 구하지 못할 물건들을 잔뜩 가지고 있죠."


"예를 들자면?"


이방인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나이프. 한손에 쥘수 있는 크기의 손잡이와 비견해 살짝 더 커다란 날을 가진 나이프였다. 금속 칼집에 새겨진 거친 흠집들이 몇번이고 이방인의 목숨을 구해낸 나이프의 과거를 말하는 듯 했다. 


"저 거친 빗 속에 들어가 몇명의 목을 베어 넘기더라도 결코 날이 무뎌지지 않는 나이프입니다. 철과는 다른 금속이 쓰였기에, 이 세계에서는 구할 수 없을거라 장담합니다."


그리고 이방인은 가방을 내려놓고 그 안에서 작은 주머니 또한 꺼냈다. 그 안에 들어있는건 갈색을 살짝 띈 식물의 조각들이었다.


"칼이 필요 없으시다면 음식이 있습니다. 이 식물은 약간의 습기만 제공한다면 그 어떤 거친 토양에서도 자라나는 뿌리 식물입니다. 맛은 그렇게 좋지 않지만, 안정적으로 많은 양의 식물을 수확할 수 있죠. 절 도우신다면 이 뿌리와 재배방법 모두 알려드리겠습니다."


대모는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나이프를 들어 칼집에서 날을 꺼냈다. 날 또한 많은 흠집이 나있었지만, 날만큼은 그 어떤 칼에 비할수 없을만큼 날카롭게 서있었다. 칼 자체의 기술력도 있겠지만, 주인의 애정과 집념또한 보이는 듯 했다.


"좋군."


나이프를 내려놓고 주머니에 다시 손을 뻗었다. 모습조차 잊어버린 감자를 무심코 떠올리게 만드는 식물이었다. 색, 감촉, 향, 그 모든 것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감자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기억은, 이제는 잊고있었던 허기를 다시 깨닫게 만들었다. 무심코 씹어삼킬뻔한 식물조각을 주머니에 되넣고, 대모는 그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받을 수 없어."


대모는 말했다.


"어디에 있기에 그런 말을 하는거죠?"

 

이방인은 말했다.


"무슨 소리지?"


"받을 수 없다는건, 제가 말한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지만 말할수 없거나 말해도 찾아갈 수 없는 곳에 있다는 의미니까요."


대모는 웃었다. 이제는 대모조차도 이방인이 직설적인 말을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불필요한 문장을 버리고서 바로 다음 문답으로 넘어가버릴 정도였다. 너무 빨라 뒤따라가기도 벅찰 정도였다.


"내 생각은 조금 달라."


"뭐죠? 이게 만족스럽지 않다는 뜻이라면,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만한 다른 물건들도 많아요."


이방인이 물었다.


"아냐. 보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야. 나는 그것보다 다른 보상을 떠올리고 있었어."


"말해보세요."


"날 그 청년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줘."


대모는 그리 말하고 마른 침을 삼켰다.


"그 말은 여기에 그 남자가 없다는 뜻인가요?"


"그래."


대모는 말했다.





"비구름 바로 밑은 아무도 살수가 없어. 쉴새없이 내리는 비는 상식 수준 이하라, 아무런 준비 없이 들어갔다간 익사하기 일쑤니까. 그 외곽으로 나아가면 모다깃비가 내리는 곳이 있지. 빗줄기가 세지만 그래도 숨막혀 죽을 곳은 아니라 그 밑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좀 있지. 하지만 그들도 그 곳에서 살지는 않아. 빗물을 모으거나 구름이 움직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들어갈 뿐이야. 


그곳에서 조금 더 나아가야 비로소 햇볕이 조금씩 비치기 시작해. 빗줄기도 약해지고, 견딜만해지지. 지붕을 얹은 차라면 무리없이 버텨내는데, 그걸 사람들은 단 비가 내린다고 말해. 그늘 밑에 사는 사람중 상당수가 그 구역에서 살지. 단 비가 내리는 곳에선 네가 오면서 본 양치류 식물도 자라나니, 그 식물이 적당이 크길 기다렸다 수확하는건 그들의 몫이고. 


바로 그 외곽, 이슬비가 내리는 곳이 있어. 저 군락의 왕이 사는 곳이지. 매마르지도 않고, 축축하지도 않은 바로 그 곳에서 호위호식하는 상류층들. 사람의 생사를 가르는게 그들이야."


"그리고 당신은 햇볕을 받는 추방된 자구요."


"이해가 빠르군."


구름을 향해 가까워져가는 차 안에서, 이방인이 고맙다는 듯 대모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들이 대체 무슨 이유로 당신과 절 받아들일까요?"


"난 모르겠지만 널 받을 이유는 정말 많지. 자신들에게 없는걸 부러워할만한 여유를 가진건 녀석들 뿐이니까."


"흠."


이방인은 정면을 바라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이슬비를 맞는 자들은 그 이를 받아준거죠?"


"그 이?"


"그러니까 그 남자요."


석연치 않은 단어였지만, 대모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


"햇볕을 받는 자들은 추방된 자들이라면서요. 그렇다면 그 남자도 추방당한게 아니었던건가요?"


"아. 그 녀석은 아냐. 그 녀석은 추방된 자들 사이에서 태어났을 따름이지, 녀석 자체가 추방됬었던건 아니니까. 햇볕 아래서 맡은 바를 다하고 싶다는 녀석의 바램을 마다할 정도로 이슬비를 맞는 녀석들이 꽉 막힌것도 아니고."


대모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호쾌함마저 느껴지는 미소였다.


"그게..."


"몇년 전이야. 정확하겐 몰라. 날을 세는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그렇긴 하죠."


그리고 잠시 차 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거친 엔진음과 타이어에 짓밟혀 으스러지는 흙의 소음, 그리고 거대한 비구름에서 들려오는 웅장한 빗소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돌릴 필요가 없을 듯한 헨들을 굳게 부여잡고 앞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던 대모는 점점 더 가까워져가는, 거대해져가는 비구름을 보고는 숨을 넘겼다. 그렇게 쉴새없이 나아가다, 이윽고 비구름 외곽에 사는 자들이 살만한 호화로운 버스의 윤곽이 보이자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더 긴장이 들어간 목소리였다.


"하나만 물어보지."


"뭔가요?"


그런 대모에 비해, 이방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네가 방금 제안한 것들... 그건 네게 중요한 것들 아닌가? 없어서는 안될 것들?"


"뭐 그렇긴 하죠."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이방인은 답했다. 


"하지만 그 이를 구할수만 있으면, 필요없어질 물건들이에요."


대모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녀석과 무슨 관계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수도 없을 것만 같았다.


애초에 이유가 궁금하지 않았다. 대모는 본디 그런 사람이었다.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Seize the moment  (0) 2016.08.28
Space Oddity  (0) 2016.07.24
"그래요. 그건 저였습니다."  (0) 2016.07.06
장례 이야기  (0) 2016.07.03
바스러지다  (0) 2016.07.0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