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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칼럼

GTIL : 앨런 웨이크(Alan Wake)

Nake 2015. 4. 5. 19:35




세상에 이야기가 하나 만들어질때마다,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탄생합니다. 대체역사를 배경으로 하건, SF를 배경으로 하건, 판타지로 하건, 이야기는 그 세계에 종속되어 진행되죠. 하지만 게임이나 소설, 만화같은 오락물에서 세계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오락물에 있어서 중요한건 이야기 그 자체일 뿐, 세계는 뒷전입니다. 때문에 후속작이 나오고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계의 모습을 조금씩 엿볼 수 있지만, 정작 이야기의 내용엔 그 사실이 반영되지 않거나 모순되는 일이 벌어지고는 합니다. 세계란 결국 이야기꾼의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죠.


그래도, 이야기속의 세계에 매료된 사람들이 수없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소비자들은 이야기가 펼쳐지며 떨어진 힌트조각을 모아 거대한 그림을 그리려고 하죠. 비록 올바르지 않더라도, 거대한 그림을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해하고는 합니다. 때문에 이런 오락물의 경우 많은 팬들 - 적어도 단단한 지지 기반의 고정 수요자가 생기고는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적어도 게임에 있어서는 많은 게임들이 거대한 세계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메스이펙트의 바이오웨어가 바로 그렇죠. 그들의 게임만 봐도 그들이 RPG의 광팬이라는걸 알수 있으며, 그래서인지 바이오웨어의 게임들은 수많은 설정들로 가득합니다. 심지어 플레이하거나 아주 잠깐 등장하는 종족에 대한 설정도 자세히 존재할 정도니까요. 관련된 설정은 코덱스에 저장되어, 이를 읽는것 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만약 그것을 출력하면 두꺼운 책 한권정도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방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뭐랄까, 폭력적이에요. 게이머에게 이 설정을 강제로 읽도록 강요하는 느낌이 드니까요. 물론, 읽지 않아도 상관은 없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요. 그래도 저는 이것보다는 좀 더 자연스러운 방법을 좋아합니다. 컷신이 좋은 방법이자 게임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플레이어가 그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유로 선호도가 낮아지는 측면이 있긴 하죠.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QTE등의 요소도 집어넣고는 하지만 상당히 시들시들 하구요. 


그런 점에서 앨런 웨이크는 대단한 게임입니다. 물론 앨런 웨이크에 컷신이 없는건 아닙니다. 문서로 된 설정도 널려있구요. 하지만, 앨런 웨이크에서 세계의 힌트를 흘리는 방법은, 즉 세계를 생동감있게 만드는 요소는 바로 대화입니다. 진짜 사람과 대화하는 듯 한 자연스러운 대화와, 그 속에 포함되어있는 수많은 은유들이 말이죠. 우게리에서 몇번 이야기했었는데, 앨런 웨이크의 주인공 앨런은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합니다(물론 적과 하지는 않지만요). 특히 대화가 많은데, 컷신과 다르게, 게임 내부에서는 이 대화를 강제하지 않습니다. 지나쳐도 될 만큼, 오히려 지나쳐버릴만큼 가볍게 대화가 진행되죠. 하지만 만약 그 사람 옆에서 계속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으면, 앨런은 다른 사람에게 다시 말을 합니다. 


이 과정은 정말 자연스럽고 단순하지만 뇌리에는 깊숙히 남게됩니다. NPC들은 단순히 기계처럼 말만 하는게 아니에요. 이 게임의 제작자 샘 레이크는 억양이나 말투, 그리고 수많은 은유들로 말 한마디에 많은 의미를 담아냅니다. 비언어적/언어적 요소를 마음껏 사용해서 말이죠. 그리고 그 말에 반응하는 앨런 또한 상대방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 의해 앨런이라는 캐릭터가 조금씩 드러나게 됩니다. NPC란 세계를 이루는 가장 기본인데, 그 NPC를 어떠한 글로 쓰여진 프로필이 아닌 말로써 풀어내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방법이에요. 우리가 실제로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도 비슷하지 않나요?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싶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기록을 보기보다 먼저, 그 사람에게 직접 말을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우리에게 다시 대답을 하구요. 그 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어던 대답을 해야하는거지?"라고 마구 궁리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대화할때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생각으로 비롯된 대답을 이야기합니다. 그 대답은 짧지만, 경청하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말을 더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나 낯선 사람에게 긴장을 많이하는 사람이고, 고급스러운 어휘를 사용하는 사람은 높은 학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외국어를 섞어서 사용한다면 그 사람이 외국에서 오랜 세월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억양을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의 출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 한마디에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고, 앨런 웨이크는 바로 그 정보를 말 속에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방법을 위해선 대사를 잘 짜야합니다. 플레이어가 지루하지 않을만큼 간결하고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충분한 의미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제공해야 하니까요. 그 방면에서 샘 레이크는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매력적이고 천재적인 문학적 표현들은 이미 맥스페인에서도 훌륭하게 묘사되었었고, 앨런 웨이크에서 더욱 더 빛을 발합니다. 아니, 앨런 웨이크라는 게임은 샘 레이크의 놀이터나 다름없어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작가라는 앨런의 아이덴티티를 훌륭하게 살림과 동시에 레이크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요소과 대사를 모두 집어넣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써 아름다운, 하지만 수많은 비밀을 담고있는 마을, 브라이트 폴즈가 만들어진 것을 생각하면 저는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요즘 게임들은 수많은 컷신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화려한 효과가 모든 것에 앞서 존재하지는 않나, 라고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말 한마디로도, 아주 짧은 등장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기고는 한다는 점에서, 컷신은 오히려 불필요한 요소일지도 모르구요. 물론 어느 하나가 정답이라고는 이야기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저는 앨런 웨이크가 좋습니다. 모든 것을 컷신으로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는 대신, 대화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그 세계, 저는 그 세계가 있는 앨런 웨이크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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