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의 무개념 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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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ke 2015. 6. 19. 19:51




https://twitter.com/zerofeet/status/611501050193784832/photo/1 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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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무척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이었다. 꽤나 자주, 함께 같은 게임을 하고는 했는데, 던전크롤은 내가 어렸을때부터 함께 해오던 게임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따라 게임을 하곤 했던 나였지만, 아버지만큼의 팬은 아니어서, 그의 실력을 넘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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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을까, 아버지의 병이 위독해지신 뒤로는 게임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손을 놓게 되었다. 내가 다시 던전크롤에 손을 댄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였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그의 서재에 들어섰지만, 왠지 모르게 다른 유품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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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전원이 켜지고, 전세대의 OS 부팅 스크린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던전크롤을 켜들었다. 정신을 차렸을때, 나는 'poweraaa'라는 이름의 적을 마주했다. 한턴, 단 한턴뒤면 죽일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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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아버지가 자주 사용하던 아이디였다. poweraaa, powerbbb. 파워가 앞에 붙은, 이상한 아이디. 그게 뭐라고, 나는 숨을 죽이고 픽셀로 이루어진 조악한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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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턴뒤, 그 유령을 죽이고 나서야 나는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할 수 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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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키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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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년전의 열화된 하드 디스크를 발굴하던 도중, 복원을 끝냈는데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데이터가 나와 할수없다는 심정으로 프로그래머를 불렀다. 그의 표정이 환해지더니 작게 감탄했다. 정말 아름다운 아스키 아트라고 중얼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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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석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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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키아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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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으로 향하는 셔틀 안에서, 무심코 창문 밖을 바라보자 누군가가 수많은 인공위성을 나열시켜놓고는 내 이름과 사랑해라는 이름을 표시하도록 세팅해놓았다. 순간 쏟아진 주목에, 얼굴이 빨개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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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그 주인공을 찾아가 정중하게 거절하느라 고생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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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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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상상과 기대 이상으로 사람들의 우연과 실수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그 우연이 사실은 창작자들의 치밀한 계획하에 치뤄진 필연이라는 것을 편집자가 알아차렸을땐, 이미 너무 늦어있었다. 더이상의 통제는 불가능했다. 마감펑크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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