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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종말 이후의 문법과 매드 맥스

Nake 2015. 5. 26. 12:00



포스트 아포칼립스(이하 PA) 세계는 흔히 야만과 폭력의 세계로 그려진다. 전쟁 이전의 세계, 즉 구세계의 이기가 갖가지 이유로 파괴된 세상은 더이상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원초적인 힘을 추구하는 것이다. 때문에 사실 PA 장르에서 악인, 혹은 야만인으로 그려지는 인물들은 사실 종말 이후의 신세계에서는 지극히 일반적인 인물들이며 오히려 해당 세계의 문법으로는 정상적이고, 또한 이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런 신세계의 사람에 반해, 희망을 가지고 저항하는 이들은 구세계의 잔재를 끌어안고 그 문명을 다시 세우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신세계의 문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며, 또한 파멸적인 신세계의 풍경이 구세계의 끝없는 발전으로부터 비롯된 결과라는 점에서 이미 구세계의 문법 자체에 결국 부서질 미래가 내포되어있다는 점에서 덧없는 희망이다. 하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저항하고 구세계의 문법을 구사하는 문명을 다시 세우려 한다. 왜? 그것은 바로 그들이 사람답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생존이 아닌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은체 더 나은 미래를 희망한다.

이런 두가지 다른, 구세계와 신세계의 문법을 구사하는 자들의 충돌은 수많은 PA 장르 작품군의 핵심요소라고 보아도 된다. 같은 대상을 보고 서로 다른 문법으로 이해하는 그들은, 숙명적으로 충돌할 수 밖에 없다. 매드맥스 2:로드 워리어(이하 매드맥스2)를 보자. 여기서는 석유라는 문명의 잔재를 두고 두가지 세력의 충돌을 다루고 있다. 휴몽거스가 이끄는 폭주족들은 충실하게 신세계의 문법을 통해 그 잔재를 소비하려하고 있다. 당장 오늘을 살아야 하는 그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원동력은 바로 기름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석유를 갈구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소비보다 생산이 우선하는 구세계의 문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만약 그들이 구세계의 문법을 이해했다면, 자신들이 유전을 차지해 석유를 생산했을 테지만, 그들의 문법은 기존의 문명의 잔재를 소화하고 소비하는 것만을 우선으로 하는 신세계의 문법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대안이고, 동시에 유전을 점거한 공동체를 포위할 수 밖에 없다.

폭주족과 다르게 구세계의 문법을 구사하는, 희망을 품은 자들, 파파갈로가 이끄는 공동체는 그 석유를 이용해 먼곳으로 떠나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려 한다. 그들은 이 멸망한 세상에서도 문명의 잔재을 복구할수만 있다면 다시 찬란한 과거, 혹은 그 비스무리한 환영만이라도 이룩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들은 신세계의 문법앞에서는 한없이 약자일 수 밖에 없다. 구세계의 문법은 이미 실패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세계의 문법이 새로 만들어졌을리가 없지 않은가.

또한 그들은 단순히 야만적이고 폭력적이지 않다. 오히려 폭주족의 리더 휴몽거스는 극 중에서 매우 이성적으로 그려진다. 냉병기 시절 매우 유효했던, 적을 포위하고 말로써 회유함과 동시에 도망치는 자를 고문해 공포를 심어주는 전술을 휴몽거스가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를 매우 잘 알 수 있다. 그렇게 지적인 인물조차 신세계의 문법을 구사하는 세상에서 구세계를 희망하는 이들은 구세계가 그렇듯 서서히 말라죽어간다. 바로 그 지점에서 맥스가 등장한다.

맥스라는 인물은 사실 1편을 제외한 다른 시리즈에선 전혀 변화하지 않는다. 성장하지 않는다. 그는 1편에서 완성된 캐릭터이고, 그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어떤 캐릭터나 인물로써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신화의 영웅이나 극의 장치와도 같은 역할로써 존재한다. 인풋이 존재하면 그에 상응하는 아웃풋이 나올뿐, 그 자신은 결코 외부의 사건에 영향받지 않는 인물이다. 때문에 그가 새로운 세계에서 어떤 문법을 구사하는지 알기 위해선 1편의 맥스를 봐야한다.

1편의 세상은 그 이후의 매드 맥스 시리즈와 비교했을때 세상이 '덜 망했다'. 그래도 아직은 문명을 수호하려는 이들이 존재하고, 사회 인프라가 작동하지만, 동시에 폭주족이 도로를 활주하며 사람을 약탈하고 살인을 저지른다. 신세계가 구세계를 천천히 갉아먹고있는 과도기적 시대인 것이다. 그 시대에서 맥스는 경찰로써, 구시대의 문법을 구사하고 또 이를 수호하는 의무를 지닌 인물이다. 하지만 극중에서 그는 동료의 죽음으로 구세계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사표를 낸다. 그렇게 신세계로부터 쏘아지는 구세계를 향한 직격탄을 피하려는 맥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세계의 폭주족들은 그를 따라잡아 가족을 죽인다. 그 순간 맥스는 미쳐버리고 만다. 아니, 구세계의 문법을 포기한다. 그는 스스로 구세계의 문법의 한계를 체험했고, 신세계의 문법을 통해 복수를 실현한다. 그는 구세계의 한계를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그렇기에 신세계의 문법을 선택한 인물인 것이다. 때문에, 그는 한없이 다른 폭주족들, 그러니까 토-커터, 휴몽거스와 유사한 인물이라는 이야기다. 

맥스가 수많은 작품에서 희망을 품는 사람들을 구원해놓고도 그들과 합류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는 종말 이후의 세계에서 구세계의 환영이 존속하기엔 많은 무리가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다. 파파갈로의 공동체가 석유를 가지고 떠난다 할지라도, 그 석유가 전부 떨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하수를 끌어쓰는 시타델을 전복한다 할지라도, 물이 오염되지 않고 또 무한히 영속하리란 보장이 있는가? 녹색의 땅의 재림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그 가능성에 그는 구세계를 등지고, 자신이 그 누구보다 잘 구사하는 문법이 통하는 신세계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가지 질문을 던질 수가 있다. 휴몽거스나 토-커터와 달리, 어째서 그는 신세계의 문법을 구사하면서도 멸망할 미래를 스스로 가지고 있는, 희망을 품는 자들을 구원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맥스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다른 이를 구원하는 이유는, 맥스는 결코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보다 신세계의 문법을 유려하게 구사하면서도, 타인에게 자신의 문법을, 세상의 문법을 따르길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의 필요에 의해 타인을 돕는 과정에서 결코 어떤 방식을 해야한다고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2편에서 맥스는 기름이 필요함에도 파파갈로를 약탈하려 하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또 빠른 차를 가지고 있지만, 그는 그 힘을 이용해 파파갈로를 도울 뿐이다. 그 힘은 오히려 똑같은 문법을 구사하는, 그리고 그 문법을 맥스를 향해 구사하는 폭주족을 향해서만 구사된다. 그의 문법은 그를 해하려는 자에게만, 자신의 문법을 강요하려는 자에게 대해서만 구사되는 것이다. 

때문에 모든 것이 끝나고 공동체를 뒤로한채 떠나는 그의 모습이 공동체 사이에서 이후 신화가 되고 또 전설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순리다. 압도적인 실력을 가졌음에도 이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맥스는, 문법을 떠나 위대한 것이다. 그는 인간적이다. 파파갈로의 공동체가 구시대의 문법을 선택한 것은 인간답게 살고싶기 때문이었고, 신세계의 문법을 구사하면서도 인간적인 맥스는 초월적인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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