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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오버워치와 경쟁전 - 우리는 왜 고통받아야 하는가

Nake 2016. 7. 1. 04:41



며칠 전 오버워치에 경쟁전이 도입되었습니다. 이제 표기되지 않는 자체적 MMR수치로 매칭되던 일반 게임을 벗어나 자신의 객관적인 실력을 남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는거죠. 단순한 '내가 잘한다'의 신빙성 없는 주장을 떠나, 블리자드가 보장하는 지표를 통해 남에게 실력을 자랑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러한 경쟁전은 일견 게임플레이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미치는 듯 합니다. 이제 게임플레이의 승패가 남들에게 보이는 지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에, 자신만의 즐거움을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도 팀 전체의 승리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들고 이를 위해 배려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하는거죠. 더욱이, 경쟁전은 자기만족과 과시 이외에도 플레이어에게 보상을 줍니다. 위와는 다르지만 조금 더 확연하며 눈에 띄는 보상. 다시말해 인게임 아이템을 통한 보상이죠. 


이러한 여러 요소의 존재로 인해, 경쟁전의 게임은 빠른 대전의 게임 이상의 경쟁심을 플레이어로 하여금 추구하게 만듭니다. 오버워치가 MOBA - 온라인상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경쟁하는 투기장이라는 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경쟁심을 유발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경쟁이란 근본적으로 게이머가 추구하는 요소중 하나니 말이죠.


하지만 이런 경쟁전의 도입 이후 불만섞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기존 MOBA 게임을 그렇게 즐겨하지는 않았던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네. 물론 이들이 불평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경쟁이 주가 되는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분명 그들의 비판은 유효하고 들을 가치가 있습니다. 엄밀하게 그들이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구요. 무엇보다, 경쟁전 - 다시말해 '플레이어의 실력'을 지표로 삼아 경쟁심을 불러 일으키는 수많은 게임들의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글에서 그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일단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명확하게 언급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MOBA 장르를 플레이하신 분들이라면 매우 친숙해 하실 'Elo 레이팅'이 그것입니다. 체스 플레이어간의 객관적인 실력을 숫자로 나타내기 위해 도입된 이 점수는, 단순한 승패로 매기는 점수가 아니라, 같이 플레이한 플레이어에 따라 상대적인 수치를 매겨 경감하는 수치입니다. 다시말해, 낮은 레이팅의 플레이어가 높은 레이팅의 플레이어에게서 승리를 거두었다면, 동급의 플레이어에게서 승리를 거두었을때보다 더 많은 수치의 점수를 획득하게 된다는 거죠.


단순하지만 명확한 이 Elo 레이팅은 각각의 플레이어의 실력을 명확하게 나타내는 지표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플레이어가 어떤 사람과 대결을 해야 동등한 대결을 즐길 수 있을지 참고할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했죠. 때문에 매치 메이킹을 통해 무작위적인 상대방을 주선해 게임을 진행하는 수많은 멀티플레이어 게임들은 이러한 Elo 레이팅을 이용하거나 참고해 변형한 형태로 수치화해 매치 메이킹 시스템에 적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형태의 매치 메이킹은 많은 이들에게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플레이어가 언제나 비슷한 실력의 상대방과 경쟁하게 되어 자신이 언제나 지거나 이기지 않는다는 느낌을 제공하기 때문이 큽니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자신이 공평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고 믿게 되며, 게임에 대한 플레이어의 신뢰를 증대시키게 만들었죠.


더욱이 이는 더욱 더 신뢰할수 있는 실력의 지표로써 영향력을 미치기도 합니다. 현실에의 대리만족으로써 게임을 평가한다는 관점에서 보았을때, 부조리하고 불공평한 외부 요소가 수없이 개입되는 현실과 달리 게임의 레이팅은 오롯이 플레이어의 개인 실력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외부적인 도움 없이 스스로가 레이팅을 올렸을때 비로소 게이머는 자신의 성취감에 대해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뿌듯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근래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이런 Elo 레이팅을 기반으로한 레이팅 시스템을 이용해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공정한 매칭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플레이어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게임을 붙잡고 플레이하도록 만드는 미끼로써 작용하도록 만든거죠. 그건 바로 '레이팅에 기반한 보상'입니다.


플레이어의 확고한 수치는 곧 보상을 위한 지표가 되며, 더 높은 레이팅은 더 많은 보상을 의미하게 되죠. 이 보상이 게임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외부 요소가 개입되지 않는 게임에 있어서 단순한 외형의 변형조차도 플레이어에겐 훌륭한 과시가 되고 또 매우 큰 자기만족을 주도록 만듭니다.


이러한 자기만족이 얼마나 큰 영향읆 미치는지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나 도타 2, 팀 포트리스 2가 게이머의 자기만족에서 비롯된 자본을 얼마나 벌어들였는지 고려한다면 단순히 웃어넘길만한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실 수 있을겁니다.


개발사는 이러한 보상을 미끼로 내걸고 요구합니다. '일정 기간동안 일정수치 이상의 레이팅을 획득한 유저에 한해서 이 보상을 지급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보상은 기간 한정이기에 다른 기간에 플레이하더라도 얻을 수 없어요.' 이 미끼는 정말 유효합니다. 수많은 게이머가 이를 위해 게임에 달려들고, 게이머의 존재가 게임의 재미와 직결되는 멀티플레이 중심의 게임에게 활력을 불어넣게 되니 말이죠.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레이팅을 기반으로 한 보상이란, '이루어질 수 없는 보상'이기 떄문입니다.





근본적으로 레이팅은 '자신의 실력'을 상대적으로 수치화 한 지표입니다. 동 레이팅대의 사람들과의 게임에서 50퍼센트의 승률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죠. 이는 다시말해, 게임을 플레이하면 플레이할수록 이러한 지표는 고정되고 발전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래 게임을 플레이하면 실력이 나아진다'? '오천시간의 기적'? 죄송합니다만, 그건 헛소리입니다. 게임을 수천시간한다고 누구나 프로게이머가 되진 못한다는 점이 이를 증명하죠. 게임을 오래 플레이하면서 얻게되는 '실력'이란 개개인의 반사신경, 판단능력, 동체시력, 컨디션, 팀워크, 피지컬에 기반하는 신체 능력이 아니라 존재하지만 알지 못했던 노하우들이나 게임에 대한 이해도, 즉 경험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험이나 노하우를 통해서 극복할 수 없는 벽은 물론 실재하는 것이고, 때문에 같은 신체능력을 지닌 게이머에게 존재하는 레이팅의 상한선 또한 분명 실재합니다. 특정 레이팅대의 유저수가 균등하게 유지되는 것 또한 바로 이런 이유에서 비롯됩니다. 레이팅 시스템을 변형시킨 '리그' 시스템을 이용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리그별 인구분포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를 증명하죠. 다시말해, 특정 유저들 - 동시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유저들 - 에게 있어서 레이팅을 기반으로 한 보상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보상으로써 존재하게 됩니다.


이는 현실의 대리 만족으로써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을 통해 보았을때 게이머에게 큰 박탈감을 안깁니다. 이러한 레이팅을 기반으로 한 보상은 기존의 RPG 게임등에서 존재하는 '노력을 통한 보상'과는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이기 때문이죠. 전자는 동등한 경험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더 나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보상을 취한다면, 후자는 동등한 실력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 보상을 취하는 거니까요. 


때문에 결국 레이팅을 기반으로 한 보상을 얻지 못하는 플레이어중 일부는 게임 외적 수단을 이용해 보상을 취하려는 움직임마저 감행합니다. 앞서 말한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돈을 받고 대신 게임을 플레이하는 대리 랭크, 그리고 게임의 정보를 조작해 할 수 없는 방법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헬퍼등의 문제가 불거진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부족한 보안 프로그램이나 미비한 개발사의 대처를 떠나 다른 플레이어의 경험을 해치는 행동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동시에 플레이어는 다른 플레이어를 인신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다른 사람과의 협력과 경쟁이 동시에 존재하는 MOBA 류 게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승패에 미련을 가지고 그 책임을 자신이 아닌 남에게 돌린다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남이 못해서 패배하게 된거야.' 이또한 자신의 정당한 노력이 보상받지 못했다는 박탈감에서 비롯되는 문제입니다. 물론 승패 그 자체에 집착하는, 경쟁심이 강한 플레이어군 대다수가 이런 문제를 보이고는 하지만, 레이팅을 기반으로 한 보상, 혹은 레이팅 그 자체가 앞서 말했듯 경쟁심을 유발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플레이어만을 탓할만한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쯤 되면 제가 경쟁 그 자체를 반대하리라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반대입니다. 경쟁이란 누누히 말했듯 이런 MOBA류 게임의 핵심이라는 입장이죠. MOBA를 꾸준히 플레이하는 저로써는 경쟁이란 게임의 중요한 한 요소중 하나고 다른 그 어떤 요소처럼 마찬가지로 고려되어야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레이팅을 기반으로 한, 이루어질리 없는 보상으로 플레이어를 현혹하고 몰아넣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게임 디자인이라고 봅니다. 이는 불필요한 경쟁을 조장하고 플레이어로 하여금 다른 게이머의 게임플레이를 망치는 행동을 유발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죠. 극단적인 경쟁 상태에 플레이어를 몰아넣지 않더라도 플레이어를 게임에 몰입시키도록 만드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도타2에서는 '퀘스트 라인'이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플레이어에게 보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능력'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 '경험' 측면의 성과를 기록하여 이를 보상하는 것이죠. 이를테면 한 게임에서 다른 플레이어를 몇번 도우라는 등의 행위 말이죠.  그리고 특정 퀘스트 라인을 클리어한 플레이어에겐, 다른 방법으로는 획득하기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특별한 세트 아이템을 제공합니다. 이는 대부분 다른 플레이어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요구하고, 그 플레이어가 어떤 레이팅에 있든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게임플레이의 일환에 속하며, 때문에 실력에 관계 없이 어떤 플레이어든 노력을 통해 달성 가능한 보상으로써 기능합니다. 상대편과의 경쟁을 강화하지 않은체 그 자체를 놔두고서, 플레이어와의 협동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에 따르면 보상이란 유기체가 행동을 조건화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떠한 행동을 했을때 보상이 나오느냐에 따라, 이후 유기체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죠. 플레이어도 이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별거 아닌 보상이라 할지라도 그 보상을 위해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에 따라 이후의 행동이 변화합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은, 다른 플레이어에게 영향을 미쳐 크게는 게임 커뮤니티 전체의 분위기를, 그리고 게임 그 자체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행동을 예측하는데에 있어서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겠죠. 하지만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보았을때, 적어도 커뮤니티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더 나은 방법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을 이용한다면, 굳이 고통받지 않는 게임 플레이를 얻을수도 있구요.


그래요. 우리는 고통받을 필요가 없는 겁니다. 애초에, 게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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