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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하는 아내 이야기 1 본문

소설

헌신하는 아내 이야기 1

Nake 2015. 5. 16. 11:53



1.

숲은 언제나 친숙한 곳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밤이 찾아오고 빛이 서쪽 하늘로 모두 빨려들어가자, 숲은 본연의 모습을 되찾은 듯 했다. 매서운 바람이 나무와 나무를 스치며 슬피 울부짖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다져졌던 통행로는 순식간에 증발하여 애초에 아무도 지나지 않았던 것 마냥 사라졌다. 수많은 낙엽과 그 속의 굴고 복잡한 나무뿌리가 그물을 이루어 그 위를 걷는 이의 발목을 갈구했다. 귀뚜라미, 여우, 늑대, 모두들 이 친숙한 땅 위에 세워진 침묵의 왕국을 위해 노래불렀다.

직감했다, 이 곳은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라고.

얼마나 해맸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여러 시간이 지났으리라는 것 만을 어림짐작했다. 마을을 떠났을때 떠있던 해는 이미 간지 오래였다. 마을은 커녕 사람의 흔적조차 찾기 힘들었다. 얇게 입은 옷 밑으로 추위가 뚫고 들어와 혈관 사이사이로 스며들었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위장은 머리에게 더이상 움직일 힘이 없다고 외치고 있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건 그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한걸음이라도 더 걸으려 애를 썼다. 다리가 부들렸다. 세상이 흔들렸다.

나는 죽어가고 있건만,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건만, 죽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내게 닥칠 미래를 외면했다.

별안간, 발이 무언가에 붇잡혔다.

지면이 눈 앞에 다가와 빠르게 가까워지더니, 머리를 세게 후려쳤다.

고통이 다가오기 전에, 의식이 사라졌다.


2.

모호하고 흐미한 무의식의 세계에서 돌아왔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려준 것은 후각이었다. 한번도 맡아본 적 없는 독특한 향냄새가 코 안에 가득차 있었다. 눈을 뜨지는 않았다. 그 냄새를 음미했다. 난 아직 살아있다고, 그 냄새가 속삭였다. 다시금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곧, 뇌가 나에게 또다시 내일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했다. 빌어먹을. 눈을 떠야했다. 몸을 일으켜야 한다. 저주받을 습관과 그에 버금가는 강박이, 날 편히 쉬게 두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곳이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국적이면서도 편안한 이 곳이 어디인지 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을 떴다. 어둠만이 희미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 여기가 어디지?

그리고 다음 순간, 기억이 돌아왔다. 내가 스스로 내 집을 나섰다는 사실을 다시금 기억했다. 차가운 새벽, 나뭇잎에 고인 이슬이 땅에 스며들 듯, 천천히, 기억이 돌아오고 있었다. 마을을 떠나, 숲. 그리고 후회했다. 어째서 난 그런 선택을 한걸까.

"정신은 차렸어?"

그때, 어두운 방 안이 그녀가 들고온 촛불로 인해 그 모습을 되찾았다. 여인은 탁자 위에 놓여있던 촛대에 불을 옮겨 붙였고 들고 온 촛대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눈이 부셨다. 손으르 들어 눈을 가리고, 천천히 눈이 익숙해지길 빌었다. 동시에, 게슴츠레 눈을 뜨고 나를 구해준 여인을 흘겨봤다. 그녀는 내가 누워있던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내 얼굴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몇분, 몇십분,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났다. 눈이 빛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두통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침대는 빈말이지만 그래도 편안했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몸을 돌려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용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늙어보였다. 삼십, 아니, 사십대쯤 될까? 감사의 인사를 건내려 입을 열려다, 다물었다.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머리를 부딪쳤으니, 두통이 심할거야. 향이 도움이 됬으면 좋겠는데. 차라도 줄까?"

"아뇨. 괜찮아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네요. 이만 가봐야겠어요."

몸은 아니라고 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극구 사양했다. 지치고 다친 몸은 이 곳의 휴식을 필요로 했다. 무시했다. 무시해야했다. 바닥에 발을 내리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기대에 불구하고, 무릎은 가벼운 몸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힘없이 꺾여버렸다. 넘어지려는 순간, 여인이 내 팔을 붙잡고 부축했다. 그 부분이 아파왔다.

"이거 놔, 마녀! 네가 누군지 내가 모를 것 같아?"

마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숲 속에 홀로 사는 늙고 외로운 마녀. 직접 본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아마 직접 본 사람은 몇 없을테지만. 옆집 리디아와 잡화점 토마스네 루치아가 빨래를 하며 심심하면 이야기하는 마녀 이야기에서의 마녀와, 하나 다를바 없었다. 잡담에서 묘사되었던 것과 똑같이, 눈 앞의 마녀는 낡고 거친 울로 짜여진 잿빛 로브를 두르고 있었다.

그 안에 무얼 숨기고 있을까? 길고 날카로운 칼? 번개를 내뿜는 지팡이? 그것 조차 아니라면, 남편을 죽일때 사용했다던 맹독? 그렇다. 리디아는 언제나 마녀가 선량한 자신의 남편을 죽이고 그 살과 뼈를 이용해 약의 재료로 사용했다고, 그래서 마을에서 쫒겨나고 만 과부라고 누누히 이야기하고는 했다. 또다른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 묘지에 기웃거리기도 하고, 더 나아가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을 납치하기도 한다고도 이야기했었다. 간담히 서늘했다. 내가 그 주인공이 될줄은. 그러니 더더욱 정신을 차려야했다. 살아나가야 했다.

"왜, 정체를 들켰으니 할 말이 없어졌나보지, 마녀? 그래. 난 네가 누군지 알아. 뭘 하는지도 알고, 뭘 하려는지도 알아. 날 내버려두지 않으면, 평생을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그렇게 말하면서, 마녀를 있는 힘껏 밀었다. 제대로 힘이 들어갈 리는 없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세걸음 정도 뒤로 물러났다. 몸의 균형을 마녀의 부축에 의존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균형을 잃고 심하게 비틀거렸다.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넘어지는 꼴은 면할 수 있었다. 겨우 서 있을 수 있었다.

"말 할 힘은 다시 생겼나 보네. 다행이긴 한데, 좀 더 쉬는게 좋아. 쓰러진지 얼마나 됬다고. 밖은 아직 어둡고, 추워. 지금 나가봤자 다시 여기로 돌아오게 되겠지. 아무짓도 하지 않을테니, 아침까지 이 곳에서 쉬다 가도록 해."
"그럴 수는 없지. 그렇게 말하고는 날 죽일 속셈인걸 모를줄 알고?"

마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탁자 위의 상자에서 파이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담뱃재를 채우고는, 상자 안의 나뭇가지를 들어 촛불에서 불을 옮겨 붙이더니,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길게 한모금을 빨아들이고는, 내쉬었다. 진하고도 역한 연기가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내가 널 죽이고 싶었으면 진작에 죽였겠지. 안그래?"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를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눈이라도 붙이라고. 내가 원하는 건 그것 뿐이야. 어짜피 집으로 돌아가도 맘 편히 쉬지 못할텐데."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거지, 마녀? 그래서 남편을 죽인건가? 남편이 널 괴롭히기에 남편을 죽인거야?"

"소매로 몸이라도 가리고 그런 말을 하지 그래. 시퍼런 멍자국이 멀리서도 보일 정도라고."

흠칫했다. 재빨리 밖으로 드러난 몸의 속살을 옷자락으로 가렸다.

"무슨 생각을 한 걸지 몰라도,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 내 남편은 날 사랑해. 그리고 나도 그이를 사랑하고. 다만 그는 가끔씩... 다른 사람이 될 뿐이라고."

마녀는 한숨을 쉬었다. 담배냄새가 그 속에 섞여 기묘한 향내를 풍겼다. 

"네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는 솔직히 관심이 없어. 단지 뇌진탕에 걸린 사람은 오랜 시간 안정을 취해야 할 뿐이라고. 그런 환자를 위험한 환경으로 되돌려 보내는게 마음에 걸리는것 뿐이야."

"입 닥쳐, 마녀! 넌 내 남편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

화가 치밀었다. 그녀가 내 배우자를 욕하게 둘 수 없었다. 그이는 내 삶의 기둥이었고, 원동력이었다. 내 인생이나 다름없다. 내 진심을 드디어 깨달았는지, 마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체념한 말투로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면야. 정말 헌신적인 아내로군. 약속은 지킬게. 여기서 조금 쉬다가, 해가 뜨는 대로 알려줄게. 적어도 그때까지는 쉬고 있어. 더 쉬든 떠나든, 네 선택이라는 것만 알아둬."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마녀는 파이프를 입에 물고 문 밖으로 나갔다. 발소리가 문 너머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그녀를 믿을 수 있을까?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수가 있는 것 도 아니었다. 침대에 걸터 앉았다. 몸이 안정을 찾았다. 언제 발걸음이 다시 가까워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감이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금새 잠에 빠져 들었다.


3.

"아침이야."

마녀가 말했다. 순식간에 정신이 돌아왔다. 침대 밖으로 발을 디뎠다. 어젯밤과 같은 추태를 벌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힘이 조금이지만 제대로 몸 속을 돌고 있었다. 제대로 땅을 딛고 서서, 마녀를 응시했다. 그녀는 내 눈길이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 듯 보였다. 뭘 믿고 그녀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따라와. 마을까지 안내해 줄게."

마녀를 따라 다시 나온 숲은, 밤과는 전혀 다른 장소였다. 내가 전에 알고 있었던 바로 그 친숙한 세상. 높은 나무 햇빛이 새어들어왔고 두텁게 쌓은 낙엽 사이로 작고 어린 나무가 머리를 들고 그 팔을 뻗치고 있었다. 바람은 약갈 쌀쌀했지만, 아침의 공기를 태양이 충실하게 데우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 곳이 정확하게 어디인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미 익숙해져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마녀와 달리, 비틀거리고 나무와 땅을 짚으며 앞으로 겨우 나아갔다. 마녀를 따라가기는 매우 벅찼지만, 그녀는 내가 뒤쳐질 때마다 속도를 줄였다.

"하나만 물어볼게. 어제 네가 숲에 들어온 이유는 너무 자명해. 견딜 수 없었던거잖아. 그런데 왜 돌아가려는거야?"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마녀는 물어볼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남의 가정사에 왈가왈부할 권리가 없었다. 마녀는 말했다.

"견디지 못하겠으면 언제든지 숲 속으로 돌아와. 도와줄테니까."

"그런 일은 없을꺼야. 지금까지 잘 견디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조용히 해."

그럼에도, 짜증이 솟구쳐 대답하고 말았다. 대답해 주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더이상 그녀의 짜증나는 꾀임에, 속삭임에 질려서였다. 그리하면 그녀가 입을 다무리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잘 견뎌왔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결코 잘 견디고 있지 않아.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모든게 반복되니까. 예전에 그랬듯, 미래에도 일어나. 점점 더 심해지고 강하게 변해서 돌아와. 여기에 찾아올 정도로 고통스러웠다면, 앞으로는 더 심해질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 지금의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지, 넌 돌아올거야. 그래야만 해. 네 자신을 위해서라도 말야. 이 숲속으로 돌아와야 해."

듣지 않았다. 무시했다. 작은 날벌레가 끊임없이 날아붙었기 때문이다. 손을 휘둘러, 벌레를 쳐냈다. 허공을 날아가던 그 벌레는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새싹 위에 떨어져 버둥거렸다. 그 새싹은 자그마한 벌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싸늘한 여름날의 숲 속 그림자 밑에서 우그러졌다. 벌레는 곧 죽을 것이다. 발걸음을 재촉하느라, 그 결말을 보지는 못했지만.

마녀의 말 따위 들을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르는 부외자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유년기를 겪었는지. 어떤 세상에 살고 있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떻게 그이를 만났고,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는 지도. 그녀가 무엇을 아리. 숲 속에 홀로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아가는 그녀가 무엇을 아리.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그녀가 알 턱이 없었다.

그녀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고로, 그녀의 말은 옳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었다.

"언제든지 돌아와. 장담하지. 네 남편은 널 팔 벌려 맞이하지도 않을꺼야."

마녀가 그렇게 말했다. 경멸하는 눈으로, 고개를 들어 마녀를 보았다. 그녀를 노려보려 했다.

하지만 내 시선에 마녀가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마을의 입구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내 남편은 나를 보고 목놓아 울었다.

나 또한 그곳에서, 가슴 깊은 곳에서 비롯된 눈물을 쏟아냈다. 우리는 서로에게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서로를 만지고 껴안고 포옹하며, 서로를 느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분명히 느꼈다.

나는 사랑받고 있어. 정말로.


3/4.

"어머, 부인! 세상에, 괜찮아요? 숲 속에서 길을 잃으셨다고 들었어요!"

"하룻밤 내내 사라졌다고 들었어요!"

"마을에 난리가 났다니까요? 서방님이 부인을 찾으신다고 마을 곳곳을 들쑤시는데..."

"숲은 춥지 않았나요? 늑대나 엘프와 마주친건 아니죠?

"다행이에요, 무사히 돌아오셔서."

"마녀는 만났나요? 하긴, 그랬다면 돌아오실 수 있으실리가 없었겠죠."

"그런데 얼굴이 많이 부었어요. 괜찮으세요?"

"아침에는 돌아왔을때는 괜찮지 않았나요?"


"숲에서 넘어졌을 따름이랍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평소와 똑같은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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