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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에 불을 붙여주고 그 옆에 주저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본문

소설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 그 옆에 주저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Nake 2018. 8. 4. 22:01


"맞다. 그 이야기 해드린적 있습니까?"

"무슨 이야기."

"악몽에 대해서 말입니다."


나는 웃었다. 그런 시덥잖은 이야기를 한 기억은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진 않습니다. 시덥잖은 이야기라 대놓고 떠든 적도 없던것 같네요. 제리라면 알고 있을것 같습니다만."

"제리? 그 쥐새끼?"

"예. 한동안 제 룸메이트였습니다."

"그랬었나?"


이거 미안해지는군.


"맨 처음 이 일에 꼬드긴게 저였으니 다 제 탓이죠. 생각해보면 악몽이 시작된 것도 제리와 함께 살던 시절부터였을 겁니다. 네. 그즈음이 맞는것 같네요."


캐네디언이 담배를 빨아들였다. 끝이 뒤에 재를 남기며 새빨갛게 달아오르듯 타올랐다. 매케한 화약연덕에, 그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말입니다, 고향에 있는겁니다. 바닷 비린내가 진절머리칠 정도로 진동하는 끔찍한 노바스코샤 말입니다."

"캐나다?"

"제 별명이 그냥 캐네디언이겠습니까?"

"아니, 욕 한마디 안하길래 캐네디언인줄 알았지."


갑작스래 웃던 그는, 입가를 소매로 훔치고 다시 말을 이었다.


"꿈 속에서의 냄새는 헌츠포인트와 비교도 할수 없어요. 꿈인데도 그 지옥같은 냄새는 기억 속에 못박혀 매섭게 콧 속을 찌르더군요. 그리고 저는 거기서 혼자 나룻배를 타고 망망대해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습니다. 나룻배는 타본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떠올립니다. 물고기를 잡아야한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캐네디언은 다시 담배를 빨며 추억을 회상했다.


"저희 집안은 대대로 어부였습니다. 저희 아버지와 삼촌, 그 윗대 모두 뉴 글래스고에서 배를 모는 바닷가재잡이였죠. 데비드 삼촌과 크레이그 삼촌 둘은 그러다 어망에 발이 끼어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항상 술독에 빠져있었죠. 제 위로 형이 둘 있는데, 둘 다 가업을 잇고는 통발을 날랐습니다. 저는 그게 너무 지긋지긋했습니다. 돈을 모아 고향을 탈출하는게 제 유일한 꿈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물고기를 꿈속에서까지 잡던건 그래서였을겁니다. 낙인찍힌 비린내를 피해 도망쳐야한다고 말이죠."

"결과적으론 성공했군."

"그렇죠."


씨익 웃었다. 녀석의 금니가 어두운 밤중에 작게 반짝였다.


"그리고 걷어올리는 그물은 처음에는 가벼워요. 이파리고 뭐고 아무것도 걸리지 않죠. 그러면 그럴수록, 불안은 커져만 갑니다. 물고기 한마리 잡지못하고 시간을 날리는게 아닌가 가슴이 조여들고 숨이 가팔라지죠. 시야가 좁아지고 끌어당긴 그물은 많아지기만 합니다. 손이 부르트고 진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그때 묵직한 무언가가 느껴져요."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자신의 손을 들어올려 그 손을 자세히 지켜보았다. 갖은 굳은 일로 박힌 굳은살이 손 곳곳에 남아있었지만, 꿈에서만큼은 끔찍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마구 끌어올린 뒤에, 뒤를 바라보면 제 수확물이 보이죠. 그건, 그건."

"천천히 말해. 시간은 많잖냐."

"그건... 그건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캐네디언은 힘겹게 침을 넘겼다.


"물속에 오랫동안 잠겨있어 얼굴이 누군지 알아볼수조차 없는데, 곤죽이 되어 사람의 형체조차 남지않고 만질때마다 으깨어지는데, 저는 그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해냅니다. 빅 짐, 알레한드로, 페트리시아 부인, 와일리, 페르넨코... 전부 다 제가 해치웠던 사람이라는걸 저는 직감합니다."

"제리도?"


캐네디언은 고개를 느리게 저었다.


"그렇게 사람 한명 한명을 헤아리면 헤아릴수록, 배는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살아남으려면 사람을 그만 바라봐야하는데, 그럴수가 없어요. 하나 하나 시체는 더 드러나고, 더 많은 이름이 머릿 속에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윽고 배가 가라앉습니다. 그 끝을 알아볼수 없는 차가운 물 속으로 사라져요. 그리고 그제서야 저는 깨닿게 되죠. 그물에 발이 걸려 도망갈수 없다는걸요. 발버둥칠수록 그물은 저를 더 단단히 옭아매고, 높아지는 파도가 눈코입으로 새어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빠진다고 끝이 아니에요. 끝날수가 없죠. 저는 직감합니다. 저는 저 그물 속의 사람과 똑같이 될거라는걸요. 이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아 형태조차 잊혀질거라구요. 그리고 절 기억하는건, 저만이 되겠죠."

"...끔찍하군. 병원에 가보지 그랬나."

"아뇨. 괜찮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늦었지 않습니까."


고개를 숙이고 작게 웃었다. 지금 할 소리는 아니지 않나.


"형님을 만나고 그 꿈을 꾼적이 없습니다. 매일 밤을 뒤척이며 몸서리친 악몽이, 형님과 함께하기로 결정한 뒤로는 단 한번도 찾아온적이 없어요."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아니에요. 형님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형님은 꿈이 있어요. 겉치레만 잔뜩 든 다른 놈들과 달리 형님은 진짜였습니다.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단호하지만 관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어요. 이상한 일은 아닐겁니다. 비린내 나는 고향에서 탈출해 온 곳이 브루클린의 더러운 시궁창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할줄은 몰랐다. 떨리는 손을 맞잡았다. 굳게 맞잡아, 그러면 다가올 미래를 뿌리치고 녀석을 여기서 데리고 나갈수 있을거라 내 자신을 속였다.


"형님을 만나기 전까지 저는 시궁쥐에 불과했습니다. 아니, 맨 처음 형님을 만났을때에도 전 시궁쥐였습니다. 휴지 조가 저에게 뭐라고 한줄 아십니까?"

"글쎄."

"형님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아넣으라더군요. 본보기로 삼으라고. 형님을 술집에서 만난 다음날 전 형님을 쏴죽여야 했습니다."

"그것.... 참 놀라운 사실이군."

"농담 마십시오. 아시고 계셨으면서."


그러다 캐네디언은 기침을 연거푸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더 많은 피가, 닦이지 않은 피가 입가에 한참 남아있었다. 꽁초는 이미 피웅덩이에 떨어져 빛을 잃은지 오래였다.


"하지만 형님을 만나고, 그 꿈을 듣고 제 마음을 바꾼 뒤로는, 한번도 후회한적이 없습니다. 전 그제서야 제 자신에게 떳떳해진겁니다. 제리를 담담하게 처리한 것도 그래서에요. 형님 곁에 있으면, 형님의 시야가 제 눈에도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목표에서 제리는 골칫거리였죠. 어쩔수 없지만 처리해야만 하는 장애물이었구요."

"정말... 미안하네."

"그러지 마십시오. 저도 그런적 없으니 말입니다. 형님과 함께 하기로 결정하고, 조의 뒷통수에 리볼버를 쏴갈긴 그 순간부터, 전 제 행동에 후회한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망망대해에서 저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마을을 벗어나려는 애송이가 아니었습니다. 형님과 함께하고, 목표를 가진 그 순간부터, 저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손에 힘을 더 넣었다. 하지만 떨림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미안하네. 자네를 살리지 못해 미안해."

"괜찮습니다."

"너무 늦어서 미안하네. 미리 습격을 알지 못해 미안해. 다 내 잘못이네."

"괜찮습니다."


주먹을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하지만 떨림은, 흐느낌은 멈추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형님. 괜찮습니다."


그렇게, 녀석은 눈을 감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마치, 잠을 청하듯.

그래. 어둡고 고요한 밤 바다에서, 편안한 단잠을 청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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