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의 우리에게
그렇게, 반쯤 세워진 엉성한 계획은 완벽하게 작동했다. 나와 폴리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설에 들어가는건 초대받은 집에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쉬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누구도 멜의 계획이 성공하리라 믿지않았다. 아니, 정문으로 쳐들어가 노크를 하자고? 조잡하게 해킹된 인사기록부를 믿고서? 자살행위잖아!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말했잖아. Easy-Peasy-"
하지만 그 계획은 성공했고, 보다시피, 멜은 의기양양해져 있었다.
"-Lemon-Squeezy, 그래, 잘났다 멜. 그래도 긴장을 풀지 말라고. 여긴 적지라고."
"폴리, 그렇게 긴장을 할수록 오히려 의심하게 된다니까. 날 잘봐. 홀라! 친구, 잘 지냈어?"
아니, 그래도 그렇지,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인사를 하는건 아니잖아.
"어- 누구시죠?"
"나야, 멜! 멜포메네, 나사? 기억안나 친구?"
"어, 모르겠네요. 사람 잘못보신거 아닌가요?"
"네. 맞아요, 잘못봤을 거에요. 이 친구가 신입이라 긴장을 풀려고 아무 사람이나 잡고 이러네요. 가서 일 보세요."
결국 폴리가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멋쩍게 서서 기억에 없는 여인을 기억 속에서 찾고 있던 직원을, 폴리가 자연스럽게 떠나보냈다.
"네 뒷치닥꺼리를 왜 계속 폴리가 해야하는거야, 멜?"
"왜 그래, 그게 전우애의 정신 아니었어? 폴리는 군인이었으니 그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어서 괜찮을거라고. 그렇지, 폴리?"
"첫번째로, 아냐. 안괜찮아. 두번째로, 난 그게 좆같아서 군대를 나온거라고. 남의 뒷치닥꺼리나 하려고 여기까지 온게 아냐. 내 스스로가 변화를 만들려고 한거라고. 에이브, 대체 왜 나랑 멜을 같이 데려올 생각을 한거야?"
"말했잖아. 현장 요원으로써 너희 둘만한 사람이 없다고. 브레인은-"
"그래, 너 혼자면 충분하겠지."
폴리가 비꼬듯 말했다. 하지만 그녀나 나나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 말투가 더 비난조인 것이겠지만.
"게다가, 너희 둘만큼 전투에서 죽이 잘 맞는 콤비도 없고말야."
"좋아, 거기에 대해선 수십가지 이유의 반박을 할 수 있겠군."
"신사 숙녀 여러분, 수다는 그만 떠는게 어떨까요?"
"뭐? 수다? 지금 누구 때문에 이 이야기가 시작된건데…"
장황하게, 자신과 멜이 맞지 않는 이유를 이야기하려는 폴리를, 멜이 막아섰다. 옆에서 즐겁게 그 이야기를 들려 했던 나도, 살짝 맥이 빠진체 도대체 무슨 일이 우리를 가로막은 것인지 의아해 하고서는 앞을 바라봤다. 과연, 그럴만 했다.
서버실. 우리의 목표. 나의 목표. 지난 십년간의, 수많은 사람의 염원이 담긴 목표. 그게 눈 앞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소리지르지 않았다. 그 기쁨을 마음 깊숙한 곳에 파묻고는, 서버실의 잠금장치에 카드키를 집어넣었다. 위조한 카드키는 완벽하게 작동했다. 삑-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의 녹색 장치가 깜빡이며 점멸했다. 슬라이드 문이 바람빠지는 소리와 함께 벽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열렸다.
"쇼타임입니다. 여러분. Easy-Peasy-"
언제나처럼 해맑은 미소로 멜이 서버실 안에 들어섰고.
"-Lemon Squeezy."
폴리 특유의 비릿한 냉소와 함께, 서버실 문이 닫혔다.
갑작스런 이방인 무리가 자연스럽게 들어오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직원들이 우리를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솔직히, 서버 관리직 치고는 많은 수였다. 몇이 됬든 지금부터 할 일에 그들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상황을 이해할 필요성은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계획대로, 멜이 가방 안의 도구를 꺼냈다.
"확실히 안어울려."
"너무하네."
"트윈 테일에 UMP45라니, 2D에서나 어울릴 조합이라고."
"안됬네요. 언벨런스해서. 자, 다들! 손들고 이쪽으로 모이세요! 말을 안듣는 어린 아이들에겐 제가 230그레인의 납덩어리를 선물로 주겠어요!"
그녀는 총을 쏘지는 않았다. 멜이 손에 안정적으로 쥐고 있는 기관단총의 위압감이 총성 이상으로 위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꺄아아악-!"
어쩌면, 필요 이상으로 위력적이었던 걸지도 몰랐다. 멜이 서버실로 걸어들어옴과 동시에 만들어낸 미묘한 적막이, 총이 드러나자마자 한 여직원의 비명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런, 은밀한 작업은 글렀군. 폴리, 바리케이트를 만들고 농성을 준비해줘. 멜, 사람들을 모아서 통제해주겠어? 제발, 사람을 쏘진 말고말야."
"왜 그래. 난 이유없이 사람을 쏘진 않는다고."
"그 이유의 하한치를 높이라는 이야기야."
"…노력해볼게."
좋아. 농성은 이 둘에게 맡기고, 나는 목표를 위해 관제 서버에 다가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서버실은 놀라웠다. 내 짧은 감탄사로는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수백개의 냉각팬이 돌아가며 만들어내는 그 일률적인 심포니를 듣고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일이 잘 풀린다면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었다. 나는 재빨리 미리 목표로 해두었던 서버로 다가가, 내 가방에 들어있던 노트북과 연결했다. 모니터에 성공적으로 외부장치가 연결되었다는 메세지가 떠올랐고, 나는 곧이어 해킹 프로그램을 작동시켰다.
"시작했어?"
폴리의 긴장된 목소리가 귀에 낀 이어폰으로 전해져 들려왔다.
"이제 막 시작했어. 데이터 양이 좀 되니까 시간이 필요해."
그렇게 말하자마자, 사이렌소리가 고막을 찢으려는 것처럼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우리한테 없는게 시간이 된 것 같은데?"
"폴리, 지금 우리한테 가장 필요없는게 네 냉소인 것 같아!"
"하하. 웃으면서 일하자고. 얼마나 남았어?"
"5분? 아마도?"
"흠, 괜찮아. 지금 내 눈에 중무장한, 누가 봐도 잘 훈련된 특수부대 출신 사설 군대 소속 경비팀이 몰려오고 있지만 말야. 해보자고."
"그래. 10년을 기다렸으니, 5분을 못막겟어?"
"-멜! 좌측 통로! 우회해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알았어! 제압사격!"
내 말물음에 대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상황을 알려주기 위한 멜과 폴리의, 격앙된 목소리가, 그녀들의 쥔 총이 내는 귀를 찢는 격발음과 함께 울려퍼질 뿐이었다.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그 소리 사이사이에, 분명 이쪽을 향해 울려퍼지는 더 크고 더 날카로운 총성이 들려왔다. 분명, 경비의 총성일 것이다. 5.56mm, 라이플탄 특유의 총성이었다. 그들을 상대로 5분을 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었다. 그들은 그만큼 대단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나도, 폴리도, 멜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기에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리고 5분은, 지금껏 기다린 10년이라는 세월에 비해 너무나도 짧았다. 그정도야 금새 버틸수 있을거란 착각이 들만큼 짧았다.
"에이브, 멀었어?"
"3분! 3분이면 돼!"
10년이었다. 자그만치 10년을 계획한 일이었다. 그동안 희생된 사람을 떠올렸다. 빌리, 스트럿, 대니얼. 우릴 돕기 위해 감옥으로 향한 수많은 이들. 그들의 노고가, 지금으로부터 5분에 달렸다. 심장은 그 어느때보다 빠르고 급하게 뛰었고, 손가락은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스크린을 채운 수십개의 프롬프트를 쉬지 않고 조작하며, 다음, 또 다음으로 넘어갔다.
"재장전! 폴리! 엄호사격을!"
"알았-제기랄! 플래쉬뱅! 숙여!"
귀를 찢는 폭발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총성과는 차원이 다른 괴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눈이 보였고, 손가락도 멈추지 않았다. 다음, 다음, 다음으로, 다음으로.
"들어올 생각일랑 말라고![인질이 우선이다! 사격 방향 조심해!]닥쳐, 정부의 개들아!"
그녀의 목소리 너머로, 경비의 굵고 필사적인 목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폴리! 뒤로 빠져! 서버 안쪽으로 후퇴한다!"
"하지만-"
"어서!"
"알았어! 먼저 가! 엄호사격!"
그녀들의 고함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전해졌다. 상황은 더더욱 급박해졌다. 코를 찌르는 화약내가, 직원들이 내는 비명과 울음이, 경비가 내는 위압적인 함성이, 내 심장을 죄여왔다.
그렇게, 심장이 빠르게 뛸수록, 세상이 명확해졌다. 내 목표가 명확해졌다. 멈추지 않았고, 멈출수 없는 목표를 다시금 상기시켰다. 난 여기서 멈출수 없다. 실패할 수 없다.
"얼마나 남았어!"
"10초!"
"미안하지만, 우리한텐 5초도-"
그리고 폭발음이, 거기에 뒤따라 몸에 충격이 전해졌다. 순간 중력이 사라졌다. 아니, 그런것처럼 느껴졌다. 균형감각을 상실한다는 이야기는 몇번인가 들은 적 있었지만, 중력을 망각하는 것도 그중 일부인걸까?
허황된, 말도 안되는 망상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나는 땅바닥과 부딛쳤고, 그 고통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내 엎어진 등을, 누군가가 짓밟는 것이 느껴졌다.
"제압 완료! 업로드를 막았다! 반복한다! 업로드를 막았다!"
경비인가. 그의 목소리에는, 안심한 기색이 역력히 묻어나왔다. 내가 더이상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에게 미안하게도, 마지막 10초는 단지 기다리는 시간이었을 뿐이었다.
업로드를 기다리는 시간.
팔을 뻗었다. 엔터를, 아니, 엔터가 있을만한 키보드의 일부분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미치- 서버를 쏴! 쏘라고!"
당황한 경비는 뜨겁게 돌아가는 서버를 거침없이 쏴갈기기 시작했다. 매케한 화약내가 섞인 뜨거운 탄피가, 규칙적으로 내 등 위에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재장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라이플을 떨어트리고는 권총을 꺼내들어, 아직 냉각팬의 소리가 들려오는 서버를 향해 격발했다. 탕탕타다당. 훌륭한 훈련을 받은 것이 느껴지는, 안정적인 격발음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볼썽사나운 꼴볼견일 뿐이었다.
"늦었어, 멍청이들아. 이미, 프로그램은 업로드가 끝났어. 클라우드에 저장됬다고."
내 말을 듣긴 한걸까? 아니면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는걸까? 그는 권총의 손잡이로, 서버를 후려쳤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그 안의 정보가 부서질리 없었다. 내가 업로드한 정보는 더더욱.
아마 그도 알고 있겠지. 그가 필사적인 것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상대로, 그는 곧 체념했다. 그리고 경멸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이 또라이 새끼.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잘 알고 있어. 잘 알고 있으니까 이런 짓을 저지른거라고, 친구."
경비는, 결국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그가 가진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여기는 피닉스 1, 정정한다. 업로드를 저지하는데에 실패했다. 반복한다. 업로드 저지에 실패했다. 야수가 풀려났다. 이상."
"야수라니, 너무한 소리를 하는군."
"닥쳐. 넌 죗값을 치르게 될거야."
"아마도. 하지만 내가 가져올 선물에 비해 보잘것 없는 댓가일 뿐이야."
"선물이라니, 단단히 미쳤군. 그건 재앙이야."
"그건 '1986 GB'야. 공식 명칭은, '링컨'이고."
"그 이름이 뭐든, 재앙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뭘 그렇게 걱정하는거야, 경비나리?"
그제서야, 그토록 기대하던 떨림이 느껴졌다. 그 떨림은 단순한 진동이 아니었다. 바닥이, 건물이, 땅이 움직였다. 부들대며, 미래를 향해 움직였다. 그 떨림에 나는 흥분을 금치 못했다.
"이젠 멈추지 못해."
"시발."
"하하, 웃으라고."
진동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아니, 그 진동은 갈수록 심해지더니, 대기중의 공기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 뜻을 알게 된다면 기분좋아질 수 밖에 없는 울림이었다. 이 기지는, 10년후의 지구에게 선물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폴리."
"해냈네요. 미치광이씨. 솔직히 반신반의했어요."
"그러게. 멜?"
"아, 멜은 기절했어요."
"둘다 닥쳐. 제발. 미치광이 새끼들. 제발 닥치라고. 돌겠구만. 시발."
떨림이 이윽고 멎었다. 그리고 쥐죽은듯이, 주위가 고요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방을 가득 채우던 소음의 주범인 냉각팬을, 경비가 다 부수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제 어쩌죠?"
바닥에 업드려진체로, 폴리가 물어왔다.
"다시, 10년을 기다려야지."
경비는, 더이상 우리 둘의 대화를 막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허탈함을 넘어선, 체념에 가까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제발, 그럴것까진 없다고, 친구.
"또요?"
"그래. 또.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지금까지의 10년을 참아왔다면, 이제부터의 10년은, 즐겁게 기다리는거야."
나는, 그 먼지와 화약 연기가 가득한 지하의 서버실에서, 숨을 크게 들이쉬고, 천천히, 느긋하게 말했다.
"10년 뒤, 하늘에서 내릴 운석이라는, 거대한 선물을 기다리면서 말야. 장담컨데, 그 에이브러햄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 가득찬 악을 뿌리뽑아줄거야."
그리고는 웃었다. 웃을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