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이야기
사제가 들어왔다. 붉었지만, 화려하고 눈에 띄는 붉음이 아닌 장미보다 더 어둡고 음침한, 그렇기 때문에 예의바른 붉음을 띈 사제의 넘치는 옷자락은 그의 발뒷꿈치로부터 1m 쯤 길게 늘어뜨려져 바닥을 물결치며 쓸어갔다. 그가 깊게 눌러쓴 크디 큰 후드는 사제의 얼굴을 거의 전부 덮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사제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때문에 사제가 수많은 인파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는 모습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 인파는 모두 고인(故人)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고인은 이 작은 도시에서 작은 잡화점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던, 죽기엔 아직 이른 젊은 청년이었기에 이 숫자의 사람이 모인 것은 그의 나이 또래의 장례식으로써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돕는 작은 도시 공동체의 특성과 적을 만들지 않았던 고인의 친근하고 배려심 깊은 생전 성격을 고려하자면 이 규모는 당연한 결과리라고 모두 생각했다.
제단 앞에 선 사제는 뒤를 돌아 인파를 보았다. 그리고는 그의 키의 두배는 되어보이는 기다란 예식용 지팡이를 들고 경건하면서도 절도있게 땅에 내리쳤다. 그 충격을 뒤따라 지팡이에 딸린 방울이 고요히 울렸고 길다란 진홍색 리본이 허공을 조용히 휘날렸다. 그 행위는, 아주 효과적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던 인파의 시선을 압도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정숙한 체 사제를 바라보았다. 사제는 소리를 내지 않은체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오늘 저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고인의 죽음을 기리고, 죽음이라는 미지의 장막 너머의 저 높은 밤 하늘로 고인의 영혼을 떠나보내기 위함입니다. 그는… 그는…"
느릿하게, 그럼으로써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사제의 목소리에 곁들여진 그의 크고 허황된 움직임으로 그는 지팡이를 휘둘렀고, 그 지팡이로, 그리고 거기에 딸린 리본으로 허공에 기나긴 선을 그리던 그의 움직임이 그가 말을 더듬는 것과 함께 점점 느려지더니, 이내 멈췄다. 길다란, 때문에 멀리서도 놓칠 수 없는 존재감을 지닌 사제의 지팡이는 갑자기 찾아온 의문의 정적을 과장되게 보여주었다. 훌쩍임이 인파 사이에서 이따금 들려왔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동요하지 않은체 조용히 사제를 응시했다.
"그는…"
말을 이으려, 사제는 다시 그 음절을 내뱉었지만, 그의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자리에 주저 앉았다. 사제의 옆자리에 서서 예식을 돕는 사제의 조수이자 그의 오랜 친구가 그의 곁에 다가가 고개를 떨구고 주저앉은 사제에게 물었다.
"괜찮아? 뭐가 문제야? 할 수 있겠어?"
사제는 떨리는 소리로 머리를 쓸어넘겼고, 이에 따라 그가 쓰고 있던 거대한 후드도 벗겨졌다. 사제의 긴 머리카락이 옷 밖으로 흘러내렸지만, 사제는 이를 전혀 신경쓰지 않은 체 이마를 짚고 있었다. 그리고 힘겹게, 겨우 말했다.
"아니, 못하겠어."
한숨을 쉬었다. 사제는, 괴로운듯 고개를 푹 떨구고 인상을 찌뿌렸다. 짙은 그늘이 사제의 미간에 드리워졌다. 그 모습을, 조수와 군중은 아무말 없이 지켜볼 따름이었다.
"못 하겠어. 못…못 하겠다고."
사제는, 더 이상 사제가 아니었다. 신이 내린 권위가 주어지기 전의 그가 원래 그랬었던 것처럼, 사제는 평범한, 다시말해 연약하고 나약한 한명의 인간으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는 힘들어하고 있었고, 슬퍼하고 있었고, 회의하고 있었다. 왜. 왜. 조용히, 그는 입을 뻐끔거리며 절규하고 있었다.
"도미닉…"
"이건… 못 하겠어. 힘들어. 너무 힘들어. 숨조차 쉬기 힘들어. 왜 이러지? 대체 그의 장례가 뭐가 특별한거지? 내게 그는 뭐란말야?"
그는 고뇌했다. 그는 몇년째 사제의 책임을 짊어지며 셀 수 없이 반복해온 수많은 장례식에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고뇌를 지금 이 자리에서 느끼고 있었다. 떄문에 그는 당혹스러웠다. 말하는 것 조차 벅찼다. 뭐지. 뭐가 특별한거지. 그는 힘겹게 군중을 향해 말했다.
"죄송합니다. 고인을 위해 이 자리에 시간을 내어 찾아주신 여러분들께는 죄송할 따름이지만, 저는 고인의 장례를 집행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가 신자가 아니기 때문어서거나 그의 행동이 이단이라는 의혹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제가 가진 개인적인 문제 떄문이며, 그의… 후…"
앉아서도 그는 그의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부족한 것 하나 없지만 작고 좁은 이 도시에 온지 2년여.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봐오고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중 몇몇을 여러가지 이유로 떠나보냈었음에도, 오늘의 장례만큼 그에게 부담이 되었던 장례는 없었다. 사제는 힘겹게 자신의 생각을 쥐어짜 말했다.
"저는… 그에게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그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가 생전에 치뤘던 업적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리라 믿지못하기 때문에, 그는 별이 되어 살아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하리라고 제 자신이 믿을 수 없기에, 그에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약속할 수가 없어요."
사제는 고백했다. 군중은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조수가 속삭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그의 장례는 다른 사람이 치뤄줄 수있어. 괜찮아."
하지만 사제는 고개를 힘차게 저었다. 산발이 된 긴 머리가 그 움직임을 따라 흩날렸다. 조수는 조용히 생각하다 물었다.
"친했던 사람이야?"
"아니."
사제의 답변은, 조수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당연하다는 듯, 자조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은체 사제는 말을 이었다.
"그와 실제로 이야기를 나눈건 삼십분 가량밖에 되지 않아. 웃긴 일이지."
"그렇다면, 모르는 이를 떠나 보내는 것처럼 떠나 보내면 되지 않을까? 실제로도 그렇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걸, 제기랄."
사제는 고개를 들어 군중을 바라보았다. 우수에 찬 얼굴. 누굴 위한 것일까. 고인일까. 고뇌에 찬 사제 그 자신일까. 훌쩍이는 소리는 멎지 않고 이따금 예실에 들어찬 정적을 일깨우는 효과음으로써, 이따금 들려왔다.
"난… 그의 친구조차 아니었어. 그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장례를 치루는거지?"
"사제로써, 다른 애도하는 이들을 이끌기 위해서. 네 자격은 충분해."
"하지만 그건 교단이 내게 준 자격일 뿐이야. 오늘의 장례는, 내 자신이 허락하지 못해. 고인의 장례를 치루기에 나는 너무나도 왜소한 존재야. 고인에 비해 난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그는 대단했어.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그 찰나의 시간동안 대화를 나누는 것 만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는 대단했어. 그런데 왜 살아있는건 고인이 아니라 나인거지? 그토록 그가 허무하게 떠나버린 세상에, 대체 내가 무슨 자격으로 서있는건지도 모르겠는데, 그의 장례를 내가 치뤄야한다고? 제발. 제발."
사제는 자신의 얼굴을 양손에 파묻었다. 그는 울고 있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길 울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위해 눈물흘리기 위해서는, 그를 추도하고 추억할만한 기억이 있어야 한다고 사제는 생각했다. 하지만 사제에겐 그런 것 따윈 없었다. 아주 작고 보잘것 없는 짧은 대화 말고는. 사제는 알고 있었다. 이런 변명이, 자신의 보잘것 없는 탐욕스런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 변명이 보잘 것 없는 것에 비해 그의 욕구는 거대했다. 고인을 더 알고싶다는 욕구말이다. 사제는 고인과 더 친해지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에게 눈물을 흘릴, 그리고 그를 위해 한마디 남기며 다른 이들을 이끌 자격이 있었길 바랬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건 없었다. 삼십분의 기억 말고는.
이 지역사회에서 고인이 차지했던 크기가 어마어마했기에, 이 정도의 사람이 모인거겠지. 사제는 생각했다. 사제는, 그 작고 끈끈한 인간관계 사이에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따위 없다고. 이 도시에 내 자리따위 없다고. 이방인. 그는 아직도 자신을 이방인으로 생각했다. 아니, 고인이 죽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자신이 아직 이 도시에 있어서 이방인이라는, 본능이 외치는 속삭임을 부정하고, 자신이 사람들 사이에 잘 녹아 들었다고 자기 자신에게 설득해왔지만, 싸늘하게 식은 고인의 시체와 고인을 위해 일손을 놓고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사제는 자신과 고인 사이의 유대가, 아니, 이 마을과 자신 사이의 유대가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새상스럽게 느꼈다. 그 이루어 말할수 없는 높고 투명한 벽. 자신은 이방인이었다.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사제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수십의 사람 앞에서, 자신이 대체 무어라고 허식에 가득 찬 지팡이를 높이 휘두르며 그들을 인도하는가. 사제는 사무치는 자괴감에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도미닉."
사제는 자신의 이름을 조수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고인은 어떤 사람이었어?"
그 물음에, 사제는 시간을 두고 대답했다.
"나보다… 나같은 것 보다 대단한 사람. 내가 마땅히 알고 지냈어야 하는 사람."
조수는 조용히 물었다.
"좀 더 자세히 알려줘. 네가 아는 고인의 이야기를 듣고싶어. 그것이 아주 찰나의 순간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어쩌면 그 찰나가 다른 사람은 모르는 모습을 담고 있을 수도 있어. 그 이야기를 나눠줘.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일단,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그제서야 사제는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수십, 수백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궁금해했다. 대체 그 찰나가 어떤 순간이었기에, 사제를 매료시켰는지. 사제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가르고 말했다.
"그건 순전한 우연이었어. 내가 조나단 와이어트를 알게 된 것도, 그 책을 이 작은 도시의 도서관에서 발견한 것도. 내가 아직 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연히 집은 그의 책은 만들어진 이야기라곤 배겟가에서 들었던 옛날 이야기밖에 몰랐던 나에겐 혁명이었지. 미친듯이 그의 소설을 탐독하던 난, 이 곳에 와서도 그의 소설을 잊지 못했어. 도서관으로 향한건 바로 그것 때문이었고.
날 비난해도 좋아. 하지만 도서관에 있을때 만큼은, 난 사제도 뭣도 아닌 한명의 인간에 불과했어. 신따위 망각한체 수많은 글자를 읽으며 웃고 우는 인간말야. 고인을 만나게 된건 바로 그 도서관이었지. 우연히도, 와이어트의 소설을 집어든 고인은, 그래, 아직도 기억나. 그 책은 와이어트의 '표효'였어. 표효를 집어들고서, 와이어트를 좋아한다는 우연한 공통점을 발견한 우리는, 와이어트의 이야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의 문장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 세상이 얼마나 생동감 넘치는지, 함께 찬사를 보내며 즐겁게 대화했지. 그건 정말 놀랍고 새로운 경험이었어. 난 와이어트는 커녕 소설을 읽는다고 하는 사람을 전에 본적이 없었거든. 그 짧디 짧은 30분의 대화가 끝나고나서, 난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고인에 대해 나를 알려주고도 싶어졌지. 그에대한 이야기를 듣고싶었던 것 뿐이었지만, 결국 내가 듣게 된건 비보였어."
사제는 비통에 가득 찬 단어들을 마치 토해내듯 쏟아냈다. 마치 역겨운 위액이 입 안에 남아있는 것 마냥, 사제는 끊임없이 침을 삼켰다.
"조나단 와이어트라는 작가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아냐! 그는, 그는 단지 소설가에 불과해!"
사제는 경련하듯 반박했다. 곧이어, 그 반박을 변명하려는듯, 힘없이 말했다.
"그의 소설이 어떠했는지는 중요한게 아냐. 중요한건, 그가 나와 같은 소설을 읽었고, 감탄했다는거야. 그리고, 거기에 열광했다는 거였고. 그는 사제로써, 신을 믿는 충실한 신자와 길잃은 양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제로써의 내가 아니라, 한 남자의 평범한 글에 웃고 우는 나와 똑같이, 와이어트에 열광했다고. 그 찰나에서 느낀 동질감, 아무도 내게 보여주지 못한 동질감을 그는 보여줬어. 책을 통해, 그는 나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고. 나는, 그런 고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어. 그를 통해, 나를 좀 더 알고 싶었어. 내가 깨닿지 못한 내 자신을 알고 싶었어. 더 알고 싶었어."
그리고는 사제는 다시 군중을 바라봤다. 고인의 가족을, 친구를, 지인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들로부터, 곧 땅 속에서 썩어갈 고인의 생전 모습을 엿보려는 것 처럼. 실의에 빠진 눈동자로 그 모습을 차갑게 각인한 뒤,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모르겠어. 나는 대체 뭘 기대했던거지? 내가 모르는 고인의 미지의 영역에, 내가 상상하게 된 거대한 것이 애초에 존재하긴 했던걸까? 혹은, 내 알량한 상상따위로는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지 않나? 혹은, 그저 나라는 인간과 대화를 나눈 것은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고, 나에겐 관심조차 없었던게 아닐까? 내가 알지 못하는 그의 부분을, 내가 감당할수나 있을까? 고인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는 비대하지만, 그에 비해 내가 고인에 대해 아는건 아무 것도 없어. 그 욕구를 가지고 있는 한, 난 그의 영혼을 이끌수 없어. 그에게 있어 나는 한낱 인간이고, 나에게 있어 그는, 거인이니까. 범접할 수 없는 거인."
뜨겁고 무기력한 숨결이 그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사제는 더 이상 사제로 기능하지 않았다. 단지 심장이 뛰고 뜨거운 피가 흐른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는 고인과 한낱 다를바 없었다. 그런 그를, 누군가 뜨겁게 끌어않았다.
그것은 고인의 늙은 어머니였다.
오랜 세월동안 볕에 타 검고 주름진 그녀의 팔이 팔꿈치 밑으로 흘러내린, 조의를 표하는 칠흑의 로브자락 위로 드러났다. 쪼그라든 근육과 느리게 뛰는 핏줄 탓에 그 팔은 차가운 겨울의 메마른 나뭇가지보다 더 앙상해 보였지만, 차갑게 식은 고인을 마지막으로 끌어잡았었던 그녀의 손가락에는, 사제가 집어삼킨 고통과 고뇌를 찢을 수 있을듯한 괴력이 서려있었다. 그렇게, 사제를 뜨겁게 끌어안은 어미는 조용히 눈을 감고 말했다.
"내 아이는 팔그람의 신도가 아니었소. 어렸을때부터, 맏이는 본능적으로 신을 믿지 않았지. 그와 달리 충실한 신자였던 나는, 신을 거부하는 내 아이가 그토록 미울수가 없었다오. 그 생각은 아이가 커서 출가할때 까지 계속되었고, 별의 길을 따르려하지 않는 아이에게 마치 행복과 번영이 찾아오지 않을 것 처럼, 나는 맏이를 비난했었소. 하지만 어느날 그의 가게에서 수많은 손님 사이에 서있는 맏이를 보았을때,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오. 그의 인생에 신은 필요가 없었던 거지. 맏이는 누가 자신에게 가야할 길을 말해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그 길을 찾아가는 재주가 있었던게지. 아주 예전부터, 그 길을 힘차게 걸어가고 있었던거고."
어미는 말을 마치고 바로 팔을 풀지는 않았다. 그 쇠약한 손으로 사제의 머리를 두세번 천천히 쓸어내리고 나서야, 포옹을 풀고서 자신의 자리로 조용히 돌아가 앉았다. 그녀의 얼굴을 덮고있는 깊은 주름과 검버섯 위로, 뜨거운 눈물이 주륵하고 쏟아졌지만, 노인은 이에 반해 환히 미소지었다. 마치, 이제서야 진정으로 자신의 아들을 떠나보낸것 마냥.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고인의 단골이자 마을의 유지 중 한명인 중년 남성이 일어나 말했다.
"고인은 내가 알던 이중 가장 현명한 이 였어. 그 현명의 기준은 계산이나 셈, 지식이 아니라, 사교에 있었지만 말야. 다른 사람을 대하는데에 있어, 다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채고는 적절하게 대응하는 모습은, 신이 준 천부적인 재능이었지. 나도 다른 사람을 자주 만나고 대하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어. 그저 막연한 기대에 걸고 사람의 반응을 저울질하는 나와 달리, 그는 진정 사람을 알고 사람을 위하는 좋은 사람이었어.
좋은 예가 있지. 어느 화창한 오후, 잠깐 들러 고인과 이야기하던 그 화창한 날, 유명한 양아치 한명이 들어와 행패를 부리더군. 그런데 고인은, 그 양아치를 거칠게 대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주 들르라고 이야기하며 친절하게 대하는거야. 별일이야 싶었지만 나중에 보니 그 친구가 말썽도 안피우고 투덜대면서이긴 하지만 자기 일을 하려고 하는 모습을 봤을때, 고인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겠더군. 나라면 학을 뗐을테지만, 어떤 마법을 부린건진 몰라도, 다른 사람과 친해지고, 그들을 변화시키는데에 고인만큼 뛰어났던 사람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믿어."
자신의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은 중년 남성에 뒤이어 구질구질한 차림의 캐시언(묘인족) 거지 소녀가 일어났다. 그녀는 고인에게서 얼마 되지 않는 푼돈을 가끔 적선받았을 뿐이지만, 이 자리에 알아서 찾아온 아이였다.
"나으리는 그 누구보다 따뜻했습니다. 나으리가 제게 준 돈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대신 그는 돈이 아닌 마음과 희망을 주었지요.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뭘 하는지, 적선을 할때마다 항상 물어보고, 제 말을 기억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이야기를 나눠주시기도 했죠. 이미 죽은 제 부모도 그렇게는 해주지 않았었답니다. 전 아직도 나으리의 따뜻한 손길을 잊을 수가 없어요. 나으리가 없었다면, 아마 전 지금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을거에요."
뒤어어 한 여성이 일어났다. 예전에 고인의 동반자였었던, 하지만 지금은 남남일뿐인 전 아내였다.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사람과 제가 알던 전 남편은… 다른 사람인것 같네. 그는 적어도 나에겐 조용하고 무뚝뚝한 사람이었어. 나에게 있어서 그이는 벙어리와 마찬가지였지. 내가 그이와 해어진 것도 아마 근본적으론 그게 문제였으리라 생각해. 분명, 그이는 배려심 깊은 사람이었어. 모두를 이해하고, 언제나 좋은 방향을 제시하고. 하지만 결혼한 뒤로 그는 결코 먼저 내게 다가오지 않았어. 먼저 뭔가를 하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지. 겉으로는 따뜻했지만, 그이와 나 사이엔 투명한 벽이 있었어. 난 그 벽을 넘어가고, 부수고 싶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았던 그 벽. 나에게만 그런게 아니었어. 그이와 다른 사람에게는 언제나 그 벽이 존재했었지. 왜였을까? 그렇게 거리를 두고서야, 그는 친절할 수 있었던 걸까? 대체 그 벽 너머의 그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지금 그 비밀을 알아내는 방법은 없겠지. 안타깝네. 뭐, 살아있었다 해도 다시 결혼하는 일은 없었겠지만."
한 청년이 일어섰다. 날카로운 눈매 때문인지, 아니면 구부정하게 서있는 자세 때문인지, 어딘가 반사회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청년이었지만, 그의 태도와 표정은 곧고 엄숙했다. 그는, 아마 어쩔 수 없이 적응해버린 불분명한 발음으로, 최대한 예의 바르게 입을 열었다.
"방금 아저씨가 말한 양아치는 저인것 같은데 말입죠. 뭐,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옙. 전 양아칩니다요.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시비나 걸고, 동네 거지에게 돈이나 뜯고.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그는 그런 절 양아치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양아치라는걸 알 알고 있었지만,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맨 처음엔 기분이 나빴습니다. 절 얕보는건가 싶었죠. 하지만 제가 기분이 나빴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죠. 그렇게 절 대하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았던 것입죠. 그런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요. 전혀요. 그래서 시비를 걸기 위해 몇번 가게를 들락날락하기 시작했는데, 어느샌가 그 가게에 익숙해진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이든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게 된겁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런 고인을 닮으려 조금씩 노력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완벽하지는 않지만. 죽은 뒤의 그가 만족스러워 할 수 있도록 저는 더 노력할겁니다."
그리고 하나둘씩, 자리에 일어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수많은 이야기들. 크고 작은, 별거 아닌것 처럼 보이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들의 입에서 나왔다. 본디 해가 머리위에 닿으면 끝나야 했을 장례가 해질녘이 다 되어도 끝나지 않았던건 그때문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반복해서 일어나 그들의 이야기를 했음에도, 그의 이야기를 하지 못한 이가 남았다.
사제는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입을 열지 않고, 죄를 짓고 있던 표정 그대로 그 모든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래서였을까, 다른 모든 이들도 그와같이 경청했다. 그 누구도 불평하나 않았다. 이윽고 푸른 달이 밤하늘에 걸려있을떄가 되어서야, 마지막 사람이 이야기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사제는 말했다.
“지금은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입을 닫았다. 잠자코, 가만이 있었다. 고른 숨소리가 제사장을 울렸다. 이제 더이상 훌쩍이는 이도 없었다. 이윽고 사제는 다시 말했다.
“그는 죽었습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그런 그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컸습니다. 너무나도 커서 한사람으로써는 결코 다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채워질 수 없는 욕심이 여러분을 통해 정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이뤄질수도 없는 욕심이었죠. 대신 저는 여러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던 사람의 단면을 기억하고 계신 여러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후드를 다시 쓰고, 마침내 지팡이를 들었다.
“때문에 저는 알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만큼, 저희들도 그에게 영향을 미쳤으리라는걸요. 그래서 저는 장례를 치루겠습니다. 그에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제가 무엇을 위해 사제가 되었는지 증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제는 애도를 시작했다. 신의 사도가 아닌 인간으로써.
그를 앙망했던, 하지만 떠나보낼수밖에 없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인간으로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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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사제는 조용히 장례를 치루었다. 종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이따금 들려왔지만, 사제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수많은 이들의 생각에 이내 묻혀 사라졌다. 모처럼 검은 직물로 만들어진 옷을 입은 난희는, 고개를 숙이고 사제의 이야기를 들었다.
“‘…의로운 자는 그의 마음에 따라 뜻대로 하리라. 그리하면 그 길 끝에서 이루어지리라.’ 그녀는 팔그람이 아니었음에도, 그녀의 길은 곧고 아름다웠었습니다. 갖은 몰이해와 비난에 굴하지 않고 남들을 돌보길 멈추지 않았던 착한 아이였고, 전장에 다친 이들이 다시 서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한줄기 희망이었죠. 그렇기에 그녀의 뜻은 지금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이 차가운 땅 위에 뉘인 후에도, 그런 길다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종소리가 울렸다. 한때 마녀가 살았던 숲에 맑고 무거운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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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알고 싶었고 그럴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한, 그리고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된 한 청년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