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운명 이야기
Nake
2016. 2. 22. 02:09
줄을 꼰다. 손에 든 재료는 이렁주 동아였다. 일반 동아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생긴 이렁주 동아는 개인이 꼴 수 있을 정도로 가늘고 가벼웠지만, 그 강도는 동아 못지 않아 생긴 것이 다름에도 동아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식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밧줄로 꼬지 않으면 툭 끊어지고 만다. 그리고 밧줄을 꼬는 과정은 반복과 반복의 연속이다. 길고 긴 동아 줄기를 서로의 위와 아래에 교차시키는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만 이렁주 동아가 동아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평생을 해온 일이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길고 긴 줄을 끊임없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머리를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 머리는 자유로웠다. 언제나 생각을 한다. 지금도 나는 생각을 한다. 몸이 있는 현실에서 멀어져, 기억과 상상이 자리한 생각 속으로 빠져든다.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아들의 목소리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건 25살의 건장한 청년일 적 임에도 나는 아직도 그의 목소리를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기억했다. 변성기가 채 지나지 않아 성별을 구분하기 힘든 맑고 높은 목소리. 그가 나를 부른다. 나는 설렌다. 한참 전에 죽은 남편이 주던 설렘과는 다른 설렘이었다. 개가 휘파람 소리를 듣고 먹이를 기대하듯, 나는 그의 목소리를 떠올릴때 기대하고는 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무엇을 기대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내 아들은 언제나 사고뭉치였다. 사고를 치지 않을때가 드물었다. 더욱이 앳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을 어린 아이었을때는 더욱더.
그래서인지 나는 의아해했다. 나는 왜 아들을 아이로 기억하는걸까. 그렇게 착한 아이가 아니었는데도.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아니었는데도. 곧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아이가 크지 않기를 바랬다. 계속 아이로 남아있었으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아이는 어른이 되어야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집안에 성인 남자가 없는 가족의 아이는 더더욱. 그래서 아이는 순식간에 자라났다. 하루하루가 달라질 정도로 빠르게 자라났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며 안심했었다. 그랬었다는 이야기다. 그가 맞이한 운명의 덧없음을 알게 된 뒤로, 나는 내 자신을 탓했다. 그렇게 바랄 이유가 없었는데. 그렇게 급히 클 이유가 없었는데.
모두 과거의 이야기다. 안타까운 이야기다.
잠시 현실로 돌아온다. 목이 말랐다. 항아리에 떠놓은 우물물을 바가지로 조금 퍼 마셨다. 얼음같이 차가운 물이 머리를 찔러왔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내 아들은 이 추위를 견디며 차가운 땅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일까? 변변한 관도 없이 그 차가운 흙 속에서 외로이 추위를 견디고 있는걸까? 가슴이 아려왔다. 내장을 누군가 움켜쥐고 비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그저 침묵만이 감돌았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줄을 다시 꼬기 시작했다.
내 아들의 죽음은 분명 비극적이었다. 아니, 비극적이지 않은 자식의 죽음이란 없을 것이다. 부모에게 자식과 같이 있는 시간은 언제나 희극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관점을 제하더라도, 내 아들의 죽음은 분명 비극적이었다. 더욱이, 허무한 죽음이었다.
광왕이여. 그 허무한 이명이여.
물론 그가 우리 마을에 찾아왔을 시절엔, 그 이명이 널리 퍼지지는 않았었다. 그는 그저, 이젠 그 이름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 폭군을 물리치고 새로운 왕위에 오른 이였다. 폭군이라 불린 이는 폭군다웠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곤욕을 치뤘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필요했는지 모를, 그리고 도움조차 되지 않는 전쟁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남편은 그렇게 전쟁을 위해 길을 떠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때문에 그가 죽임을 당하고 새로운 이가 왕위에 올랐을땐 마을의 모두가 칭송했다. 나 또한 칭송했었다. 아무것도 모른체.
아들은 달랐다. 그는 신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성실한 농부였던 것 만큼이나 그는 신실한 신자였다. 불만은 없었다. 아들은 검소하고 근면했고 규칙과 규율에 따라 생활했다. 어렸을 적 개구쟁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황금색으로 물든 곡식을 한껏 품에 안으면 검게 탄 그의 갈색 피부가 땀에 흥건히 젖어 빛났다. 남편이 떠올랐지만, 그건 정말 조그만 생각이라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저 건장한 아들이 자랑스러웠을 뿐이다.
그런 삶을 가져다 주었다는 점에서, 나는 광왕을 사랑했다. 모두가 광왕을 사랑했다. 그리고 어째서였는지, 그는 우리 마을로 찾아왔다. 온 마을이 들뜨기 시작했다. 가장 어리고 가장 살이 두둑히 오른 가축을 도축하고, 가장 건강하게 여문 보리를 모아 만든 맥주를 꺼내왔다. 일손이 부족했던 시기였음에도 우리는 기꺼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 광왕을 맞았다.
광왕은 싫증나있었다.
그 어떤 것도 그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아닌 축제는 그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해서, 실망한 그에게 굴하지 않고 최대한 즐거운 하루를 보내려 노력했다. 모두가 그리했다. 그리고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다. 우리는 즐거웠다. 정말로 즐거웠다. 금욕적이었던 나의 아들마저도 즐거웠던 하루였다.
그랬기에 우리는 아직도 그가 왜 죽었어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가설이었다. 적어도 무언가를 감추려 한 것이었다면 성공적이었으니까. 내 아들과 수많은 이들이 광왕의 칼날아래 쓰러졌다. 날카롭게 베인 상처 사이로 선혈이 심장박동에 맞춰 흘러나와 땅을 적시고 잘린 팔다리는 곳곳에 널부러져 기괴한 지옥도를 공터 위에 재현했다.
이 오랜 세월동안 내가 그의 죽음을 감내하고 살아오며 깨달은게 있다면, 그건 중요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중요한건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죽음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삶이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닌 것처럼 죽음은 산 사람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동아줄을 꼬았다. 그리고 수많은 일들을 해냈다. 살아가기 위하여. 단순이 살아남기 위하여.
그랬기에 나는 어느날 자문했다.
도대체 왜?
왜 살아가야하는가?
손이 떨려왔다. 그럴땐 눈을 감고 숨을 내쉬면 도움이 되었다. 분노와 괴로움이 손 끝의 동아줄을 타고 빠져간다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마치 그 상상이 현실이 된 것마냥 감은 눈을 뜬다. 나아진다. 그렇다고 믿는다. 끈적하고 어두운 감정들이 아직도 변치 않은체 단전에 응어리쳐져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모르는 척 연기한다. 그리고 다시 줄을 꼬기 시작한다.
그 분노를 누군가에게 풀어내는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분노는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다. 내가 죽을때까지, 그저 목표만을 바꾼체 끊임없이 불타오를 잔인한 화염이다. 하지만 맨 처음 자문을 시작했던 나는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었다. 그랬기에,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분노’라 답했다. 분노를 원동력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광왕에게 복수를. 광왕에게 죽음을.
복수는 적어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두번이나 감내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복수에 필요한 것은 두가지다. 적절한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와 중요한 순간에 행동할 줄 아는 용기. 아니, 정정하겠다. 행운도 필요하다.
하지만 행운은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은 우리의 행동이 결실을 맺어 결과로 나타나고, 또 그 결과가 하나의 원인이 되어 다른 무언가를 유발하는 일련의 과정이 존재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다. 나는 무신론자였다. 독실한 신의 종이었던 아들과 다르게 나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그렇다고 무엇하나 부끄러운 점 없었고, 무엇하나 핍박받은 것 없었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당당하게 내 자신의 운을 만들어간다 믿었고, 그랬기에 나는 내 복수에 행운을 굳이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생각은 옳았다. 참고 기다린다. 날이 가길 기다렸고, 달이 가길 기다렸고, 해가 가길 기다렸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는 광왕에게 가까워져갔다. 그의 악명이 커져갈수록, 사람들의 박탈감은 심해져갔고, 나의 기회는 커져만 갔다.
그래서 나는 준비했다. 기회의 그 순간이 눈앞에 있었기에.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었기에. 나는 품 속에 꼬아놓은 튼튼한 줄을 집어넣고 머릿속으로 계획을 수십번 수백번 반복했다. 복수는 성공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은 성공했다. 나는 광왕의 눈 앞에 다가갔다. 하지만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물론이고 10년전의 내 아들도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내가 그를 죽이는데에, 그가 내 복수의 원인을 알 필요는 없었다. 내 아들도 자신이 왜 죽어야 했는지 알지 못했지 않은가.
광왕은 매듭 안으로 그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그 매듭은, 지금 내가 만든 매듭과 완전히 동일했다. 이 매듭 사이에 무언가가 걸린체 무게가 실리면, 매듭은 줄 사이에 있는 불우한 희생자를 거침없이 죄여오기 시작한다. 줄이 끊어지거나, 숨이 끊어질때까지. 무언가를 메다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오랜 옛날 어머니가 알려준 방법이었다. 어머니는 옳았다. 이 매듭은 수많은 물건의 무게를 지탱했다.
광왕 또한 다를 것 없었다. 나는 끈을 당겼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손에 두른 끈은 마찬가지로 내 손을 죄여왔지만, 광왕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살갗을 파고들어 그의 기도를 틀어막은 것이 그 끈을 타고 전해졌다. 컥, 커헉, 그의 비정상적인 호홉소리와 함께 끈이 흔들렸다.
나는 기다렸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끈의 흔들림 멈추길, 그의 숨소리가 멎어들길, 그럼으로써 나의 분노가 가라앉길 기다렸다.
그리고 끈은 더이상 손을 죄여오지 않았다.
나는 놀랐다. 광왕을 죽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복수란 허망한 것을 깨달아서도 아니었다. 나는, 그가 나를 돌아본체 이해할수 없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기에 놀랐던 것이다. 그는 살았다. 복수는 실패했다. 줄은, 끊어졌다.
어째서?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그는 반항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저항하지도 않았다. 그조차도 죽음을 예견한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줄은, 말 그대로 불가사의한 이유로 끊어져 광왕을 내 손아귀에서 풀어내었다. 광왕은 부어오른 목을 부여잡고 거친 숨을 바로잡았다. 나는 그저 그런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광왕 또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 빌어먹을 운명같으니라고."
그리고 그는 그렇게 말했다. 광왕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그것 뿐이었다. 그는 방을 나갔다. 나는 홀로 남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그 이유를 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 뿐이었다. 아무런 문제없이, 이상하리만치 기괴한 악몽을 꾼 것 마냥 자연스럽게 밖으로 빠져나왔을때, 그제서야 나는 이것이 그 빌어먹을 운명이라는 거대한 것의 수작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믿을수 없었고, 믿지도 않았지만, 운명이 아니고서야 그 모든 준비가 허사가 됬을리 없었다. 사라질리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광왕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잔재에 스러질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 잊혀진 한 아들의 어미의 복수는 성공할 리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지 않고서야.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실패했다는 것을, 그 모든 세월의 노력이 허사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겁하고 치졸하지만 나는 운명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그럴수밖에 없는 내가 밉고 한심했지만, 나는 끊임없이 내 자신의 실패를 부정했다.
그 모순은, 마침내 결과에 다다랐다.
만약 내 모든 노력이 실패에 맞닥뜨리게 될 것 이었다면, 내 안의 분노가 결국 무위로 돌아갈 운명이었다면, 대체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이렁주 동아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그걸 대들보에 휘감은뒤, 반대쪽 끝을 문간에 단단히 묶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그런건 없었다.
내가 살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마지막이 될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밧줄에 목을 걸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는 이제 운명을 믿었기 때문이다. 운명이여, 내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준 운명이여. 나는 너를 믿는다. 네가 실패하리라 의심하지 않는다. 그 운명에 따라 놓아준 광왕을, 부디 운명의 이름으로 잔인하게 죽여다오. 그 잔인한 운명이 광왕 앞에 기다리고 있기만을 믿는다.
그리고는 몸을 밧줄에 맡겼다.
밧줄이 미친듯이 요동쳤다. 목이 메여 새하예진 시야 너머로 고통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이 모든 것은 곧 멎을테지만, 나는 이를 보지 못하리라.
이 모든 것이, 운명의 의지이기를.
[끝]
“운명의 푸른 별 이야기라며?"
울피나가 물었다. 난희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울피나를 마주봤다.
“맞아. 정확하게는 인간의 운명 이야기지. 운명의 푸른별같은, 그러니까 여러가지 인간을 인도하는 별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성간 신앙과 팔그람의 인도 신앙이 섞인 결과물이니까. 내가 이야기하려는건, 원래 인간의 신앙이 어떤 모습이었느냐고 말이지."
“으… 생각하던거하곤 많이 달라. 운명의 푸른 별은 뭔가 자애로운 느낌이었는데…"
페트리샤였다. 뭔가 무서운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살짝 창백한 기운이 도는 표정으로 난희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조그마하게 한숨을 쉬었다.
“후후, 걱정말라고. 운명 이야기는 끝이 아니야. 특히, 이 광왕의 운명은 말이지."
난희는 말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시금 쏟아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