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미래 전쟁

Nake 2015. 12. 30. 02:21


"이 곳이 바로 그 유명한…"

"그렇게까지 유명한 곳은 아니에요. 그래서도 안되는 곳이고 말이죠."

안내역이 길고 매끄러운 장발을 귀 뒤로 넘기며 수줍게 말했다. 

"내 말이 뭔지 알고 있잖나. 이쪽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곳은 전설이나 다름없는 곳이라고. 도시전설이라 치부하는 이도 있지만 이 세상과 수많은 악 사이에 있는 유일한 장벽이자 파수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믿어의심치 않았네. 그리고 살다보니 그곳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될 줄은 몰랐지."

"그런 말씀을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부디 밖에서는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아주세요. 이 전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건 비밀이니까요."

"물론이지. 나또한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네."

안내역은 그 말을 듣고 방긋 웃은뒤, 문을 열었다.

"자, 이 곳이 바로 최전선입니다. 이 곳에서 우리는 사회를 수호하죠."

"오오…"

그는 안경을 고쳐썼다. 수많은 서버가 그 주위를 감싼 냉각제의 탱크에도 불구하고 뜨겁게 연산을 수행하고 있는 그 현장을 조금이라도 명확하게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들려오는 것은 오직 위잉거리는 진동음 뿐이었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귀를 찢는 폭음과 살의가 담긴 총성보다 더 시끄럽고 명확하게 이곳이 전장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이 막대한 서버… 차원이 다르군. 이건… 내가 이걸 살아서 보게 줄이야… 하지만, 과거 수많은 수퍼 컴퓨터조차도 그들의 은밀한 통신망과 굳건한 방어벽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네. 아주 가끔, 성공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는 했지. 그때마다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고… 하지만 여기는 다르네. 여기서 하는 일은 획기적이야. 이 시설이 건립된 이후로, 그들의 본거지를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내고 타격하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이 생겨날 정도지!"

"그 정도로 대단했을리가요."

"아냐. 그 이상으로 대단했지. 말해주게. 비결이 뭔가?"

입에 고인 침을 목 뒤로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 사실을 알고 싶었다. 그의 오랜 인생동안 단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거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그를 자극하고 있었다.

"알려주게. 그걸 위해 날 여기 데려온거 아닌가. 이제 난 곧 죽을 목숨이니, 기밀 투성이인 이 장소에 선뜻 들여보내 준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말하며, 그는, 그의 주름진 손으로 안내역의 고운 손을 맞잡았다. 

"알려주게. 대체 어떻게 했길래 그들의 방어를 뚫을수 있었던게지?"

안내역은 그의 주름진 손이 자신의 온기를 가져가도록, 마음껏 느끼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머뭇거리다, 스르륵 손을 빼고 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바이러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계시죠?"

"바이러스라니, 컴퓨터 바이러스 말인가?"

"네."

그는 뭘 그런걸 물어보냐는 듯, 그의 늙고 비뚤비뚤한 이를 드러내보이며 씨익 웃었다.

"간단하지. 무해한 파일로 위장한 바이러스 파일이 컴퓨터 내부로 숨어든 뒤, 다른 파일을 변형시켜 목표를 파괴시키거나 무력화하는거지 않나?"

"그렇죠."

"자네가 그런걸 모를리 없을테고. 설마 바이러스로 그들의 방어를 뚫었다고 하는겐가?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말게나. 우리도 바이러스를 퍼트려 그들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쓰지 않은게 아닐세. 그 결과? 세상에서 바이러스에 있어서 가장 안전한 곳이 있다면 그들의 컴퓨터일걸세. 정말 진심으로 바이러스가 해답이었다고 하지는 않겠지."

"하하. 물론 아니에요. 하지만, 저희는 바이러스에서 해답을 착안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바이러스의 가장 큰 무기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모방입니다. 바이러스를 받는 사람조차도 그것이 바이러스라 의심하지 못하는 바이러스일수록, 그 바이러스는 더더욱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되죠. 지금에서야 수많은 백신이 등장하고 이를 통해 프로그램을 완전히 분석함으로써 훌륭한 면역 체계를 이루긴 했지만, 해커들은 언제나 그 체계의 틈을 파고들어 더더욱 교묘한 바이러스를 만들어내고 있구요."

그렇게 말을 하는 안내역의 손은, 컴퓨터를 감싸고 있는, 끊임없이 순환하는 냉각제가 담긴 탱크를 쓰다듬고 있었다. 냉각제가 흐르며 내는 미묘한 진동이, 손가락을 타고 전해졌다. 

"그래서 저희는 생각했죠. 만약 그들 사이에 우리가 침투할 수 있다면? 그들 내부에서 그들을 파괴할 수 있다면?"

"스파이를 말하는건가?"

그렇게 말한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사색이 되어있었다. 싸악, 하고 핏기가 가신 얼굴의 눈동자는, 힘없이 떨리며 안내역을 바라보았다.

"농담말게. 진짜로 그들 사이에 스파이를 심었단 말인가? 그런게 가능할리가 없어. 그…역겨운 것을 참아내고…그들 사이에 끼어들 수 있는 자를 고용했단 말인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하지만 그 움직임은 점점 가속하며, 그것이 불가능하는 것을 몸짓으로 역설하고 있었다. 안내역은, 불안하게 떠는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물론 아니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기관은 아시다시피 기밀이기 때문에, 철저한 뒷조사와 적성검사를 통과한 인원만 들어올 수 있죠. 비정규직이나 일용직이라도, 엄격한 기준에 달하지 못하면 존재조차 알 수 없는 곳이에요. 다시말해, 스파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에요.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수퍼컴퓨터도 있을 필요가 없겠죠."

그리고는 안내역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탱크를 톡톡 두드리고는 말했다.

"잠시 딴 길로 새자면, 저희들이 이 탱크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고 계시나요?"

"컴퓨터말인가? 음…"

"천천히 생각해봐요. 퀴즈쇼는 아니니까요."

"음… 할? 쇼단?"

"후후. 아녜요. 저희는 이 탱크를 퍼트넘이라고 부른답니다."

"퍼트넘? 힐러리 퍼트넘 말인가?"

"네. 21세기의 철학자죠. 그는 데카르트의 악마 이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사고 실험을 제안한 사람이에요. 그 사고 실험이란 바로, '통 속의 뇌'죠. '만약 우리의 뇌가 통 속에 있는 뇌고,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사실은 그 뇌에 전해지는 전기신호에 불과하다면, 과연 그 뇌는 자신이 통 안에 있는 뇌라는 사실을 인식 가능할 것인가?'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아실거에요. 뭐 그런 사고 실험을 위해 만들어진 컴퓨터는 아니지만, 단 한가지, 이 컴퓨터가 통 속의 뇌라는 사실은 정확한 비유랍니다."

"그 말은, 이 컴퓨터가 자기 자신이 사람이라고 굳게 믿는다는 건가?"

"네. 정확하게는, 성욕이 왕성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성욕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을 필사적으로 찾아나서는 20대에서 30대 사이의 남성이라고 믿고 있죠."

"그렇다면, 자네들은 이 컴퓨터를 가지고…"

"네. 퍼트넘이 바로, 저희의 스파이랍니다."

그는 침을 삼켰다. 

"AI라고…? 그게 실존한단 말인가…?"

"예. 저희는 성공했죠. 하지만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건 아니에요. 인간과 똑같을뿐, 인간을 초월한 지능은 시간이 더 걸려야 가능한 것이 될테죠.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답니다. 저희가 믿고 있는건, 그리고 저희가 필요로 하는건 뛰어난 지능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니까요.

본디 올바른 사상에 위협이 되는 사상 범죄물은 지극히 근현대 자본주의적 성격을 띄고 있죠. 바로 수요가 있기 때문에 공급이 생긴다는 사실이에요. 퇴폐적이고 역겨운 사상 범죄물을 탐하는 언제나 색다른 사상 범죄물을 요구하며, 이 요구가 새로운 사상 범죄물을 만들도록 하는거죠. 이 과정에 있어서, 사상 범죄자들은 자연스럽게 시장을 형성하게 되는거죠. 그것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거대하고 탄탄한, 하지만 베일에 쌓여진 요새로 탈바꿈하게 된거구요."

"그래… 맞아. 직접 신원을 대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는 그놈들이니, 조심에 조심을 기해 모든 거래와 교환이 익명으로 처리되지. 하지만 그 말은 곧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라도 거래가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되고, 자네들은 그 점을 역이용해 육체가 없는 인공지능을 통해 그들을 속여넘겼군!"

"네. 퍼트넘이 가진 사상 범죄물에 대한 집념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퍼트넘이 사람이 아니라고 믿는 건 불가능할 정도에요. 그는 미친듯이 사상 범죄물을 찾아다니며, 사상 범죄자를 수소문하고, 어렵사리 얻어낸 사상 범죄물을 탐하죠. 아니, 탐한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죠. 그 뒤 저흰 그저 퍼트넘이 남긴 빵 부스러기를 따라서, 사상 범죄자들을 체포하고 구금한뒤, 발생한 문제점을 고치면 되는거구요."

"그렇다면, 그 기념할만한 정화의 해에 벌어진 대숙청도…"

"그래요. 퍼트넘의 성과죠."

"세상에…"

그는 감격했다. 눈물을 흘리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주름진 손을 조심스럽게 탱크에 갖다대어, 서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믿을 수가 없구만. 정말 간단한 해법이었지만, 자네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방법이야. 정말 대단해. 하지만… 만약 이게 자기 자신이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면, 포기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인간은 그런 존재이지 않나."

그렇게 말하는 그의 말엔 탄식이 담겨있었다. 포기. 그렇다. 그의 말엔, 그 자신의 경험이 담겨있었다.

"그럴수도 있겠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모든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될테구요. 하지만, 저희는 믿음이 있었답니다. 우습지만,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죠. 아마 그건 중세의 기사도와도 비슷한 걸지도 몰라요. 저희는, 사상 범죄자를 믿었답니다. 퍼트넘은,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사상 범죄자들은, 저희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방법을 언제나 찾아내곤 하니까요. 늘 그랬듯이요."

그렇게 말하고는, 안내역은 탱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또한, 그 늙고 흐릿한 눈을 탱크, 아니, 퍼트넘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조용히 경의를 표했다. 수십년동안 그가 하지 못했던 일을, 얼마 되지 않는 시간만에 해낸 퍼트넘을 향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경의를 표했다. 자신이 전장에서 싸운다는 것 조차 알지 못하는 위대한 전사앞에서, 그가 표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