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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하피 이야기 1

Nake 2015. 8. 16. 19:51

예전에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새의 날개의 꽁지를 잘라내면 그 새는 더 이상 날지 못한다고. 그걸 다시 떠올린건 그 거대한 알을 깨고 태어난 인간과는 다른, 하지만 너무나도 인간과 유사하고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을 한 새끼 하피의 얼굴을 봤을때였다.

그 알의 출처는 어느 수상한 노인이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남은 것으로 보였던 그는 그 세월의 여파로 눈이 멀고 이가 빠지고 손가락이 잘려있었다. 노인네는 길거리에 앉아 그 큰 알을 저잣거리의 행인들에게 보여주며 그들을 붙잡고는 말했다.

"보게! 이게 바로 하피의 알임세! 내 싸게 줄테니 이 알을 가져가쇼!"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타조의 알이겠거니, 하고 기구한 노인네를 밀치고 사라졌다. 나도 그 말을 믿지는 않았다. 나 또한 타조의 알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그 타조가 필요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기 않았기에 뭐든지 필요했었다. 빌어먹을 집구석엔 아무것도 없었고 낡아빠진 주머니 속에도 아무것도 없었으며 하루하루 일용직으로 일해 받은 품삯으로 마신 술을 빼고는 뱃 속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어렸을 적 지낸 타조 농장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고된 일이겠지만 그것에나마 희망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새출발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돈은 없었기 대문에 한밤중 거리에 누워 자고있는 노인의 품에서 알을 훔쳐왔다.

싸구려 짚풀과 헌 옷을 모아 알을 덮히며 몇주를 부푼 기대에 젖어 기다렸건만, 기다렸던 타조는 당췌 보이질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분노가 치밀어올라 차라리 알을 부수어 먹을까하는 생각도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설마 타조알이 아닌건가 하고, 말도 안되는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새출발을 꿈꾸며 마시던 술도 끊고 돈을 한푼한푼 모아 그렇게 또 일주일, 하피가 태어났다.

5~6살 즈음의 여자아이, 영락없이 그런 모습으로 보였던 그 새끼하피는 커다란 은빛 눈으로 태어나서 가장 처음 보는 사람인 나를 똘망똘망 응시하고 있었다. 맨 처음 그 소녀는 깨어진 알 밖으로 머리만 쏙 빼놓고 있었기에, 날개는 눈치 채지도 못하다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을 내밀어 날개를 파닥이자 비로소 그 소녀가 자신의 머리칼만큼 붉은 날개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가위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두리번거리는 소녀를 두고, 나는 가위를 가져와 가장 먼저 날개의 꽁지를 잘라냈다.

소녀가 울기 시작했다. 아파서였는지, 배가 고파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소녀를 어르고 달래 겨우 준비할 우유죽을 먹이긴 햇지만, 하피를 데리고 무엇을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앗다. 하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취-토로 향하는 뱃사공을 홀리는 노래부르는 하피의 민담밖에 없었으니까. 알이 깨어나길 빌며 모은 돈도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닌 것을 생각하면 이 하피를 데리고 어떻게 돈을 벌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냥 죽여?

아니. 나는 이것이 천재일우의 기회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기회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비루하고 초라한 내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이기도 했다. 일단 하늘을 날아 내 손 밖으로 빠져나갈 걱정은 덜긴 했지만 이 꼬맹이를 데리고 거리를 돌아다닐 수도 없는 모양이었기에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고 거적대기를 입힌 다음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노인네를 찾아 뭐라도 물어볼 생각으로 저잣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그 빌어먹을 노친네는 당최 보이질 않았다. 몇 주간 안보였기로서니 어디로 갔나 샅샅이 뒤져봤음에도 그 노인네는 콧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할수없이 술집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알을 훔친 뒤로부턴 술집에 아예 오지 않아서 정말 오랬만에 오는 것이었다. 술을 입에 대지 않고도 몇주를 참았는데. 제길. 노인네를 찾지 못했으니 이젠 다 지나간 일이었다. 돈을 모을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맥주 한파인트 주쇼."

차라리 오줌이라고 하면 믿을만할 미지근한 맥주를 단숨에 들이키고 생각했다. 이 술집에는 별의별 사람이 모여드니, 적어도 그 인간의 행방을 아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이봐, 주인장. 혹시 몇주 전에 늙은 병신 노친네 한명 기억나쇼?"

"병신? 어떤 식으로? 이곳의 노친네 중 병신이 아닌 놈이 뉘있겠어?"

"그, 눈이 멀고 손가락이 잘린 노친네말요."

"그런 인간이 한둘이어야지. 공장을 그만두거나 전쟁에서 싸웠던 인간들 태반이 눈이 멀고 손가락이 잘렸는데."

"하, 거 참. 몇주 전에 하피 알을 팔겠다고 나선 노인네말요!"

알 이야기를 꺼내고서야 주인장은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깨달았다는 듯 눈을 휘둥그래 뜨고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더니 말했다.

"아, 그 양반! 타조 알을 두고 헛소리하던 그 양반말야? 그 노친네, 아마 알을 일어버린 뒤로 미친듯이 그 알을 찾아 헤메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던데?"

"사라졌다고? 그 양반이 어디로 갔단말요? 근처에 연고도 없어뵈던 양반인데."

"나야 모르지. 소문으로는 알을 찾으러 들어가서는 안되는데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있고. 이를테면 뒷골목이라던가. 그런데 그 노친네는 왜 찾는거야?"

왜긴 왜야. 하피에 대해 알고 싶어서지. 하지만 그 말을 할수는 없었기에 입을 다물고 맥주나 한잔 더 시켰다. 뒷골목이라. 이 괴상한 인생의 막을 거기서 내릴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향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망할 도시의 온갖것이 모여드는 뒷골목이었다. 분명, 그곳에서 노인네를 찾을수 있기야 하겠지. 문제는 내가 몸 성히 뒷골목을 빠져나올 수 있느냐이지만.

두잔째의 오줌을 들이키고 있을때쯤, 누군가 슬그머니 옆자리에 안장 주인장에게 말했다.

"맥주 두잔 주시죠. 한잔의 옆의 신사에게 주시구요."

옆을 보자 훤칠하게 생긴 엘프 청년이 망토를 둘러쓰고 자리에 앉아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생전 처음보는 양반이었다.

"뭐요? 공짜맥주는 환영이다만 되도않는 수작은 사양이외다. 남자는 취미 없소."

"그거 다행이군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잔째를 비우자 주인장이 빠르게 잔을 가져가 새 맥주로 채워났다. 슬슬 취기가 도는지 얼굴이 뜨거워지고 눈이 뻐끔뻐끔 감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다섯잔. 언제나 다섯잔 이상만 마시지 않으면 사고를 치지는 않았다.

"그럼 썩 꺼지쇼. 맥주는 잘 마시겠소."

"그런말 마시구요. 우연히도 싸구려 맥주와 성별이 다른 대상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 말고도 저희에겐 공통관심사가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관심없수다."

세잔 째에 입을 댔다. 여전히 맛이 없었다.

"많은 돈이 걸려이싿고 해도 말입니까?"

한모금을 들이키고, 컵을 내려놓았다.

"말해보쇼."

"하하,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요."

엘프도 맥주를 들이켰다. 이 정도로 싸구려일줄은 몰랐는듯 인상을 크게 찌뿌리고는 잔을 금새 내려놓았다.

"사실 무례한 것 알면서도 방금 주인장과의 이야기를 엿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저희는 같은 노신사를 찾고 잇더군요."

"세상에 널린게 병신 노친네인데, 굳이 그 노친네를 찾는 이유가 뭐요?"

엘프는 빙그레 웃으며 나를 보았다. 친근하고 끈적해서 기분이 나빠지는 능청스러운 미소였다.

"정확하게는 그 노신사가 가지고 있던 물건에 관심이 많아서 말이죠."

"그 커다랗고 괴상하던 알?"

"예. 사실 제 고용주는 그 알에 매우 높은 가격을 매기고 매입하려 했습니다만, 막상 노신사와 거래하려하자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아서 곤란에 처한 상황이라 말이죠. 그의 행방을 찾는 데에 도움을 주시는분에게 큰 보상을 치룬다고 이야기하시는데, 혹시 알고 계신 정보가 있습니까?"

이거다. 이게 바로 기회다. 맥주를 들이키며 생각했다. 어떻게 이 기회를 최대한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까?

"음, 나는 아무것도 몰라."

일단 그렇게 말했다. 모름지기 협상은 밀고 당기기니까.

"하지만 알에 대해서는… 내 연을 대보면 아마 찾을수 있겠구만."

"오, 정말입니까? 인간의 수완이란 대단하군요!"

"어허, 맨 입으로?"

"아, 죄송합니다. 제가 무례했군요."

엘프는 그렇게 말하고는 품에서 종이쪼가리를 꺼내들었다.

"잠깐, 착수금을 어음으로 내려고?"

"현금을 바라시는건가요?"

"바라는게 아니라, 그게 당연한거요."

"흠. 알겠습니다. 얼마면 될까요?"

속으로 셈을 했다. 금화 50닢이면 일년 정도는 숨어서 여유롭게 하피를 어떻게 할 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백닢 주쇼. 나도 부려야 할 사람이 있으니."

때문에 높은 값을 불렀다.

"좋습니다."

이래서 돈많은 호구놈들은 안돼. 의심 많기로 소문난 엘프라도, 호구는 호구였다.

"다만 그만한 돈이 지금 당장은 없군요. 여기, 지금 가지고 있는 열 닢이라도 일단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여기로 다시 오신다면, 제가 숙소에 둔 돈을 가져와 나머지 아흔닢을 드리도록 하죠. 알을 주실때까지 얼마나 기다리면 될까요?"

"한 이주일만 주쇼. 금세 찾아줄테니."

"후. 한시름 놓았네요. 제의에 선뜻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었는지… 저기요! 여기 맥주 두잔 더 주시겠어요?"

"고맙지만, 됬소. 덕분에 할 일이 생겨 바빠져서 말요. 내일 이 자리에 아흔닢을 가지고 오는걸 잊지나 마쇼."

"물론이죠."

긴장하지 않았다. 긴장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자신에게 말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술집을 나왔다. 바깥의 시원한 공기가 맥주로 인해 후끈해진 얼굴과 맞닿자 오한이 살짝 들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활짝 웃었다. 인생이 피고 있어. 이 망할 인생이 드디어 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나는 한시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멍청한 엘프 덕분에,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잡화점으로 향해, 아교와 붓을 구매했다. 그것을 들고 집으로 곧장 향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인기척에 놀란 하피가 꽥하고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하피가 깨고 나온 알의 껍질은 그리 끔찍하게 부서지지 않았다. 덕분에, 일이 쉬워질 모양이었다. 조금만 손을 쓴다면, 모두가 속아 넘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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